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군의 발자취를 따른 아차산 등반, 나는 밤새도록 누구를 쫓아다닌 것이었나
▣ 하성란/ 소설가
답사 일정은 바듯했다. 풍납토성과 몽촌토성을 둘러본 뒤 아차산까지 내처 등반하는 일정의 끝은 산 아래의 토종 닭요릿집에서 저녁 식사를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집결지에서 일행을 기다리느라 한 시간 이상을 어영부영 보내야 했다. 스무명이 넘는 일행을 통솔하는 일은 만만치 않았다. 유적 답사에 학생으로 참가했던 K씨가 일행을 이끌었다. K씨의 설명을 놓치지 않기 위해 재연은 재게 걸었다. K씨의 설명에 따라 사람들이 이쪽저쪽으로 우르르 몰려다녔다. 그때마다 K씨 옆에 바싹 붙어 서 있는 재연이의 빨간 모자가 보였다. 일행은 재연이가 쓰고 있는 모자 색깔 때문인지 툭하면 나를 파란 모자라고 불러댔다.
너무나 달랐던 일란성 쌍둥이
일란성 쌍둥이는 어디에서든 한눈에 띈다. 재연은 나보다 11분 늦게 태어났다. 엄마는 날 낳고 이젠 끝났구나 쉴 참이었는데 산파가 소리를 질렀다. “또 나온다!” 엄마는 잠깐 기절했다. 그사이 재연은 좁은 산도에 갇혀 있었다. 좁고 긴 틈새에 갇혀 있었다는 재연의 기억은 아마 그때의 그 기억일 것이다.
일행의 대부분이 쉰이 넘는 부부들이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뒤처지는 사람이 많았다. 나는 일행의 맨 뒤에 남아 뒤처지는 사람들을 채근하는 역할을 맡아야 했다. 그래서 점심 식사를 할 때쯤 되자 “쌍둥이가 달라도 너무 다르구먼”이라는 말이 툭툭 튀어나왔다. 누군가 싸온 술이 돌고 길어진 점심 시간으로 일정이 한참이나 지체되었다.
풍납토성을 불태운 장수왕은 여세를 몰아 남성을 점령했다. 아차산 밑에서 개로왕의 목을 쳤다. 피신했던 문주가 신라의 지원군 1만명을 이끌고 돌아오면서 고구려군과의 긴 대치에 들어가게 된다. 문주는 웅진으로 천도를 하고 장수왕은 고국으로 돌아간다. 백제가 다시 밀고 올라오자 고구려는 몽촌토성을 버리고 아차산으로 후퇴, 그곳에 진을 치게 된다.
고구려군이 만든 보루가 한눈에 띄는데도 일행 중 몇은 애먼 곳만 더듬거렸다. 등산로를 만들면서 유적들이 훼손되었지만 등산로 밖으로 한 발짝만 떼면 그때 그 흔적들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고구려 병사의 무덤은 작았다. 160센티미터 키에 작은 체형의 사람들인 듯했다. 성을 쌓기에는 노동력이 부족했다. 500미터 간격으로 보루를 만들어 보루와 보루 사이에 긴밀한 연락이 오갈 수 있도록 했다. 병사들은 자급자족할 수밖에 없었다. 재연은 K씨의 설명을 녹음하고 목걸이 볼펜을 이용해 부지런히 메모하고 있었지만 난 한시라도 빨리 산을 타고 세상으로 내려갈 생각밖에는 없었다. 굼뜨게 움직이는 일행들의 끝을 따라가려니 답답하기만 했다. 똑같은 생김새와는 달리 재연과 나는 무척 달랐다. 재연이 중·고등학교 6년 동안 문예반에 들어 시를 짓고 책을 읽는 동안 난 육상부였다. 백일장이 있는 날이면 난 재연이의 다리를 베고 잠을 자고는 했다. 재연이는 늘 내 몫까지 두편의 글을 써야 했다.
발 빠른 사람들이 산 중턱까지 오이를 지고 와 등산객들에게 팔았다. 편평한 곳에는 좌판이 벌어졌다. 빈대떡을 부치는 기름 냄새가 진동하고 등산객들은 여기저기 주저앉아 막걸리를 사 마셨다. 술 취한 사람들이 비틀거리면서 산 아래에 대고 오줌을 누었다. 아차산에 진을 친 고구려군은 551년 신라군이 이곳을 점령하기까지 무려 50년 동안 한강 이남과 대치 상태에 들어갔다. 구의동의 보루에는 내무반의 집기와 무기만이 고스란히 남아 있어 고구려군이 전멸했으리라는 추측을 하게 한다. 밤이면 병사들은 보루 밖으로 검은 두 눈만 내밀고 앉아 돌아갈 기약이 없는 고향과 가족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들은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그럼 그 문제는 어떻게 해결했을꼬?” 일행 중 누군가의 짓궂은 질문에 K씨가 웃었다. “산 아래까지 내려가는 일은 어렵지 않았을 겁니다. 이미 산을 타는 데는 도사가 되었을 테니까요.” 일행들 사이에서 폭소가 터졌다.
