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간 사실혼 관련 국내 첫 판결… 헌법의 결혼 규정 ‘양성의 평등’ 어떻게 볼 것인가
▣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동성간의 동거관계를 사실혼으로 인정해 법률혼에 준하는 보호를 할 수 없다.”
인천지방법원 제2가사부(재판장 이상인 부장판사)는 지난 7월27일 원고 김아무개(45)씨가 같은 여성인 이아무개(47)씨를 상대로 낸 ‘사실혼 관계 해소로 인한 재산분할 및 위자료’ 청구 소송에 대해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다. 김씨는 이씨와 지난 20여년 동안 사실혼 관계를 유지해왔지만 사실혼에 준하는 법적 권리를 인정받지 못한 것이다. 김씨는 이씨와 동거하면서 이씨의 명의로 공동 재산을 축적했으나 이씨의 상습적인 폭행과 협박으로 사실혼 관계가 파탄에 이르렀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이번 기각 결정은 동성간의 사실혼과 관련된 국내 첫 판결이다.
20년 사실혼 부정… 법적 권리 행사 못해
이번 재판은 사법부가 ‘결혼의 정의’를 내렸다는 점에서 주목받는다. 재판부는 판결문을 통해 “우리 사회의 혼인이라 함은 일부일처제를 전제로 하는 남녀의 정신적, 육체적 결합을 의미한다”며 “동성간 사실혼 관계를 유지해왔다 하더라도 사회관념상이나 가족질서 면에서도 용인될 수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의 판결이 나오자 성소수자 단체들이 즉각 반박에 나섰다.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는 27일 성명을 통해 “명백히 이성애중심적이고 동성애차별적인 판결”이라며 “동성혼이 법제화되지 않은 현실에서 사실혼조차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은 동성간의 관계를 보호하지 않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한국동성애자연합도 성명을 내어 “성적 지향으로 인한 차별을 금지한 국가인권위원회법에도 어긋난다”며 “사실혼 관계를 인정하고 재산분할청구권을 인정해야 마땅하다”고 지적했다. 지난 총선에서 동성 결혼을 공약으로 내세운 민주노동당도 같은 날 인천지법의 판결에 대해 비판하는 논평을 냈다.
동성결혼이 이슈로 떠오르면서 헌법의 결혼 규정에 대한 해석이 쟁점이 될 전망이다. 헌법은 36조 1항은 ‘결혼과 가족생활은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을 기초로 성립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결혼을 남녀의 결합으로만 국한시킬 수 있을지 여부는 ‘양성의 평등’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달려 있다. 민변의 이은우 변호사는 “우리 헌법과 민법 어디에도 이성혼만 혼인으로 인정하고, 동성혼은 혼인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규정은 없다”며 “동성혼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동성애자들의 행복추구권과 평등권을 짓밟는 위헌적인 행위”라고 주장했다.
동성결혼은 이미 전지구적 이슈로 떠올랐다. 지난해 미국에서는 매사추세츠 주법원의 동성결혼 불인정에 대한 위헌 판결 이후 동성결혼이 국가적 쟁점으로 부각됐다. 이번 미국 대선에서도 ‘동성결혼’ 인정 여부가 핵심 쟁점이다. 부시는 일부 주의 동성결혼 인정 등 전통적인 결혼 개념에 대한 도전이 이어지자 아예 헌법에 결혼을 ‘남녀의 결합’으로 못박자는 공약을 내세우고 있다. 미국 헌법도 한국처럼 결혼을 이성간의 결합으로 명확히 규정하고 있지는 않은 것이다. 유럽에서는 동성결혼 인정 추세가 확산되고 있다. 스페인 사민당은 올해 집권하자마자 동성결혼을 합법화했고, 영국에서도 동성간 파트너십 제도의 도입이 추진되고 있다. 이미 네덜란드, 벨기에 등이 동성결혼을 법제화했고, 프랑스 등이 파트너십 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반면 한국에서 사실혼 불인정 판결이 나온 27일 프랑스에서도 최초의 동성결혼이 무효 판결을 받았다. 보르도 법원은 27일 동성애자인 베르트랑 샤르팡티에(31)와 스테판 사팽(34)의 결혼에 대해 “이성간의 결합이라는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고 있다”며 무효를 선언했다. 이처럼 각 나라에서 동성결혼은 찬반의 소용돌이를 몰고 오며 전지구적 이슈로 번지고 있다.
“법률혼으로 볼 것인가” 지구촌 이슈
서구에서는 동성 커플의 법적 권리가 인정되지 않아 파트너의 생명이 위독한 상황에서도 보호자의 권리를 행사하지 못하거나 파트너가 사망한 뒤 파트너의 가족들에 의해 수십년 동안 살던 집에서 쫓겨나는 일이 사회 문제로 떠오르면서 동성결혼이 사회 의제로 떠올랐다. 한국에서도 지난 3월 남성 동성애자 커플이 공개 결혼식을 올린 데 이어 법원의 사실혼 불인정 판결이 나옴에 따라 동성결혼 문제가 서서히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 6월 성소수자 단체들이 ‘한국에서 동성결혼은 가능한가’라는 주제의 토론을 열었고, 이에 앞서 민변의 일부 변호사들이 동성결혼을 인정해야 한다는 논문을 발표한 바 있다. 2004년은 동성애자 결혼 논쟁의 원년으로 기록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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