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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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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진타오의 방북, 6자회담 부른다

등록 2005-04-13 00:00 수정 2020-05-03 04:24

북한 경제·외교 사령탑의 잇단 중국 방문… 정치력 과시하려는 중국과 경제적 실리 원하는 북한의 물밑 협상

▣ 임을출 기자 chul@hani.co.kr

지금 북한과 중국 사이에는 대체 무슨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핵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이 꽤 오랫동안 표류하면서 주변국들은 중국 지도부의 일거수일투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북한의 경제 사령탑 격인 박봉주 내각 총리에 이어 외교 사령탑이라 할 수 있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최측근인 강석주 외무성 제1부상이 4월2일부터 나흘간 베이징에 머물다 돌아갔다. 두 사람의 잇단 중국 방문은 양국 사이의 끈끈하면서도 미묘한 긴장 관계를 잘 보여준다는 게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양국 관계에 정통한 정부의 한 고위 관계자는 “북한은 경제적 실리를, 중국은 정치적 실리를 얻고자 한다. 언뜻 보기에는 두 나라가 동상이몽을 하는 것 같지만 한 꺼풀 벗겨보면 또 지금처럼 이해관계가 근접한 적도 없었다”고 설명한다.

“지금처럼 이해가 근접한 적 없다"

북한과 중국은 지금 서로를 가장 필요로 한다는 얘기로 요약된다. 특히 미국과 일본이 군사 동맹을 강화하며 중국을 압박하는 전략을 구사하는 한, 중국은 북한과 전략적 공조가 불가피하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물론 중국은 핵을 가진 북한을 원하지는 않는다. 이에 따른 일본이나 대만의 핵 재무장 동참은 최악의 시나리오 가운데 하나다. 따라서 지금 중국은 북한을 지렛대로 동북아에서의 영향력을 극대화하는 전략을 구사하면서도, 북한을 적절하게 길들이려는 의도도 숨기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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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양국 지도부 사이의 은밀한 접촉과 대화 내용은 외부인들이 좀처럼 파악하기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그러나 애써 틈새를 들여다보면 뭔가 굵직굵직한 현안들이 오가고 있는 듯하다. 최근 베이징을 다녀온 한 정보 관계자는 “박봉주 내각 총리가 중국을 방문했을 때 경제 현안에 논의가 집중되기는 했으나 상당히 의미 있는 경제협력 방안들을 합의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북한이 중국 지도부에 단순한 교역이나 투자 요청을 했을 뿐 아니라 중국이 지난 시절의 개혁·개방정책의 성공적인 제도 경험과 각종 노하우를 전수하기로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더 자세하게는, 북한은 중국에 과거 시장경제 도입 이후의 인플레이션에 대한 대처 방안과 세금 수입을 포함한 재정·금융 제도 운영에 필요한 기술 전수를 위해 중국의 전문가 파견을 요구했고, 중국은 이를 흔쾌히 수락한 것으로 전해진다. 비슷한 맥락에서 거의 고사 상태에 빠진 것으로 알려진 신의주 행정특구의 부활도 조심스럽게 점쳐지고 있다. 중국 정부의 묵인 아래 중국 투자자들의 평양 방문 발걸음이 잦아지고 있고, 실제 투자 상담도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고 정보 관계자는 귀띔해주고 있다. 북핵 문제와 미국의 대북강경 정책 고수는 되레 양국을 더 끈끈하게 묶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양국간 북핵 문제는 어떻게 다뤄지고 있는 걸까. 뒤따라 중국을 비밀리에 방문한 강석주 외무성 제1부상의 북핵 논의 결과는 여러 추측만 무성할 뿐 이렇다 할 결과는 공개되지 않고 있다. 그는 리근 외무성 부국장 등을 데리고 우다웨이 중국 외교부 부부장, 닝푸쿠이 외교부 한반도 담당대사 등과 만나 6자회담 재개 문제를 논의했다. 그러나 강 부상이 직접 중국을 방문해 이 문제를 논의한 것은 꽤 이례적이라는 분석이다. 그는 2002년 10월 2차 북핵 문제가 불거진 이후 2004년 4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중국 방문을 수행했을 뿐 혼자서 중국을 방문한 적이 없다.

