[대통령 한겨레 발전기금 논란]
<font color="darkblue">공무원의 공무 집행과 시민으로서의 기본권 행사를 구별해야
사생활에서 부당한 제한을 받고 있는 이 나라의 수많은 공무원들</font>
▣ 박노자/ 오슬로국립대 교수·한국학
대통령으로 재직하고 있는 노무현씨가 자신의 월급으로 한겨레신문 발전기금을 내려는 데 대해 보수 언론이 ‘권언유착’을 들먹이고 ‘언론 독립성의 훼손’이라고 비난하는 것을 들으면 ‘적반하장’이라는 말부터 떠오른다. 그런데 이와 같은 이야기가 일부 시민에게 먹혀드는 이유 중의 하나는, 우리가 아직까지도 공인으로서 공무원의 공무 집행과 사인으로서 그 기본권 행사나 사생활을 제대로 구별하지 못하는 데에 있지 않나 싶다. 대중 의식의 차원에서 구별하지 못할 뿐 아니라 권위주의 시대로부터 물려받은 잘못된 법제에 의해 제도적으로 구분하지 못하게 돼 있기도 한다. 그래서 ‘노무현씨의 한겨레 발전기금 사건’에 대한 나의 감상문(?)의 초점을 바로 이 공무원 생활에서의 공사 분별 문제에 맞추겠다. 노무현씨의 한겨레 발전기금에의 월급 기부에 상식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을 입증해야 할 이유는, 무엇보다 잘못된 법과 ‘관습법’에 의해 그 기본권 행사나 사생활에서 부당한 제한과 간섭을 받고 있는 이 나라의 수많은 공무원과 교사 등 준공무원들의 한을 풀기 위해서다.
대통령을 ‘천자’로 보지 않는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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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이란 누구인가? 국가에 자신의 노동력을 팔아서 생계를 이어가는 국가 고용의 노동자다. 일반 기업의 노동자가 근무 시간 내에 정당 활동을 할 수 없고 특정 정당의 이익에 봉사할 수 없듯이, 국가의 노동자 역시 공무 집행 시간에 자신의 정당 소속이나 지지를 드러내거나 자신의 정치적 지향에 따라 공무를 편벽되게 처리하면 안 된다. 예컨대 교실의 노동자인 교사가 수업 시간에 학생들에게 민주노동당을 선전한다면 이는 큰일날 이야기다.
그런데 한 시민으로서 교실 바깥에서의 교육 노동자의 정당 활동은, 과연 국가나 사회가 관여해야 할 일인가? 교실 바깥에서의 민노당 가입이 교실 안에서의 엄정한 중립의 태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논리라면 교실 바깥에서의 종교 활동까지도 아예 금지해버려야 할 것이다. 교실 바깥에서의 정치활동이 교실 안에서의 중립을 해친다면, 교회나 사찰에 정기적으로 다니는 교사가 교실 안에서 예수나 부처 이야기를 특별히 강조하지 않을 보장이란 어디에 있냐고 물어보고 싶다. 정치와 종교가 성격이 다른 문제라는 반박이 올지도 모르지만, 헌법의 논리상 정치 활동의 자유와 양심의 자유는 같은 기본권에 속할 것이다. 한 시민의 직업적 특성이 기본권의 행사에 중대한 제한을 가져다준다면 이는 민주공화국의 정치 논리상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다.
노무현씨의 한겨레 발전기금 쾌척 문제를, 나는 같은 각도에서 보려고 한다. 국가원수로서 노무현 대통령이 직무 집행 시간에 방송사의 카메라 앞에서 <한겨레>를 보고 있는 모습을 자주 보이는 수준에서라도 <한겨레>에 대한 어떤 종류의 ‘특혜’를 준다면 이는 분명히 ‘권언유착’일 테다. 그런데 일개 사인으로서 노무현씨의 직무 수행 이외의 행동에 대해서 사회가 특별히 신경써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이 행동이 법에 저촉되지 않는 한 이는 어느 누구도 알 필요도 알 권리도 없는 개인 노무현씨의 사생활일 뿐이다.
물론 미국처럼 청도교적인 광신주의가 사회생활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나라 같으면 대통령을 비롯한 주요 공직자들의 사생활이야말로 언론과 ‘주류’ 사회의 관심 대상이 된다. 나는 그러한 측면에서 대통령이 정부(情婦)를 거의 공개적으로 두더라도 거기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 프랑스 언론의 태도를 훨씬 더 바람직하게 생각한다. 우리가 대통령을 하늘의 도리를 세상에서 실천하는 천자(天子)나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청도교적 사회의 청결한 지도자로 생각하지 않는 한 근무 시간이 아닌 사적인 시간에 집무실 밖에서의 대통령의 일체 합법적 행동에 사회적 의미를 부여하거나 관심을 보일 필요가 뭐가 있는가? 우리가 개인으로서 노무현씨를 노무현 대통령이라는 공인의 이미지로부터 ‘해방’시킬 필요가 있다. 그래야 수많은 교실과 정부 부처 사무실의 노동자들이 어느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개인으로서의, 시민으로서의 영역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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