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배낭을 메고 민자역사의 공공성 확보를 위해 길을 나서는 철도 해고노동자 김낙현씨
▣ 이주현 기자 edigna@hani.co.kr
“아~ 살아 있었습니까?”
12월13일 수원역에 들어서자 등 뒤에서 누군가 큰소리로 외쳤다. 역무원 한명이 민자역사 취재에 동행한 김낙현씨를 불러세웠다. 둘은 굳게 손을 잡았다. ‘살아 있었냐’고 인사하는 쪽이나 받는 쪽이나 반가움과 서러움이 뒤섞인 표정이 역력했다.
민자역사들의 공통점을 아십니까
김낙현(41). 그는 철도 해고노동자다. 수원관리역 노조지부장이었던 그는 2003년 6월 파업투쟁에 주도적으로 참가한 것을 이유로 잘렸다. 파업에 참가한 노조원들이 중징계를 받았고 89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노조 집행부는 만신창이가 됐다. 앞길이 보이지 않았다. 전망, 비전, 운동의 목표. 아니, 내일 일도 몰랐다. 그렇다고 나자빠질 순 없었다. “땀 흘리는 데 보람 느끼고 사는 노동자가 내 할 일”이라는 생각에 철도청 역무원 공채시험으로 들어온 것이 1994년. 10년 가까이 울고 웃었던 일터였다.
그를 일으켜세운 것은 ’일거리’였다. 2003년 2월 문을 연 수원 민자역사에서 근무하며 민자역사의 문제점을 피부로 느꼈던 그는 ‘잘린 이후’ 다른 민자역사들을 돌아보며 공통점들을 깨닫게 됐다. “수원 역사 개장하는 것을 보니 넓은 상업시설과 비교할 때 역무원들의 업무 공간은 비좁았습니다. 시민들이 어떻게 하면 편리하게 역을 이용할 수 있을까보다는 어떻게 고객들의 동선이 한 걸음이라도 매장에 더 가까이 닿게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듯 보였습니다. 민자역사쪽은 규정대로, 협약대로 했다고 주장했지만 제가 보기엔 그렇다면 규정과 협약에 문제가 있는 듯했습니다.”
이는 수원 역사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쇼핑센터가 주인이고 역은 셋방살이하는 곳도 있었고, 한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 통로에 판매대를 세워놓거나 드넓었던 광장이 통로처럼 변해버린 곳도 있었다. 공간의 상품화와 그에 따른 공공성의 약화. 그는 철도노조에 건의해 ‘공공성확보팀’이란 낯선 조직을 탄생시키고 스스로 팀장을 맡았다. 팀원도 없고 월급도 받지 않지만 ‘공공성 확보’라는 화두는 그에게 다시 움직일 동력을 주었다.
“처음에는 제 이야기를 들으면 노조 안에서도 ‘문제이기는 한데 어쩔 도리가 있겠느냐’는 반응이 대부분이었죠. 하지만 제가 틈만 나면 얘기했더니 점점 바뀌는 분위기입니다. 사실 이젠 노조도 타깃이 변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기존의 조직운동만으로는 시민들의 호응을 이끌어낼 수 없습니다. 노조가 먼저 앞장서서 시민들의 피부에 와 닿는 철도 역사 운영의 문제점들을 지적하고 이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한다면 신뢰와 명분을 얻을 수 있을 겁니다.”
문화연대·민주노동당과 함께 심층조사
2004년 7월 공공성확보팀이 만들어진 뒤 지금까지 김 팀장은 발품을 팔며 민자역사 실태를 조사하고 도면을 구하고 관련자를 면담해왔다. 그가 메고 다니는 검은 배낭은 민자역사 관련 자료들로 채워져 있다. 이 가방을 등에 지고 다니며 현장을 확인하고 추가 조사거리를 찾아내는 것이 그의 주요 일과다. 그는 앞으로 민자역사 문제를 풀어가기 위해 문화연대, 민주노동당과 함께 심층 조사를 벌일 계획이다. 올가을 들어 문화연대 회원들과 몇 차례 역사를 방문했고 회의도 꾸준히 열어왔다. 그는 이 일이 수고롭기보다는 “흥미진진하다”는 말로 대신한다.
민자역사 문제가 김 팀장의 일상에 1순위라면 2순위는 해고자 복직 투쟁일 것이다. 철도해고노동자투쟁위원회(철해투)에 속해 있는 그는 틈만 나면 농성·집회·모임 등의 각종 행사에 참가해 뜻을 보탠다. 일요일이면 철도 해고노동자 조기축구회에 나가 공을 찬다. 해고노동자이지만 그의 달력에도 역시 ‘빨간 날’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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