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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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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배고픈 ‘민족교육’

등록 2005-06-02 00:00 수정 2020-05-03 04:24

<font color="darkblue">재정난 때문에 학교부지 주차장 사업까지 하는 재일조선인학교
새로운 교과서엔 6·15 공동성명과 주체사상이 함께 실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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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쿄· 오사카=글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총련이 50년 동안 가장 잘한 일은 민족교육을 지켜온 것이다"

평소 총련에 대해서 비판적인 사람들도 총련의 ‘민족교육’에 대해선 높이 평가한다. 민족교육의 핵심은 ‘조선말 교육’이다. 조선인 학교를 통해 우리말 교육의 고삐를 놓지 않았기 때문에, 총련 동포 2·3·4세는 우리말을 자유자재로 쓴다. 재일 조선인 사회에서 한국말을 할 수 있으면 총련 동포이고, 그렇지 않으면 민단 동포이거나 귀화자라는 말이 그래서 통용된다.

사회 교과서 “한국은 정보기술 선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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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 동포 가운데 20% 가량이 아이들은 조선인 학교에 보낸다.

5월24일 도쿄 조선중고급학교. 30여명의 학생들이 우리말로 진행되는 화학 수업을 진지하게 듣고 있었다. 조선인 학교의 수업은 일본어를 제외한 모든 과목이 우리말로 진행된다. 물론 쉬는 시간에 학생들은 입에 편한 일본말을 쓰지만, 학교에선 우리말을 쓰는 게 원칙이다. 학교도 일상 생활에서 우리말 쓰기 운동을 펼치고 있다. 마치 한국의 사설 영어학원에서 ‘온리 잉글리시!’(only English)를 외치는 것과 같은 분위기다.

3학년2반 교실 게시판에는 ‘일상에서 쓰는 우리말’이라는 제목 아래 ‘대단해… 썰렁해… 재수없어’라는 남한에서 쓰는 표현이 붙어 있다. 3학년1반 게시판에는 ‘지금 우리 반은 녀동무들이 우리말을 잘 쓰고 있는데, 남동무들! 멋지게 우리말을 쓰고 반 분위기를 올려나가자”는 익살스런 구호도 눈에 띄었다.

조선인 학교의 우리말 운동에는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의지가 실려 있다. “언어는 민족의 중요한 표정입니다. …조선 사람은 어디서 살든지 조선말을 하고 조선글을 써야 합니다”라는 김 주석의 말은 우리말 쓰기 운동의 교시와 같다.

조선인 학교에는 최근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2002년 초·중급 학교 교실에서는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위원장의 초상화가 떼어졌고, 2003~2005년 차례로 개정된 교과서에는 북한 체제를 일방적으로 찬양하는 정치적 내용이 최소화됐다. 초급 5학년 사회 교과서를 보면, 한국을 ‘세계적인 정보기술 선진국’이자 ‘교육 수준이 높은 나라’로 설명하고 있다. 특히 2000년 6·15 남북 정상회담과 뒤이은 남북 교류를 상세하게 소개했다. 송현진 도쿄 조선제2초급학교장은 “새로 개정된 교과서는 통일 조국의 주인으로 학생들을 키우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아무리 공부 잘해도 도쿄대 입학 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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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북한 지도자와 체제에 대한 찬양이 조선인 학교에서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다. 초급 고학년 이상부터는 방과 후 소년단이나 재일본조선청년동맹(조청)에서 일종의 정치교육인‘정세학습’을 해야 한다. 주체사상은 고급학교 사회과의 철학 단원에서 오롯이 살아 있다. 이런 내용 때문에 아직 많은 재일 조선인들이 ‘우리말 교육’의 확실한 효과에도 불구하고 조선인 학교 보내기를 꺼리는 게 사실이다.

권달인 도쿄조선중고 교사는 “재일 조선인 학부모들이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는 것은 사상적인 문제보다는 사회적 차별과 경제적인 문제가 크다”고 말한다. 조선인 초급학교의 한달 학비는 8천엔(8만원 정도). 찬조금 등 각종 비용을 합치면 한달 1만5천엔이 든다. 중학교까지 전액 무료인 일본 공립학교는 물론 사립학교에 견줘봐도 비싼 금액이다.

이는 일본 정부가 조선인 학교에 대해서 국고를 지원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지자체에서 지원을 해주지만 1인당 연간 8만~9만엔 정도로 일본인 사립학교의 10분의 1 수준이다. 그래서 조선말을 가르치려는 학부모들은 수업료 외에도 각종 찬조금과 후원금에 시달려야 한다.

