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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 ‘침략’의 전초기지 되는가

등록 2005-03-16 00:00 수정 2020-05-03 04:24

‘전략적 유연성’에 따라 주한미군이 동북아기동군으로…동북아 분쟁 개입 막을 방법은 있는가

▣ 임을출 기자 chul@hani.co.kr

주한미군이 서둘러 동북아기동군으로 옷을 갈아입을 기세다. 이에 따라 정부의 발등에도 불이 떨어진 듯하다.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3월8일 공군사관학교 졸업 및 임관 연설에서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에 대해 “우리의 의지와 관계없이 우리 국민이 동북아 분쟁에 휘말리는 일은 없다”고 쐐기를 박고 “(이는) 어떤 경우에도 양보할 수 없는 확고한 원칙으로 지켜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 이런 발언을 한 데는 뭔가 절박한 속사정이 있어 보인다. 그의 발언은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문제의 공론화가 더는 미룰 수 없는 현안으로 부상했음을 강하게 암시한다.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은 미국이 해외주둔미군 재배치계획(GPR)에 따라 주한미군을 동북아 신속기동타격군으로 재편해 대만을 비롯한 동북아와 기타 분쟁 지역에 개입시키겠다는 것이다.

동맹국은 기지 제공국?

부시 행정부는 급변하는 안보환경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2002년 새로운 군사전략을 세우고, 이를 구현할 수 있는 군사 변혁에 박차를 가해왔다. 획기적으로 개선된 군사 능력을 바탕으로 한 해외주둔 미군의 전력 구조와 기지 체계를 조정하는것은 최우선 과제다. 이는 많은 수의 미군을 해외에 전진 배치하기보다는 장거리 정밀타격 능력을 향상시켜 적을 격퇴하겠다는 방향 전환을 핵심 내용으로 삼고 있다. 주한미군 정책의 엄청난 변화는 이미 몇년 전부터 예고돼온 셈이다. 국방연구원의 한 관계자는 “이제 동맹의 개념도 바뀌고 있다. 과거에는 신뢰에 기댔지만 앞으로는 기지 체계와 제도 등이 동맹을 유지하는 요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의 설명에 따르면 해외 배치 미군을 신속기동군으로서 역할하고 기능할 수 있도록 기지 체계 제공이나, 제도적으로 이를 제대로 뒷받침해주지 못하는 나라는 미국과 동맹을 맺고 유지하기도 어렵다.

이런 동맹 개념의 변화는 군사력의 첨단 과학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많은 군사 전문가들은 앞으로 미군이 치르는 전쟁은 군인이 아니라, 첨단 군사장비가 수행할 것이라고 입을 모아 말한다. 실제로 미국은 군인 수는 줄이면서 국방예산은 크게 늘려왔다. 해외주둔 미군 수는 지난 1990년 51만명에서 2003년 20만5천명으로 60%나 줄었다. 반면에 군사비는 90년 3005억달러에서 3646억달러로 늘었다. 즉, 양은 감소시키되 질적인 측면에서 지휘통제, 정보감시 전력과 장거리 정밀타격 전력 등 첨단무기 체계를 통해 전력을 획기적으로 증강시켜온 셈이다. 이런 미군의 첨단 군사 능력은 지난 아프간 전쟁이나 이라크 전쟁에서 입증된 바 있다. 1991년 걸프전에서는 54만 병력으로 43일 만에 작전을 끝냈으나, 2003년 이라크 전쟁에서는 걸프전 때보다 다섯배나 넒은 작전지역에서 걸프전의 절반 정도인 27만명으로 같은 기간 안에 전쟁을 끝냈다.

주한미군의 동북아 기동군으로의 변신도 같은 맥락에서 거스를 수 없는 대세로 굳어진 듯하다. 주한미군 전문지 <성조>는 의정부에 있는 미 2사단을 올 7~8월께 사단과 군단 기능을 합친 ‘미래형사단’으로 변환시키겠다고 공식화했다. 당초 예정인 2007년보다 2년 앞당겨 추진하는 셈이다. 2사단이 미래형 사단으로 업그레이드되면 정찰, 항공, C4I(전술지휘통제체계) 및 무인정찰기(UAV)를 운영해 원거리 작전이 가능한 명실상부한 동북아 기동군으로 거듭 태어나게 된다. 조지 A. 하긴스 미 2사단장은 “(무인정찰기 등이) 미래형 사단의 정밀타격 능력을 강화할 것”이라며 “이 사단은 확대된 전장과 원거리에서 작전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양국간 협의 이미 불 붙어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문제는 곧 한-미 동맹의 미래와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미국은 1953년 이래 주한미군의 유일한 목적은 대북억제력이었으나 50년이 경과하면서 세계 안보환경과 군사적 역량도 변했기 때문에 주둔병력 수준과 주둔 목적에 관한 양국 정부의 긴밀하고 솔직한 대화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즉, 한반도 동맹 관계는 한반도 문제에만 국한될 것이 아니고 최소한 동북아 지역을 염두에 둔 것으로 발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부시 행정부의 주요 인사들은 이런 입장을 한국의 주요 인사들을 만날 때마다 집요하게 주입해왔다.