지난 시기 세 차례나 6자회담이 열렸을 때도 그는 평양에서 막후 지휘를 했지 직접 나서지는 않았다. 결국 그가 몰래 중국을 방문한 것은 북한과 중국 정상 사이에 뭔가 의미 있는 거래가 이뤄지고 있음을 강하게 시사한다.

강 부상은 우선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의 방북 문제를 가장 심도 있게 논의한 것으로 알려진다. 일부 전문가들은 애초 올 4월 북한을 방문하기로 했던 후 주석이 북한의 핵무기 보유, 6자회담 무기 불참을 선언한 뒤 방북이 미뤄진 것으로 해석한다. 결국 중국 지도부는 강 부상을 통해 후 주석의 방북과 6자회담 재개를 연계해 북한 지도부의 결단을 촉구한 듯하다. 북한은 국제 사회에서 고립과 당장의 경제적 어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후 주석의 방북을 성사시키는 게 중요하다. 그러나 중국은 후 주석의 방북 성과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다. 적어도 북한을 6자회담장으로 끌어내 그 영향력을 국제 사회에 과시할 필요성이 있는 셈이다. 북한 지도부는 이를 잘 알고 있는 듯하다. 후 주석의 평양 방문에 따른 선물로 6자회담 참가를 위한 전략적 결단을 심각하게 고려해야 할 시점이 다가온 것이다. 북한은 6자회담이 중단된 지 1년을 맞이하는 오는 6월 말까지 회담에 복귀해야 한다는 압력을 받고 있다. 6자회담 불참 명분을 더 찾기도 쉽지 않은 터다.

강석주 외무부 부상의 특별한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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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북한은 언제쯤 회담 복귀 선언을 할 것인가. 관련 소식통들에 따르면 북한은 6자회담 복귀 약속을 중국쪽에 여러 차례 재확인한 것으로 보인다. 홍콩의 <밍바오>는 5일 “후 주석이 오는 5월8~10일 모스크바에서 열리는 대독 연합군 승전 60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하기 이전에 평양을 방문하길 희망하고 있다”며 “후 주석은 자신의 북한 방문이 북한의 6자회담 복귀의 돌파구가 되기를 희망하고 있다”고 전했다. 모스크바 방문일이 얼마 남지 않은 점을 감안하면 북한 지도부가 결단을 내릴 시간은 그렇게 많이 남아 있지는 않다. <요미우리>는 6일 미국 관리의 말을 인용해 강 부상이 방중 때 “빠르면 5월 중순 6자회담을 다시 열기로 동의하고, 이를 후진타오 중국 국가 주석의 평양 방문과 교환했다”고 전했다. 또 러시아의 <이타르타스 통신>은 6일 이름을 밝히지 않은 베이징의 소식통을 인용해 “강 부상이 중국 관리들에게 북한이 원칙상 6자회담의 재개에 동의한다고 밝혔으나 구체적인 날짜는 제시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여러 소식통들이 전하는 일관된 메시지는 북한의 6자회담 복귀 선언 시기가 임박했다는 느낌을 준다. 이봉조 통일부 차관의 지적대로 북한은 2월10일 핵 보유 선언 이후 6자회담 복귀를 위해 전개해온 외교 노력을 마무리하는 절차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그는 6일 워싱턴에서 북한이 2·10 핵 보유 선언 이후 “발걸음이 빨라진 것은 북한이 의도했던 결과”라면서 “북한식 벼랑 끝 전술이 미국과의 관계 개선, 미국으로부터 체제 안전 보장과 체계적·안정적·지속적 경제 지원을 받으려는 북한의 희망에 대한 국제 사회의 관심을 일으키는 데 기여했다”고 말했다.

