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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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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근차근, 장애인 등록제부터

등록 2004-10-06 00:00 수정 2020-05-02 04:23

장애인 복지사회를 위한 몇 가지 제언… 지역사회 울타리 안에서 의료 · 직업 재활 전념할 수 있도록

▣ 이만식/ 장로회신학대학 교수 · 사회복지학 (사진/ 한겨레 이정우 기자)

올림픽의 발상지 그리스 아테네에서 열린 이번 장애인올림픽은 예년에 비해 많은 국민들의 성원을 받았다. 하지만 장애인올림픽에 국민들이 보내준 관심과 성원이 그대로 우리 사회의 장애인 복지 문제로 모아질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이번 장애인올림픽에서도 예외 없이 장애인들에 대한 차별 철폐를 주장하는 장애인 단체들의 기습시위가 있었는데, 이는 국내 장애인 복지의 현실이 여전히 개선해야 할 점이 많다는 것을 보여준다.

장애인 점차 증가… 한국인 10% 추정

국내 언론매체들은 장애인올림픽의 의미와 우리나라 장애인 체육의 현주소를 보도하는 등 어느 때보다 많은 관심을 가졌다. 장애인 선수들과 비장애인 선수들의 훈련 과정과 메달 수상자들에 대한 연금의 차이, 그리고 외국의 장애인스포츠와 장애인을 위한 체육시설 등 다양한 기사를 실었다. 이를 계기로 우리 사회가 국내 장애인 복지수준을 돌아보고 장애인들의 복지를 위한 여러 방안들을 살펴볼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세계적으로 장애인 수는 계속 증가하는 추세다. 미국의 경우 장애인 수가 전국민의 20%인 약 5500만명에 이른다. 그런데 한국은 아직 5%에 못 미친다. 지난 8월 초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04년 6월 현재 장애인 등록 현황에 따르면 전국의 등록 장애인은 150만명을 넘어섰다. 장애 유형별로는 지체장애인이 84만7천여명으로 가장 많았고, 시각장애인이 16만1천여명으로 그 뒤를 이었다. 장애인의 비율이 미국과 비교했을 때, 이렇게 낮은 이유는 무엇일까? 산업안전 시스템이나 의학 수준이 앞선 미국보다 우리나라의 장애인 비율이 낮은 이유는 나라마다 법정장애의 범주와 정의가 다르기 때문이다.

이렇게 정의가 다른 이유는 나라마다 장애에 대한 이해의 정도와 장애인에 대한 사회복지제도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대체로 선진국들은 장애인에 대한 규정이 상당히 포괄적인 반면, 후진국들은 사람의 육체적·구조적 손상과 그로 인한 치명적 기능 결함에 중점을 두고 있다. 이런 심한 편차 때문에 국제연합에서는 표준 장애인 규정을 두고 있는데, 이 기준에 의하면 ‘장애인은 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신체적·정신적 능력의 불완전으로 인해 일상의 개인 혹은 사회생활에 필요한 것을 자기 스스로 완전히 혹은 부분적으로 수행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 기준에 따라 전세계 인구의 약 10%를 장애인으로 추정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장애인구의 꾸준한 증가가 예상되는데 그 이유는 세 가지다. 가장 주된 이유는 장애에 대한 정의와 적용 범위의 확대에 있다. 이전에는 장애의 범주에 넣지 않던 것을 새로운 규정에 의해 범위를 확대해나가기 때문에 통계적으로 장애인 수가 계속 증가할 것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 과학과 의학의 발달로 이전에 규정되지 않았던 질병을 정확히 찾아내어 장애로 규정하는 사례가 급증했다. 마지막으로 교통사고, 의학사고 등으로 인한 장애, 산업재해로 인한 사고와 환경적 요인으로 인한 장애가 이전보다 빈번해지고 수명의 연장으로 개인이 살아 있는 동안 장애인이 될 확률이 높아졌다.

현재 국내 공식 장애인 수는 전체 인구의 5%에도 못 미치지만 전문가들은 우리나라의 실제 장애인 인구는 이미 10%에 이르고 있다고 추정한다. 그럼에도 우리나라의 장애인 복지 수준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의 일원이라고 하기에는 매우 부끄러운 현실이다. 우리나라는 장애인의 재활을 위해 장애인 2% 의무고용제를 실시하고 있지만, 장애인 고용 의무를 지닌 민간기업 중에서 지난 6월 현재 장애인을 한명도 고용하지 않은 기업이 무려 270곳이나 된다. 정부 부문도 장애인 고용비율이 1.8%에 불과해 민간부문의 1.08%보다 약간 높을 뿐이다.

