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정보기술 중심의 인재양성…남한 대학교수 50명 강의, 남북경협에 새 활력 불어넣는다
▣ 임을출 기자 chul@hani.co.kr
남한의 대학교수 50명이 평양에서 북한의 엘리트 젊은이들을 상대로 강의하는 시대가 곧 눈앞에 펼쳐질 것으로 보인다.
북한 수도 평양의 심장부에 자리잡고 있는 평양과학기술대학(총장 김진경·이하 평양과기대)의 공사가 크게 진전되면서 남북한이 함께 북한의 지식정보산업을 이끌 인재 양성 사업이 곧 본격화된다. 앞으로 당분간 굴뚝산업 중심인 개성공단과 정책 관료 및 기능 인력 양성 중심의 평양과기대가 힘을 합칠 경우 북한 경제 재건은 물론 남북경협에도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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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첫 삽, 2006년 봄 개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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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교육특구’나 마찬가지인 평양과기대의 건립은 한국의 동북아교육문화협력재단(공동이사장 곽선희·옥한흠)과 북한 내각의 교육성이 지난 2001년 5월 계약서를 체결하면서 첫 삽을 뜨게 됐다. 그 뒤 벽돌을 한장, 두장 쌓아온 지 3년 반이 흘렀다. 여러 우여곡절을 겪었으나 이제 빠르면 1년 안에 처음으로 남북 합작 대학이 문을 열게 되는 셈이다. 북한 당국으로부터 초대 총장으로 일찌감치 지정된 김진경 옌볜과학기술대학 총장은 12월8일 과의 인터뷰에서 “1단계 공사를 통해 학사동 건물과 식당 기숙사 3동 그리고 파워플랜트 등 6개 동을 먼저 완성해 2005년 가을까지 건축을 마무리하고, 늦어도 2006년 4월에는 개교를 할 예정”이라면서 “남쪽의 주요 대학 및 연구소 책임자와 구체적인 커리큘럼 작성과 파견 교수 신청을 받고 있는데 반응이 뜨겁다”라고 말했다.
현재 서울대, 포항공대, 고려대, 숭실대, 한국과학기술원(KAIST) 등이 평양과기대 설립 및 운영과 관련해 적극적인 협력을 약속한 상태로 알려지고 있다. 한 대학의 고위 관계자는 “여건이 허락하는 범위 안에서 평양과기대의 커리큘럼 작성이나 교수 파견 그리고 각종 교육기자재 지원을 검토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면서 “협의가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이들 대학 가운데 고려대 경영대학(학장 이장로)은 평양과기대 MBA 과정을 다각도로 지원할 준비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현재 평양의 건설현장에는 옌볜과학기술대학 건설본부의 직원 10여명이 상주해 있고, 중국 옌볜의 항달건축유한공사의 건설기술자 80여명이 파견되어 하루도 쉬지 않고 대학 건물 세우기에 비지땀을 흘리고 있다. 북쪽에서는 700명 가까운 청년 돌격대 소속 노동자들이 공사를 돕고 있다. 대학원 중심 대학인 평양과기대는 한국과학기술원(KAIST)을 벤치마킹한 것으로, 공사가 차질 없이 이뤄지면 내년에 최초로 500명의 입학생들을 뽑게 된다. 여기서 눈길을 끄는 대목은 북한 당국이 평양과기대 학생 가운데 3분의 1은 반드시 북한 현직 경제 관료, 공장 및 기업 책임자와 기술자들로 채워야 한다는 조건을 제시한 점이다. 전문가들은 이를 두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테크노크라트 양성에 특별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증거라고 풀이하고 있다. 그가 최근 경제개발을 최우선 국정과제로 선정하고, 신진 경제 관료를 전진 배치해 경제 난국을 타개하려고 노력하고 있음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한국은 물론 중국, 베트남 등 사회주의 나라들의 경제 도약의 배경에는 한결같이 선진국에서 새로운 기술과 선진 문물을 직접 끌어들이고 실용화하는 데 중추적 역할을 담당한 전문 기술 관료가 있었다. 선진 외국에서 교육을 받았거나 외국 기업 및 공공기관에서 근무했던 고급 두뇌들이 경제개발계획의 수립과 집행 과정에서 테크노크라트를 형성해 경제개발을 주도했던 것이다.
