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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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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눈을 당신께 드립니다”

등록 2004-09-23 00:00 수정 2020-05-03 04:23

자전거 · 달리기 · 축구 종목에서 빛나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파트너쉽

▣ 아테네= 글 이춘재 기자 cjlee@hani.co.kr
▣ 사진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지난 9월18일(현지 시각) 열린 장애인 사이클 여자 트랙경기에서 아테네 장애인올림픽 첫 세계 신기록을 세우며 우승한 엘렌 헌터(영국)는 장애인이 아니다. 그는 영국의 작은 도시 렉섬의 한 헬스클럽에서 스쿼시 강사로 일하는 평범한 ‘비장애인’이다. 그런 그가 어떻게 장애인올림픽에 출전해 금메달을 목에 걸 수 있었을까. 해답은 그가 출전한 탠덤(tandem)이라는 종목에 있다.

탠덤은 2인용 자전거를 사용하는 경기로, 시각장애인을 위해 도입된 정식 트랙 종목이다. 2인용 사이클의 앞좌석에는 파일럿이라 불리는 비장애인 선수가 앉고, 뒷좌석에 시각장애인 선수가 탄다. 파일럿의 역할은 사이클의 방향을 조절하는 것이다.

엘렌과 에일린의 ‘탠덤’ 신기록

사이클은 1시간당 40∼50km를 달리는 초고속 경기이기 때문에 한순간 방향을 잘못 잡으면 대형사고로 이어진다. 시각장애인은 손과 발, 다리, 팔 등이 불편한 다른 장애인보다 사이클 속도를 더 낼 수 있다. 하지만 시야 확보가 안 되기 때문에 속도감을 즐길 수 있는 경기에 참가할 수 없었는데, 탠덤이 시각장애인들의 이런 고민을 해결해준 것이다.

탠덤은 두 선수의 ‘호흡’이 매우 중요하다. 두 선수의 몸이 사이클이 달리는 방향과 각도와 일치하지 않으면 속도가 떨어지거나 균형을 잃어 넘어지기 쉽다. 한국 장애인사이클 대표팀 김영남 감독은 “마치 한 사람이 타는 것처럼 두 선수의 몸이 일치하지 않으면 좋은 기록을 내기 어렵다”며 “고도의 집중력과 균형감각이 필요한 경기”라고 설명했다. 선수들은 서로 호흡을 맞추기 위해 큰 대회를 앞두고 대부분 장기간 합숙 훈련을 한다.

엘렌과 그의 파트너 에일린 맥글린(약시)도 지난 2년 동안 2주에 이틀씩 합숙 훈련을 했다. 엘렌과 에일린은 자칫 이번 대회에 참가하지 못할 뻔했다. 파일럿 역할을 하는 엘렌이 지난해 7월 교통사고로 허리를 크게 다쳐 6주 동안 병원 신세를 져야 했기 때문이다. 엘렌은 사고 직후 의사로부터 사이클을 더 이상 탈 수 없다는 진단을 받았다.

실의에 빠진 엘렌에게 용기를 북돋워준 것은 동료 에일린이었다. 그는 다른 파일럿을 구해주겠다는 코치의 제안을 거절한 채 혼자서 꾸준히 연습을 했다. 엘렌이 꼭 돌아올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퇴원 뒤 재활치료를 받던 엘렌은 에일린의 소식을 듣고 더 이상 머뭇거릴 수가 없었다. 둘은 사고를 당한 지 3개월여 만에 맨체스터의 연습장에서 다시 만났다.

탠덤과 마찬가지로 시각장애인 달리기도 비장애인의 ‘인도’가 필요한 종목이다. 시각장애인 달리기는 비장애인과 선수가 서로 손에 끈을 걸고 달린다. 비장애인은 끈을 잡아당기는 방법으로 장애인 선수가 트랙을 벗어나지 못하게 하거나 속도를 조절해준다. 비장애인은 선수와 똑같은 속도로 달려야 하기 때문에 일반 육상 선수에 버금가는 기량과 체력을 갖고 있어야 한다.

장애인스포츠 중 가장 중증 장애인이 출전하는 보치아의 경우 장애 정도가 가장 심한 BC3 등급은 비장애인도 경기에 출전한다. 이들은 보조자(asistant)라 불리는데, 보치아 공을 손으로 굴릴 수 없는 선수들이 홈통 등 보조장비를 이용해 공을 던질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이들이 선수들과 얼마나 호흡을 잘 맞추느냐에 따라 메달 색깔이 결정된다. 특히 선수들이 스스로 식사를 할 수 없는 중증장애인들이기 때문에 보조자는 대회 기간 동안 보호자 역할도 해야 한다. 한국 대표팀의 권철현과 이상억 보조자도 안명훈, 박성현 선수와 상당 기간 함께 호흡을 맞춘 베테랑이다.

비장애인 골키퍼 뚫고 슛,슛,슛!

시각축구는 골키퍼가 비장애인 선수다. 공 속에는 방울이 들어 있기 때문에 공의 위치를 쉽게 파악할 수 있지만, 빠른 속도로 날아오는 공을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그래서 공을 눈으로 보고 막을 수 있는 비장애인을 골키퍼로 둔다. 한국 시각축구 대표팀 이형주 코치는 “가로 3m, 세로 2m 크기에 불과한 골대를 일반 선수가 지키고 있기 때문에 골이 잘 안 들어갈 것 같지만, 장애인 선수들의 킥 솜씨가 일반 선수 못지않기 때문에 예상 밖으로 골이 많이 터진다”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9월18일 열린 브라질과의 예선 1차전에서 한국팀은 골키퍼가 페널티킥을 막아내는 활약에도 불구하고 4골이나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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