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종 이슈를 발빠르게 터치해 인기 몰이…‘강한 메시지’ 던지면서 정부 정책에 개입 의혹
▣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국내 웹사이트 분석·평가 전문 사이트인 ‘랭키닷컴’에 따르면, 3월16일 현재 삼성경제연구소 인터넷 웹사이트의 하루 평균 방문자는 8만5천명으로 국내 20여개 경제연구소 부문에서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의 하루 평균 페이지뷰(열람 건수)는 130만건이다. 국내 경제연구소 웹사이트를 통틀어 따져볼 때 삼성경제연구소의 웹사이트 방문객 점유율은 무려 73.93%에 이른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사이트가 점유율 7.23%로 2위, LG경제연구원 사이트가 점유율 5.84%로 3위다. 삼성경제연구소가 독보적인 지위를 점하고 있는 것이다.
대학생들도 리포트 짜깁기
경제연구소 분야를 포함해 우리나라 모든 웹사이트를 대상으로 따져보면, 삼성경제연구소 홈페이지는 방문객 수에서 전체 193위다. 한국개발연구원은 1612위, LG경제연구원은 1940위다. 랭키닷컴쪽은 “삼성경제연구소 인터넷 홈페이지는 지난해부터 최근까지 국내 모든 웹사이트 중에서 150∼205위 사이를 오르락내리락하고 있다”고 말했다. 물론 삼성경제연구소 인터넷 웹사이트에는 ‘다음카페’ 같은 1500여개 포럼 커뮤니티들이 있기 때문에 다른 경제연구소보다 방문자가 더 많을 수 있다. 하지만 랭키닷컴 순위는 경제전문가·연구자뿐만 아니라 일반인들까지 포함해 수많은 사람들이 삼성경제연구소에 들락날락하고 있음을 그대로 보여준다.
삼성경제연구소가 내놓는 연구보고서들이 이처럼 흥행몰이를 하고 있는 이유는 뭘까? 다른 경제연구소의 연구자들은 한결같이 “삼성경제연구소가 트렌드성 보고서를 주로 내놓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한국개발연구원 관계자는 “삼성경제연구소는 각종 이슈에 대해 발빠르고 광범위하게 터치해주는 경향이 강하다. 그래서 일반인들이 잘하고 있다고 느끼는 것 같다”고 말했다. LG경제연구원 관계자도 “삼성경제연구소는 연구 주제의 무게를 전반적으로 퍼블릭(대중적)쪽에 두고 있는 반면, LG경제연구원은 상대적으로 LG그룹 내부로 연구 중심이 향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뿐만 아니라 일반인들까지 삼성경제연구소를 자주 찾아오는 데는 보고서의 ‘대중적 글쓰기’가 한몫하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 김학상 수석연구원은 “다른 민간 경제연구소의 보고서들이 실무자들 위주로 쓰인다면 삼성경제연구소는 최고경영자(CEO)의 눈높이에 맞춰졌고, 그래서 이해하기 쉽고 지루하지 않게 쓴다”고 말했다. 삼성경제연구소쪽은 “많은 사람들이 즐겨 본다고 꼭 좋은 보고서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문장이 쉽고 트렌드 보고서가 많아서 그런지 대학생들이 리포트 작성할 때 우리 연구소의 콘텐츠들을 베끼거나 짜깁기하는 일이 많다”고 말했다.
연구 내용이 순수한 경제·경영 분야에 갇히지 않고 문화·스포츠·소비자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있다는 점도 삼성경제연구소가 인기를 끄는 이유로 꼽힌다. 삼성경제연구소가 그동안 내놓은 보고서 목록을 훑다 보면 <히딩크 리더십의 교훈> <2002 월드컵과 사회·문화적 변화> <‘서태지와 아이들’과 기업경영> <직장인 음주 행태와 기업의 대책> 등 이색적인 보고서들이 눈길을 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올해 3대 사업과제로 △디지털 △기업가 정신 △대학 혁신 등 세 가지를 선정했다. 삼성경제연구소쪽은 “디지털은 ‘휴머니즘을 담고 있는 디지털’을 지향한다는 것이고, 기업 경쟁력을 기르려면 신규 인력을 배출해내는 대학 혁신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민간 ‘경제’연구소이지만 휴머니즘, 대학 혁신 등의 분야로 추구하는 가치를 확장하고 있는 것이다.
보수적 전망, 규제 완화 노린다?