시장경제 익힌 인재로 개성공단과 윈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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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이유 때문인지 북한 당국은 “번듯한 건물이 아니라도 좋으니 천막을 지어서라도 우선 학교 문부터 열고 여기서 강의를 시작하자”고 재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북한 당국이 선진 기술과 학문에 대한 배움과 인재 양성에 얼마나 목말라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는 북한이 처한 엄혹한 현실과 매우 밀접히 맞닿아 있다. 핵 문제로 미국과 첨예하게 대치하고 있는 와중에 북한은 부분적인 시장경제 시스템을 도입하는 내부 개혁과 더불어 파격적인 특혜 조건을 내건 경제특구의 지정 등 생존을 위해 안간힘을 쏟고 있다. 특히 이런 어려움을 헤쳐나가는 길목에서의 고급 인력 양성과 선진 과학기술 도입은 체제 위기 극복의 열쇠로 간주하고 있을 정도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지난 몇년간 해마다 수백명의 경제 관료들과 학자, 기술자들을 해외로 내보내 선진 기술과 문물을 배워오게 했으며, 지난 8~9월에는 평양에서 70여명의 각 부처 관료, 기관, 연구소, 대학 관계자들이 유럽연합(EU) 전문가들로부터 북한 경제의 현대화, 계획경제에서 시장경제로의 이행 과정 경험을 전수받게 한 적도 있다.

평양과기대 교수진은 우선 남쪽 50명, 북한 20명으로 구성된다. 학생 10명당 최소한 교수 한명을 붙이겠다는 구상을 김 총장은 갖고 있다. 초기 교육은 남북한의 경제 협력이 가능한 일부 실용적인 컴퓨터 프로그램밍과 전자산업 분야 그리고 북한 사회가 국제 무역과 개방된 사회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돕기 위한 경영학석사(MBA) 분야와 당장 시급한 식량 문제 해결을 위한 농업식품 분야, 북한의 노후한 산업을 일으키고 재건할 기계 및 건축 분야 등 북쪽 경제가 자립할 수 있도록 돕는 일과 남북한 두 체제가 만나 협력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기초를 쌓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MBA 과정에서는 시장경제와 관련된 금융, 회계, 보험, 국제 상거래 관행, 마케팅 기법 등을 두루 배우게 된다. 여기서 배출된 다양한 인재들은 개성공단에 입주한 한국 기업들에도 요긴하게 쓰일 전망이다. 개성공단 진출에 관심 있는 많은 기업들은 대북 비즈니스의 성공은 단순히 낮은 임금뿐 아니라 얼마나 많은 전문 기능 인력을 적절한 시기에 제공받을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개성공단 사업이 본격화될 경우 적게는 수백명에서 많게는 수만명의 북한 노동력이 필요한 상황임을 감안하면 평양과기대가 갖는 역할의 중요성을 미뤄 짐작할 수 있다.
전문가들도 남한 교수들에 의한 북한 관료와 기업인 교육이 갖는 의미에 대해 긍정적 평가를 아끼지 않고 있다. 수출입은행의 배종렬 박사는 “북한 엘리트 관료 등과의 교육을 통한 교류는 남한의 경제발전에 대한 긍정적 인식을 심어줄 수 있을 뿐 아니라 남북간 신뢰 구축의 실질적인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또 전문 관료 양성은 단기적으로 남한의 개발 경험과 지식의 공유와 활용에, 중장기적으로 정보화와 기술 격차의 해소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고 진단했다.
