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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는 지금 4차원 긴장 상태

등록 2004-10-29 00:00 수정 2020-05-03 04:23

수중·수상·공중·우주에서 남북한과 미·일의 군사력 뒤엉켜…최근 일촉즉발의 사태까지 발생

▣ 김성걸 기자/ 한겨레 정치부 skkim@hani.co.kr

동해 상황이 심상치 않다. 동해의 수중·수상·하늘 그리고 우주에서 군함과 군용기 인공위성의 움직임이 분주하다. 이들의 움직임은 단순한 순찰 차원을 넘어 때로는 일촉즉발 직전까지 몰고 가고 있어서, 한국을 비롯한 주변국의 군 관계자들이 신경을 곧추세우고 있다.

북한 잠수함을 잡아라

지난 10월25~26일 일본 도쿄 부근 사가미만에서는 미국·일본·오스트레일리아·프랑스 해군 함정이 참가하는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 구상(PSI) 다국적 군사훈련이 열렸다. 이 훈련은 모의 군사작전을 통해 대량살상무기(WMD) 관련 물자를 실은 가상 선박을 정선시킨 뒤 선내를 수색하고 압수하는 내용으로 채워졌다. 미국은 미사일을 적재한 프리기트함 반데그리프트가 참가했고, 주최국 일본은 해상자위대의 호위함과 P-3C 대잠초계기, 특수부대를 투입했다.

이런 훈련은 해상 인명구조 훈련 등 각국 해군간의 친선과 교류 목적의 훈련과는 다른 성격이었다. 미국과 일본은 핵을 비롯한 대량살상무기 관련 물자가 우회 수출 등을 통해 북한으로 밀반입되고 있다고 의심한다. 언제든지 동해 일대에서 북한의 선박을 검문 검색할 수 있다는 압박용 성격이 강했다. 존 볼턴 미 국무부 차관은 지난 19일 국제관계 시카고 위원회에서 행한 준비된 연설에서 “아시아 지역에서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확산으로 야기된 위협은 분명히 있다”며 “이번 훈련은 훈련 이외에 북한과 같은 대량살상무기 확산 국가와 거래를 하려는 회사들에 유용한 억제력도 제공하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북한은 “북한에 대한 봉쇄 강도를 높이려는 부시 정권의 사악한 시도”라고 맹렬히 비난했다.

어쨌든 이번 훈련으로 한반도 주변의 긴장이 더 높아진 것은 사실이다. 한국은 북한을 자극할 가능성이 있어 이번 훈련에 불참했다. 그렇지만 동해 수중에서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

지난주 일본 은 북한 잠수함 2척이 지난 10일부터 동해에 출현해, 한국 영해 침범을 반복해왔으며, 이 가운데 1척은 북한으로 돌아갔으나 나머지 1척은 지난 19일에도 영해 부근을 항해 중이었다고 보도했다.

국방부는 이에 대해 지난 14일 국회 국방위 비공개 보고에서 북한 잠수함의 출현은 확인된 바 없으며, 국방부가 북한 잠수함의 움직임을 포착해 격퇴했다는 일부 언론의 보도는 사실이 아니라고 밝혔다.

이런 내용을 종합하면 북한 잠수함의 동해 출현의 진위에 대해 아직까지 명확하게 결론내리기는 어렵다. 그러나 지금까지 확인된 사실은 한국 해군이 그동안 동해에서 북한 잠수함을 잡기 위해 폭뢰 투하를 계속했다는 것이다. 남한은 지난 1996년부터 발견된 북한 잠수함의 침범으로 골머리를 앓아왔다. 당시 강릉 해안에 좌초된 북한 잠수함을 조사한 결과 북한 인민무력부 정찰국 해상처장은 이전에도 3차례나 잠수함을 이용해 남쪽 영해로 들어온 것으로 밝혀져 충격을 준 바 있다.

알려진 대로 동해는 잠수함의 천국이다. 수심이 깊고 해안에서부터 급경사를 이루고 있어서 잠수함의 활동 반경이 넓으며, 해안 가까이 접근할 수도 있다. 그리고 한류와 난류가 교차돼 수중에서 자주 일어나는 수괴(물덩어리) 현상은 수중음파 탐지에서 잠수함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아 대잠수함 작전에 어려움이 많다. 군 관계자는 “동해를 담당하는 해군 1함대사령부의 작전영역은 남한 면적과 맞먹는다”며 “잠수함 특유의 은밀성에다가 북한 잠수함은 ‘상어급’으로 불리는 소형(약 300t급)이어서 탐지에 그만큼 어려움이 많다”고 말했다.

미·일 정찰기에 북한 전투기 대응

동해의 대잠 작전은 수상함인 구축함과 잠수함만 동원되는 것이 아니다. 구축함에 탐지된 링스 헬리콥터와 P-3C 대잠초계기도 나섰다. P-3C 대잠초계기는 동체 뒤에 길게 막대처럼 나온 매드(MAD)로 지구 자장을 이용해 수중을 1차 검색한 뒤 의심스런 지역에 소나부이를 투하해 음파로 잠수함을 탐지한다. 마지막 단계로 수중 물체가 계속 의심스러우면 폭뢰를 투하해 공격에 나서며, 심지어는 대형 그물을 던져 걷어올리기도 한다. 지난 1998년 남한에 침투했던 북한 잠수정이 그물에 걸린 예에서도 보듯이 해군은 그물을 소형 잠수함과 잠수정 포획의 유용한 수단으로 보고 있다.

