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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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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기지는 은근슬쩍 개발되나

등록 2004-07-29 00:00 수정 2020-05-03 04:23

‘반환부지 활용방안’ 연구보고서 단독 입수… 공원 중심 복합개발이 타당한 대안이라니

▣ 이주현 기자 edigna@hani.co.kr

수도권 과밀화 방지와 전국의 균형 발전을 명분으로 행정수도 이전을 추진하고 있는 정부가 한편으론 미군으로부터 돌려받게 될 용산기지에 공원 중심의 복합 개발을 추진하고 있음이 드러났다. 이는 터를 일부 매각해 기지 이전에 필요한 재원을 얻는 구상으로, 최근 용산에 불고 있는 개발 붐에 편승해 사업비를 조달하겠다는 것으로 읽힌다.

터 매각으로 이전비용 충당 암시

이 단독입수한 ‘용산기지 반환부지 활용과 재원조달 방안’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용산기지 약 107만평(전쟁기념관·용산가족공원·국립박물관·국방부·미대사관 예정터 등 포함) 중 반환 터의 중심부는 공원으로 쓰고 고속철도 역사, 한강로 주변 용산 지구단위계획구역 등과 연계가 가능한 서쪽 부분은 복합 업무 공간으로 조성한다. 또 용산기지를 가로지르는 도로는 지하도로로 만들고 이태원과 연계해 고효율의 복합 업무 지역을 지하에 조성한다.

이 보고서는 국무조정실 산하 주한미군대책기획단이 지난 5월 한 대학 연구기관에 맡겨 작성한 것인데, 반환 기지의 활용 방향과 실현 가능한 지침 마련, 사업추진 체제 구상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보고서는 우선 활용 방향 가운데 전면 공원, 전면 개발, 공원+개발이라는 3가지 대안을 상정하고, 이를 다시 역사문화·환경생태·도시경제·도시공간구조·사업추진 가능성 등의 5가지 기준에서 평가했다. 이를 바탕으로 공원+개발 결합을 가장 타당한 대안으로 결론내렸다.

전체 부지를 공원으로 할 경우 다양한 개발 잠재력이나 공간의 입체적 이용 면에서 한계를 드러내고 도심·부도심의 기능을 수행할 수 없으며, 전체를 개발할 땐 땅의 상징성이 사라지고 동식물 서식지를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공원을 중심으로 복합 개발할 경우엔 녹지공간의 장점과 개발의 장점을 모두 살릴 수 있고 인근 지역과 연계해 개발할 수 있어 5가지 기준을 두루 만족시킨다고 보았다. 구체적인 면적은 제시하지 않았다. 공원은 동쪽의 경사진 지형에 만들고 복합 업무 지역은 터 서쪽에 만든다는 정도로 두루뭉술하게 언급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일부 지역을 개발할 경우 이전 비용을 충당할 수 있다고 밝혀 이전 비용으로 추산되는 최소 4조원을 터 매각으로 얻을 수 있음을 암시했다.

하지만 이 보고서는 전면 공원, 전면 개발, 공원+개발의 결합이란 3가지 방안이 어떤 장단점이 있는지를 전문가 의견을 들어 열거하고 이를 5가지 기준에 따라 우수(), 보통(△), 미약(×)으로 각각 표시했다. 용산기지에서 살려야 하는 수많은 가치 가운데 무엇이 가장 필요한지를 심층적으로 분석하지 않은 채, 공원 중심의 복합 개발이 타당한 이유를 ‘△×’란 거칠고 막연한 평가로 대신한 것이다. 마치 공원 중심의 복합 개발이란 답을 미리 정해놓고 이를 뒷받침할 근거를 찾아낸 듯한 인상을 준다.

자문위원회와는 협의도 없이 용역 발주

보고서는 또 반환부지 활용 비용에 대해서도 ‘미군기지 이전비용’ ‘부지조성 비용’ ‘공원관리 비용’으로 못박고 있다. 미군기지 이전 비용을 포함시킨 이유에 대해서는 “용산 반환부지를 활용하기 위해서는 미군기지 이전이 선결돼야 하기 때문에 미군기지 이전을 위한 터 확보 및 이전 경비는 넓은 의미에서 반환부지 활용을 위한 비용의 일부”라고 설명했다. 즉, 용산을 ‘활용’해서 평택 땅을 ‘확보’한다는 전제를 명시한 셈이다. 보고서는 또한 가능한 재원조달 방안으로 국공채 발행, 조세 수입, 국민신탁(내셔널 트러스트)과 함께 매각을 구체적으로 거론하고 있다. 미군기지 이전 단계에 필요한 비용은 이른 시일 안에 가능한 국채 발행과 국세 수입으로 충당할 수밖에 없지만 이후엔 부분적 토지 매각을 통해 국채를 상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국방부는 ‘주한미군 기지 이전에 따른 평택지역 등의 지원 등에 관한 특별법안’을 마련하면서 반환 기지에 대해 용도 변경을 거쳐 민간에 매각한다는 내용을 넣었다가 지방자치단체와 시민단체의 반발이 들끓자 민간에 매각한다는 것을 지자체에 매각하는 것으로 고쳤다. 공원 중심의 복합 개발이 기본 줄기라면, 땅을 사들인 지자체 역시 자체 용도 변경을 거쳐 복합 업무 공간으로 개발할 수 있는 ‘인증서’를 얻은 셈이다.

