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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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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훈을 주기보다 의문을 제기하라!

등록 2004-07-16 00:00 수정 2020-05-03 04:23

일본 평화박물관 탐방에서 얻은 것… 국경과 민족 뛰어넘는 상상력으로 평화박물관을 짓자

▣ 글 · 사진 이대훈/ 평화학 연구자 · 평화박물관추진위 운영위원

일본에는 평화박물관이 많다. 전국 평화박물관 안내도서도 있다. 지난 6월18~26일간 필자는 한국에서 평화박물관 추진운동을 하는 시민단체와 함께 일본의 평화박물관 10여곳을 탐방했다. 일본에 평화박물관이 널리 퍼진 이유는? 우리가 평화박물관을 한다면 어찌해볼까? 이런 질문을 품고 떠난 탐방이었다.

원폭과 공습에 대한 기억에서 출발

일본은 두 차례의 원폭을 당한 이후 국제적으로 대중적인 반핵평화운동의 한 기원이 됐을 뿐만 아니라, 평화박물관 건립 면에서도 독보적인 지평을 개척했다. 그 시효로 거론되는 것이 1955년 나가사키시가 원폭 피해 자료를 전시한 나가사키 국제문화홀인데, 뒤에 원폭자료관으로 개칭·개편되었다. 비슷한 시기에 ‘평화박물관’이라는 개념이 퍼지면서 평화운동과 혁신 지방자치단체의 관심을 끌어 일종의 건립 붐이 일어나고 시정부와 민간단체 또는 개인들이 평화박물관을 설립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각지의 크고 작은 평화박물관들은 네크워크를 구성해 전국회의와 국제회의를 개최하고 회보도 발간하고 있는데, 전국적으로 약 40여개의 박물관과 자료관들이 평화박물관으로 분류된다.

일본의 평화박물관은 원폭과 공습에 대한 집단적 기억에서 출발한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기념관이 원폭을 기억하는 곳이라면, 주요 도시의 공립 평화박물관들은 미군의 대대적인 공습을 기억하는 데서 출발한다. 일본의 피해를 기억하는 공간이다. 그 국가가 전범국가라는 점을 빼면 민간인들이 겪은 전쟁의 참상은 보편적이다. 그 속에는 한순간에 파괴된 억울한 일상이 있고 살을 에는 아픔이 있다. 그 기억은 미군의 폭탄과 피폭 잔해, 일그러진 자전거와 불탄 교복, 멈춘 시계와 방공호, 부서진 가옥과 가족의 죽음 등 파괴된 삶의 모든 단편을 통해 전시된다.

그 중에서도 히로시마 평화공원과 평화기념자료관은 인류 최초의 원폭 피해를 기념하는 곳으로서 해마다 8월 세계적인 반핵 대회가 열리는 국제적 명소다. 세계 사상 첫 피폭지에 ‘원폭돔’을 보존하고 평화공원과 자료관을 조성해 원폭과 전쟁에 대한 기억과 전시, 교육 활동을 펴고 있다. 자료실에서는 생존자들의 기록과 증언을 생생한 육성과 화면으로 볼 수 있으며, 피폭자 각각의 얼굴을 전시하고 있다. 원폭의 야만성을 고발하는 전시실은 입구에 최신 핵실험 일자를 표시해 경각심을 높이는 등 핵무기의 완전 철폐라는 전시관의 취지를 분명히 한다. 반핵의 세계적인 상징이 된 원폭돔 아래서 아담한 히로시마 풍경과 유령 같은 그 건물의 대조를 느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핵무기에 대한 혐오와 평화박물관의 의미를 마음에 담게 된다.

다른 주요 도시의 평화박물관에서는 공습의 기억이 압도적이다. 폭격에 아이를 감싸안고 죽었거나 전사한 자식을 기다리는 어머니 이야기와 기념상이 반복되며, 실물 소이탄과 파괴된 시가지, 아이들의 공포를 표현한 그림과 일기도 자주 등장한다. 청년 병사들의 애국심에 대한 향수 사이에 전시 체제의 굶주림과 결핍, 집단 노동의 전시가 배치된다.

무엇이 전시되는가도 중요하지만 무엇이 생략되는가는 더 중요하다. 생략에서도 기념시설의 사회적 효과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재일 조선인의 전쟁 피해는 실제보다 축소되거나 생략된다. 히로시마 원폭자료관에는 어느 정도 언급돼 있지만 숫자와 통계는 생략됐다. 전범국가의 실체와 책임 문제도 생략된다. 전범국가의 책임 문제는 어디에 있는가라는 질문은 히로시마, 오사카, 후쿠야마, 도쿄 등 방문하는 평화박물관마다 계속 이어진다.

