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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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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관계, 마침내 기지개!

등록 2004-12-02 00:00 수정 2020-05-03 04:23

<font color="darkblue">금강산관광 6돌 행사에 남북 고위급 인사 참석…민간교류의 숨통도 서서히 트여 </font>

▣ 임을출 기자 chul@hani.co.kr

남북 관계가 오랜 잠에서 깨어나 서서히 기지개를 켜고 있는 모양새다.

김보현 북한 담당 국정원 3차장이 11월19일부터 이틀간 금강산에 다녀왔다. 현대아산이 금강산관광 6돌을 맞아 그를 초청했고, 김 차장은 흔쾌히 수락했다. 사실 김 차장은 1998년 첫 금강산관광 뱃길을 여는 데 산파 구실을 한 인물 가운데 하나다. 물론 그 뒤 2000년에도 당시 임동원 국정원장을 도와 남북 정상회담을 성사시키고, 물밑에서 주요 합의를 이끌어낸 주역이기도 하다. 어쩌면 그는 노무현 정부에 남아 있는, 북한 고위층에 선을 댈 수 있는 가장 신뢰할 만한 핫라인으로 간주해도 좋을 최고위직 인사다.

귓속말로 무슨 대화 나눴나

그의 일거수일투족은 특별히 눈길을 끌 만했다. 2차 남북 정상회담 임박설이 언론을 통해 끊임없이 흘러나오던 터라 그의 금강산 행보는 잠시나마 관계자들의 촉각을 곤두서게 했다. 그러나 정작 그의 발걸음은 다른 관광객들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실제로 그는 이틀간 금강산에 머물면서 일반인들의 시야에서 벗어난 적이 없었단다. 현대아산이 주최한 금강산관광 6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하고, 평양모란봉교예단의 교예공연 관람과 기념만찬 등을 함께했다. 그리고 20일 오전에는 신계사 대웅보전 낙성식에 참석한 뒤 남쪽 고성으로 돌아왔다. 대북 정보를 총괄하는 정보기관의 최고위급 인사의 신중한 행차는 일반인의 예상을 한참이나 벗어나 평범하기 그지없었다. 다들 궁금해하던 남북한 고위급 비밀 접촉은 이뤄지지 않았다는 게 현지 관찰자들의 공통된 귀띔이다.

물론 전문가들은 김 차장이 북쪽 고위 인사와 내밀한 접촉을 원했다면 굳이 이런 공개 행사를 이용했을 리 없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취재진만 40여명을 비롯해 각계인사 250여명이 참석한 행사였다. 어차피 처음부터 남북 당국간 비밀 접촉을 염두에 두고 참석한 자리가 아니었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실제 관계당국에서도 김 차장의 금강산 방문과 관련해 확대 해석은 말아달라고 당부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금강산 방문은 참석 자체만으로 북한에 의미 있는 메시지를 던진 것으로 보인다. 북한에서는 금강산관광 6주년 기념행사에 강광승 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아태) 실장, 전영남 참사 그리고 리덕수 금강산관광총회사 부총사장 등이 참석했다. 이 가운데 강광승 실장은 아주 고위급은 아닐지라도 대남 사업과 관련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중량급 인물이다. 현대아산쪽에서는 애초 이종혁 아태 부위원장의 참석을 요청했으나 그가 바쁘다는 이유로 북한 지도부는 강 실장을 내려보냈다. 여기서 주목할 대목은 북한은 여전히 남쪽과의 공식 접촉을 꺼리고 있다는 점이다. 고위급 관계자의 공식, 비공식 접촉을 여전히 그다지 탐탁지 않게 생각하고 있는 셈이다. 이번 금강산관광 6주년 기념행사에도 현대아산과의 끈끈한 인연과 비즈니스 관계를 감안해 그나마 비중 있는 인물을 참석시킨 것이다.

관련 소식통들에 따르면 이처럼 북한은 여전히 남쪽 정부와의 당국간 대화에 나설 뜻이 없음을 내비치고 있는 듯하다. 이는 그간 겹겹이 쌓여온 남북 당국간 불신의 높이를 잘 보여준다. 이번 금강산관광 6주년 기념행사에 정부 대표로 참석한 이봉조 통일부 차관은 11월19일 만찬장에서 북한의 강광승 실장과 귓속말을 주고받으며 적지 않은 대화를 나눈 것으로 알려진다. 남북한의 중량급 실무 당국자 사이의 비공식 접촉이 거의 반년 만에 이뤄진 셈이다. 추정해보건대 북한의 강 실장은 지난 7월 이후 남북 관계를 얼어붙게 만든 김일성 주석 사망 10주기 조문 불허, 대규모 탈북자 기획 입북, 북한 급변 사태 대비 계획 등에 대한 남쪽 당국의 태도를 성토했으며, 이 차관은 그간 북한이 품어온 여러 오해들에 대해 적극 해명했을 것이다.

