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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루 머리 같은 국방부

등록 2004-11-05 00:00 수정 2020-05-03 04:23

인터넷에 ‘민간인 철책 월북’ 비난 글 쇄도에도 “곧 식겠지” 수수방관

▣ 김성걸 기자/ 한겨레 정치부 skkim@hani.co.kr

중부전선 최전방의 3중 철책이 절단된 사건은 국민들에게 큰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 군 복무를 마친, 특히 전방 경계를 경험한 남자들은 국방부의 ‘민간인 월북 추정’ 발표에 “무슨 삼류 소설을 쓰느냐”며 비아냥과 비난을 퍼붓고 있다. 가능성이 없다는 주장이다.

왜 현장 공개를 거부하는가

또 평소 군이 입버릇처럼 말하던 ‘철통 같은 경계’에 익숙한 일반 국민들도 놀라기는 마찬가지다. 망망대해인 동해 또는 서해의 경계선을 넘어 무장간첩이 넘어와도 문제가 있다고 여기는 터에 병력을 촘촘히 박아놓고, 3중 철책을 둘러도 뚫렸다면 이를 어떻게 설명하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국방부의 태도는 석연찮다. 나아가 나와는 상관없다는 자세마저 보이고 있다. 한 군 관계자는 국방부의 이런 태도에 불만을 나타냈다. 그는 “이번 사건은 안보에 관한 사항으로 전방 철책이 뚫린 것은 26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라며 “책임질 것은 책임지고, 고쳐야 할 것은 고쳐야 하는 것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우선 국방부는 이번 사건의 현장 공개를 한사코 거부했다. 전방 철책 곳곳에 ‘OO 전망대’라고 하여 일반에게 공개하고 있는데도 군사기밀 사항이 있다는 구실을 댔다. 심지어 철책이 절단된 곳이 유엔사 관할구역이라는 어거지도 서슴지 않았다. 또 공개할 경우 국가보안법 폐지와 결부시켜 안보의식이 약화됐다는 야당 공격의 빌미를 주기 때문에 공개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고 한다.

군은 그동안 정치와 안보를 연계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군 내부에서는 안보 문제를 스스로 정치와 연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청와대와 여당에 대한 배려라기보다는 군의 잘못에 대한 공개를 회피하면서 책임 추궁을 모면하려는 발상에서 나온 측면이 강하다.

노루가 사냥꾼에 쫓겨 궁지에 몰리면 덤불 속에 머리만 처박고 가만히 있다고 한다. 자신의 온몸이 드러나 있고 사냥꾼이 다가오는데도 자신은 안전하다고 자위한다는 것이다. 철책이 뚫려 국방부 인터넷에도 온갖 비난 글이 쇄도하는데도 국방부는 더 이상 거론되지 않으면 곧 비난 열기가 식을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 1996년 7월 전방 지역에 내린 폭우로 군 장병 60여명이 사망·실종한 사고가 있었다. 당시 이런 대형 사고 때문에 여론은 ‘천재’가 아닌 ‘인재’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이때 군은 과감히 사고 현장을 공개했고, 사고 현장을 둘러본 국회, 정부, 언론은 고개를 끄덕이며 비난을 접고, 군 돕기에 나선 적이 있다. 현장을 공개해봐야 득볼 것이 없다고 판단한 것인지, 아니면 과거보다 ‘열린 국방’에 소극적 자세를 갖게 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국방부는 또 사건 발표에서 갈팡질팡했다. 철책 절단이 발견된 26일 오전에는 절단된 곳이 두곳이라고 했다가. 오후에는 세곳이라고 수정했다. 국방부는 왜 한곳을 말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기자들이 질문을 하지 않아서”라고 다소 옹색하게 둘러댔다.

그리고 현장을 둘러본 한나라당 의원들은 사건 당시 안개 때문에 시정이 짧아 월북자를 파악하기 힘들었다고 합동참모본부가 발표했으나 실제로 철책선 절단 발견 시점인 26일 새벽 1시쯤에는 안개가 없었으며 3시 이후에야 안개가 끼기 시작했다는 부대원들의 증언이 나왔다고 말했다.

한나라당 의원들은 이어 철책을 넘은 월북자는 윤형 철조망과 두 번째 철책을 첫 번째 철책 바로 정면이 아니라 왼쪽으로 36m 떨어진 지점으로 이동해 잘랐다고 말했다. 철책 절단 시간이 훨씬 길었던 것으로 보이며, 그만큼 경계소홀 책임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북한은 과거와 달리 월북자를 환대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과거에는 월북자가 들어오면 북한은 전방 경계초소(GP)의 확성기를 통해 요란스런 선전을 했고, 환대받는 사진이 실린 삐라를 살포했다. 그러나 2002년 6월 카드빚에 몰려 두만강을 넘어 월북한 박아무개(43)씨는 26일간 북한의 조사만 받고 중국을 통해 한국으로 되돌아와 국가보안법 위반(잠입 탈출) 혐의로 구속됐다. 문아무개(44)씨도 압록강을 통해 북한에 들어갔다가 북한에 사죄문을 쓴 뒤 중국으로 추방됐다.

북한은 탈북자 환대 않는데…

이에 따라 북한이 이번 철책 월북자를 확인해주지 않을 경우 국내의 논란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군은 ‘민간인 월북’이라는 추정이 말이 안 된다는 소리가 높자 “신원불상 월북자라고 발표했다”고 강조했다. 군은 사고 지역 최근 전역자와 인근 부대의 탈영자를 수사선상에 올려놓고 있으나 월북자를 밝혀내기까지는 상당한 어려움이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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