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darkblue">비정규직 증감 추정 등 없는 정부 법안… “파견노동자, 정규직으로 만든다” 장담도 의문</font>
▣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현재 우리나라에는 비정규직 고용관계를 규율하는 개별 노동법이 따로 없다. 외환위기 이후 비정규직이 전체 노동자의 절반을 넘은 지 오래지만, 법·제도적 틀이 없는 ‘무정부 상태’가 지속돼온 것이다. 오래전에 만들어진 현행 근로기준법은 정규직을 일반적인 고용 형태로 보고 있다. 지난 4월14일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의 비정규직 법안(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정안,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에 대한 권고는 이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인권위는 △기간제 고용을 ‘합리적인 사유’가 있는 경우로 제한하고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규정 명문화 등을 권고했다. 눈여겨볼 대목은 인권위가 비정규직 고용을 우리 사회 노동의 ‘예외적 형태이어야 한다’고 규정했다는 사실이다. 인권위 조영황 위원장은 “국가인권위원회는 비정규직이 결코 고용의 일반 원칙이 돼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확인했다. 비정규직은 고용 형태에서 ‘예외적으로, 제한적으로’ 사용돼야 한다”고 말했다. 비정규직은 ‘줄이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기준을 제시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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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위 ‘노동인권’ 강조 뒤 논란 가열
비정규직 문제가 노사관계를 넘어 ‘노동인권’ 차원으로 확장됨에 따라 비정규직 법안을 둘러싼 오랜 논란은 새로운 국면에 들어섰다. 열린우리당과 노동부, 경영자총협회는 “노동시장 문제를 인권 문제로 다루려는 발상은 잘못”이라며 인권위를 한 목소리로 비난했다. 김대환 장관은 “노동시장 선진화로 가는 과정에서 마지막으로 나타난 돌부리가 인권위”라고 말했고, 열린우리당 관계자는 “노·사·정 사이에 어렵사리 법안 타협이 이뤄질 만한 시점에서 인권위 권고가 갑자기 돌출해 다시 수렁에 빠지고 말았다”고 말했다. 노동부쪽이 그동안 “노사의 반대가 있더라도, 정부 법안이 큰 방향에서 맞다고 보는 게 국민적 공감대인 만큼 조속히 처리해야 한다”고 밝혀온 반면, 민주노총 주진우 비정규실장은 “인권위에서 권고한 가이드라인이 바로 사회적 공감대의 수준”이라며 “정부·여당이 이를 빨리 수용해 법안을 처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비정규직 관련 2개 법안은 △기간제의 경우 현행 1년 계약기간을 3년으로 연장 △3년을 초과해 사용할 경우 계약 만료를 이유로 한 해고 금지 △합리적 이유 없는 차별 처우 금지 △현행 2년에서 3년으로 파견기간 연장 △3년 이상 동일 직무 파견시 3개월간 파견 금지(휴지기간 도입) 등을 담고 있다. 이에 대해 노동계는 △고용 형태를 이유로 한 차별 금지 명문화(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명시) △기간제 계약기간 현행 1년 유지 △기간제 사용사유 제한 △파견법 폐지 등을 요구하고 있다. 논란은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노동계는 “비정규직을 더 확산시킬 뿐이고 보호는 실효성이 없다”고 주장하는 반면, 정부는 “전체적으로 볼 때 비정규직 규모가 줄어들고 차별도 해소될 것”이라고 말한다. 노동계의 반대는 “잘 모르고 하는 소리”라는 얘기다.
과연, 법안을 마련한 당사자인 노동부는 법안의 효과를 과학적·실증적 근거를 갖고 추산한 것일까? 노동부는 법안의 비용·편익 분석에서 “(기간제 3년 확대에 따라) 숙련된 노동자를 다른 기간제로 교체하는 데 따른 부담이 커지므로 정규직으로 전환할 가능성도 커질 것”이라고 말한다. 또 “파견근로는 차별 금지 신설, 휴지기간 도입에 따라 급증하지 않고 오히려 인건비 절감을 위한 파견근로 활용 유인이 크게 감소할 것”이라며, “기업에서 핵심 인력은 정규직으로 운영하고 있으므로 정규직을 파견노동자로 대체할 가능성도 크지 않다”고 주장한다. 오히려 “3개월의 휴지기간 설정으로 파견근로 사용이 불편해져 기존 파견노동자가 직접고용이 될 가능성도 높아진다”고 주장한다. 과연 그럴까? 문제는 이런 예측이 모두 다 그럴 것이라는 ‘기대’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노동부 비정규직대책과 쪽은 “구체적으로 비정규직이 몇명 늘고 몇명 감소할지, 또 얼마나 보호될지 산출한 건 없다”며 “다만 사용자의 임금비용이 얼마나 추가될지는 예측한 것이 있는데, 이는 비정규직쪽에서 보면 편익”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한국비정규노동센터 김성희 소장은 “정부가 법안을 냈을 때는 그 효과에 대한 예측치라도 제시해야 한다. 비정규직이 몇명 늘거나 줄어들 것이라는 것도 제시하지 않은 채 법안을 마련하는 건 무책임하다”며 “법안이 시행되면 비정규직이 별로 늘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건 아무런 근거가 없다”고 말했다. 민주노총 주진우 비정규실장도 “법안의 효과를 놓고 비용·편익 분석을 하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법안이 노동시장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계량화된 분석이든 개략적인 분석이든 어떤 ‘근거’를 내놓아야 할 것”이라며 “그것이 법안을 마련한 노동부가 제시해야 할 최소한의 요건”이라고 지적했다.