북한 잠수함을 잡는 데는 인공위성도 이용된다. 미국의 정찰위성인 KH(Key Hole)-11, 12 위성과 이보다 우수한 성능으로 1999년 5월에 처음 발사된 8X 위성이 대표적인 예이다. 이들 위성은 전자카메라와 적외선 센서를 갖추고 있어서 주·야간 촬영이 가능하며, 획득한 영상정보를 디지털 신호로 바꾸어 지상국에 전송하므로 아날로그 시대처럼 필름을 회수할 시간이 필요 없다. 또 해상도 10cm의 고해상 능력을 갖고 있어서 사람이 서 있는지 앉아 있는지도 분간할 수 있다. KH-12 위성이 장착된 망원경은 직경이 무려 4.5m이며, 기동 모듈을 사용하면 15m까지 늘릴 수 있어 허블 우주망원경과 같은 수준의 영상을 얻을 수 있다.

미국은 다른 지역과 달리 북한 지역을 24시간 감시하고 있다. 앞서 한국 해군이 동해에서 대잠 작전을 벌이게 된 것도 미국 첩보에 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은 이들 위성으로 북한의 잠수함 기지인 함경남도 퇴조항과 북한 침투요원의 출항지인 원산을 집중 감시하고 있다. 이들 항구에서 떠난 잠수함들이 통상적인 훈련기간에도 돌아오지 않으면 의심 대상이 된다.

동해 상공에서의 신경전도 이미 도를 넘어선 상태이다. 지난해 3월 미 정찰기 RC-135기는 함경남도 해안을 따라 동해 상공을 날면서 첩보활동을 벌였다. 북한이 이에 가만히 있을 수 없어 최신예 전투기인 미그-29, 미그-23 전투기를 발진해 미 정찰기를 요격했다. 당시 북한 전투기들은 미 정찰기에 대해 20여분 동안 화기지원 레이더를 조준하는 ‘로크 온’ 상태로 위협 비행을 했다. 또 같은 무렵 일본 해상자위대 EP-3 전자첩보기도 북한 상공에 근접했다가 북한 미그-29기가 다가오면 마찬가지로 ‘로크 온’ 상태에 돌입했다. 긴급상황이 발생하자 일본은 이시카와현 고마쓰 기지에서 F-15 전투기 2대를 긴급 발진했으며, 북한 전투기가 미사일 조준을 해제하면서 군사 충돌은 피하게 됐다.

RC-135기는 전자정보와 통신정보를 탐지하는 능력이 있다. 이 비행기는 원래 냉전 기간 알래스카 기지 등에 배치돼 수백마일 밖에서 옛 소련의 탄도미사일 시험의 비밀을 탐지해왔다. 1983년 대한항공 007 여객기가 옛 소련 전투기에 격추된 것도 옛 소련이 대한항공 여객기를 이 정찰기로 오인했다는 설이 있었다.

한국은 육군 선방어 위주 전략만 고수

미국은 당시 정찰기가 북한 해안에서 240km 떨어진 공해상에서 일상적인 정찰 활동을 수행하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북한은 이 정찰기가 10여일 동안 함경북도 화대군 무수단리와 원산 인근 호도반도 사이를 장시간 왕복 비행하면서 북한 군사시설을 정탐했다고 주장했다. 북한의 주장대로라면 미군은 이 일대의 미사일 발사기지인 노동리 대포동과 해군 잠수함 기지 등을 정찰 목표로 삼았던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군사 충돌 직전의 상황이 일어나자 일본에 항공자위대의 조기경보통제기 4대를 동해에 배치해줄 것을 요구했다. 주일미군이 보유한 조기경보통제기는 1대뿐이어서 긴급 지원을 요청한 것이다. 물론 수집한 정보를 미군쪽에 넘겨줄 것도 함께 요청했다.

미국은 또 동해에 탄도미사일 궤도를 추적할 수 있는 이지스함을 동해에 배치했다고 10월 초 공식 확인했다. 이지스함은 뛰어난 레이더 능력과 함께 최대 사거리 160~360km인 스탠더드 함대공 미사일을 장착하고 있어 탁월한 대공 능력을 갖추고 있다. 미국은 몇척을 동해에 배치했는지 밝히지 않았다. 일본도 동해에 이지스함을 배치한 지 오래이다.

동해에는 벌써 남북한과 미국·일본의 군사력이 뒤엉켜 있다. 수중·수상·공중·우주까지 4차원에서 그리고 그물에서 첩보위성까지 구식 첨단무기들이 동원돼 있다. 이에 따라 동해 한가운데에 위치한 독도의 전략적 중요성이 다시 부각되고 있다. 그러나 남한은 아쉽게도 그동안 휴전선 경계와 북한 전차 방어에 집중하는 육군 선방어 위주의 전략을 고수하는 바람에 독도 상공에서 제대로 작전을 수행할 전투기조차 보유하고 있지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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