이런 분위기 탓에 이미 상당수 군 관계자들이나 안보국방 전문가들은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인정하는 게 불가피한 쪽으로 체념하고 있는 상태다. 국방대학원의 한 교수는 “미국은 주한미군을 해외주둔 미군 중에서도 가장 신뢰할 만한 군인으로 인정하고 있다”며 “미국 내부에서는 이런 최정예화된 군대를 그냥 놀린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는 인식이 팽배하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은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부인하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우리의 안보 공백을 최소화하고, 한국군의 동북아 분쟁 연루 가능성을 최소화하는 데 대응의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국방연구원 관계자는 “주한미군의 유연화는 우리 힘으로 막기 어려운 게 현실”이라면서 “국민의 불안을 최소화하고, 미래의 건강한 한-미 동맹의 틀을 새로 짜는 데 있어 우리의 국익을 최대한 반영하는 노력을 할 때”라고 말했다.

이미 주한미군의 임무와 규모, 역할 등에 관한 양국간 협의는 불을 붙였다. 미래 주한미군의 임무와 규모, 역할 등에 관한 협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양국은 2월3일 서울에서 미래동맹 관계의 청사진을 마련하기 위한 안보정책구상(SPI) 1차 회의를 열어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strategic flexibility)의 수준과 범위 조정을 위한 협의를 시작했다. 한국은 미국의 새로운 군사전략과 국방 변혁 추세 등을 감안할 때 미래 주한미군의 역할과 임무 등이 가변적이라 보고, 한반도 전쟁 억제력 공백을 최소화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전략적 유연성을 갖는 방안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낸 것으로 알려진다.

지난 3월8일에도 국방부의 고위 관계자는 출입기자들과 연 간담회에서 “정부는 주한미군이 동북아 이외의 지역에서 임무를 수행할 경우 전략적 유연성을 인정한다는 방침”이라며 “그러나 이 경우에도 한반도 안보에 공백을 초래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인정한다는 의미”라고 밝혔다. 그는 “주한미군이 동북아 분쟁에 휘말리는 일이 없도록 하는 방안을 앞으로 미국쪽과 협의해나가겠다”며 “한-미간 협의는 주한미군이 동북아 분쟁에 휘말리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협의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상임대표 홍근수·문규현) 등 시민사회단체들은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시하고 있다.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은 1951년 맺은 한-미상호방위조약에 규정된 주한미군의 역할과 적용 범위에 위배될 뿐 아니라 한반도의 평화에 심각한 위협을 초래한다는 지적이다.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의 허용을 우려하는 더 근본적인 시각은, 이럴 경우 한국이 주한미군의 해외 침략 전초기지가 될 뿐 아니라 한-미 동맹의 속성상 미국의 해외 침략 전쟁에 한국군이 동원될 수 있다는 점이다. 정부의 동북아 분쟁에 개입하지 않는 조건의 신뢰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불평등한 한-미 동맹 관계에 비춰 주한미군의 동북아 분쟁 개입을 막을 수 없다는 주장이다.

자주국방 서두르는 길만이…

전문가들은 한국이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끝까지 거부하면 미국은 주한미군 감축 카드로 대응할 가능성이 가장 크다고 입을 모은다. 결국 정부도 미군의 계획과 무관하게 국군이 한반도 방위를 맡는 자주국방계획을 이른 시일 안에 완성하는 게 궁극적인 해결책으로 보는 듯하다. 노 대통령이 공사 졸업식에서 “우리 군대는 스스로 작전권을 가진 자주군대로서 동북아시아의 균형자로서 동북아 지역의 평화를 굳건히 지켜낼 것”이라고 밝힌 대목은 두고두고 곱씹어봐야 할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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