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남북관계는 잘 풀릴 것인가… 6자회담 분위기 조성에 총력, 북한도 누그러져
▣ 임을출 기자 chul@hani.co.kr
2005년을 맞는 참여정부가 해결해야 할 과제는 산적해 있다. 그 가운데 최대 현안으로 등장할 경제 양극화 문제와 남북관계 부문을 살펴본다. 경제 양극화 문제는 이제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참여정부의 운명이 걸린 사안으로 떠오르고 있으며, 남북정상회담 5주년을 맞아 6자회담을 통한 북핵문제 해결과 남북관계 진전에는 어떤 성과가 있을 것인지 진단해 본다. 편집자
“11월 부산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담을 주목하라.”
참여정부의 한 핵심 관계자는 최근 “새해 북핵 문제와 남북 관계가 진전될 경우 APEC 정상회담에서 세계의 이목을 끌 만한 남북한 사이의 빅 이벤트가 펼쳐질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의 구상은 대충 이렇게 그려진다. 2005년 상반기 안에 북핵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마련한다. 6·15 남북 정상회담 5돌, 8·15 해방 60돌 등 역사적인 행사를 함께 치르면서 획기적인 관계 개선의 모멘텀을 마련한 뒤 그 여세를 몰아 남북 관계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는 합의와 실천들을 이어나간다. 그리고 11월 열리는 APEC 정상회담 때 북한을 국제 무대에 공식적으로 데뷔시킨다는 구상이다. 북한의 책임 있는 당국자가 업저버, 특별 게스트 등의 자격으로 참석해 국제사회에 대량살상무기의 포기를 선언하고 이에 대해 다른 나라 정상들이 경제협력 약속으로 화답하면 한반도 평화정착이 가시권에 들어오게 되는 셈이다. 물론 정부 일각에서 조심스럽게 그리는 가장 낙관적인 2005년 남북 관계 발전 시나리오다. 정부의 핵심 관계자도 나중에 “아이디어 차원일 뿐”이라고 한 발짝 물러서기는 했으나 남북이 힘을 합치고 운이 따라준다면 불가능한 일만은 아닐 것이다.
엄중한 도전과 기회의 해
2005년 새해를 맞는 참여정부 외교안보팀의 각오는 남다를 수밖에 없다. 특히 북핵은 집권 3년차를 맞이하고 있는 참여정부가 반드시 넘어야 할 큰 산이다. 참여정부가 핵심 모토로 내걸고 있는 ‘평화와 번영과 도약의 시대’는 북핵 걸림돌 제거 없이는 현실적으로 도달하기 어려운 고지다. 어떻게 보면 참여정부의 정치적 운명을 좌우할 수 있는 사활적 과제이기도 하다. 북한뿐 아니라 미국의 전향적인 태도 변화를 요구한 11월12일 노무현 대통령의 대담한 로스앤젤레스 발언은 북핵 문제 해결에 승부수를 던지는 신호탄으로 읽힌다. 노 대통령은 이미 지난 11월5일 부시 미국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재선을 축하하면서 “부시 대통령과의 긴밀한 협력 아래 북한 핵 문제를 두 정상의 역점 프로젝트로 해결해 한반도와 세계평화의 일대 전기를 마련하자”고 제안한 바 있다. 이런 맥락에서 새해는 엄중한 도전의 해이자, 결코 그냥 흘려보낼 수 없는 기회의 해이기도 하다.
“2005년은 광복 60주년이 되는 해이며, 6·15 공동선언 5주년이 되는 매우 뜻깊은 해입니다. 이제 우리는 분단과 냉전의 시대를 뛰어넘어 평화와 번영의 시대를 준비해야 됩니다. 2005년이 한반도 역사의 전환점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우리 정부는 남북 협력을 본격적으로 추진해나가기 위한 포괄적이고도 구체적인 계획을 다듬어나가고 있습니다.” 외교안보팀장 격인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12월15일 리빙아트 개성공장 준공식에서 한 축사 내용은 2005년 참여정부의 각오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는 포괄적이고 구체적인 계획과 관련해 “개성공단과 철도·도로 연결을 더욱 발전시키고, 각종 기반시설 확충과 산업생산 능력 확대를 위해 협력해나갈 준비가 되어 있다”는 말로 설명했다. 사실 외교안보팀은 초조하다. 경제회생과 국민통합 등이 당면 과제이기는 하나, 그 못지않게 북핵 문제 돌파구 마련에 ‘올인’을 해야 할 처지다. 그러나 지금으로 봐서는 정부도 뾰족한 대책이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다만 북한 최고 지도자의 전략적 결단이 내려지면 한순간에 모든 것이 달라질 수 있다는 북한의 독특한 정책결정 구조에 한 가닥 기대를 걸고 있는 듯하다.
