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벌언론 규제 불가능한 여권의 졸속 법안…‘법대로’ 계산하면 상위3사 독점 안나와
▣ 신승근 기자 skshin@hani.co.kr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공정한 언론시장 질서 확립”을 명분으로 열린우리당이 지난 10월21일 국회에 낸 신문법에 대한 졸속 입법 논란과 함께 여권의 무능과 안일함이 비판의 도마 위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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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우리당은 신문법을 확정하면서 언론개혁의 최대 쟁점 사안인 ‘신문사의 특정인 소유지분 제한 제도’를 제외해 진보적 시민·사회단체로부터 “족벌언론을 의식한 타협안”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이런 지적에 대해 열린우리당은 “언론개혁이 목적이지, 소유지분 제한이 목적은 아니다”라고 항변하며 신문법에 족벌 신문사의 시장점유율 제한 조치가 포함된 데 더 큰 의미를 부여했다.
‘소유지분제한’ 알맹이 조항은 빼고
1개 신문이 전체 시장의 30%, 상위 3개 신문이 60% 이상을 점할 경우 이들을 ‘시장지배적 사업자’로 지정해 규제할 수 있는 내용을 담아, 등 이른바 보수 성향 3대 신문의 여론시장 독점을 막을 길을 마련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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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최근 열린우리당의 신문법이 시장점유율 제한 효과도 없는 것으로 밝혀지면서 ‘얼치기 입법’이라는 비판에 직면했다. 지난 11월5일 문화관광부는 ‘열린우리당의 신문법에 따를 경우 신문업계 상위 3개사인 조·중·동의 시장점유율은 현재 44.17%로, 시장지배적 사업자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유권해석을 내린 것이다. 국회 문화관광위원회(문광위) 소속 노웅래 의원(열린우리당)의 질의에 대한 이 답변서에서 문화관광부는 ‘지난해 말 기준으로 매출액 파악이 가능한 일간신문 36개사 중 상위 3개사 기준’이라며 “10월 현재 등록된 일간신문 138개를 전수 조사하면 상위 3개사의 시장점유율은 더욱 낮아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어떻게 이런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발생한 것일까. 열린우리당이 신문법에 ‘시장지배적 사업자’의 범위를 ‘무료 신문을 제외한 일간신문’으로 규정하는 실수를 저지른 게 화근이다. 이 조항에 따를 경우 애초 입법 의도로 상정한 조·중·동뿐 아니라 스포츠신문, 경제신문, 지방지 등 138개의 등록 일간지 전체를 대상으로 점유율을 따져야 한다. 결국 상위 3개사의 점유율이 턱없이 낮아질 뿐 아니라, 현재 등록된 신문사 가운데 어느 한곳도 규제하지 못하는 유명무실한 법안을 만든 셈이다.
열린우리당 언론발전특위 소속의 한 의원은 “언론개혁 입법이 언론 장악 음모라는 보수 언론과 야당의 공격에 빌미를 주지 않기 위해 언론개혁을 요구해온 시민단체들의 자료 분석과 입법 청원 내용을 원안대로 살리는 데 역점을 두다 보니 발생한 실수”라고 말했다. 정치적 시비를 피하기 위해 224개 시민단체가 모인 언론개혁국민행동이 지난 9월21일 국회에 낸 신문법 개정안을 대부분 따랐는데, 이것이 조·중·동을 비롯한 10개 중앙언론사를 기준으로 시장점유율을 파악하는 오류를 범했다는 주장이다.
이런 항변으로 여권의 무능과 준비 부족을 합리화할 수는 없다. 언론개혁을 부르짖어온 열린우리당은 당 언론발전특위를 통해 10여 차례 이상 내부 토론을 거쳐 법안을 확정했다. 언론발전특위 간사인 정청래 의원은 지난 8월26일 의원총회에서 “언론개혁은 언론의 자율적 정화에 따라 수행해야 할 과제지만, 언론 스스로 그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는 현실에서 불가피하게 법과 제도적 측면에서 언론개혁을 추진할 시점에 와 있다”고까지 주장했다. 하지만 정작 법 적용 대상에 대한 검토조차 불충분한 법안을 국회에 내 ‘무능한 개혁세력’이라는 비난을 자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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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광위 심사에서 고친다고 하지만…
열린우리당은 문광위 법안 심사 과정에서 오류를 바로잡겠다고 한다. 정청래 의원은 “문광위 법안심사소위에서 시장점유율 규제 대상을 ‘전국을 대상으로 신문을 판매하는 중앙 종합 10대 일간지’라는 의미로 자구를 수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자연적으로 성장한 신문의 시장점유율을 문제 삼는 것은 반대한다고 밝혀온 한나라당이 이를 수용할지 의문이다. 한나라당 언론발전특위 간사인 박형준 의원은 “여당이 처음부터 자신들에게 비판적인 조·중·동 손보기에만 눈이 멀어 자의적 졸속 입법을 추진했다는 사실을 스스로 증명한 것”이라며 “애초부터 법안으로 성립되기 어려웠던 만큼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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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4일 한겨레 그림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