오사카에는 국제평화센터와 인권박물관이 각각 피스(peace) 오사카, 리버티(liberty) 오사카라고 불리며 한 쌍으로 알려져 있다. 오사카 국제평화센터 역시 대대적인 공습의 피해와 전시의 생활을 자세히 기록하고 있지만, 비교적 일본의 중국 침략과 식민지 조선의 역사를 비중 있게 다룬 곳으로 꼽힌다. 그러나 전쟁 책임 문제는 소홀히 취급되고 있다.

오사카 인권박물관은 지역 부락민 해방이라는 대중운동에 바탕을 두고 생겨서 성찰의 예리함을 남달리 느낄 수 있다. 이곳은 지역 부락민의 생활과 역사, 해방운동을 중심으로 일본 사회의 다양한 차별을 고발하면서 보편적 인권의 중요성을 교육한다. 특히 여기서 올해 발간한 책자 은 압권이다. 이 교육 자료는 전쟁 이전과 전쟁 당시의 사진과 포스터, 교과서, 군 홍보물을 통해 ‘총력전’ 아래 일본 국민의 조건과 외국인, 여성에 대한 차별과 ‘자기 식민지화’를 집중 조명했다. 전쟁이 요구하는 ‘국민’의 허구성을 낱낱이 파헤쳤다.

전쟁 책임, 과감한 생략!

시립 박물관이지만 시민운동과 긴밀히 연계하기 때문에 장점을 취하는 곳으로 도쿄 인근 가와사키시 평화관이 인상적이다. 이곳은 지역 주민단체와 평화단체의 집회장으로 애용될 뿐만 아니라, 전시와 교육 내용에서도 일본의 군국주의와 국민동원, 국제적인 기아와 불평등에 대한 일본의 책임 등을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시립 평화박물관들은 시 재정으로 운영되는데, 전시와 교육 내용은 지역 사회와의 연계에 따라 수준이 다르다. 대학에서 운영하는 곳으로 교토시 리쓰메이칸대학에 위치한 국제평화뮤지엄이 있다. 이곳은 비판적 평화학자들이 모여 연구하는 곳이기 때문에 전시 내용이 충실할 뿐만 아니라 평화박물관 운동의 선도적 역할을 한다. 특히 중국의 난징대학살기념관 등과 지속적으로 교류하며 상호 연계 전시와 자료 협조 등 긴밀한 지원을 한다. 가해국의 교육기관이 피해국의 기념시설을 적극 지원한다는 점이 다른 공립 시설과 달랐다.

우리 방문단은 가는 곳마다 불가피하게 가해자로서 일본은 어떻게 기억되고 전시되는가를 물었다. 이 질문에는 공식적인 답이 있는 듯했다. 히로시마의 경우 과거 일본 군국주의를 고발하는 전시를 통해 간접적으로 일본의 전쟁 책임을 고발한다는 것이 공식 설명이었고, 다른 경우에는 보통 ‘사실적인 전시’를 중심으로 한다는 공식이 있었다. 직접적인 전시와 설명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뜻이었다.

사실과 생략이 만나면 해석이 되기 때문에 사실적인 전시라는 명분은 곱게 들리지 않았다. 아마 일본 평화박물관들의 가장 뒤틀린 생략은 ‘현재’에 있는 듯하다. 전쟁을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공간임에도 대부분의 공립 평화박물관에는 현재 진행 중인 이라크 침략과 자위대 파병에 대한 얘기가 쏙 빠져 있다. 평화의 성찰 공간이 제도화될 때 따르는 제약이라고 보인다. 물론 평화운동과 긴밀한 연관을 갖는 작은 사립 평화박물관들은 달랐다.

△ 오사카 국제평화센터는 공습의 피해와 전시의 생활을 기록하고 있지만, 비교적 일본의 중국 침략과 식민지 조선의 역사를 비중 있게 다룬 곳으로 꼽힌다. 맨 위부터 오사카 대공습 당시 오사카의 초등학교 6학년생이 그린 그림, 식민지 조선과 관련된 전시장 모습, B-29 폭격기에서 투하된 폭탄과 소이탄.