김정일의 ‘상하이 쇼크’ 뒤 가속
김 위원장은 2001년 중국 상하이 푸둥 첨단 산업단지를 둘러본 뒤 평양과기대 건립사업의 본격적인 추진을 지시한 것으로 전해진다. 2년 전만 해도 그는 평양 과기대 건립에 대해 그렇게 탐탁지 않게 생각했다. 그러나 상하이의 눈부신 발전상은 김 위원장의 생각을 뿌리부터 흔들어놓았다. 그러나 수십년 뒤떨어진 산업구조를 선진국형으로 끌어올리는 일은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릴 뿐 아니라 매우 어렵다는 인식을 갖게 됐다. 그래서 눈을 돌린 게 지식정보산업이다.
김 위원장이 정보기술(IT) 산업 육성을 국가전략적 차원에서 각별한 관심을 쏟아온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그는 한때 남쪽 관계자들과 만나 “북한 인민이 배불리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길은 기초과학을 튼튼히 다져 우수한 인력을 기르고, 이들을 지식산업과 연결해 부가가치를 높이는 것”이라고 여러 차례 실토한 바 있다. 그 뒤 북한에서는 21세기 정보화와 세계화 시대를 맞이해 IT 육성산업을 통한 ‘단번 도약’ 전략을 성공시켜 산업 전반에 걸쳐 파급효과를 볼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해 대대적인 기술개건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물론 일부에서는 이런 단번 도약 전략에 대해 회의적인 시선을 보내기도 한다. IT를 국가주력 사업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고급 기술인력의 확보뿐 아니라 첨단 장비와 시설의 지속적인 업그레이드, 해외 마케팅을 통한 영업망 확충, 기술인력의 지속적인 재교육 등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런 지적에 대해 다른 목소리를 내는 전문가는 거의 없다. 이는 북한 당국도 잘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역설적으로 평양과기대에서의 남북 경제협력이 갖는 중요성을 더욱 부각시켜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즉, 북한이 한국의 지식정보산업 발전에 편승하는 전략을 펴야만 IT 중심의 단번 도약 전략의 성공 가능성을 키워주는 셈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평양과기대는 단순히 지식 전수에만 그치는 게 아니라 벤처 비즈니스 기법까지 가르치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즉, 여기에는 서울벤처밸리를 모델로 한 산학협동체 형식의 지식산업복합단지, 창업보육센터 등이 들어선다. 따라서 평양과기대 학생들은 여기서 선진 기술만 배우는 것이 아니라 직접 생산을 통해 기술을 습득하고, 더불어 국내외 비즈니스까지 직접 경험하게 된다. 공부도 하고 돈도 버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노리는 셈이다. 궁극적으로 북한에서도 빌 게이츠 같은 걸출한 인물을 배출하는 게 평양과기대 설립의 야심적 목표다. 우선은 남북한이 실현 가능한 각종 콘텐츠와 소프트웨어 개발에 나선다면 국제적인 경쟁력을 충분히 갖출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지식산업복합단지의 설립 구상은 김정일 위원장이 특별히 관심을 쏟고 기대를 하는 분야이기도 하다. 평양과기대 설립 주체인 남쪽의 동북아교육문화협력재단과 북한 교육성이 맺은 ‘평양정보과학기술대학 건립 기본계약서’ 제4장 9조 5항에는 지식산업복합단지 조성이 특히 강조되어 있다.
유학불가능한 딜레마의 탈출구 찾아
김 위원장은 지난 10여년간 옌볜과기대가 사회주의 국가 중국에서 훌륭하게 개방적인 국제 인재를 양성해온 과정을 면밀히 관찰해온 듯하다. 그는 수시로 북한 학자들을 보내 함께 지내게 하면서 옌볜과기대의 상황과 성과들을 보고받고 점차 매료되기 시작한 것으로 전해진다.

중국 사회주의 국가에서 성공적으로 인재들을 양성해 인정받는 것을 지켜보았던 것이다. 김 위원장의 베이징, 상하이 방문 이후 북한 내부에서도 새로운 변화에 대한 욕구가 분출되기 시작했고, 현실적으로 옌볜과기대와 같은 국제 수준의 체계적인 지식정보기술을 전수할 수 있는 시설과 콘텐츠가 절실히 필요하게 되자, 김진경 총장을 통해 먼저 대학 설립을 요청하게 된 것이다. 북한 사회가 국제적으로 격리되어 젊은이들을 자유롭게 유학시킬 수 없는 현실적인 딜레마에 대한 탈출구로 평양과기대 카드를 부상시킨 것이다.