노 정부, 적극적으로 손 내민다

이 차관은 이날 오전 열린 금강산관광 6주년 기념식 축사에서 “6·15 공동선언을 준수하고 이를 성실히 이행하려는 우리의 의지는 확고하다”고 유난히 강조했다. 북한 지도부는 그간 과연 남쪽 당국이 6·15 공동선언을 이행하고 남북 관계를 개선할 의지가 있는지에 대한 ‘진정성’에 강한 의구심을 가져온 터다. 따라서 이 차관의 기념사에는 북한 당국의 불편한 심기를 달래주면서, 남북 관계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겠다는 노무현 정부의 분명한 메시지가 담겨 있었다. 이봉조 통일부 차관과 김보현 국정원 3차장이 나란히 금강산 행사에 참석한 것은 남북 관계 복원을 위한 첫 단계의 상징적 조처다. 당장 가시적 성과는 드러나지 않았지만 대북 정책 핵심 실무자들의 금강산 방문 자체가 북한 지도부에 노무현 정부의 대북 관계 개선 의지를 행동으로 보여준 조처로 평가된다. 이는 노무현 정부의 이전과는 다른 정책 변화를 감지케 하는 대목이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11월25일 국회 남북관계발전특위에 나가 남북 정상회담 개최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이른 시일 내 정상회담이 열려야 한다는 입장을 갖고 있다”면서 “(그 이전에) 여러 가지 환경 조성과 정지작업이 필요하다”고 답변한 바 있다.

사실 노 정부의 외교안보팀은 그간 내부적으로 조급하게 남북 관계 개선을 서둘 필요가 없다는 쪽과 신뢰 회복을 위해 먼저 적극적인 화해협력의 제스처를 보여야 한다는 쪽이 팽팽하게 충돌해왔다. 그동안 북한이 대내외적인 어려운 사정으로 말미암아 곧 스스로 남북 당국간 대화에 나올 것이라는 안이한 낙관론이 힘을 얻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사정이 바뀐 것이다. 이는 정동영 통일부 장관의 현실주의적 인식과 주도적 리더십이 크게 영향을 미친 결과다. 한반도 안팎의 현실을 감안할 때 노무현 대통령 집권 3년차인 내년에 북핵 문제나 남북 관계의 돌파구를 열지 못하면 국내외 정치적으로 큰 타격을 입을지 모른다는 절박감이 작용하고 있는 듯하다.

북한도 긍정적 메시지 보내와

노 대통령의 로스앤젤레스 연설도 남북 당국간 대화 재개 분위기 조성용의 성격이 강하다. 그는 지난 11월12일 “(북한은) 안전이 보장되고 개혁과 개방이 성공할 수 있다는 희망이 보이면 핵무기를 포기할 것”이라며 “결국 북핵 문제는 북한에게 안전을 보장하고 개혁·개방을 통해 지금의 곤경을 극복할 수 있는 기회를 줄 것이냐, 아니냐의 결단에 달려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그 밖에 북핵 문제는 대화 이외에는 다른 방도가 없다며 대북 봉쇄를 단호하게 반대한다는 견해나, 핵과 미사일을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한 억제 수단이라는 북한 주장은 일리가 있다고 밝힌 대목 등은 노 대통령을 향한 북한 지도부의 불신을 완화하는 데 크게 기여할 것이다. 더구나 이런 노 대통령의 대담한 제안에 대해 20일 부시 대통령이 공감을 표시한 바 있다.

노 대통령의 로스앤젤레스 발언은 취임 이후 한 연설 가운데 북한에 보낸 가장 분명하면서도 호의적인 발언으로 읽힌다. 여기에 북한이 반길 소식이 하나 더 덧붙여졌다.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가 경수로 사업 중단 조처를 1년 더 연장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KEDO 사무국은 이 결정에 대해 “이는 KEDO와 북한이 양자간에 체결한 각종 합의서 및 의정서 관련 규정을 계속 준수할 것임을 의미한다”고 밝혔다. 미국은 1년의 연장 기간이 끝나면 이 사업을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해온 터다. KEDO의 경수로 원자력발전소 건설사업은 북한에 여러 가지 소중한 의미가 있다. 만성적 전력난에 시달리는 북한으로서는 자력갱생의 중요한 발판으로 경수로를 간절히 원해왔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 결정도 한국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에 힘입었다는 측면에서 북한에는 긍정적 메시지다. 경수로 사업은 북핵 문제에서 일정한 진전이 있을 경우 곧바로 재개될 수 있는 프로젝트다.

이번 금강산 접촉에서 남쪽 당국의 진의를 비교적 소상히 파악한 북쪽 관계자들은 평양에 돌아가 이를 윗선에 보고하고, 앞으로 대남정책 방향에 대해 심도 있는 토론과 검토를 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당장 북한의 뻣뻣한 태도가 미세하지만 조금씩 누그러지는 조짐이 눈에 띈다. 노 대통령의 이번 방미 성과에 대한 북한 지도부의 반응에서도 온기가 느껴진다. 북한의 이례적인 초청으로 지난 11월16일부터 닷새간 평양을 방문하고 돌아온 장 핑 유엔총회 의장(가봉 외무장관)은 25일 서울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북한은 한-미 정상회담 결과에 대한 노 대통령의 하와이 발언과 그 직전 로스앤젤레스 발언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인 것 같았다”고 말했다. 장 핑 의장은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등을 만나고 돌아온 만큼 그의 전언에는 북한 지도부의 의중이 실린 것으로 봐도 무리가 없을 듯하다. 그는 “방북 중 내용을 전혀 몰랐는데 오히려 북한이 내게 노 대통령의 발언을 전해주었다”면서 “그들은 ‘노 대통령이 객관적인 발언을 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그간 북한 당국이 언론매체 등을 통해 내비쳤던 심한 대남 불신 등을 감안하면 적지 않은 태도 변화다.