여성들이 만드는 평화자료관의 미덕

‘풀뿌리 평화박물관’으로 불리는 고지시의 ‘풀의 집’은 지역 청소년 평화교육에 초점을 두는 곳으로서 이라크 등 현재의 평화 이슈가 주요 소재였다. 박물관이 곧 평화운동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도쿄의 ‘여성들의 전쟁과 평화자료관’ 추진단체 역시 그러하다. 이들에게 자위대의 이라크 파병은 현안이자 평화의 성찰에 핵심이었다. 특히 여성평화자료관 추진위는 민간의 힘으로 ‘가해의 역사를 기록’하려는 운동으로서 군 위안부 문제로 일본에서 왕성하게 활동했던 여성 고 마쓰이 야요리와 그의 동료들이 모태가 되어 만들어졌다. 가해의 역사에 초점을 둔다는 면에서 우리 평화박물관 추진위와 가장 비슷했다. 단 이들은 여성들이 과거의 전쟁을 기억하고 기록함으로써 미래의 평화가 가능하다는 여성주의적 관점에서 평화운동을 전개하며, 평화운동의 관점에서 평화자료관을 건설하려고 한다. 그 모토는 ‘가해의 역사를 기록하기 위하여: 시민들이 보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액티브 뮤지엄을 실현하자’이다. 여기서 필자는 방문한 평화박물관 중 유일하게 이라크 침략의 부당함과 일본 자위대 파병에 대한 분명한 비판을 들을 수 있었다.

일본 평화박물관은 전쟁의 야만이 낳는 강력한 기억을 담는 일본 사회 나름의 가치 있는 공간이다. 그러나 일정한 대비는 피할 수 없다. 우리가 한국전쟁을 기억하듯 일본인들은 ‘본토 공습’을 기억한다. 가족과 이웃이 당했던 그 기억을 후대에 전승하고 싶은 욕망은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당연하게 받아들이기 힘든 공통점도 있다. 야스쿠니 신사의 전시관인 유취관에는 의외로 용산 전쟁기념관과 비슷한 메시지와 이미지가 많았다. 자신이 당한 고통만 부각하고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는 것 역시 전쟁기념관의 공통점이다. 일본에는 평양 공습의 기억이 없고, 한국에는 베트남 침략의 기억이 없다는 점도 유사하다. 히로시마에 일본 자위대 해외 파병이 전시되지 않듯 용산에는 미국의 이라크 침략이 기록되지 않는다. 공식 역사가 지배하고 민중의 역사는 생략된다.

역사에 시비를 거는 박물관으로

이 공통점은 왜일까? 아마 만들어지는 국민과 관련된 것일지 모른다. 우리가 피해자임을 집단적으로 기억함으로써 어떤 단결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그러나 평화를 성찰할 때 이러한 일방적 기억은 정당화되기 힘들다. 왜냐하면 전쟁은 한 나라, 한 집단이 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여럿이 관계되는 것이며, 서로에게 잔혹한 야만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진정한 의미에서 전쟁의 기억은 상호적일 수밖에 없다. 방문 중에 열린 한 토론회에서 도쿄 가쿠게이 대학의 기미즈카 요시히코 교수는 ‘빚진 기억’을 되새겨 ‘역사에 시비를 거는 박물관’을 인권·평화 박물관 운동의 핵심으로 규정했는데, 그 뜻이 함축적이다. 빚진 기억이란 어느 사회든 매우 시비가 될 수 있다. 우리는 원폭과 공습의 피해자 일본인들은 잘 모르지만 가해자 일본에게 빚진 기억이 있다는 것을 잘 안다. 마찬가지로 이라크인들이나 베트남인들이 볼 때 또는 남북한이 서로를 볼 때 우리에게도 스스로 잘 모르는 빚진 기억이 있을 것이다. 시비를 걸 역사가 많다는 뜻이겠다. 시비를 걸 역사를 다루는 박물관이라면 교훈을 주는 것보다는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 더 나을 듯하다.

일본을 볼 때 우리의 평화박물관은 이런 시사점에서 출발해야 할 듯하다. 전쟁에 대한 깊은 성찰은, 전쟁에 대한 기념이나 ‘조국’에 갇힌 일국적 상상력 또는 ‘피해자’로서 집착만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오히려 그러한 집착에 의문을 제기하며 국경과 민족을 넘는 상상력을 자극하고 군사력이 가져오는 야만과 고통을 느끼고 서로 연대할 수 있을 때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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