곤란해지니 사정 다른 외국법으로 눈길 돌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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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김대환 노동부 장관은 “인권위의 입장 표명은 단세포적 기준이고, 잘 모르면 용감해지는 비전문가들의 월권”이라고 비난했다. 그렇다면 노동부는 잘 알기 때문에 용감하게 법안을 마련해 국회에 제출한 것일까? 노동부 관계자는 “여러 곳에 법안의 효과 측정을 문의했는데 다들 불가능하다고 말했다”며 “법안이 시행되면 사용자들이 실제로 어떻게 대응할지도 알기 어렵고, 따라서 비정규직 수의 증가와 감소도 예측하기 어렵다”고 털어놨다. 그는 또 “노사가, 설득력 있는 객관적 수치와 근거를 제시할 때까지는 법안을 절대 수용할 수 없다면서 끝까지 버틴다면 죽을 때까지 법안은 타협이 안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러한 근거 제시의 곤란함은 외국 사례에 의존한 법안 마련으로 이어졌다. 노동부 관계자는 “국내 비정규직 법안은 다른 나라의 비정규직 추이와 고용보호 경험 등 보편화된 입법례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며 “우리 역시 비정규직 양상이 외국처럼 진행될 개연성이 크고 그 확률도 매우 높다”고 말했다. 하지만 외국의 비정규직은 파트타임 등 자발적 선택이 많은 반면, 우리나라는 차별도 심하고 ‘굶어죽을 자유’를 피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비정규직을 선택하는 비자발적 측면이 강하다. 외국의 입법례를 우리나라에 그대로 적용하는 데는 ‘한계’가 있는 것이다.
노동계는 또 노동부의 ‘현실 진단’에 오류가 있다고 주장한다. 대표적인 것이 파견노동자의 정규직화 가능성이다. 노동부는 “합법적 파견노동자는 비정규직 중 임금 차별이 가장 낮으므로 합법적 파견의 폭을 넓힐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민주노총 주진우 실장은 “이는 5만명에 불과한 합법적 파견노동자만을 분석할 것일뿐, 70여만명에 이르는 수많은 불법 파견노동자들은 빠져 있는데 이것이 과연 올바른 진단이냐”고 말했다. 또 ‘2년을 초과한 파견노동자는 직접고용으로 간주한다’는 규정이 이미 존재함에도 2년이 지난 뒤 실제로 정규직으로 전환된 노동자는 15.7%에 불과하고 대다수가 그 전에 일자리를 잃는 게 현실이다. 주 실장은 “현실이 이런데, ‘휴지기간 도입에 따라 파견직이 직접 고용될 가능성이 있다’는 노동부의 말을 믿어야 하느냐”고 반박했다. 비정규직 일자리가 정규직으로 넘어가는 징검다리 역할을 하기보다는 한번 빠지면 헤어나기 힘든 ’함정’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법안이 어떤 효과를 낼지를 둘러싸고 논란이 분분할 경우 어떻게 하는 것이 최선일까? 인권위 관계자는 “법안의 효과가 분명하게 제시되지 않는다면 그때는 ‘보호 효과’가 확실하게 나올 수 있도록 법안을 더 보완하고, 차별받고 있는 노동자들이 더 늘어나지 않도록 한계를 그어줘야 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기간제 사용사유 제한’ 막판 타협카드 부상
그렇다면 ‘비정규직 보호’는 제대로 이뤄질 수 있는 것일까? 법안은 노동위원회에 차별시정위원회를 신설해 차별 여부를 판단하고, 시정 명령을 불이행할 경우 1억원까지 과태료를 부과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차별 시정 절차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면 모든 것이 엉망이 될 공산도 크다. 노동위원회가 과연 800만명에 이르는 비정규직의 차별 구제 신청을 모두 감당할 수 있을지, 또 노동조합조차 갖지 못한 비정규직 중 몇명이나 “차별당했다”고 사용자를 상대로 실제로 시정을 요구할 수 있을 것인지도 지적된다. 그러나 노동부는 “노동자들의 권리 의식이 신장되고 있기 때문에 신청 사례가 증가할 것”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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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합리한 차별’의 개념도 모호하다. 노동부는 “불합리한 차별과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은 다르다”며 “차별 금지는 정규직과 동일한 임금을 지급토록 하는 게 아니라 불합리한 차별만을 금지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생산성 격차·기업규모·근속연수 등에 따른 임금격차 요인은 합리적 차별이라는 것인데, 이런 인적 속성에 따른 격차를 제외한 나머지 부분만이 차별적 처우에 해당한다는 얘기다. 