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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엔 노무현-김정일이 만난다

등록 2005-06-22 00:00 수정 2020-05-03 04:24

정동영- 림동옥 막후 대화채널이 ‘생각보다 빨리’ 거사 이뤄낼 수도
벼랑 끝 몰린 북에게 명분 던지고 통큰 전략적 결단 받아내

▣ 임을출 기자 chul@hani.co.kr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언제쯤 만날까.
정동영 통일부 장관과 김 위원장의 만남을 지켜보면서 당장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물음이다. 이런 맥락에서 남북간에 2년여 만에 뚫린 정동영 통일부 장관-림동옥 북한 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 사이의 막후 대화 채널은 눈여겨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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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위원장은 서울을 방문할까

정 장관이 사흘간 북한에 머무르는 동안 내내 두 사람은 무대 앞과 뒤에서 대화 통로 구실을 해온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림 부부장은 정 장관의 김정일 국방위원장 면담 성사에도 결정적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두 사람의 단독 면담 때 홀로 김 위원장을 보좌했다. 과거 김용순 아태평화위원회 위원장이 늘 앉았던 오른쪽 자리에 그가 앉게 된 셈이다.

림 부부장은 임동원 전 국가정보원장이 2000년 5월27일 처음 비밀리에 방북했을 때 개성에서 만나 남북 정상회담 관련 막후 협상을 한 주인공이다. 그 뒤 그는 폐암으로 투병생활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남쪽 정보기관에서 그의 병세가 호전돼 다시 활동 무대에 등장한 것을 포착한 게 지난해 말께였다.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장을 겸하고 있는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지난해 11월 이후 최근 5월까지 림 부부장 앞으로 당국간 대화 재개를 촉구하는 개인 서한을 보내는 등 각별한 관심을 표명했다. 마침내 북한은 5월14일 판문점 전화통지문을 통해 차관급 회담을 재개하자는 남쪽 요청에 호응하면서 10개월여간의 당국간 대화 중단의 시기는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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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정부는 올 초까지만 해도 북쪽이 남쪽과의 대화를 머뭇거리는 요인 가운데 하나로 북쪽 내부 사정을 꼽았다. 남북 대화 채널 구실을 해왔던 김용순 아태평화위원회 위원장과 송호경 부위원장이 사망한 뒤 이들을 대체할 만한 새로운 인물을 찾지 못해 전전긍긍해왔다. 막후 대화 채널을 만들려고 해도, 도대체 누구와 접촉할지를 몰라 헤맸던 것이다.

이제 정동영-림동옥 라인이 2차 남북 정상회담을 성사시켜낼지에 눈길이 쏠리고 있다. 정동영 장관은 이에 대해 “김 위원장이 적절한 때가 되면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라고만 짤막하게 전했다. 그러나 ‘적절한 때’는 생각보다 일찍 닥칠지도 모른다는 관측이 많다. 김 위원장이 정 장관에게 밝힌 노 대통령에 대한 호의적 평가는 이례적으로 비칠 정도다. 정 장관은 “김 위원장이 노 대통령의 남북관계 발전과 핵 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에 대해 각별한 인사를 전해달라고 거듭 요청했다”고 밝혔다.

<조선중앙통신>은 김 위원장이 6월17일 6·15 민족통일대축전에 참가한 정동영 장관을 ‘노무현 대통령의 특사’ 자격으로 만났다고 보도했다. 이 통신은 평양발 기사에서 “민족통일대축전에 참가한 남측 당국 대표단 단장인 통일부 정동영 장관을 노무현 대통령의 특사로 접견했다”며 “석상에서 특사는 김정일 동지께 보내온 로무현 대통령의 구두 친서를 정중히 전해드렸다”고 전했다. 김 위원장은 정 장관을 노 대통령 특사로 만났음을 인정하면서 사실상 간접 정상회담이 이뤄진 셈이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김정일-정동영 사이의 합의 내용이 순조롭게 이행되면 조만간 2차 남북 정상회담이 열릴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본다.

그간 노무현 대통령은 북핵 문제가 진전되지 않는 한 김 위원장을 만나는 게 어렵다는 투로 말해왔다. 따라서 북한이 6자회담 복귀를 선언하고 실질적인 진전이 이뤄지면 곧바로 정상회담까지 이어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번에는 김 위원장이 답방할 차례여서, 그가 실제로 서울을 방문할지 아니면 제3의 장소를 선택할지는 아직 점치기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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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출발 전 면담 결정했다