“운동회네, 학예회네 행사 때마다 학부모들에게 손을 벌려야 돼요. 그것으로도 학교 운영이 힘들어 학교 부지 일부를 주차장으로 떼내어 수익을 올리고 있어요. 그게 학교 재정의 3분의 1을 차지합니다.”

송현진 도쿄 조선제2초급학교장은 “주차장이 없다면 학교가 없어질 것”이라며 재정난을 호소했다.

조선인 학교가 이렇게 ‘차별 대우’를 받는 건 ‘각종 학교’로 분류돼 있기 때문이다. 일본 문부과학성이 제시하는 표준 교과과정을 따르지 않는 외국인 학교(각종 학교)는 국고 지원 대상에서 제외되고, 교육과정을 수료해도 공식적으로 학력이 인정되지 않는다.

2002년까지만 해도 조선인 고급학교를 나온 학생은 일본의 국립대학의 수험자격을 갖지 못했다. 지금은 대학의 자율 판단에 맡겨 대부분 개선됐지만, 아직도 일본의 최고 명문대인 도쿄대는 조선인 학교 졸업생에게 수험 자격을 주지 않고 있다. 학교 기부금에 대해서도 일본 학교는 세금 공제를 해주지만, 조선인 학교는 세금을 내고 기부해야 한다.

“일본 사립학교 수준으로 지원해줘야”

조선인 학교의 가장 큰 고민은 뭐니뭐니 해도 재정난이다. 과거엔 북한 정부가 보내주는 교육 지원금이 큰 도움이 됐지만, 경제 사정이 어려워진 최근에는 연간 200만달러 수준으로 줄어 각 학교에 나눠주기도 힘들 정도다. 2003년에는 한국 정부의 한 인사가 여러 루트를 통해 조선인 학교를 지원하는 방안을 타진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그러나 총련의 기관지인 <조선신보>는 "총련 교육을 횡취하려는 행위"라며 심한 거부감을 나타냈다.

총련 관계자는 “조선인 학교를 지원해야 하는 건 한국 정부가 아니라 재일 조선인을 강제 징용으로 이 땅에 불러들이고 전쟁에 내몬 일본 정부”며 “조선인 학교 지원은 식민 지배를 책임지는 차원에서 일본 정부가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소한 일본 사립학교 수준의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는 게 조선인 학교 교사들의 소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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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엔 일본대 진학 특별수업</font>

초등~대학교까지 완결적 체제 갖췄지만 조선인학교만 다니는 학생은 없어

총련이 운영하는 조선인 학교는 초급학교에서부터 대학교까지 자기완결적인 체계를 갖추고 있다. 조선인 학교의 수업은 일본어를 제외한 모든 과목이 우리말로 진행된다. 일종의 ‘이머전 교육’(일반 교과목을 외국어로 가르치는 학습법)인 셈이다.
학생들은 보통 초급학교에서 우리말을 처음 익힌다. 조선인 3~4세가 학부모인 경우가 대부분이고, ‘충성도’가 높은 총련 일꾼의 가정에서도 우리말을 쓰는 경우는 드물다. 도쿄 조선제2초급학교의 김성오(27) 교사는 “평소 일본말을 써오던 1학년 학생들이 가장 힘들어한다”며 “하지만 6개월~1년이면 대부분의 아이들이 우리말을 유창히 구사한다”고 말했다.
초급학교부터 고급학교까지 줄곧 조선인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은 그리 많지 않다. 학부모들이 아이들의 일본 사회 적응을 염려해 중·고급학교는 일본 학교로 보내기 때문이다. 도쿄조선중고처럼 상당수 고급학교는 여름방학에 일본대 진학을 위한 특별수업을 시키기도 한다. 도쿄조선중고는 지난해 일본의 명문대인 게이오대의 합격생을 배출하기도 했다.
고급학교를 졸업하면 일본 대학에 진학하거나 총련이 운영하는 대학인 조선대에 들어간다. 권달인 도쿄조선중고 교사는 “한반 정원 35명 가운데 3분의 1은 일본대에, 3분의 1은 조선대에 간다”고 설명했다.
‘총련 일꾼 양성소’인 조선대의 한해 입학생은 250~300명. 전학생 기숙사제로 정치경제·문학력사·경영학부 등 모두 8개 학부에 900여명이 다니고 있다. 조선인 학교 교사를 배출하는 교육학부는 수업료가 전액 지원된다. 조선대를 나오면 대부분 총련 본·지부나 산하단체, 조선인상공회 등 총련 사회 안에서 직장을 잡는다. 강상근 조선대 교수는 “예전과 달리 조선대 졸업생들이 일본 대학원에서 공부하고 돌아오는 등 타 대학과의 교류도 활발해졌다”고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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