이에 대해 비정규노동센터 김성희 소장은 “고용 형태에 의한 차별과 인적 속성에 따른 합리적 차별은 서로 중첩돼 있다. 인적 속성이 다른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동일한 시간을 일해서 동일한 성과를 냈더라도 정규직에게 더 많은 임금을 주는 것이 차별이 아니라는 주장은 비합리적 차별을 줄이기 위한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노총 주진우 실장은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을 명시하지 않으면 차별을 판단할 기준이 없어진다. 법안이 제정돼도 합리적·비합리적 차별에 대한 공방만 되풀이될뿐 비정규직의 차별은 지속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제 법안 논의가 막바지로 접어들면서 ‘기간제 사용사유 제한’이 막판 타협카드로 등장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열린우리당 관계자는 “프랑스식 기간제 사용사유 제한은 당에서 공식 검토했던 안은 아니지만, 노사간 분위기가 좋아져 중재안을 냈을 때 타결될 가능성이 생긴다면 언제든 제시할 카드로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민주노총 주진우 실장은 “프랑스는 업무의 일시적 증가 등 사유제한을 구체적으로 엄격하게 명시하고 있다”며 “프랑스식 사용사유 제한이 제기된다면 충분히 논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일단 타협의 물꼬가 트일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노동부 비정규직대책과는 “사용사유 제한 방식은 프랑스식이든 한국식이든, 사용사유 제한 폭이 넓든 적든 안 된다는 게 노동부의 일관된 방침”이라고 못박았다.
사회통합 선언한 노무현 정부, 시험대로
일부에서는 물이 흘러가는데 댐을 쌓는다고 비정규직 확산 추세를 꺾을 수 있느냐고 말한다. 하지만 ‘제도가 시장을 만든다’는 건 분명하다. 노사가 법안을 둘러싸고 격렬한 대립을 빚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시장’으로 달려가는 흐름을 멈추지 않으면서 동시에 비정규직을 보호한다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그런 점에서 비정규직 법안은 차별 해소와 사회 통합을 선언한 노무현 정부의 시험대가 되고 있다.
<table width="480" cellspacing="0" cellpadding="0" border="0"><tr><td colspan="5"></td></tr><tr><td width="2" background="http://img.hani.co.kr/section-image/02/bg_dotline_h.gif"></td><td width="10" bgcolor="F6f6f6"></td><td bgcolor="F6f6f6" width="4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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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정부가 앞장서서 늘린다</font>
한국비정규노동센터가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 부가조사’(2003년 8월)를 분석한 것을 보면, 공공부문 비정규직은 2002년 147만명에서 2003년 161만명으로 늘었다. 이 기간 동안 비정규직 비율은 광공업과 민간서비스업에서는 전년과 동일한 반면, 공공서비스업은 2.4% 증가했다. 공공서비스업에서 전기가스수도사업(2.2%)·공공행정(2.7%)·교육서비스업(2.2%)·보건사회복지사업(2.2%) 등 모든 산업에서 비정규직 비율이 증가했다. 반면 민간서비스업에서는 사업서비스업(2.0%)·오락문화운동(3.2%)·기타서비스업(1.4%)에서 비정규직이 증가하고, 도소매업(-0.7%)·숙박음식점업(-0.4%)에서는 오히려 감소했다. 특히 다른 조건이 동일할 때 비정규직으로 취업할 확률은 공공부문이 제조업보다 높고, 여성이 비정규직으로 취업할 확률도 공공부문이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게다가 공공부문 가운데 정규직 대비 비정규직 임금 수준 격차가 가장 큰 쪽은 정부부처 등 공공행정(35.2%)으로 나타났고, 비정규직이 저임금 계층(OECD 기준)에 속할 확률도 공공행정에서 가장 높았다. 고용완충 장치로서 공공부문의 역할은 간데없고, 정부가 정규직 일자리를 비정규직으로 채우는 것을 효율성 증가와 동일시하면서 하급직·여성 약자들을 대거 비정규직으로 전환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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