통신기술 1등국가, 청각기기 지원 없네

또 다른 예는 청각장애인을 위한 전화보조기에 관한 내용에서 찾을 수 있다. 미국에서는 이미 1980년대에 청각장애인을 위한 청각장애인 의사소통기기(TDD·Telecommunications Device for the Deaf)를 청각장애인에게 제공해 그들도 사회의 일원으로서 활동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 우리나라는 세계 최고의 통신기술을 보유하고 있지만 중앙정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청각장애인을 포함한 장애인들을 위한 통신에 신경을 쓰지 않고 있다. 이는 명백히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장애인에 대한 인식 수준의 차이에서 오는 결과다.

장애인의 수는 앞으로 계속 증가할 것이다. 따라서 장애인의 복지 수준이 아직 미흡한 우리나라가 장애인들의 복지를 위해서 이루어야 할 과제를 생각해보면 다음의 네 가지로 나누어볼 수 있다. 첫째, 장애 발생 예방사업의 강화와 장애인 등록제의 활성화다. 장애인 복지 선진국이 되기 위해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장애 발생의 예방이다. 모든 분야가 다 그렇겠지만, 특히 장애 분야에서는 예방이 치료보다 낫다는 데 이론의 여지가 없다. 장애인에 대한 정확한 실태 파악은 효율적인 장애인 복지정책의 수립과 지원 및 관리 서비스 체계의 확립을 위해서 필수불가결한 요건이다. 이런 점에서 장애인 등록제가 제대로 시행되는 게 중요하다. 장애인 등록제가 본연의 목적을 달성하고 제대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홍보는 물론, 접근이 불가능한 중증장애인을 위한 출장 진단 및 절차의 간소화, 장애등급 판정기준을 정비하는 노력들이 필요하다.

둘째, 의료 및 직업재활 사업의 확충이다. 장애인들의 욕구 중에서 가장 비율이 높은 것은 의료재활이며 직업재활이 그 다음이다. 따라서 재활치료 때 보험수가의 적용을 점차 확대해야 하며, 복지시설의 증설과 복지시설 내 재활전문 인력의 적극적인 양성과 의료장비 보강이 필요하다. 장애인 취업과 직결되는 직업재활에서는 장애인 복지시설의 재활직업훈련 기능을 제도적으로 강화해나가야 하고 전문 훈련기관으로 장애인 직업훈련원을 건립해야 한다. 특히 장애인의 수명이 길어지는 추세에 맞춰 장년층 이상의 장애인 재활과 직업훈련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셋째, 재가(在家) 장애인복지 서비스의 확대다. 장애인에 대한 인식의 변화로 예전과는 다르게 장애인을 수용시설에 격리(segregation)하기보다는 지역사회에서 비장애인들과 통합(integration)하는 것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지역사회 재활의 개념에 입각해 재가장애인의 지역사회 거점으로서 장애인 전용 복지관을 확충하고 장애인을 위한 가정봉사원제도(home helper service)를 확대하는 방법도 고려해봄직하다. 또 지역사회에 거주하는 장애인들을 위해 수화방송이나 TDD의 확충, 점자통장의 발급, 그리고 장애인용 생활용기의 개발 보급 등 장애인에 대한 서비스 제공의 방안도 함께 강구해나가야 한다.

자신의 삶에 만족하도록 도와주자

마지막으로, 장애인 생활환경과 국민의식의 개선이다. 장애인 생활의 개선을 위해서 도로, 교통, 건축물 등에 장애인의 접근이 가능하도록 편의시설을 지속적으로 확충해나가는 한편 장애인의 취학이나 취업, 자격 취득 등에 관련된 법규를 정비해 장애인의 완전한 사회참여와 평등에 기여하도록 해야 한다. 아울러 각종 복지단체를 통해서 대국민 홍보활동을 강화하고 장애인의 날, 장애인 체육대회, 장애인 재활용품 전시회 등의 행사를 통해 장애인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유도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장애인들을 위해 꾸준하게 정책과 프로그램을 개발했고 기술적으로도 많은 진전이 있었다. 그러나 장애인을 향한 사회의 태도를 긍정적으로 변화시키고 그들이 자신들의 삶을 만족스럽게 또 생산적으로 살아가도록 돕기 위해서 우리 사회가 해야 할 일은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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