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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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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속 이동, 그것은 기적이었다

등록 2004-07-29 00:00 수정 2020-05-03 04:23

자이툰 부대의 아르빌 공식주둔 단독 르포… 한국 취재진 철수로 가려진 릴레이 납치 · 교전을 기억하라


아르빌이 생긴 이래 가장 많은 외국군이 몰려왔다. 그들은 바로 나시리야에서 섭씨 45도의 사막을 가로질러온 한국군 ‘자이툰 부대’였다. 한국 취재진도 철수한 위험의 땅, 아르빌에서 김영미 PD가 공식 주둔 첫날의 표정을 전한다.


▣ 아르빌= 글 · 사진 김영미/ 분쟁취재 전문 프리랜서 PD

지난 7월21일 오후 3시30분 아르빌 하늘과 외곽 도로는 무척 시끄러웠다.

하늘에는 군 수송기들이 아르빌 공항에 내려앉았고, 끝이 보이지 않는 차량 행렬과 미군 차량인 험비, 각종 중장비, 군용 차량 행렬이 꼬리를 물었다. 아르빌 거리 곳곳에서 차량이 통제됐고 시내가 갑자기 분주해졌다. 잠시 뒤 이 소동의 주인공들이 차량에서 내렸다. 밝은 갈색과 오렌지색이 섞인 사막용 옷을 입은 한국군이었다. 그들은 7월19일에 나시리야를 출발해 2박3일간 아르빌까지 장장 720km를 육로로 달려온 것이다. 이들은 이날부터 ‘한국군 자이툰 부대’로 아르빌 주둔을 공식적으로 시작했다.

2박3일 720km 가로지른 ‘신천지’ 작전

이라크는 사막의 나라라는 이름에 걸맞게 연일 45도가 넘는 무더위가 극성이다. 뜨거운 날씨에 방탄조끼와 헬멧으로 무장하고 에어컨도 없는 차를 타고 어떻게 그 먼 길을 달려왔을까 신기했다. 또 언제 어디서 저항세력의 기습 공격이 있을지 모르는 극도의 긴장감을 어떻게 견뎌냈을까. 미군의 엄호 속에서 왔다지만 아무런 사고 없이 아르빌에 도착한 한국군들은 정말 장해 보였다. 자이툰 부대 선발대 단장인 박성우 대령(육사 36기)은 “군 생활하면서 가장 훌륭하게 수행한 작전이었고, 모든 병사들이 무사히 도착해 지휘관으로서 감사하게 생각한다. 앞으로 아르빌에서 수행할 모든 일들을 차질 없이 이뤄낼 것”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지금의 이라크 상황에서 나시리야에서 아르빌까지 차로 달려온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저항세력이 진을 치고 있는 문제의 도시들을 다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최근 치안이 악화될 대로 악화된 수도 바그다드와 바쿠바, 키르쿠크같이 저항세력이 한창 활동하고 있는 도시들을 지나야 한다. 또 한국군은 이라크에서 전투 경험도 없다. 그렇다고 한국군 장비와 병기 수송을 모두 미군에 맡기는 것도 내키지 않는 일이다. 결국 한국군은 육로와 군 수송기를 통해 정면돌파하기로 결정했다. 아르빌로 이동하는 데 2박3일이나 걸린 것은 저항세력의 활동이 비교적 뜸한 새벽과 아침 시간을 이용했기 때문이다. 도중에 미군부대를 두곳이나 들러서 안전하다고 판단되는 시간에만 움직였다.

쿠르드 정부의 군대인 페슈메르가를 담당하는 하미드 장관은 “한국군이 육로로 아르빌에 온 것은 거의 기적이다. 이라크는 지뢰밭이나 다름없다. 오늘 살아 있다고 해서 내일 다시 서로 얼굴을 볼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런 상황에서 육로로 들어온 한국군은 정말 운이 좋다. 키르쿠크에서부터는 페슈메르가가 엄호했다. 그간 나도 많이 긴장했다”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번 수송작전을 한국군과 같이 수행한 미군 상병 티미는 “미군이 이라크에서 벌인 수송작전 중 가장 큰 작전인 듯싶다. 아무런 사고 없이 도착해서 기쁘다”고 말했다.