6자회담, 정상회담의 초석
모두들 당장 궁금해하는 관심사는 2차 남북 정상회담의 성사 여부일 것이다. 정동영 장관은 11월25일 국회 남북관계발전 특별위원회에 나가 “정부는 내년이면 6·15 공동성명 5주년이 되는데 (정상회담) 약속은 지켜져야 한다는 당위적 측면과 한반도 내외의 여러 현실을 감안하면 2차 정상회담을 통해 공동번영과 평화로 실질적 진전,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 이른 시일 내 정상회담이 열려야 한다는 입장을 갖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지금도 흔들리지 않는 입장은 ‘선 6자회담 진전, 후 정상회담 추진’이다. 정 장관도 남북 정상회담 개최 가능성에 대해 “여러 가지 환경조성과 정지작업이 필요하다”며 “우선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의 시동이 걸려야 그 연장선상에서 여러 가지 모색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은 노무현 대통령의 로스앤젤레스 발언에 대해 긍정적으로 반응했다”며 “정부는 앞으로 북한의 태도를 예의주시하면서 당국간 회담이 조기에 개최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설명했다.
이런 맥락에서 우선은 6자회담이 언제 어떻게 열려, 어떤 성과를 내느냐가 새해 남북 관계를 좌우하는 핵심 변수가 될 것이다. 정 장관의 베이징 방문 행보도 6자회담의 조기 개최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는 노무현 대통령의 미국, 동남아, 유럽, 일본 순방 정상외교의 바통을 이어받아 중국에서 북한의 6자회담 참석을 위한 전략적 결단을 이끌어내기 위해 안간힘을 쏟고 있는 것이다. 이런 분위기는 그의 12월22일 베이징 특파원들과의 간담회 발언에서도 오롯이 드러난다. 그는 “특사 자격으로 중국에 온 것은 내용도 내용이지만 시점에 대단한 의미가 있다. 지난 9월 이후 노 대통령은 6자회담의 참여국인 러시아, 미국, 중국, 일본과 차례로 정상외교를 갖고 북핵 문제 해법과 관련해서 심도 있는 대화와 합의점을 만들었다”고 운을 뗐다. 그리고 “이제 이것을 갖고 6자회담의 테이블 여는 것뿐 아니라 성과를 만들어야 한다. 내년은 광복 60주년, 6·15 5주년이고 핵 문제가 발생한 지 10여년이 넘는 해”라고 되풀이하면서도 “내년(2005년) 11월에는 부산에서 APEC 정상회의도 예정돼 22명의 정상이 한자리에 모인다. 이 역사적 의미가 있는 해에 반드시 타결점을 만들어야겠다”고 말했다.
정 장관은 이미 베이징 방문 전에 “이제 부시 행정부의 2기 진용이 갖추어지고, 한-미 정상회담에서 북핵 문제를 6자회담 틀 내에서 평화적으로 해결한다는 큰 흐름을 잡아놓아 이제 본격적인 협상을 통한 해결이 시도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고, “이 과정에서 한국이 더 적극적이고 더 능동적인 역할을 해나갈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남한 ‘사과’에 북한 ‘만족감’
이처럼 정부는 일단 6자회담 재개에 모든 역량을 쏟아붓겠다는 자세이다. 그렇다고 6자회담이 안 열리는데도 무작정 기다리지만은 않겠다는 생각도 엿보인다. 정부의 다른 핵심 관계자는 “지금 타이밍을 보고 있다. 2005년 상반기까지 북핵 문제가 지지부진할 경우 속수무책으로 지켜보고만 있을 수는 없지 않느냐. 이전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대담한 접근법을 시도해볼 수도 있다”고 털어놓았다. 그 대담한 접근법의 실체가 무엇인지 알 길은 없으나 비장의 카드를 준비하고 있다는 뉘앙스를 강하게 풍긴다.