지난 6월17일에 이뤄진 김정일-정동영 만남과 주요 합의는 특별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정부는 이번 6·15 남북 공동선언 5주년을 기점으로 7월 6자회담, 8·15 광복절 공동 행사를 거쳐 11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부산 개최를 통해 남북관계와 핵 문제를 누구도 되돌릴 수 없는 지점까지 끌어올리겠다는 야무진 계획을 품고 있다. 이 기회를 놓치면 참여정부의 남은 임기 동안에는 더는 이런 호기가 없을 것이라는 인식에서다. 북쪽도 초조하기는 마찬가지다. 김 위원장으로서는 남북관계 발전을 통한 핵무기 해결의 마지막 기회라고 판단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미국은 6자회담이 7월까지 이뤄지지 않으면 북핵 문제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넘겨 제재를 가하려는 의도를 공공연히 드러낸 바 있다. 더는 물러설 수 없는 벼랑 끝에서 남쪽은 명분을 던져주었고, 김 위원장은 때맞춰 전략적 결단을 내린 셈이다. 이런 맥락에서 이번 김정일-정동영 만남은 예정된 절차이었는지도 모른다.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정 장관은 북에서 인정받지 못한 인물이었다. 그는 지난해 12월15일 주방기기 업체인 리빙아트의 시제품 생산을 기념하기 위해 처음으로 개성공단을 방문했지만, 그가 연설하는 가운데 북쪽 대표가 자리를 뜨는가 하면 북쪽 언론 역시 자신의 개성공단 방문 사실조차 언급하지 않는 등 노골적인 푸대접을 받아야 했다. 그러나 김 위원장은 이번에 정 장관에게 커다란 정치적 선물을 안겼다. 김 위원장은 누구와 만나주는 것 자체를 자신이 줄 수 있는 최고의 ‘예우’ 또는 ‘선물’로 간주한다. 그는 정동영 통일부 장관을 6·15 5주년 기념 마지막 날인 6월17일 전격적으로 초청해, 단독 면담과 점심을 함께했다. 지난 2002년 5월 유럽·코리아재단 이사 자격으로 방북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 이후 3년 만에 처음으로 남쪽 인사를 직접 만난 셈이다. 사실 김 위원장은 정 장관이 서울을 출발하기 전부터 만날 작정을 했던 것 같다고 정부 당국자는 귀띔했다. 그는 “정 장관이 머물렀던 백화원 초대소나 16일 환송만찬을 열었던 목란관은 김 위원장만이 지시해서 이용할 수 있는 곳”이라고 말했다. 북한은 이미 정 장관 일행에게 최상의 예우를 베풀고 만남을 예고한 셈이다.

정동영 장관을 차기 실세로 인정한 셈

정 장관의 측근에 따르면 정 장관이 북으로부터 이런 대접을 받기까지에는 남모르는 노력이 있었다. 그는 대북정책 원칙과 투명성을 외치면서 좀더 때를 기다리자는 청와대 NSC 일부 인사들의 반대 의견을 물리치고, 비밀 접촉이나 특사 파견을 통해서라도 북한 최고지도자의 설득과 협력을 견인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이를 앞장서 실천한 것으로 알려진다. 이런 맥락에서 이번 6·15 5주년 기념 민족통일대축전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면담 성사는 정동영 전 장관의 공으로 돌려도 모자람이 없을 듯하다.

북은 사실 올 초부터 남쪽 정부로부터 먼저 긍정적 신호가 오기를 목매어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6·15 남북 공동선언 5주년이 다가오면서 북쪽도 더는 남쪽 당국에 등을 돌리기에는 부담스런 상황이 찾아왔다. 북한이 올해 최우선 국정 과제로 내세운 농업 증산을 위한 비료 지원도 다급했고, 주민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불어넣을 새로운 계기 마련도 절실히 필요했다. 그러나 북핵 위기가 꼭짓점으로 치달으면서 오히려 다가서기 힘들 것 같았던 남북을 다시 하나로 묶는 계기가 됐다. 그래도 믿을 데는 동족밖에 없다는 공감대가 북쪽 내부에 폭넓게 형성된 탓이다.

이번 행사에서 북쪽은 남쪽 정부와 민간 대표단 가릴 것 없이 극진한 대우를 했다. 백낙청 6·15 공동행사 남쪽 준비위원회 위원장은 “모든 행사가 성대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개막식 날 빗속에서 행진한 것”이라며 “우리도 좀 힘들었지만 행사에 나온 평양 시민과 학생들이 빗속에서도 열렬히 우리를 환영해준 것이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이번 행사의 특징은 두 가지로 집약된다. ‘우리 민족끼리’로 상징되는 민족 공조의 강조와 정동영 통일부 장관을 차기 실세로 인정하고 우대한 점이다.



‘사상의 해방’까지 선언?

