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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자동차 잔머리 쓰나

등록 2004-12-23 00:00 수정 2020-05-03 04:23

비정규직 노조와는 계약관계 없다며 “회사 안에서 불법 집회 못하게 해달라” 가처분 신청

▣ 이춘재 기자 cjlee@hani.co.kr

비정규직인 하청업체 노동자들을 정규직처럼 관리하면서 임금은 정규직의 60%밖에 지급하지 않아 노동부로부터 불법 파견 판정을 받은 현대자동차(현대차)가 엉뚱하게 비정규직 노조의 집회를 금지해달라는 가처분 신청을 내 빈축을 사고 있다.

“집회할 때마다 20반원씩 물어라”

현대차는 지난 12월10일 현대차 비정규직 노조를 상대로 한 집회 및 시위 금지 가처분 신청을 울산지방법원에 냈다. 현대차는 소장에서 “비정규직 노조는 회사와 고용관계나 계약관계가 없어 단체교섭 준수 의무가 없는데도 회사 내에서 불법적인 집회를 하고 있다”며 “회사 본관 앞과 공장 정문 등에서 집회를 금지하고 이를 어길 경우 1회당 20만원씩 물도록 해달라”고 요청했다.

현대차는 최근 울산과 전주, 아산 공장의 100여개 하청업체 직원 8천여명이 불법 파견 형태로 근무해온 사실이 노동부에 적발됐다. 이들 공장은 하청업체 직원들을 정규직 노동자와 같은 생산 공정에 투입해 함께 일하게 하고, 인사·노무 관리도 직접 맡아온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파견근로자 보호법 위반이기 때문에 현대차는 불법 파견으로 확인된 하청업체 직원들을 직접 고용하거나 완전 도급 형태로 계약을 다시 맺어야 한다. 이 때문에 회사에 이런 시정 조치를 요구하는 비정규직 노조의 집회를 ‘원천 봉쇄’할 수 있는 가처분 신청을 낸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비정규직 노조는 이번 가처분 신청을 노동부의 불법 파견 판정에 따른 보복으로 해석한다. 조가영 교육선전부장은 “노동부의 불법 파견 판정으로 궁지에 몰린 회사가 비정규직 노조를 무력화하기 위해 이런 조치를 취했다”며 “회사가 불법 파견에 대한 개선 의지가 전혀 없음을 단적으로 드러낸 것”이라고 주장했다. 비정규직 노조는 회사가 가처분 신청을 낸 시점을 그 근거로 제시하고 있다. 실제로 현대차는 노동부의 불법 파견 판정 방침이 언론에 공개된 지 이틀 만인 지난 12월10일 가처분 신청을 냈다. 노동부 판정으로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질 것을 우려해 비정규직 노조의 손발을 미리 묶겠다는 의도가 깔려 있다는 게 노조의 판단이다.

하지만 회사쪽은 이런 지적에 펄쩍 뛰고 있다. 현대차 울산 공장 관계자는 “비정규직 노조의 집회는 지난 여름부터 계속 있었는데, 지난 11월 말에 비정규직 노조원들이 본관 점거를 시도하다 현관문 유리창을 깨뜨리는 등 최근에는 그 정도가 심해졌다”며 “회사의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부득이하게 가처분 신청을 낼 수밖에 없었다”라고 해명했다.

시간을 벌어보려는 속셈인가

만약 법원이 회사의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인다면 비정규직 노조의 활동은 큰 타격을 받지 않을 수 없다. 금속연맹법률원의 김기덕 변호사는 “비정규직 노조는 정규직과 달리 노조 사무실이 없기 때문에 집회를 하지 못하면 노조활동의 기본인 선전·홍보 활동을 할 수 없다”며 “그렇게 되면 사실상 노조는 와해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현대차의 이번 조치는 불법 파견 여부를 법정에서 가려보겠다는 의도로도 해석된다. 김 변호사는 “최근 법원이 노동3권을 제약하는 가처분 신청을 많이 받아들이고 있는데, 이를 이용하려는 것 같다”며 “불법 파견 문제를 소송으로 비화해 시간을 벌어보려는 속셈이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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