또 그간 막혔던 민간 교류의 숨통도 서서히 열리고 있는 모양새다. 남북, 해외 통일단체 대표들은 11월23~24일 금강산에서 만나 내년 6·15 공동선언 발표 5주년 기념행사를 평양에서, 해방 60주년 8·15 통일행사를 남쪽에서 열기로 합의했다. 또 이들은 통일운동과 민족 공동의 통일행사들을 광범위하게 협의 추진하기 위해 ‘6·15 공동선언 실천을 위한 북, 남, 해외 공동행사준비위원회’를 내년 적절한 시기에 구성하며 올해 안으로 남, 북, 해외에서 각기 지역준비위원회를 결성키로 했다. 올해 북한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8·15 민족공동행사가 김일성 주석 조문 불허와 탈북자 대거 입북 등으로 무산된 이후 처음으로 남북한이 뜻을 모은 것이다.

금강산 면회소 측량 시작

또 다른 희소식은 남북 이산가족면회소 건설에 가속도가 붙은 점이다. 남북 양쪽은 금강산 면회소 건설에 필요한 측량과 지질조사를 12월10일부터 21일까지 금강산 현지에서 하기로 합의했다. 또 면회소 착공식 일정을 이 기간 중에 협의해 결정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남북한 적십자사는 25일부터 사흘간 금강산에서 면회소 건설을 위한 측량 및 지질조사 제3차 기술실무 협의를 한 바 있다. 대한적십자사 관계자는 “측량 및 지질조사 결과를 바로 면회소 설계에 반영하면 이르면 내년 초에는 착공식을 열 수 있다”고 말했다. 이산가족면회소는 그간 설계작업을 마치고도 면회소 예정 터의 측량 및 지질조사를 하지 못해 제자리걸음을 해왔다.

<table width="480" cellspacing="0" cellpadding="0" border="0"><tr><td colspan="5"></td></tr><tr><td width="2" background="http://img.hani.co.kr/section-image/02/bg_dotline_h.gif"></td><td width="10" bgcolor="F6f6f6"></td><td bgcolor="F6f6f6" width="4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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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한’ 대북정책 성공할까</font>


노무현 정부의 대북 정책이 이전 정권과 다른 뚜렷한 차이점은 ‘투명성’의 강조에 있다.
‘투명한 대북 정책 추진’은 노 대통령 개인의 신념 및 가치관과 맞닿아 있다. 취임 초기의 대북 비밀송금 특검을 수용한 결정은 투명한 대북 정책 추진 의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조처라고 측근들은 얘기한다. 김보현 국정원 3차장의 공개적인 금강산 방문도 이런 정책 기조의 연장선상에서 이뤄진 듯하다. 노 대통령은 11월25일 3부 요인과 여야 4당 대표를 청와대로 초청해 만찬을 함께한 자리에서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가 남북 정상회담 추진설의 진위를 묻자 “아직까지 아무런 준비나 진행된 것이 없고, 의중이나 가능성 타진 움직임도 전혀 없다”며 “회담을 성사시키기에 적절한 여건이 아니라고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상대방 의중이나 가능성을 타진하는 단계에선 소문 내면서 할 수 없는 일이며 이 단계에선 공개·비공개가 문제가 아니라 전략의 문제다. 앞으로 그런 물밑 교섭이나 의중을 타진하는 단계에선 투명성에 한계가 있다는 점을 양해해달라”며 “그 가능성이 타진돼 추진되면 국민에게 투명하게 공개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투명하게 대북 정책을 추진하겠다는 노무현 정부의 발언을 그다지 믿지 않는 듯하다. 당국의 일관된 부인에도 불구하고 야당인 한나라당이 불안해하고, ‘남북 정상회담설’과 ‘특사 파견설’이 언론에서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것만 봐도 그렇다. 노무현 정부가 내년 해방 60돌, 6·15 공동선언 5돌을 맞아 남북간 의미 있는 접촉과 진전을 목표로 분위기 조성과 정지작업을 벌이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순서상 지금이 특사 교환이나 남북 정상회담을 추진할 때인지는 곰곰이 생각해봐야 할 듯하다. 또 남북간 대화 채널 혹은 의사소통의 통로도 아직 만들지 못한 상태다. 칠레 한-미 정상회담 이후 북핵 문제 실마리 마련에 주력하고 있는 정부의 처지를 감안하면 이른 시일 안에 북한을 3차 6자회담에 견인하는 게 우선 과제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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