이미지 변신 위해 무던히 애쓰는 김정일… 6자회담 뒤를 기대하라

마침내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전략적 결단’을 내렸다.
그는 초미의 관심사였던 핵 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 복귀를 약속했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김 위원장이 상대방(미국)이 우리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뜻이 확고하다면 7월 중에라도 (6자회담에) 나올 수 있으며, 그러나 이 문제는 미국과 좀더 협의해보아야겠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단서가 붙어 있긴 하나 구체적인 시기까지 못박은 점을 감안하면 북한의 6자회담 참여 선언은 초읽기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6자회담 재개와 진전은 곧 남북관계의 획기적인 발전을 뜻한다. 개성공단, 남북 도로·철도 연결 및 금강산 관광특구에 이어 대규모 농업, 에너지 지원 등이 단계적으로 이뤄진다. 정부는 그간 핵 문제 진전을 대비해 포괄적이고 구체적인 대북경협 지원계획을 다듬어왔다. 이런 계획에는 국제 사회도 동참한다. 참여정부가 야심차게 구상하고 있는 북핵 문제의 실질적 타결을 위한 ‘중대 제안’의 어렴풋한 실체다. 김 위원장은 노무현 대통령이 여러 차례 강조한 ‘핵 포기라는 전략적 결단을 통해 체제 안정과 경제발전의 전기’를 마련하기로 작정한지도 모른다. 따라서 앞으로의 남북관계 관전 포인트는 ‘6자회담의 진전’과 ‘대규모 남북경협의 병행 발전’이다.
김 위원장은 어느 때보다 전향적인 핵 포기 의사를 밝혔다. 정 장관에 따르면 그는 핵 문제 해결시 핵무기비확산조약(NPT)에 복귀하고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을 포함한 모든 국제 사찰을 받겠다는 뜻을 밝혔다. “와서 봐라. (핵무기를) 하나도 남길 이유가 없다.” 핵무기를 가질 까닭이 없다고 다시 강조한 셈이다. 그의 말에서 드러나는 핵 보유 이유는 간단하다. 미국이 얕잡아 보기 때문에 할 수 없이 핵을 개발했다는 것이다.
이제 공은 미국에 넘어갔다. 북한의 최고지도자인 김 위원장의 핵 포기 의지가 국제 사회에 명확하게 전달된 만큼 미국의 조지 부시 대통령도 대화를 거부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특히 그는 부시 대통령과 미국에 대한 호감을 유감없이 드러냈다. 정 장관에 따르면 그는 “부시 대통령 각하에 대해 나쁘게 생각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만나서 부시 대통령과 대화하면 흥미를 가질 수 있다고 말한 것을 지금도 기억하며, 고이즈미 일본 총리가 왔을 때도 같은 취지로 얘기했다”고 말했다고 정 장관은 덧붙였다. 나아가 김 위원장은 “클린턴 대통령 때부터 미국에 대해 좋게 생각하고 있고, 우호적으로 생각하고 있다”며 “나의 이런 생각을 공개적으로 밝혀도 좋다”고 말했다. 지난 6월10일 한-미 정상회담에서 부시 대통령이 자신을 ‘미스터 김정일’이라고 부른 데 대해 긍정적 평가를 내리기도 했다. 미국이 더 분명하게 김 위원장이나 체제에 대한 존중 의사를 밝히면 6자회담은 7월 중에 열리는 것이 확실해 보인다. 김 위원장과 정 장관 사이에 합의된 다른 정치·군사·인도주의 현안들도 중요하다. 금강산에서의 8·15 이산가족 상봉이나 최초로 시도되는 이산가족 화상 상봉, 장관급 회담을 통한 남북 장성급 회담 재개, 광복 6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8·15 남북 공동행사 개최 등은 남북 화해와 협력의 분위기를 농익게 만들 것이다. 그러나 정부 관계자들은 역시 6자회담의 진전과 대규모 남북경협의 본격적인 시동에 적잖이 기대를 거는 모습이다. 남북관계를 한 단계 질적으로 발전시키는 계기를 여기서 찾을 수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또 이번 6·15 행사는 북쪽의 대남 대화 채널 복원은 물론 내부적인 체제 정비가 마무리됐음을 대내외에 선포하는 의미도 있다. 북한은 지난해 초부터 내부 조직 정비와 세대 교체를 중심으로 한 대대적인 인적 개편을 단행해왔다. 북한 내부 소식에 밝은 한 관계자는 앞으로를 주목하라고 자신 있게 강조한다. 이 관계자는 “북한이 북핵 문제와 남북관계 발전에 맞춰 이전에는 생각하기 어려웠던 파격적인 경제 개혁·개방 조처를 내놓을 것”이라고 말했다. 심지어 그는 김 위원장이 ‘사상의 해방’까지 선언할지 모른다고 점쳤다. 그는 김 위원장이 핵 문제뿐 아니라 외부 세계에서 삐뚤게 그려진 자신의 이미지를 바꾸려 무던히도 애쓰고 있다고 덧붙였다.