그러나 삼성경제연구소의 보고서들이 재미있고 대중적이면서 현장감이 강한 반면, 깊이가 부족하고 가볍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삼성경제연구소 신현암 수석연구원은 “지난 2월 한국은행발 환율 급락 사태가 터졌는데 한참 지난 석달 뒤에 이에 대한 보고서를 내봐야 꽝이다. 보고서의 깊이도 중요하지만 빨리 메시지를 내보내야 할 필요도 있는 것 아닌가? 우리는 시류에 영합하는 보고서가 아니가 ‘시의적절’한 연구를 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아카데믹한 연구는 대학과 국책 연구기관들이 할 몫이고, 삼성경제연구소는 실용적이고 현장 정보가 담긴 보고서를 중시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삼성경제연구소가 한국 경제와 시장을 바라보는 시각과 진단·처방은 다른 민간·국책 경제연구기관과 크게 다른 것일까? 한국개발연구원과 LG경제연구원쪽은 “큰 차별성은 보이지 않지만, 삼성경제연구소의 조직 풍토 자체가 주로 대외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경향이 있는 건 분명한 것 같다”고 말한다. 삼성경제연구소에서 생산하는 보고서마다 어떤 ‘메시지’가 강하게 담긴다는 뜻이다. 이와 관련해 삼성경제연구소 신현암 수석연구원은 “우리는 문제제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래, 어떻게 하겠다는 것이냐?’는 대응 방안이나 해결책을 꼭 보고서에 넣도록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말 한국은행과 한국개발연구원은 올해 경제성장률을 4.0%로 전망한 반면 LG경제연구원은 3.8%, 삼성경제연구소는 3.7%로 가장 낮게 전망했다. 올해 소비자 물가상승률도 한국은행과 한국개발연구원, LG경제연구원은 2.8∼3.0%로 잡았으나, 삼성경제연구소는 이보다 높은 3.3%로 예측했다. 성장률은 낮고 물가는 오르는 등 상대적으로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은 것이다. 이에 따라 삼성경제연구소가 우리 경제를 지나치게 비관적으로 몰아가면서 이를 통해 (재벌·기업) 규제 완화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된다. 신현암 수석연구원은 “우리 연구소가 전망치를 보수적으로 보는 경향이 있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특별한 의도가 있어서는 아니고, 바둑에서도 공격적 스타일과 방어적 스타일이 있지 않는가?”라고 말했다. 그는 또 “당시에 대통령도 5% 성장한다고 말하는 상황에서 우리가 혹시 잘못 판단하는 것은 아닐까 걱정하기도 했고, 따라서 파장을 고려해 신중하게 검토했다. 우리 연구소의 전망치가 발표되고 나서 정부의 경제 정책이 선회하는 흐름을 보였다”고 말했다.
삼성경제연구소의 보고서들이 주로 ‘강한 메시지’를 던지면서, 민간 경제연구소가 정부 정책에 개입하거나 시장을 어느 한 방향으로 끌고 가려는 과도한(?) 역할을 자임하는 것 아니냐는 곱지 않은 시선을 받기도 한다. 지난해 9월 내수경기 부양 대책을 놓고 ‘재정지출 확대냐, 아니면 감세 정책이냐’는 논란이 붙었을 때 삼성경제연구소는 보고서를 통해 “재정지출 확대는 복지 예산 비중이 크기 때문에 단기적 경기 회복 처방으로서 효과가 미지수”라며 “감세 정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당시 재정경제부는 재정지출 확대쪽에 무게를 싣고 있었다. 재정경제부 김경호 공보관은 “당시에 이헌재 부총리가 ‘삼성경제연구소의 주장이 맞다, 틀리다를 넘어 이 보고서에 대한 대응 논리를 만들어야 한다’고 지시했다”며 “나중에 정부가 실제로 소득세를 내리기도 했다”고 말했다. 한국개발연구원 관계자는 “우리는 조심스럽게 접근하지만 삼성경제연구소 보고서들은 주장을 많이 하고, 그것도 좀더 과감하게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삼성 그룹의 이해 반영하지는 않는가
지난 2003년 ‘10·29 부동산안정대책’이 나올 무렵 삼성경제연구소 보고서는 “부동산 관련 세율을 일시적으로 급격히 높이거나 부과대상을 지나치게 확대하는 것을 자제해야 하며, (오히려) 강남지역 주택 매도시 일시적인 세금 감면으로 주택 과다 보유자들의 주택 매물 증대를 유인해 퇴출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어느 부동산시장 연구자는 “삼성경제연구소가 응급 조처 성격의 부동산 규제 정책들까지 강하게 비판하고, 부동산 거품의 급격한 붕괴 우려를 크게 부각시키면서 규제 정책을 비판하는 인상이 짙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2003년 5월에 삼성경제연구소가 내놓은 ‘주택시장 안정을 위한 긴급대책’ 보고서는 “실물 부문으로 자금이 흐르도록 기업투자 의욕을 고취해야 한다”며 “사법 당국의 기업 조사를 네거티브 방식으로 전환하고, 법인세 인하 등 세제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개발연구원 관계자는 “삼성경제연구소가 주장하는 정책적 제안들이 삼성그룹의 전략과 이해를 일정하게 반영하는 측면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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