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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의 ‘줏대’는 어디서 나왔나

등록 2004-07-22 00:00 수정 2020-05-03 04:23

<font color="darkblue">친미정부가 이라크에서 군대를 철수하도록 만든 시민사회의 힘… 워싱턴의 ‘협박’도 소용없어 </font>

▣ 마닐라= 나효우 전문위원 nahyowoo@hotmail.com

필리핀이 또 한번 미국에 등을 돌렸다.

이에 미국 워싱턴이 발칵 뒤집혔다. 델리아 앨버트 필리핀 외교부 장관은 7월14일 “필리핀군은 이미 이라크에서 철수 중”이며 “51명의 파병군 가운데 43명만이 남아 있는 상태”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워싱턴 정가에서는 연일 비난 섞인 논평을 내고 있지만 이미 철수는 시작되고 있다.

“트럭 운전사 한명 때문에…”

지난해 5월 미국의 이라크 침공 이후 부시 미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테러전쟁 협조의 대가로 9500만달러 등 다양한 지원을 약속받았던 아로요가 대통령에 취임한 지 불과 한달도 안 되어 미국에 등을 돌린 것이다. 현재 이라크에는 전국 15개 미군기지 11만8천여명의 미군들과 함께 일하는 4100여명의 필리핀 노동자들이 있다. 이들 대부분은 70만~80만원의 월급을 받으며 일하는 가난한 노동자다. 이들 가운데 트럭 운전사 한명이 지난 7월7일 이슬람 저항세력에게 인질로 잡혀 참수 위협에 놓였다. 한국 정부와 같이 발빠르고 결연한 ‘추가 파병’ 발표를 상상했던 미국의 기대와 달리 아로요는 “필리핀 노동자 추가 파견을 중지하며, 현지에 있는 노동자들도 귀국을 원하면 도울 것이다”라는 입장을 내놓았다. 하지만 이때만 해도 전통적으로 미국의 굳건한 우방을 자랑하는 필리핀의 아로요 정부가 설마 트럭 운전사 한명의 생명을 구하겠다고 철군을 결정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필리핀 외교부 차관이 군대 철수 가능성을 시사한 다음에 리처드 바우처 미 국무부 대변인은 “필리핀 정부의 군대 철수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결정”이라고 말할 정도다.

그리고 철군 발표 전날 필리핀 주재 프란시스 리카르돈 미 대사가 직접 아로요 대통령을 만났지만 침통한 얼굴을 기자에게 감출 수는 없었다. 인질 사태 뒤 일주일 동안 전국은 철군 주장을 하는 시민사회단체의 시위가 계속됐다. 처음부터 아로요 정부가 군 부대 철수를 생각한 것은 아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정부가 이라크 주둔 아시아 7개 국가 중에서 처음으로 철수를 공표한다는 것은 미국과의 관계를 생각할 때 결코 쉽지 않은 결정이다. 더구나 아로요 대통령은 필리핀 남부 민다나오섬에 테러 전쟁이란 명분으로 1천여명의 미군을 1991년 미군 철수 10여년 만에 다시 끌고 들어온 대표적인 친미 대통령이다.

사태 발생 초기 정부는 국내 이슬람단체의 협조를 구하고 말레이시아 등 인근 이슬람 국가들의 지원을 요청했다. 경험 많은 협상자들을 현지에 파견해 다양한 타협을 시도했다. 부대 철수 관련 입장 발표를 최대한 늦추는 바람에 관료 일부는 계속 주둔 입장을 밝히는가 하면, 철군 가능성을 시사하는 등 좌충우돌하는 모습까지 보였다. 불행 중 다행이라면 이런 분명치 않은 필리핀 정부의 태도 때문에 참수 현장까지 끌려갔던 쿠르즈는 하루하루 생명이 연장될 수 있었다.

인질 사건 벌어지자 연일 항의시위

인구 8천만의 필리핀이 한국의 이라크 현지 주둔군 700명에 추가 파병 3500명에 견주면 턱없는 파병 규모인 51명이 철군하는 것이 뭐 그리 대단할까 생각할지 모르지만 사정은 그렇지 않다. 필리핀은 지난해 11월 처음으로 평화 재건과 인도주의를 앞세워 178명의 군인들과 노동자들을 이라크에 파견했다. 그리고 이 수는 미국의 요청으로 4천여명으로 늘어난다. 이 가운데 군인은 경찰과 군의관까지 포함해 96명이었다. 군의관 등 43명은 현지 사정의 악화를 이유로 철수했고, 이슬람 저항세력 등을 대상으로 싸운 프로 용병들만 남게 되었다. 이 프로급 군인들은 이라크 경찰들을 대상으로 치안유지 훈련을 맡아 애초 파견 목적보다 폭넓은 활동을 했다. 이런 전시훈련은 이라크인 살상에 간접적 기여를 하고 있는 셈이다. 실제로 필리핀의 정예부대를 책임지고 있는 팔파안 소장은 지난해 필리핀 민도로섬에서 인권활동가 두명을 살해하는 작전을 지휘했던 인물이다. 여기에 해외에 나가 있는 800만 노동자들과 중동에 파견되어 일하는 150만명의 노동자들과 가족들의 안전을 생각한다면 이라크 전쟁과 같은 명분 잃은 전쟁에 군대를 파견하는 것은 국익에 어긋날 수 있다.