갑자기 뽀얀 먼지를 일으키며 엄청난 규모로 아르빌 시내로 들어선 한국군 때문에 누구보다 놀란 이들은 바로 아르빌 시민들이었다. 아르빌이 생긴 이래 가장 많은 외국군들이 몰려온 것이다. 시장에서 과일을 파는 마쉰(44)은 “한국군이 오늘 오는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 쿠르드 지역의 경제 활성화에 많은 기여를 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대부분 아르빌 시민들의 생각도 비슷했다. 한국군이 물과 기타 생필품을 아르빌 시내에서 구입할 것이고 그러면 경제가 나아질 것이라는 게 주민들의 생각이다. 소문은 삽시간에 아르빌 시내 전역에 퍼졌다. 만나는 사람들마다 한국군에 대해 물었다. 심지어 정부 관리들까지 전화를 걸어와 “한국군이 몇명이나 왔느냐” “지금 한국군은 어디에 머무느냐” “지휘관이 누구냐”며 질문 공세를 폈다. 그만큼 아르빌의 한국군 주둔은 큰 사건이었다. 한국군이 나시리야에서 아르빌로 이동한다는 사실은 언론은 물론 쿠르드 군대인 페슈메르가에게도 극비에 부쳐졌다. 모술에 있는 미군 스트라이크 사단이 모종의 작전을 수행할 것이라는 정보가 나돌기는 했다. 하지만 외신들은 그 작전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더구나 이날 아침 야와르 이라크 대통령이 아르빌을 방문해 아침부터 난리법석을 피운 다음이라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외신들은 아르빌 시내에 진입한 한국군과 미군을 직접 보고서야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한국군과 함께 아르빌에 들어온 미군들은 필자에게 “이번 작전명은 한국어 이름이었다”고 귀띔했다. 미군들은 통상 작전을 수행하고 난 뒤 공개 브리핑에서 작전명을 공개한다. 대부분 ‘쇠망치’(Iron hammer), ‘붉은 아침’(Red morning) 등 영어로 된 이름이었다. 처음 미군들은 작전명을 ‘삼천리’ 작전이라고 서툴게 발음했다. 하지만 그들이 알파벳으로 다시 써준 이름은 ‘신천지’였다.

8월 본대 도착에 맞춰 주둔지 건설

이날 도착한 한국군은 나시리야에서 서희·제마부대의 3진으로 이라크에 왔다. 그들은 파병 시기가 늦어지면서 자이툰 부대 소속의 장병들이 미리 서희·제마라는 이름으로 왔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자이툰 부대’라는 이름으로 아르빌에 도착했다. 이들의 임무는 8월 한국에서 도착할 자이툰 부대 본대가 머물 주둔지를 건설하는 일이다. 막사를 짓고 각종 편의시설을 건설한다. 지금 당장 그들이 묵어야 하는 시설은 아직 열악하다. 사막의 무더운 날씨와 모래바람도 천막 하나로 견뎌야 한다. 나무 한 그루 없는 땡볕에다 수시로 모래바람이 분다. 그 모래바람과 함께 날아드는 먼지는 숨쉬기조차 힘들게 한다. 하지만 천막마다 벽걸이 에어컨이 양쪽으로 두개가 달려 있고 침대도 야전침대가 아닌 일반 매트리스 침대다. 운좋게 아르빌은 물 사정도 그리 나쁘지 않고 식사도 한국식 식단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군 주둔 첫날의 아르빌과 주변 도시 키르쿠크, 모술의 치안은 불안했다. 한국군이 아르빌에 도착하던 시각에도 주목할 만한 사건이 발생했다. 시내 주택가에서 폭파 사고가 일어났는데, 죽은 이들은 터키계 당을 맡고 있던 2명의 터키계 사람이었다. 최근 며칠 사이 모술에서도 터키계 인사들이 5명이나 피살됐다. 키르쿠크에서도 터키계 주요 인사들이 피살되고 있다. 그리고 이제 아르빌에서도 터키계가 피살되고 있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페슈메르가의 짓이라는 견해도 나온다. 아르빌에는 20%가량의 터키계 주민이 살고 있다. 그간 쿠르드계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 바로 이웃하고 있는 터키와의 마찰 때문이다. 쿠르드족 당파 중 하나인 쿠르드노동당(PKK)은 터키 본토에 테러를 가하기도 하고 5년간의 터키와의 휴전도 파기했다. 그리고 아르빌 시내에는 터키 군대가 아직 주둔 중이다.

