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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톡옵션, 노동자도 떼돈 번다?

등록 2004-07-09 00:00 수정 2020-05-03 04:23

<font color="darkblue">노사정위가 합의한 스톡옵션형 우리사주제 내년부터 실시… 실제 활성화는 불투명 </font>

▣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노사정위원회는 지난 6월30일, 모든 노동자가 일정 기간에 할인된 가격으로 자기 회사 주식을 취득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스톡옵션(매수선택권)형 우리사주제를 도입하기로 합의했다. 정부도 당장 올 정기국회에 근로복지기본법 등 관련 법 개정안을 제출해 내년부터 시행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말로만 듣던 스톡옵션을 이제 개별 노동자들도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일부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나 임원들이 스톡옵션을 행사해 벼락부자가 됐듯 노동자들도 주식으로 떼돈을 벌 수 있게 된 것일까?

최고 30% 할인율… 1년간 수탁기관에 둬야

노·사·정이 합의한 스톡옵션형 우리사주는 발행주식 총수의 20%(주주총회 결의) 또는 10%(이사회 결의) 이내의 물량을 스톡옵션으로 우리사주조합이 받은 뒤 2년 안에 시가의 일정 비율을 할인해 취득할 수 있도록 했다. 스톡옵션의 시가 할인율은 30% 이내로, 기업에 따라 30%도 될 수 있고 10%, 5%도 될 수 있다. 스톡옵션을 행사해 취득한 우리사주는 곧바로 시장에 내다 팔 수 없고 1년간 수탁기관에 의무예탁해야 한다. 노사정위원회 어기구 전문위원은 “스톡옵션형 우리사주제도를 시행하는 미국은 1년간 의무예탁이 없는 대신 할인율이 시가의 15% 정도이고, 영국은 20% 안팎”이라며 “우리나라는 의무예탁 기간도 있고 주식시장 변동폭이 크기 때문에 30% 이내로 더 높였다”고 말했다.

스톡옵션형 우리사주제는 시가로 자사주를 매입할 권리를 부여하는 일반 스톡옵션과 달리 회사에 기여한 일부 임직원뿐만 아니라 전체 노동자를 대상으로 하고 할인율과 의무예탁이 적용된다는 점에서 차이가 난다. 구체적인 스톡옵션 배정 물량 한도나 행사방법, 행사가격 등은 향후 관계부처 협의를 통해 확정된다. 앞으로 개별 기업에서 스톡옵션형 우리사주제를 도입하려면 먼저 정관에 도입 시기와 주식의 종류와 수, 행사가격, 한도 등을 규정해야 한다. 노사정위는 또 스톡옵션 중 일정한 물량(예컨대 50%)은 모든 종업원한테 균등하게 배분하고 나머지는 성과 또는 직급 등에 따라 차등 배분하는 등 같은 회사 안에서도 저소득층 노동자들에게 물량이 많이 배정되도록 유도하기로 했다.

지난해 말 현재 우리사주조합이 결성된 기업은 2136곳으로, 상장·등록법인은 대부분 조합이 결성돼 있지만 그 외에는 전무하다시피한 상태다. 특히 우리사주조합 중에서 실제로 우리사주를 보유하고 있는 곳은 36.1%(772개)에 불과하고, 조합이 보유하는 주식 비율도 해당 기업 전체 발행 주식의 0.8%에 그칠 정도로 이름만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노동자들이 개인 돈을 들여 유상증자 때 우선배정 방식으로 자사주를 취득하다 보니, 재산 손실을 우려해 차익이 발생할 때 전부 팔아치우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노사정위는 우리사주제 활성화를 위해 스톡옵션형 우리사주제 외에도 비상장·비등록법인에만 인정되고 있는 ‘차입형 우리사주제’를 상장·등록법인에도 확대하기로 했다. 차입형 우리사주는 우리사주조합이 회사나 금융기관으로부터 차입해 우리사주를 구입한 뒤 회사 출연금 등으로 차입금을 상환하는 것인데, 기업이 회삿돈을 무상 출연하기보다는 노동자에게 줄 성과급을 조합에 출연하는 방식이다.

스톡옵션이 도입되면 무엇보다 싼 가격으로 우리사주를 취득할 수 있는 기회가 확대돼 노동자들이 재산 형성을 도모할 수 있게 된다. 기존 우리사주제는 취득 기회가 기업공개와 유상증자로 제한되고, 노동자가 시가로 우리사주를 사기 때문에 주가하락 때 재산 손실의 위험이 컸다. 사실 대다수 기업에서 우리사주는 ‘애물단지’ ‘노비문서’로 불릴 정도로 골칫덩어리였다. 유상증자 때 사실상 강제 배정된 회사 주식을 사지 않으면 미운 털이 박히기 때문에 눈치 보면서 회삿돈을 빌려 주식을 사온 것이다. 특히 유상증자가 주로 증시가 호황일 때 이뤄지기 때문에 나중에 주가가 떨어져 막대한 손실을 입는 등 우리사주에 크게 덴 노동자들이 상당수에 이른다. LG카드의 경우 핵심 전문 경영인들은 회사가 유동성 위기에 몰리기 직전에 주식을 모두 팔아치워 막대한 시세차익을 챙겼지만 노동자들은 졸지에 빚더미에 앉았다. 2년 전 회사가 잘나갈 때 회삿돈을 빌려 우리사주를 배정받았으나 그 뒤에 주가가 폭락해 휴지조각이 돼버렸기 때문이다.

