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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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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하산 타고 와 ‘꿀먹은 벙어리’

등록 2004-12-23 00:00 수정 2020-05-03 04:23

민자역사와 자회사는 철도청 고위간부들의 든든한 노후보장책… 국정감사 때마다 지적당해

▣ 이주현 기자 edigna@hani.co.kr

매년 철도청 국정감사엔 빠지지 않는 단골 질문이 있다. “철도청에서 출자하여 운영 중인 민자역사와 자회사에 철도청 퇴직 공무원이 출자회사의 임원으로 임명되는 사유는 무엇인가?”(김광원 의원·2003) “민자역사에 전직 철도청 간부가 들어가는 것은 낙하산 인사가 아닌가.”(임인배 의원·2003, 한선교 의원·2004, 이강래 의원·2004, 노영민 의원·2004) “민자역사와 자회사의 경영실적이 부진한 이유는 전문적인 경영 마인드가 부족하기 때문 아닌가”(김동철 의원·2004).

민자역사의 46%, 자회사의 72%

단어 선택과 어순의 차이는 있으나, 철도청의 답변은 늘 비슷하다. “민자역사나 자회사의 사업은 철도 업무와 밀접한 관계가 있고 열차의 운행과 같은 맥락에서 이뤄지는 사업입니다. 때문에 민자역사·자회사엔 철도 업무의 전문가가 필요하고 철도청이 대주주의 일원으로서 경영에 참여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철도청이 2004년 국정감사 자료로 제출한 ‘민자역사 및 자회사 철도청 출신 임원 현황’에 따르면 민자역사 사업장 16곳의 전체 상임임원 수 50명 가운데 철도청 출신 임원은 23명으로 46%에 이른다. 철도광고·한국철도종합서비스·코레일로지스 등 자회사 11곳에서도 25명 임원 중 72%인 18명이 일하고 있다. 임원뿐 아니라 민자역사에서 부장급으로 일하는 전직 철도청 직원까지 더하면 이 숫자는 훨씬 늘어난다.

이처럼 민자역사·자회사에 철도청 출신 간부 비율이 높은 이유는 철도청의 ’관례’ 때문이다. 철도청은 사업 주관자와 사업추진협약을 체결할 때 민자역사의 이사 1명, 감사 1명을 철도청장의 추천을 받아 선임하도록 해왔다. 특례법·시행령·업무처리규정처럼 성문화된 것은 아니었으나 ‘관습법’처럼 막강한 효력을 발휘해왔다. 겉으로 보기엔 일정 지분을 지닌 철도청이 민자역사를 견제·감시하는 수단으로 보이기도 하나 철도청 직원들 사이에서는 의견이 다르다. 민자역사에서 만난 한 역장은 “실제로 철도청 출신 임원들은 철도의 이해를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민자역사의 대변인, 해결사 노릇을 한다”고 꼬집었다. “까마득한 선배가 ‘이것 좀 부탁한다’ 하면 거절하기가 쉽지 않지요. 민자역사쪽에서는 철도청과 협의할 때 아쉬운 일이 생기면 이들을 동원합니다.” 최근 민자역사 개관 때 노조지부장을 지낸 역무원도 “숙직실의 협소함 등 역무원들의 불편사항을 고쳐줄 것을 요구했지만, 정작 지방철도청장 출신의 부사장은 ‘꿀먹은 벙어리’로 일관했다”고 말했다.

민자역사쪽에서도 철도청 출신 간부들을 ‘평상시’에 활용하지는 않는다. 사무실에 한 자리 마련해줄 뿐이지 업무 지원 같은 것도 별로 없다. 어차피 임기 이후엔 떠날 사람이기 때문에 오히려 ‘보안’을 이유로 중요한 업무는 알려주지 않기도 한다. 유사시를 대비해 보험을 드는 것과 비슷하다.

1억원 가까운 연봉 보장

철도청 내부에선 지방철도청장(부이사관급)은 민자역사의 부사장으로, 역장(서기관급)은 부장으로 가는 것이 암묵적인 공식으로 자리잡고 있다. 민자역사 임원이 되면 7천만원에 가까운 연봉을 받는다. 보통 민자역사는 협약 체결 이후부터 완공까지 보통 6~7년이 걸리는데, 완공 전부터 임원들은 3년 임기로 연봉을 받는다. 여기에 철도청에서 나오는 퇴직연금까지 합하면 1억원 가까운 연봉을 받는 셈이다. 민자역사·자회사는 고위 간부들의 든든한 노후보장책이 된다.

이같은 문제점이 계속 노출됨에도 철도청쪽에선 이를 해결할 제도적 개선의 의지는 없어 보인다. 철도청 관계자는 반문했다. “어떤 사람이 어떻게 일하느냐가 중요하지, 어떤 곳에서 왔느냐가 뭐 중요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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