문제 해결의 열쇠를 쥐고 있는 북한의 태도는 최근 약간씩 누그러지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물론 북핵 문제와 관련해서는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 철회가 우선이라는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 정 장관은 북한의 홀대를 무릅쓰고 개성공단에 직접 가서 김일성 주석의 조문 불허, 탈북자 집단 입국, 북한 인권법 문제 등과 관련해 공식적인 유감을 표시했다. 그는 “그동안 남북 화해협력을 진행해가는 과정에서 여러 돌발 변수가 발생했습니다. 이같은 사안들은 북쪽 입장에서 보면 지극히 민감하게 받아들일 수 있음을 우리는 충분히 이해합니다. 좀더 슬기롭게 처리되었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로서는 사실상 ‘사과’의 뜻을 분명히 밝힌 셈이다. 은 12월23일 개성공단 착공식 뒤 시범공장이 조업에 들어가 첫 시제품이 나온 사실을 거론하며 “올해 통일운동을 통해 민족제일주의 기치 아래 민족공조를 강화해나가는 데 통일의 길이 있음을 다시금 확신했다”고 강조했다. 우회적으로나마 만족감을 표시한 것으로 해석된다. 불과 며칠 전만 해도 개성공단 사업의 진척이 더디다고 남쪽을 몰아세웠던 북한이다.
민간교류와 협력사업 전망 밝다
사실 북한 지도부도 해방 60돌과 남북 정상회담 5돌인 2005년을 그냥 넘기기가 부담스럽다. 무작정 등을 돌리고 있을 수만은 없는 안팎의 엄혹한 현실에 둘러싸여 있기 때문이다. 북한 주민들에게 새로운 희망과 비전을 제시하는 등 변화를 보여줘야 정권으로서도 체면이 서는 한해다. 북한 웹사이트 ‘우리민족끼리’는 “온 겨레는 6·15 공동선언 발표 5돌, 조국 광복 60돌이 되는 2005년을 ‘자주통일의 원년’으로 만들기 위해 한 사람같이 떨쳐나서야 한다”면서 “온 겨레는 올해 얻은 경험과 교훈을 밑거름 삼아 2005년을 민족운동사에 눈부신 성과를 남긴 의의 깊은 해로 만들어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북한 내부 사정에 정통한 한 소식통은 “내부 강경파들의 반발을 누그러뜨리는 게 과제이긴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실리를 우선시하는 방향으로 지도부가 정책적 결단을 가능성이 크다”고 귀띔한다. 남쪽 당국에 대한 서운한 감정이 쌓여 지금은 화해가 어렵지만 조만간 계기만 마련되면 남쪽 당국과의 대화 테이블에 나갈 것이라는 전망이다. 지금은 우선 6·15와 8·15 행사 등 뜻깊은 공동행사를 함께 치르면서 민간교류의 폭을 점차 넓혀나간 뒤 자연스럽게 개성공단 등 주요 경협사업 현안을 다루는 당국간 회담쪽으로 옮겨갈 가능성이 커 보인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맞닥뜨릴 민간교류 행사에 대한 참여정부의 세심한 접근이 요구된다고 조언한다. 이 과정에서 또다시 조문 파동이나 탈북자 단체 입국 등 유사한 악재가 불거지면 참여정부 임기 안에는 북핵이나 남북 관계 모두 진흙탕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얼마 전 남과 북, 해외 통일단체 대표들은 내년 6·15 공동선언 발표 5돌 기념 민족통일행사를 평양에서, 해방 60돌 8·15 행사는 남쪽 지역에서 열기로 합의한 바 있다. 지난 몇 개월간 막혔던 대규모 남북 민간교류의 물꼬가 트이는 셈이다. 북한은 12월21일 ‘6·15 공동선언 실천을 위한 북, 남, 해외 공동행사’ 준비위원회를 상당한 규모로 꾸리는 등 부산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총련) 기관지 도 12월22일치에서 “북한이 ‘남조선(남한) 핵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서는 북남 관계의 진전도 기대할 수 없다’는 강경한 태도를 취하고 있어 내년도 당국간 교류가 난항을 겪을 수도 있다”면서도 “개성공업지구 시제품이 출시되고 ‘6·15 공동선언 실천을 위한 남·북·해외 공동행사 준비위원회’도 결성되는 등 민간교류와 협력사업의 전망은 밝다”고 밝혔다. 남북한은 그 어느 때보다 날카로운 눈초리와 긴장된 마음으로 2005년 운명의 해를 맞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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