별난 재미에 빠진 부시

탈북자 출신 강철환 기자 만나 김정일 자극, 한국 정부에도 부담 줘



김정일-정동영 면담으로 이제 공은 미국쪽에 넘어갔다. 그런데 미국이 인권 카드를 끄집어낸 터라 정부는 조마조마하다. 인권 문제가 모처럼 성숙되고 있는 6자회담 재개 분위기에 악영향을 미칠까봐서다. 조시 부시 미 대통령은 지난 6월13일 이례적으로 탈북자 출신 <조선일보> 기자인 강철환(37)씨를 백악관 집무실로 초청해 북한 인권 문제를 놓고 40분간 대화를 나눴다. 부시는 강씨가 지난 2001년 자신이 직접 겪은 북한 집단 노동수용소의 실태를 적은 <평양의 수족관: 북한 강제수용소에서 보낸 10년>을 읽고 마음이 움직였다고 말했다. 부시는 6월13일 강씨를 만난 자리에서 “북한 주민들이 무슨 죄가 있는가. 굶주림으로 고통을 겪을 임산부들과 어린이들이 너무 불쌍하다. 그래서 인도적 지원과 정치적 문제는 결부시키지 않고 있으며, 북한에 많은 쌀을 지원했다”고 말했다.
부시가 북한 정권과 일반 주민들을 분리해서 민심을 얻으려는 속셈이 어렵지 않게 읽힌다. 여기서 또 어김없이 김정일 현 지도부에 대한 강한 불신과 증오심이 묻어난다. 핵 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 복귀 시점을 저울질하는 북한 당국으로서는 또 뒤통수를 얻어맞는 셈이다. <워싱턴포스트>는 6월15일자에서 “부시 대통령 자신도 강씨에게 인정했듯이 이런 만남은 억압적인 국가의 지도자들을 분명히 화나게 할 것”이라면서 “북한의 경우 이것은 김정일을 다자간 협상으로 복귀시키려고 설득하려는 시도를 어렵게 만들거나, 심지어 탈선시킬 수도 있다”고 우려를 표시했다.
부시는 요즘 외국의 저명한 반체제 인사들을 만나 해당 국가를 자극하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다. 이들을 극적으로 만나 평소 ‘목엣가시’같이 여기는 국가들의 인권 문제를 부각시키는 식으로 자신의 집권 2기 국정 목표인 ‘자유와 민주주의 확산’을 꾀하려 시도하고 있다. 그는 지금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이 냉전시대 소련의 반체제 인사들을 정치적 목적에 활용했던 방식을 흉내내고 있는 셈이다. 그는 지난해 11월 옛 소련 정치범 수용서 실패를 고발한 나탄 샤란스키 전 이스라엘 장관을 비롯해, 최근 베네수엘라 정부의 최고의 적으로 꼽히는 인물을 백악관으로 불러 만난 적이 있다. 지난달 모스크바 방문길에는 러시아의 인권운동가를 만나기도 했다.
부시의 이런 행태는 북한뿐 아니라 6자회담 재개를 통해 핵 문제를 풀려고 안간힘을 쏟고 있는 한국 정부에도 부담스럽다. 부시는 강씨를 만나기 불과 사흘 전에 노무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두 나라는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며 한-미 관계의 균열설을 강하게 부인한 바 있다. 부시가 강씨를 만나 한 발언들은 당장 남쪽 전달 메시지의 신뢰성을 크게 손상시킬 우려가 있다. 미국 최고지도자의 메시지를 통해 북한의 6자회담 견인을 도모하려던 정부다. 외교부의 한 당국자는 16일 “중요한 것은 슬로건이 아니라 해법이고, 분노가 아니라 답”이라며 “북한 인권 상황에 대한 평가는 다 알려져 있지만 (이제는) 개선시킬 방안을 내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다 된 밥에 코 빠뜨리는 미국에 대한 서운함이 가득 배어 있는 발언이다.
한 탈북자는 “지금 북한 인권 문제를 해결하자는 미국의 주장은 다른 말로 김정일 정권을 당장 갈아치우자는 얘기와 같다”면서 이런 정치적 접근으로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탈북자들은 요란하지 않으면서 실질적인 북녘 동포들의 인권 개선을 열망하고 있다. 부시는 당장 정치적 문제와 인도적 지원을 연계시키지 않는다고 밝혔으나, 북핵 위기 이후 대북 식량 원조를 크게 줄이는 바람에 세계식량기구(WFP)는 올가을 북한이 다시 대규모 기아 사태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더구나 부시 행정부는 쿠바 관타나모 미 해군기지 수용소에 수감돼 있는 이슬람계 테러 용의자들을 비롯한 이라크 내 포로들을 학대하면서 인권을 유린해 세계 여론의 강한 비난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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