노·사·정의 ‘경영참여’ 동상이몽

반면 기업으로서는 당장의 비용 지출 없이 노동자들에게 동기를 부여해 생산성을 향상시키고 노사 관계도 안정시키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노동자의 회사 주식 보유는 기업과 종업원의 이익을 일치시켜 노사 협조의 물질적인 기반 노릇을 하기 때문에 노사 갈등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기존 주주들은 어떨까? 청와대 빈부격차·차별시정위원회 안병룡 연구위원은 “기업의 내부 사정을 잘 아는 종업원들이 자사주를 많이 보유하면 시장에서도 기업가치가 높아질 것으로 판단해 주가가 올라갈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우리사주조합에 스톡옵션에 해당하는 물량만큼 신주 발행이 늘어나면 주식가치가 희석될 수 있는데다 무엇보다 형평성을 내세우면서 기존 주주들이 반대할 가능성도 있다.

스톡옵션형 우리사주제는 노동계나 사용자쪽이 먼저 요구한 것이 아니다. 청와대쪽에서 노사 관계 안정화를 꾀할 수단으로 정부에 도입을 주문해 노사정위원회의 합의까지 이른 것으로 알려진다. 안병룡 연구위원은 “과거 우리사주조합이 최대주주였던 기아자동차를 보면 다른 자동차 업체들이 파업할 때도 파업에 참가하지 않는 등 주인의식이 형성돼 노사 관계 안정을 꾀했다”며 “현행 우리사주제가 거의 유명무실화되는 상황에서 스톡옵션을 도입해 우리사주를 활성화해 종업원 지분을 확대하면 노사 관계가 안정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스톡옵션형 및 차입형 우리사주제를 통해 노사 관계가 안정될 수 있을까? 또 당장 내년부터 각 사업장에 스톡옵션 바람이 불 것인가? 이에 대해 한국경영자총협회 양진석 전문위원은 “앞으로 스톡옵션을 노동조합이 임단협 안건으로 요구하면서 새로운 분란 요소를 만들 수 있다”며 “스톡옵션은 주총을 거쳐 정관을 변경해야 가능한 것인데, 사용자쪽이 그런 길까지 아예 차단해버리는 건 너무하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스톡옵션형 우리사주 도입의 큰 틀에서 일단 합의는 했다”고 말했다. 생산성 향상이나 노사 관계 안정화 등 스톡옵션의 효과에 별다른 기대를 걸지 않는 것이다.

반면 노동계쪽은 우리사주를 통한 경영참여에 더욱 무게를 두고 있다. 주주총회에서 노동자 대표가 의견을 개진하거나 보유 지분만큼 의결권을 갖고 이사·감사 추천권을 행사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노사정위는 우리사주조합의 이사·감사 추천권 등 경영참여 쟁점은 장기 과제로 넘겼다. 한국노총 정길오 정책본부장은 “이번에 합의할 때 경영참여와 노동자의 재산 형성 모두 다 고려했다”며 “우리사주를 조합원들이 장기 보유해야 보유 지분을 동원해 경영참여를 이뤄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사용자쪽은 ‘경영참여 없는 종업원 재산 형성’에, 노동계는 ‘경영참여’에, 정부는 ‘노사 관계 안정화’라는 서로 다른 시각에서 스톡옵션형 우리사주제를 바라보고 있다. 따라서 스톡옵션이 세 가지를 한꺼번에 만족시킬 수 있는 황금률이 될 수도 있지만, 실제로는 현장에서 도입되지 못한 채 유명무실해질 공산도 크다. 더욱이 사용자쪽이 재산 증식이라는 당근을 던지면서 대신 파업과 임금인상을 자제해달라고 요구할 경우, 노사간 ‘정치적 교환’이 이뤄질 수 있지만 오히려 노사 관계를 악화하는 불씨가 될 수도 있다.

“중소기업 노동자 또다시 소외될 수도”

스톡옵션을 받아 시가보다 싸게 샀더라도 1년간 의무예탁해야 하기 때문에 손실 위험은 여전히 존재한다. 특히 주가가 널뛰기하는 우리나라 주식시장에서 1년 사이에 30% 이상 주가가 오르락내리락하는 건 다반사다. 스톡옵션이 노동자 재산 형성에 기여할지는 모르지만 노동자 내부의 소득 격차를 더 확대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민주노동당 송태경 정책국장은 “스톡옵션으로 노동자들이 이득을 볼 가능성은 생기겠지만, 이른바 잘나가는 대기업에만 해당되지 그렇지 못한 중소기업은 또다시 소외될 수 있다”며 “스톡옵션형 우리사주는 장기 보유도 어렵기 때문에 지분에 상응하는 권리를 갖고 노동자들이 경영참여를 요구하기도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아무튼 미국과 달리 한국에서 스톡옵션형 우리사주제는 재산 형성뿐 아니라 경영참여가 걸려 있기 때문에 벼락부자의 꿈은 섣불리 꾸지 않는 게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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