PMF라는 이름으로 터키의 특수 군인 200여명이 시내 중앙에 쌓아놓은 성곽에 은둔하고 있다. 1997년 아르빌파인 쿠르드민주당(KDP)과 술라이마니야파인 쿠르드애국동맹(PUK)이 서로 죽고 죽이는 혈전을 할 당시 바르자니가 싸움을 중재한다는 명목으로 요청해 터키 군대가 아르빌로 들어왔다. 그 뒤 터키 군대는 지금까지 아르빌에서 계속 주둔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바르자니는 터키군에게 쿠르디스탄에서 나가줄 것을 요청했다. 그는 “나는 터키 군대에게 아르빌을 떠나서 그들의 나라로 갈 것을 요청했다. 또 한국군과 어떤 관계도 갖게 할 수 없다”고 한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다. 하지만 터키 군대는 미동도 하지 않고 있다. 그러면서 쿠르드와 터키 두 정부 사이의 감정이 악화됐다. 아르빌을 쥐고 있는 바르자니에게는 터키 군대인 PMF가 눈엣가시 같은 존재일 터이다. 터키계 주요 인사의 피살을 두고 바르자니에게 의심의 눈길이 가는 까닭이다. 터키 정부도 터키계를 계속 탄압하면 쿠르드족과 무력으로 맞서겠다고 선언한 판국이다. 이런 터에 벌어진 키르쿠크, 모술, 아르빌에서의 터키인 피살은 이웃 터키 정부와의 새로운 불씨를 예고한다.

모술과 키르쿠크의 상황도 편치 못하다. 얼마 전 주지사가 피살되고 행정부의 기능이 마비되다시피 한 모술의 상황은 극도의 혼란 그 자체다. 한국군이 들어온 7월21일 저녁 7시께에도 미군이 주둔한 공항기지 근처에서 저항세력들과 미군이 심각한 교전을 벌였다. 그간 저항세력들이 거의 매일 미군기지를 공격했지만 미군은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미군의 인내심이 폭발했다. 모술 시내 교전은 3시간 가까이 계속됐으나 미군이 사격을 멈추고 기지 안으로 병력을 철수하면서 마무리됐다. 7월23일에는 이라크 전직 장군이자 이라크 보안군과 고용 사무소를 책임지고 있던 살람 마지드 장군이 피살됐다. 그는 훌륭한 군인으로 평가받았으나 이라크 보안군을 맡아 미군들과 자주 회동하면서 배신자로 낙인찍힌 것으로 보인다. 모술은 행정부와 군부가 모두 무너진 상태다.

아르빌 불만세력 이슬람 수니파

키르쿠크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 릴레이 납치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하루는 아랍인 인사가 납치되면 다음날은 쿠르드 인사가 납치되고, 다시 다음날은 아랍인 인사가, 또 쿠르드 인사가 납치당해 행방불명이 된다. 이런 식으로 벌써 양쪽 주요 인사가 9명이나 사라졌다. 7월21일에는 최고위 인사로 키르쿠크 주정부의 재무부 장관이 실종됐다. 이들이 살아 있으리라고 기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렇게 아랍계와 쿠르드계 사이의 감정이 폭발 일보 직전이다. 7월21일에는 야와르 이라크 대통령이 아르빌을 방문해 바르자니와 함께 연 기자회견에서 “쿠르드족은 키르쿠크에 있는 그들의 고향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폭탄 선언을 했다. 사실상 쿠르드족에게 키르쿠크 접수를 인정한 것이다.

