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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남 “커밍 아웃 차마 못하겠더라”

등록 2004-08-26 00:00 수정 2020-05-03 04:23

<font color="darkblue">선친 일본군 경력으로 당의장에서 물러난 신기남 의원…“내 손으로 진상을 조사할 것” </font>

▣ 박창식 기자 cspcsp@hani.co.kr

“거짓말쟁이로 몰아붙이는 게 가장 괴로웠다. 그건 아닌데….”

신기남 열린우리당 의원이 선친 신상묵씨의 일본군 경력이 불거진 가운데 당의장직에서 낙마했다. 이 와중에 그는 선친의 경력을 부인하다가 월간 가 추적 보도하자 뒤늦게 시인함으로써 “거짓말이 더 나쁘다”는 비판을 받았다.

생전에 선친에게 얘기 듣지 못했다

기자는 당의장 사퇴 다음날인 8월20일 그를 만났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선친은 1984년 작고할 때까지 아들(당시 32살)에게 일제 때 행적을 한마디도 얘기하지 않았다고 한다. 신 의원은 “아버지도 일본군 경력이 평생 짐이 되었을 텐데 무슨 자랑이라고 이야기했겠냐”고 말했다. 따라서 그는 부모가 아닌 “뚜렷이 기억나지 않는 일가 친척 누구한테인가 ‘일본군에도 간 적이 있다’는 한마디를 어릴 때 들었던 게 전부”라며 “그렇다고 생전에 아버지한테 ‘언제 어디서 뭘 하셨느냐’고 물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변호사 활동을 하다 1996년 15대 총선에 당선돼 국회의원을 하기 시작했다. 그는 “공직 생활을 하면서 아버지 경력이 마음 한구석에 찜찜하게 자리잡긴 했다”며 “그러나 최근 불거진 것처럼 헌병을 했다든가 하는 소상한 내용은 전혀 몰랐기에 그냥 넘겨왔다”고 말했다.

그는 16대 국회에서부터 김희선 의원과 함께 ‘민족정기를 바로세우는 모임’에 참여했다. 그는 “아버지 전력을 상세히 알았다면 친일진상규명 활동에 내가 앞장서왔겠느냐”라고 반문했다. 그는 최근 과거사 규명과 관련해 당내 강온 양론이 맞선 가운데서도 당의장으로서 강경론을 주도한 편이었다.

그의 ‘선친 문제’는 지난 7월 일부 네티즌들이 “신 의장의 선친이 일제 때 경찰 노릇을 했다는 의혹이 있다”고 주장한 것을 가 인용 보도하면서 불거지기 시작했다. 이 무렵 그는 “대구사범학교를 졸업하고 교사를 하다가 광복 뒤 경찰에 투신”한 것으로 반박하면서 해당 신문에 대해 법적 대응도 거론했다. 교사를 하다 1940~45년 일본군 헌병 오장(하사)을 한 경력을 자진고백하진 않은 것이다.

그는 이와 관련해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당시에 스스로 ‘커밍아웃’할지를 고민했지만 내 것도 아닌 아버지 문제여서 차마 못하겠더라”며 “아버지에게 수치스러운 일을 아들이 나서 고발할 순 없었다”고 말했다.

당시 그에겐 대충 넘어가주었으면 하는 ‘요행 심리’도 작용했을 것 같다. 그러나 ‘과거사 대전쟁’에 요행수의 틈새는 존재하지 않았다. 어쨌든 그는 8월20일의 인터뷰에서 “차라리 그때 커밍아웃하는 게 나을 뻔했다는 생각도 든다”며 복잡한 심경을 비쳤다.

당내 과거사 규명 태스크포스 가세

이와 관련해 같은 당의 우원식 의원은 8월19일 인터넷 사이트 ‘서프라이즈’에 글을 올렸다. 그는 “선친이 6·25 때 전투경찰 사령관으로서 태극무공훈장을 받은 분으로만 기억하고 일제 강점기 행적에 대해 거의 모르고 있었다는 신 의장의 고백은 아픈 우리 현대사의 굴곡을 보여주는 사례”라며 “그의 아픈 곳을 지적했던 저의 발언은 미안하다”고 밝혔다. 우 의원은 애초 “선친의 일제 경력보다 신 의장의 거짓말이 더 문제”라고 주장해왔다.

의장직에서 물러난 그는 “친일 규명에 더욱 앞장서겠다”면서 당내 과거사 규명 태스크포스(팀장 원혜영)의 일원으로 가세하기로 했다. 그는 이와 별개로 “아버지가 일본 헌병이야 했겠지만, 일부 증언자들의 주장처럼 독립운동가를 고문했다는 대목 등은 납득되지 않는다”며 “내 손으로 진상을 조사해 냉정하게 평가하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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