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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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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경제 자립의 힘 기른다”

등록 2004-12-16 00:00 수정 2020-05-03 04:23

개교 준비에 바쁜 김진경 평양과기대 설립총장 인터뷰… 두 체제 교류로 남북통일·국제화 이끌 인재 양성

▣ 임을출 기자 chul@hani.co.kr

“쇠도 벌겋게 달아 있을 때 쳐야 합니다.”

처음으로 남북 최대의 교육협력 프로젝트 사업을 벌이고 있는 김진경(69) 평양과학기술대학 설립총장은 지금이 남북한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화해협력 시대를 열어가는 데 매우 중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한다. 그는 “남북 관계가 제자리걸음을 걷고 있고, 북-미 관계는 아슬아슬한 곡예를 벌이고 있는 상황에서 평양과기대 교육사업이 갖는 전략적 함의를 재음미할 필요가 있다”면서 긍정적 파급효과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평양과기대를 통한 북한 엘리트들의 교육은 미국의 이익에도 부합된다”면서 미 정부도 도덕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고 덧붙였다. 또한 “평양과기대는 철저히 정치적 목적을 배제하고 있고 북한의 엘리트 및 젊은이들을 교육하여 자체적인 경제건설은 물론 국제사회의 발전과 평화에도 기여하도록 만드는 데 목적이 있고, 북한 당국도 국가적 사업으로 지원하고 있다”면서 남쪽 사회의 따뜻한 시선과 지원을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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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정부·보수 진영 향한 평화카드

그는 90년대 초부터 북한을 무려 200여 차례나 다녀왔다. 북한 당국은 아주 예외적으로 그에게 수시로 북한을 오갈 수 있는 왕복 비자사증을 발급해주었다. 평양과기대에 거는 북한 최고 당국자의 큰 기대와 배려를 잘 읽게 해주는 대목이다.

평양과기대 설립이 남북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나.

핵 문제로 긴장이 팽배한 한반도 정세에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할 것이다. 북한에 대한 미 행정부의 불신과 보수 진영의 강경 대응책을 불식하기 위한 평화 카드로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 평양과기대에 남북한 교수 학자뿐 아니라 재미동포 과학자, 세계 각국의 교수진들이 들어가서 엘리트들을 가르칠 경우 북한 심장부 내의 평화구역으로서 새로운 의미를 창출할 것이다. 무엇보다 오랫동안 갈라져 있던 두 체제가 만나서 함께 배우며 일할 수 있는 중간지대 역할을 함으로써 서로를 이해하며 통일로 가는 지름길을 열게 된다. 북쪽 지도계층이 서방세계와 국제사회의 시장 기능과 시스템을 이해할 수 있도록 자연스럽게 소개함으로써 대화와 교역의 통로가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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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과기대가 이른바 북한의 ‘국제화’를 지원하는 구실을 하는 것인가.

현재 북한은 국제협력을 통해 경제발전을 이루고 싶어도 내부에 인적 인프라가 구축돼 있지 않아 어려운 상황이다. 중국의 개혁·개방이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은 많은 해외 유학생들을 내보내 국제화 시대에 알맞은 인재를 양성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한은 러시아와 동구권이 무너진 이후 미국과의 불편한 관계 등으로 외부세계와 단절된 상태에서 오래 고립돼 있었기 때문에 바깥세계의 시장경제를 이해할 만한 인재들이 많지 않다. 결국 평양과기대를 통해 배출된 북한의 인재들은 앞으로 외국 기업이 북한에 진출하고자 할 때 가장 주요한 협력 파트너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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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경제의 자립을 돕는 역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북한 경제가 자립할 수 있도록 우리가 돕지 않으면 통일이 다가왔을 때 그 부담을 남쪽에서 고스란히 떠안게 된다. 그것은 우리에게도 큰 불행을 자초하는 일이다. 한반도의 긴장을 완화하고 평화 통일의 길을 열기 위해서는 북한 사회가 자연스럽게 우리와 함께 경제적인 동반자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공존과 상생의 길을 제시해야 한다.

특별히 북한 인재 양성에 관심을 쏟는 까닭은 무엇인가.

사회 각 분야의 필요한 인재가 서로의 체제와 시스템을 이해할 수 있기 위해서는 교육을 통해 착실히 배워나가야 한다. 이같은 준비 작업이 한 단계, 두 단계 이뤄져갈 때 양쪽 사회의 불안 요소와 불신감을 점차 줄여갈 수 있다. 식량 지원과 같은 인도적 사업을 지속하면서도 남북 통합 시대에서 일할 수 있는 핵심 인재를 각 분야의 전문가로 미리 키워놓아야 한다. 평양과기대를 통해 교육받은 북한 청년들이 더불어 살아가는 삶의 가치관을 공유할 수 있도록 만들 작정이다. 서로가 더는 반목하지 않고 형제와 동반자 관계를 회복하는 지름길이다.