주한미군대책기획단 관계자는 “이 보고서는 단지 참조하기 위해 미리 작성한 자료일 뿐”이라며 “기획단이 운영하고 있는 ‘공원화기획자문위원회’의 결정을 존중할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공원화기획자문위원회는 이 보고서의 용역을 맡기는 것에는 전혀 관여하지 않았으며 보고서 제출 뒤에도 공식적인 보고를 받지 못했다. 한 자문위원은 “자문위원회에서 기본 방침도 정하지 않았고 땅에 대해 먼저 확인해야 할 기초 체크리스트도 다 마련하지 못했는데 기획단이 맘대로 용역을 발주하고 있다”고 불만을 털어놓았다. 결국 이번 보고서는 그동안 미국과의 기지 이전 협상에서 ‘두 나라 비용 분담’은 말도 못 꺼내본 정부가 용산 땅을 팔아 평택 땅을 대주는 방안을 자체적으로 연구해왔다는 구체적 물증인 셈이다.

겹치기 개발로 과밀화 불가피

그동안 서울시 주도로 세운 용산 개발계획은 모두 미군기지 반환 뒤 공원으로 만드는 것을 전제해왔다. 2001년 서울시가 발표한 ‘용산 부도심지구단위계획’은 이곳에 100만평의 공원이 생기는 것을 염두에 두고 서울역·삼각지·용산역 주변 지역에 용산 부도심화를 주도할 상업·업무 지역을 배치한다는 것이다. 만약 용산기지가 공원 중심의 복합 개발로 진행될 경우 위 계획들에 따라 이미 진행되고 있는 개발에 겹치기 개발이 더해져 이 지역의 과밀화는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서울시 도시계획과 관계자는 “공원 중심의 복합 개발은 건교부로부터 승인 받은 2011년 목표 도시기본계획, 1991년 세운 용산공원화계획 등과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이 서울시의 기본 입장이다. 땅이 있으니까 개발한다는 논리는 전혀 설득력이 없다. 도심·부도심의 개발 수요에 대해 조사·판단한 뒤 적정 개발을 하는 것이 순리이지 빈 땅이 있다고 해서 일부는 개발, 일부는 공원으로 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서재철 녹색연합 자연생태국장은 “정부는 수도 이전을 반대하는 언론에 맞서 그동안 시민단체들을 상대로 수도 이전의 타당성을 설득해왔다. 이처럼 서울 한복판 용산의 과밀화를 부추기면서 한쪽에선 수도 이전을 강행하는 것은 모순이다. 정부는 기지 이전 비용 및 용산 활용 방향 등을 원점에서 다시 고려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용산에 부동산 바람 분다

용산기지 땅 일부를 팔아야 한다면 정부 입장에서는 1년여 전부터 용산에 불고 있는 심상찮은 부동산 붐이 내심 반가울지 모른다. 용산기지 이전 협상이 시작된 2003년 봄부터 이 지역은 ‘안마당은 공원, 뒷마당은 고속철’ ‘서울의 최상급 도심 녹지 타운’ 등으로 선전되며 땅값이 뛰기 시작해 1년여 만에 두배 이상 오른 상황이다. 용산역 주변 상업지는 평당 3천만~4천만원으로 서울 강남권 수준에 육박하고 있으며, 주변 아파트 가격 또한 평당 2천만원 정도에 이른다. 부동산114 김혜현 부장은 “지난 1년동안 용산지역 아파트값 상승률은 13.58%로 재건축시장이 주도하던 송파·강남에 이어 3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최근 재건축시장이 한풀 꺾이면서 용산 지역 상승률이 도드라진다”고 설명했다. 최근 한강로 주변 상업지역엔 대우트럼프월드·대우아이빌·LG용산애클라트·LG한강애클라트·벽산메가트리움 등이 2005년 안에 입주할 예정이어서 대규모 주상복합 아파트촌이 형성된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이들 주상복합아파트 프리미엄은 최고 4억8천만원(한남하이페리온II)에서 2억~3억원을 훌쩍 넘기는 것들도 여러 단지다(용산시티파크1·2단지·LG용산애클라트·벽산메가트리움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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