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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론곡필로 뒷담화 즐기세요~

등록 2004-11-11 00:00 수정 2020-05-03 04:23

뒷담화 3인방이 소개하는 ‘뒷담화 잘하는 법’… 소신껏 양과 질 조정하며 연속성 유지해야

▣ 김소희 기자 sohee@hani.co.kr

중간 규모의 어느 회사에서 벌어진 일이다. 어떤 사람이 동료들과 메신저로 나눈 대화를 몽땅 백업받아 임원에게 들고 갔다. 동료들의 불만 중에는 그 사람이 의도적으로 유도한 내용도 있었다. 임원이 과연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① 불문에 붙인다 ② 고자질한 사람을 칭찬하고 심복으로 삼는다 ③ 불만을 토로한 부하직원을 불러 추궁한다.

임원은 조직문화적으로 가장 어리석은 방법인, ③을 택했다. 본인은 “내가 언제 그랬냐”고 억울함을 토로하고 해명하려 했다고 하나, 직원들은 사사로운 감정까지 감시하고 통제하려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이 일을 불씨로 이편저편이 갈리고 음모와 협잡이 횡행하면서 회사 전체가 한마디로 ‘맛이 갔다’고 한다. 이 일은 한 대학병원에서 연구 대상으로 검토 중인 사례이다.

왜 이렇게 됐을까? 이 소식을 들은 의 필자를 포함해 신윤동욱·김수현 기자 등 ‘뒷담화 3인방’은 “제대로 뒷담화를 까지 않았기 때문”으로 결론을 내렸다. 뒷담화도 한다고 다 되는 게 아니다. 특히 능력은커녕 인격도 ‘견적’이 안 나오는 윗사람을 상대로 할 때는 비밀유지가 생명이다.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순발력 있게 자신을 변명할 논리도 늘 마련해두어야 한다. 틈만 나면 회사 비상계단에서 뒷담화를 나눠온 ‘뒷담화 3인방’이 다년간의 경험으로 체득한 ‘뒷담화 잘하는 법’을 소개한다.

상대를 제대로 골라라 나와 비슷한 수준으로 한심해 혀를 차게 만들다가도 문득 나를 되돌아보게 만드는, 존재 자체로 ‘위로와 각성’이 되는 상대가 제격이다. 지위고하는 당연히 막론한다. 잘난 것이 없는 사람이면 더 좋다. 그런 사람일수록 정치·경제·사회·문화적인 온갖 주제를 자유롭게 말할 수 있다. 자기랑 별 이해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단, 언젠가 중심으로 진입하려는 과정에 있는 상대는 피할 것을 권한다. 뒷담화하다가 뒷담화당한다는 말은, 주로 이런 이들의 돌출 행동 탓이다. 입이 꼭 무거울 필요는 없지만 “쟤 얘기 했다가 내가 더 당하면 어떡하나”라는 소심함을 갖고 있는 사람은 괜찮은 상대이다. 취향과 동선, 경제적 조건이 비슷하다면 금상첨화다.

주제나 논조의 제한을 두지 말라 뒷담화의 미덕은 정론곡필이다. 온갖 사실들을 자기 식대로 해석하는 자세가 기본이 돼야 한다. 기초학습 단계부터 이 자세를 명심해야 한다. 유머를 섞는 습관을 들이는 것도 상대에 대한 서비스이자 인간에 대한 예의이므로 강력 추천할 만하다.

소신껏 양과 질을 조정하라 별로 친하지 않는 회사 동료가 오래전에 아주 친했던 친구보다 훨씬 더 좋은 상대가 될 수 있다. 뒷담화는 공통의 경험을 맥이 끊기지 않게 나누는 게 핵심이다. 익숙한 파트너라도 주말을 보낸 다음에는 서로의 상태를 반드시 점검할 필요가 있다. 익숙한 파트너가 아니라면 상대방의 반응을 살펴 고급한 표현을 쓸지 저급한 표현을 쓸지, 도저한 담론을 펼칠지 유치한 얘기를 지껄일지 유연하게 판단해야 한다. 상대방에게 이리저리 끌려다니는 무소신은 가장 위험하다. 어떤 경우에도 소신과 품위를 지켜야 한다. 안 그러면 “지겨워서 혼났다”는 뒷얘기 한마디에, ‘뒷담화계’를 떠나게 되는 어이없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대면 접촉이 좋다 여행사에 근무하는 ㅎ은 “∼소이다” “∼있구랴” 등의 표현으로 유명하다. ㅎ은 어느 날 싸이월드 미니홈피 게시판에 상사 뒷담화를 남겼다. 평소 표현에다 과격함을 더해 상처받은 영혼을 스스로 치유했다. 이튿날 상사가 친한 척을 해왔다. “나 자기 미니홈피 들어가봤어.” 허걱. “내 아들 시켜서 출생연도 검색했더니 한 사람밖에 없더라.” 낭패였다. 한데 상사는 불만이 없는 듯했다. 아들이 엄마가 받을 충격을 고려해 둘러대준 것 같았다. ‘감동’이 북받쳐올랐다. ㅎ은 이 사건을 뒷담화계의 미담으로 두루 퍼뜨렸다. 이 일을 계기로 피부를 맞대고 하는 전통적 방식이 ‘안전성’ 면에서 더 낫다는 주장을 하는 이들이 늘어났다.

호혜평등의 자세를 견지하라 경지에 이른 이들만이 구사할 수 있는 태도이다. 나에게 뒷담화할 권리가 있다면 남에게도 있다. 내가 남을 씹듯이 남도 나를 그럴 수 있다. 혹시 나에 대한 뒷담화가 들리더라도 불문에 붙이는 게 좋다. 어설프게 남에게 하소연하려다 생리상 더 큰 왜곡·과장에 시달릴 위험이 크다. 혹시 여유가 된다면 쥐도 새도 모르게 염탐을 해 문제의 맥락을 이해하고, 알아서 해결해주는 통 큰 리더십을 발휘하는 것도 권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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