드릴론 필리핀 상원 의장은 “미국은 아로요 대통령의 철군 결정이 곧 국익에 우선을 두고 있음을 이해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가톨릭 주교들은 “교회의 우선적 관심은 인질로 잡혀 있는 ‘쿠르즈’와 미군 기지에서 일하는 필리핀 노동자들”이라고 밝혔다. 또 이들은 성경에 따라 99마리의 양보다 잃어버린 1마리 양의 생명을 더 소중히 여기는 것이 교회의 본분이라고 주장했다.

필리핀 시민사회단체 ‘바얀’의 대변인 나토는 “이번 필리핀의 철수 명령이 결코 필리핀 국익에 도움이 안 될 것이라는 미국의 협박성 발언은 이미 1991년 동남아시아의 최대 미군기지였던 클라크와 수빅에서 미군이 철수할 때도 수차례 들었던 이야기다. 미군이 철수하면 당장 국가 경제가 위험에 빠질 것처럼 이야기했으나, 실제로 철수한 이후 무엇이 나빠졌는가? 오히려 미군 떠난 자리를 관광단지로 개발해 많은 관광객을 유치하고 있다. 우리는 분쟁의 씨앗이 되는 미군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자주적이고 평화로운 세계연대를 원한다”라고 말한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군대 파병 관련 계약 조건이 화제가 되었다. 사실 이번 인질극이 발생하기 전까지 일반 시민사회단체는 어떤 조건으로 언제까지 전시 상태인 이라크에 자국민이 파견돼야 하는지 잘 알지 못했다. 파견도 문제지만 언제까지 있어야 하며 방글라데시, 파키스탄 등 다른 아시아 국가들이 유엔 산하에 있는 것과 달리 필리핀, 한국군 등은 미국 작전 명령 체계에 따라 현지에서 임무가 변경 가능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필리핀은 8월20일까지 이라크에 군대가 주둔하기로 협정을 맺었다는 사실도 국회에서 논의되지 않았다가 이번 외교부의 발표로 알게 된 것이다.

부대 철수 결정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것은 시민사회의 저항이었다. 필리핀 시민사회단체들은 일본인 인질 사건이 일어났을 때도 미대사관 앞에서 항의 시위를 벌였으며, 한국의 고 김선일씨 참수 애도 메시지도 전세계에 전달했다. 이번 자국민 인질 사건이 발생하자 연일 항의시위를 벌여 즉각 철군을 요구했다. 쿠르즈의 고향이면서 아로요의 정치고향인 팡팡가에서는 주민들이 무사귀환을 빌면서 온 동네에 노란 리본을 달고 빠른 귀환을 기원했다. 시민단체들은 7월26일 상원의원 의사당 앞에서 대규모 전쟁 반대 시위를 준비하고 있다. 동시에 한국에서도 이번 전쟁 반대 쿠르즈 무사귀환을 위한 행동에 동참해줄 것을 바라고 있다.

시민사회 국제연대도 큰 힘 발휘

이번 인질 사건은 해외 시민사회의 역할에 여러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중동의 다양한 이슬람 단체들과 연대해 미리 구축한 정보 채널과 종교간의 다양한 대화 프로그램은 이번 인질 사태가 발생하자 적잖은 효과를 발휘했다. 인질 사태가 일어나자 제일 먼저 이슬람 지도자가 “가톨릭과의 우호적 관계를 깨뜨리지 말라”며 쿠르즈 석방을 방송으로 내보냈다. 국제 필리핀 이주노동자 연대의 메리 사무총장은 “이런 평상시 교류 활동은 단순히 자국민만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그 나라 시민사회와의 연대를 통해 민족을 넘어선 보편적인 인류애를 실현하는 길이다”라고 강조한다.

일본, 영국 심지어 미국 정부에도 외교부나 국무부 산하에 시민단체 지원반이 있고, 각 나라 주재 대사관에는 비정부기구(NGO) 담당을 두어 현지 NGO들과 일상적인 만남을 통해 각 나라 시민사회의 다양한 목소리에 귀기울이고 있다. 이는 다양한 사회여론을 만날 수 있는 접촉점으로, 만일의 사태를 해결할 수 있는 효과적인 민간 외교 경로 구실을 한다. 아로요 정부가 이라크에서 자국 군대를 철수한다고 해서 친미 정권의 성격이 바뀐다고는 아무도 생각지 않는다. 그럼에도 국민들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나서는 정부의 과감한 조처와 외교 배짱이 밉지 않고, 다양한 국제 교류 경로를 가진 시민사회와 부대 철수를 이끌어내는 국민들의 힘이 부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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