옌벤과기대 성공 노하우 바탕으로

한국의 젊은이들과 평양과기대의 교류도 준비하고 있는가.

한국 청년들과 대학생들에게 이 시대와 민족의 역사 앞에서 좀더 깊은 책임감을 갖도록 가르치는 일은 대단히 중요하다. 통일 문제는 결국 젊은 세대들의 몫이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평양과기대는 남북한의 청년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구실을 할 것이다. 다양한 남북 청년학생 교류협력 프로그램을 개발해 미래의 확고한 동반자 시대를 열 수 있도록 도울 생각이다.

북한을 왜 그렇게 악착같이 돕느냐는 말을 자주 들었을 법하다.

남북한의 경제적 큰 격차는 오히려 통일을 가로막는 심각한 장애요인이 될 것이다. 혼사가 이루어질 때에도 서로 경제력이 엇비슷해야 혼담이 쉽게 오가듯이 오랜 세월 서로 다른 체제와 환경에서 살아온 남북한의 민족이 합하기 위해서는 서로의 가치관은 차치하더라도 경제력이 엇비슷해야 한다. 1996년, 97년 북한에 엄청난 기근이 들었을 때 햇볕정책을 통해 북한 주민들을 도운 것을 두고 비판이 많았다. 요즘은 우리도 살기 어려운데 북한을 왜 돕느냐고 많은 사람들이 묻는다. 그러나 이는 눈앞의 실리만을 생각하는 단견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역사는 굴절되거나 발전이 지체돼온 것이다.

이미 중국에서 성공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옌볜과기대학 운영 경험이 평양과기대 설립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이미 중국 내 세워진 중외 합작 국제대학이 바로 옌볜과학기술대학이다. 이 대학은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정책이 낳은 열매로 중국식 사회주의 시장경제에 알맞은 복합형 인재 양성의 꿈을 가지고 세워진 중국 최초의 4년제 본과 중외 합작 대학이다. 세계 13개국 이상에서 몰려든 우수한 석·박사 교수들이 국제화·개방화의 선봉에서 가르치고 있다. 또 창의성과 봉사정신으로 무장한 인재들을 배출하여 중국이 세계화의 중심으로 나아가는 데 기여하고자 세워진 국제대학이다. 이 대학을 통해 배출된 졸업생들이 중국 전 대륙을 향해 퍼져나가고 있다. 해외에서 들어온 많은 기업에서 졸업생들을 서로 앞다투어 뽑아가려고 한다. 평양과기대는 바로 12년 전에 세워진 옌볜과기대의 모델과 노하우 위에 세워지는 대학이다. 따라서 예상되는 많은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을 것이며, 궁극적으로 동아시아의 연합과 발전에 크게 기여할 것이다.

북쪽의 태도를 어떻게 평가하나.

북한은 평양과기대 사업을 국가 프로젝트로 인식하고 있다. 평양과기대의 설립 허가는 이례적으로 북한 교육성이 직접 내주었다. 더구나 대학교수 인사권과 운영권을 나에게 위임하고, 그리고 국제사회에서 누구나 안심할 수 있도록 북한 내각의 결의 아래 100만㎥의 대지를 등기까지 해주었다. 이는 북한 정부의 대단한 결의와 의지를 보여준다. 그것은 단순히 대학 건물을 지어달라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북한의 젊은이들을 국제화 시대에 알맞은 인재로 육성해달라는 시대적 요청을 한 것이다.

남쪽에서는 ‘북한 이상징후설’과 관련해 온갖 억측이 난무하고 있다.

전부 억측이다. 지난주 평양에 다녀왔는데 차분한 분위기다. 다만 외국인이 자주 들어가는 공공장소에서 김정일 위원장의 초상화를 뗀 것은 사실이다. 또 오래전에 바깥에서 노동을 하거나 식당 등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입는 간편한 복장에는 배지를 안 달아도 좋다고 지시를 내린 적이 있다. 이런 현상을 놓고 ‘권력 변동’ 운운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다. 내부적으로 큰 변화는 없다.

북한, 대지 등기 해주며 적극적

앞으로 계획은.

평양과기대가 개교하는 날까지 모든 준비를 차질 없이 추진하겠다. 커리큘럼도 짜야 하고, 교수도 뽑아야 하는 등 할 일이 많다. 무엇보다 이 사업은 남쪽 정부와 대학, 대기업 등의 적극적 관심과 전략적 지원이 뒤따라야 더 큰 성과를 낼 수 있다. 이들의 협력을 이끌어내기 위해 더욱 노력할 생각이다. 하늘이 내려준 이 절호의 기회를 잘 살려서 평양에 아름다운 대학을 짓고, 진정으로 남북이 함께 공존 번영하는 길을 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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