과연 평양과기대가 북한을 수십년에 걸친 ‘빈곤의 수렁’에서 건져내는 선구자 구실을 할 수 있을까. 많은 이들이 촉각을 곤두세우며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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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쪽 정부도 발맞추실래요? |
평양과기대가 세워지고 성공적인 운영을 하기까지는 극복해야 할 난관이 도사리고 있다.
역시 재정 문제가 가장 먼저 걸린다. 우선 주요 대학 건물과 구조물 건설, 건설에 필요한 설비 및 자재 공급은 큰 무리가 없어 보인다. 주요 대학과 연구소에서 대학 운영 및 교육에 필요한 설비를 제공하겠다는 뜻을 밝히고 있는 만큼 이 역시 해결될 것이다. 다만, 대학 설립 이후 운영에 들어가는 각종 자금 확보는 아직 불투명한 상태로 알려지고 있다. 북쪽 학생들에게는 거의 모두에게 장학금을 지급하는 탓에 남쪽 대학에서처럼 등록금 수입은 기대할 수 없다. 평양과기대 지식산업복합단지 조성이 조기에 순조롭게 마무리된 뒤 남쪽 벤처기업들의 투자가 활성화되어 수익이 발생할 경우 그 일부를 학교 운영자금으로 돌리는 방안이 세워져 있기는 하다. 또 얼마 전 120개 대학 학생들이 2주 만에 ‘평양과기대 벽돌 한장 쌓기 운동’을 통해 1억여원을 모으는 등 대중적 모금운동이 펼쳐지기도 했으나 기대에는 턱없이 못 미치는 액수다. 1단계 대학 건축 공사비만 400억원이 들어간다.
따라서 중장기적인 안정적 학교 운영경비 조달은 여전히 불투명한 과제다. 많은 이들은 이 사업이 갖는 전략적 중요성 등을 감안해 남쪽 정부의 개입과 지원이 불가피한 것 아니냐고 보는 시각이 많다. 순수 민간단체가 떠맡기에는 덩치가 너무 큰 버거운 과제라는 지적이다. 실제 평양과기대 설립 추진단체인 동북아교육문화협력재단 관계자들도 평양과기대가 어느 특정 단체나 개인이 아닌 범국민적 차원의 공익성을 지닌 사업으로 추진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재단쪽은 우선 정부가 평양과기대 건립에 적은 액수라도 상징적으로 지원해줄 경우 공신력을 높이는 끌개가 되어 다른 많은 이들의 도움을 견인하는 구실을 할 것으로 내심 기대하고 있다. 또 정부의 적극적 개입은 남북 당국간 신뢰 구축에도 적잖은 기여를 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도 평양과기대 건립의 진전을 의미 있게 지켜보고 있는 듯하다. 통일부의 고위 당국자는 “평양과기대 사업은 남북 관계가 진전되는 상황에 따라서는 북한에 제시할 수 있는 훌륭한 카드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인정했다.
또 일각에서는 미국 부시 행정부의 대북 강경정책이 평양과기대 사업의 발목을 잡는 게 아닌가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기도 한다. 그러나 평양과기대를 바라보는 부시 행정부의 시각은 그리 차갑지 않아 보인다. 김진경 총장 등은 미국 정부의 관련 부처를 찾아가 평양과기대는 순수 교육사업이며, 북한 엘리트와 젊은이들을 교육함으로써 북한 사회의 시장경제와 평화 마인드 확산에 기여할 수 있음을 설득해왔고, 그 결과 미국 상하 양원과 행정부 관계자들로부터 도덕적인 지원 약속을 이끌어냈다. 또 최근에 부시 행정부는 UB(United Board)라는 비정부단체(NGO)가 신청한 평양과기대 프로젝트 지원금 4만달러의 대북 송금을 매우 이례적으로 허가한 것으로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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