‘폭정의 전초기지’발언, 중국이 조율할까

북한은 6자회담 복귀 결정 이전에 중국뿐 아니라 한국으로부터도 뭔가 선물을 기대하고 있는 눈치다. “북한은 4월10일 노무현 대통령의 독일 방문시 남북한 관계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해줄 신호를 기대하고 있다.” 이는 나흘간의 북한 방문 일정을 마치고 지난 3일 서울을 찾은 하르트무트 코쉬크 한독의원연맹 회장이 한국 정부와 일부 민간 대북 전문가들과 만난 자리에서 밝힌 내용이다. 그는 독일 언론에도 비슷한 취지를 전하는 인터뷰를 가졌다. 이봉조 차관은 이런 코쉬크 의원의 발언에 대해 “북한에 대한 추가적인 유연성이 있지는 않을 것”이라면서 “대북 비료 및 식량 지원도 남북 당국간 협의가 이뤄져야만 가능하다”고 말했다. 지금은 북한에 인내심을 갖고 일관된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 중요하지 일방적인 지원을 약속할 때가 아니라는 뜻을 밝힌 것이다. 이는 코쉬크 의원이 전한 북한 지도부의 기대와는 한참이나 거리가 멀어 보인다. 이 차관의 발언이 청와대와의 교감 없이 나오기는 힘들다는 측면을 고려하면 노 대통령이 독일 방문시 남북 관계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해줄 제2의 베를린 선언을 할 가능성은 그렇게 커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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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6자회담에 참가할 또 다른 핵심 변수는 ‘명분’이다. 북한은 지난 2월19일 왕자루이 중국 공산당 중앙대외연락부 부장이 평양을 방문했을 때 6자회담 복귀에 원칙적으로 동의했으며, 북한에 복귀의 명분을 주기 위한 미국쪽의 태도 변화를 강력하게 요청한 것으로 알려진다. 현재 북한은 6자회담 재개의 최소한의 조건과 명분으로 미국의 ’폭정의 전초기지’ 발언에 대한 사과와 취소를 요구하고 있다. 이는 코쉬크 의원 등 독일 대표단이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면담한 뒤 “북한이 바라는 것은 회담 분위기의 개선”이라며 “미국은 북한에 대해 ‘폭정의 전초기지’와 같은 모욕적인 언사를 해서는 회담이 이뤄질 수 없다”고 전한 것과 맥을 같이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은 이를 단호하게 거부하고 있다. 결국 중국이 어떻게 이 문제를 조율하느냐가 6자회담 성사의 최대 관건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지금 북한은 미국의 현 대북 적대정책이 변화하지 않는 한 앞으로 상당 기간 북핵 6자회담에 복귀하지 않을 것이라는 비관적 주장들이다.

그러나 역시 북한은 중국의 입장을 외면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후 주석의 방북은 북한의 경제와 안보에 적잖은 영향을 미칠 변수다. 중국도 북한과의 전략적 공조가 요긴한 시점에서 무작정 북한에 양보하라고 요구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후 주석의 평양 방문 이전에 북-미간의 견해 차를 좁히는 외교적 노력이 필요한 셈이다.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는 4월의 동북아

이런 맥락에서 미국의 6자회담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동아태 담당 차관보 지명자가 7일 교착상태에 빠진 6자회담 재개를 추진하기 위해 조만간 중국을 방문할 예정이라고 밝혀 주목을 끌고 있다. 그는 과의 인터뷰에서 북핵 문제에 직접 관련돼 있는 강석주 부상의 최근 중국 방문은 북한의 6자회담 복귀 노력에 핵심이 될 수 있다고 밝혔으나, 중국쪽은 강 부상과의 회담 내용에 대해 알려주지 않았다고 전했다. 그는 특히 미국은 북한이 6자회담에 복귀할 것임을 나타내는 아무런 조짐을 보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힐 대표는 북한이 핵 프로그램을 완전 철폐할 경우 안전과 지원을 보장하겠다는 미국의 현 제안을 더 나은 것으로 바꿀 계획이 없음을 재확인하며 북한이 6자회담에 복귀할 경우에만 더 나은 제안이 나올 수 있다고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다. 6월 위기설이 떠도는 가운데 기대와 우려가 가장 극적으로 교차하고 있는 4월의 동북아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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