K씨의 손이 내 허리를 감다
스무명이 넘는 일행들은 어슬렁어슬렁 걸었다. 답사 일정이라는 것은 안중에도 없는 듯했다. 굽 낮은 구두로도 등반할 만큼 등산로가 잘 다져진 곳이라 생각했는데 정상으로 갈수록 경사가 급해졌다. 일행들의 웃음이 끊겼다. 운동에는 영 젬병인 재연이 그제서야 뒤처졌다. 재연이의 손을 잡고 암벽을 기어올랐다. 하산하는 사람들 중 누군가가 재연의 몸을 치고 미끄러졌다. 그 바람에 재연이 쓰고 있던 빨간 모자가 벗겨졌다. 잡으려 했는데 빨간 모자는 산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일행이 헬기장인 네 번째 보루에 다 모일 즈음에 이미 날이 저물기 시작했다. 날이 선득해졌다. 곳곳에 박힌 나무 의자에 등산객들이 띄엄띄엄 앉아 산 중턱에서 사온 오이를 베물어 먹었다. 금세 오이 냄새가 진동했다. 산을 올라오는 동안 벗어들었던 겉옷을 꿰고 지퍼를 목까지 끌어올렸다. 산 아래로 한강이 내려다보였다. 한강변 대로를 따라 달리던 차들의 헤드라이트 불빛이 꼬리를 물었다. 예전의 한강은 고구려군이 헤엄쳐 건널 수 있을 정도로 폭이 좁았다.
어둠은 등산로쪽에서 밀려오더니 삽시간에 헬기장에 꽉 찼다. 서로의 얼굴을 분간하기가 어려웠다. 오이 냄새가 아직 남아 있는데 여기저기 앉아 한담을 나누던 다른 등산객들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다급해진 K씨가 인원을 확인했다. “내려가는 길은 두 갈래인데 아무래도 좀 빠른 길을 택해야 할 듯합니다.” 재연의 붉은 모자도 보이지 않았다. K씨의 손이 내 허리를 살짝 감았다가 풀었다. K씨가 재연과 내 얼굴을 혼동한 듯했다.
푸르던 나뭇잎들에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달도 보이지 않았다. “제가 학생 때 이 길을 하루에도 서너번씩 올라다녔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K씨가 앞장을 섰다. “앞사람을 놓치지 마세요.” 누군가 소리를 질렀다. 발밑에서 돌가루가 버석거렸다. 발에 차인 돌멩이가 굴러 산비탈 아래로 떨어졌다. 돌멩이가 떨어지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길은 점차 좁아졌고 나무들이 우거졌다. 나무 이파리와 줄기가 얼굴을 휘갈겼다. 경사가 급한 곳을 내려갈 때면 나무 밑동을 쥐고 발을 내려놓아 깊이를 가늠해야 했다. 손바닥에 끈끈한 것이 묻었다. 어둠은 점점 밀도가 높아져 눈앞의 것이 보이지 않았다. 너무 어두워 재연이 어디쯤 내려가고 있는지 확인할 수도 없었다. 내려가면서도 나는 내 허리에 팔을 둘렀던 K씨를 생각했다. 재연과 나 사이에 언제 비밀이 생겼을까. 우리 둘 사이에 비밀이란 없었다.
일행들은 더욱 굼떴다. 산 아래에서 점점이 반짝이는 불빛을 보고 아주머니 하나가 길을 벗어났다. “바로 조기야, 조기. 요 아래 우리 집이 있어.” 다른 일행이 손을 잡아 끌자 아주머니가 울먹였다. 어둠이 코를 틀어막았다. 귀는 활짝 열렸다. 내 뒤로는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도 나는 내 뒤를 따라 내려오는 발자국 소리를 들었다. 하지만 고개를 돌려 뒤를 볼 용기는 없었다. 간격이 좁으면 서로 엉켜 넘어질 수도 있었다. 어둠 저 아래에서 K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걱정하지 마세요. 눈 감고도 갈 수 있으니까요.”
소나무 송진처럼 끈끈했던 손
앞서 내려가던 사람들의 발폭이 재졌다. 신발 밑에서 잔 돌멩이들이 굴렀다. 하지만 일행은 주춤하지 않았다. 그들은 일정한 보폭에 따라 걷고 있었다. 그들이 움직일 때마다 쉰 냄새가 물씬 났다. 부딪힐 때마다 건장한 사내의 등이 느껴졌다. 두런두런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잘 들리지 않았다. 그들을 따라잡느라 온몸에 땀이 뱄다. 호흡이 가빴다. 땀이 마르면서 선득선득 한기가 느껴졌다. 계곡의 물소리가 들렸다. 나무 둥치에 걸려 넘어졌는데 앞서가던 누군가가 손을 뻗어 잡아주었다. 잡은 손이 소나무 송진처럼 끈끈했다. 얼굴은 보이지 않았고 반짝 그 사람의 흰 이만 빛났다. 건장한 사내였다. 숲 사이로 불빛이 반짝였다. 왁자지껄한 사내들의 웃음소리가 들린 것도 같았다. 나뭇가지에 옷이 걸리면서 찢겨나갔다. 나무에 걸린 것이 재연이의 모자인 것 같았다. 아주 오랜만에 육상부 시절로 되돌아간 듯했다. 고구려군은 전멸했다. 그들은 꿈에 그리던 고향에 돌아가지 못했다.
“언니!” 재연이 울먹였다. 한번도 언니라고 부르지 않았는데 간밤에 몹시 애가 탄 모양이었다. 마지막으로 내려오던 사람이 인기척이 없어 뒤돌아보니 내가 보이지 않더라고 했다. 하지만 난 밤새도록 일행의 뒤를 쫓아다녔다. 간밤에 내가 쫓아다닌 사람들 이야기는 하지 않기로 했다. 재연에게 나도 비밀이 생긴 거였다. 재연이 내 손에 들린 것을 보고 화들짝 놀랐다. 그제서야 내가 쥐고 있던 것에 눈이 갔다. 산비탈에 떨어진 재연이의 빨간 모자였다. 모자는 내 옷과 마찬가지로 얼룩투성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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