문제는 아랍계 대통령의 이런 선언에도 불구하고 키르쿠크 거주 아랍계가 쉽게 물러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특히 키르쿠크 하위자에 거주하는 아랍계는 ‘제2의 팔루자’라고 불릴 정도로 과격한 저항단체들이다. 사담 후세인 시절 바그다드에서 한자리씩 차지했던 정부 관리들이 많이 모여 살기 때문이다. 이들이 세계적 유전지대인 키르쿠크를 쿠르드족에게 쉽게 넘길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야와르 대통령의 폭탄 발언은 안 그래도 불안한 키르쿠크의 치안을 더욱 부추긴 꼴이 된 셈이다.

아르빌에 사는 대부분 주민들의 종교는 이슬람 수니파이다. 약 10%의 가톨릭을 믿는 칼다니안족과 아시리아족도 있다. 그러나 이슬람이 상대적으로 우세하기 때문에 시내 곳곳에서는 많은 모스크를 볼 수 있다. 어느 이슬람 지역을 보더라도 이슬람 성직자들은 권세를 누리며 정치적으로도 많은 역할을 한다. 그런데 아르빌은 특이하게 이슬람 성직자들이 기를 펴지 못한다. 그것은 엄청난 권력을 휘두르고 있는 바르자니 정권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은 바르자니에게 불만이 많다. 아르빌 시내 굴란 거리에 있는 한 모스크의 성직자 인 살라씨는 “우리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우리는 단지 모스크를 지키는 일만 할 뿐이다. 사람들은 우리를 존경하지 않는다. 당신도 아르빌 시내에서 이슬람에서는 금지하는 술을 마시는 사람들을 많이 발견할 것이다. 이것은 이슬람 세계에서 잘못된 일이다. 이맘(이슬람 성직자)이 그들을 제재할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개탄했다. 이들이 문제인 것은 자칫 권력의 뒷자리로 밀려난 아르빌의 이슬람 성직자들이 모술과 키르쿠크에 있는 이슬람계 저항세력과 손을 잡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각 지역에 있는 이슬람 수니파 성직자들끼리는 서로 활발하게 내통하고 있다. 특히 ‘안사르 알 이슬람’이나 ‘안사르 알 수나’ 같은 과격 테러단체와 연결된 아르빌에서 각종 테러를 일으킬 수 있다. 이는 한국군의 안전에도 위험한 신호다. 살라씨는 “‘안사르 알 이슬람’이나 ‘안사르 알 수나’의 발생지가 아르빌이다. 지금은 바르자니에 밀려 모술에 근거지를 두고 있지만 그들의 세력 기반이 아르빌에 많이 남아 있다”고 말했다. 바르자니도 이런 위험성을 경고한 바 있다.

저항세력이 접수한 모술과 40분 거리

한국군이 아르빌에 도착하던 7월21일 아르빌과 모술, 키르쿠크에는 많은 사건이 발생했지만 한국까지 알려지지 못했다. 이라크가 점차 위험해지면서 한국인 취재진이 대부분 철수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한국군은 아르빌뿐 아니라 모술과 키르쿠크의 정세를 유심히 살펴야 한다. 저항세력에 거의 함락당했다는 모술은 한국군 주둔지에서 자동차로 빨리 가면 불과 40분 거리다. 그리고 이미 한국군이 도착했다는 소문이 모술에도 널리 퍼졌다고 한다. 한국군이 평화 재건을 위해 이라크에 왔다고 아무리 외쳐대도 저항세력들은 평화 재건이라는 의미를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오직 ‘군인’이 왔다는 사실만 기억할 뿐이다.

앞에 적은 모든 사건들은 한국군 자이툰 부대가 아르빌에 도착한 7월21일 하루 동안에 발생한 일들이다. 이것이 지금의 이라크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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