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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학을 담당하고, ‘정년’을 잊었다

등록 2004-10-28 00:00 수정 2020-05-03 04:23

교육관료-사학 커넥션 ‘교육 마피아’… 불법 묵인해준 교육 공무원들 퇴임 뒤 재단에서 한 자리

▣ 이춘재 기자 cjlee@hani.co.kr

교육계에서 ‘교육 마피아’라는 말이 언제부터 등장했는지는 정확하지 않다. 교육부 내부에 지연과 학연을 연고로 형성된 파벌을 지칭하는 말은 오래전부터 있었지만, 교육계 전반의 불합리한 행태를 지적하는 이 말은 비교적 최근에 유행하기 시작했다. 교육 마피아는 조직이기주의로 뭉친 일부 교육관료 중심의 인맥그룹에 사학 ‘사업가’들이 가세한 형국을 뜻한다.

최순영 의원 국감 자료로 현황 보니…

교육 마피아의 중심인 교육관료들은 사학과 유착돼 각종 불법 사실을 눈감아준다. 학교설립 자격이 안 되는데도 이를 허가해주고, 이후에는 각종 국고 보조금으로 그 뒤를 봐준다. 그 대가로 교육관료들은 퇴임 이후 자신이 ‘관리’하던 사학의 교수나 재단의 고위직으로 자리를 옮긴다.

최순영 의원(민주노동당)이 지난 국정감사 때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조사 대상인 288개 사학법인 중 21%에 해당하는 62개 법인이 교육부와 시도교육청 출신 인사 89명을 교수나 재단 직원으로 채용했다. 이들 89명은 대부분 교육부에서 5급 이상의 주요 직책을 맡은 관료들이다. 특히 이들 중 14명은 사립대학 관련 부서에서 근무한 것으로 드러났다. 최 의원은 “실무 경험을 살려 사학 발전에 공헌할 수 있는 측면도 있겠지만, 많은 사학들이 재정 비리가 있는 상황에서 사립대에 영향력을 행사했던 관료들이 퇴임 뒤 사학으로 진출하는 것은 문제가 많다”고 말했다. 공직자윤리법에 따라 4급 이상 공무원들은 퇴직 뒤 업무와 관련 있는 영리사업체에 취업할 수 없지만, 사학은 비영리법인이기 때문에 교육부 관료들의 사학 진출은 별다른 제약이 없다.

해당 사학들은 별 문제가 없다는 반응이다. 지난 6월 교육부 대학행정지원과 출신 인사를 교수로 영입한 ㄱ대 관계자는 “교육부 실무 경험이 학교 발전에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했다”며 “교육부 출신 인사를 데리고 오면 네트워크도 형성되고, 현장 실무 경험을 학생들에게 가르칠 수도 있어서 이점이 많다”고 밝혔다. 그러나 교육계 인사들의 반응은 다르다. 주경복 교수(건국대)는 “실정법상으로는 문제가 없지만, 학교 내규에 따른 정상적인 채용 과정을 밟지 않기 때문에 많은 문제가 발생한다”고 주장했다. 일반 교수 채용 때는 10년 가까이 강사 생활을 한 박사 학위자들도 탈락하는 경우가 많은데, 교육부에서 근무했다는 이유로 공개적인 경쟁 없이 하루아침에 대학 교수로 자리를 옮기는 게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 간다는 지적이다.

사학에 진출한 교육관료들은 대부분 교육부와의 ‘관계 개선’ 업무를 전담한다. 이들 중 상당수가 이사나 학장으로 ‘영입’되는 경우가 많은 것이 이를 방증한다. 사학들이 교육부의 ‘전관예우’를 노린 것이다. 교육부 안팎에선 “차관급은 4년제 대학 총장, 실·국장급은 전문대학 학장”이라는 말이 일반화돼 있을 정도다.

비영리법인이다?… 비정상적인 채용 과정

이들 중에는 사학의 이해를 철저히 대변하는 ‘사학 대변인’으로 변신한 경우도 많다. 대표적인 인물이 송영식 한국사립학교법인협회 사무총장이다. 송 총장은 교육부 전신인 문교부 학교체육과에서 교육관료 생활을 시작한 뒤 교육부 전문대학행정과장, 교원정책과장, 서울시교육청 기획관리실장, 강원도교육청 부교육감 등 요직을 두루 거쳤다. 전문대학행정과는 전문대 설립 허가 업무를 담당하는 막강한 부서였다. 그는 최근 여당의 사립학교법 개정안에 대한 사학의 반대 논리를 개발하는 데 힘쓰고 있다. 교육단체들은 사학의 부정행위를 감독했던 그가 사학의 대변인으로 변신한 것에 의아해한다. 하지만 송 총장은 지난 10월22일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교육발전을 위해서는 교육부가 사학의 요구도 귀담아들어야 한다”며 “나는 내 역할에 충실할 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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