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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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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은 송두율을 잊었는가

등록 2004-07-09 00:00 수정 2020-05-03 04:23

독일인이 본 2심 결심공판… 이제 그를 국가보안법의 뜨거운 가마에서, 그 너무나 좁은 관에서 구하자

▣ 한네스 모슬러(Hannes Mosler)/ 객원기자 · 독일 훔볼트대 문화학 석사

“파란 눈에 금발이었으면 한국 언론과 한국 정부가 독일 국적자인 송 교수를 이렇게 대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지난 6월30일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2심 결심공판에서 김형태 변호사가 한 말이다. 솔직히 말하면, ‘조용한 외교’를 통하겠다던 독일 정부의 노력이 ‘너무나’ 조용한 것도 같은 맥락인 것 같다. 인종주의의 비극이다.

수구세력의 희극, 진보진영의 비극

지난해 9월, 난생처음 한국행 비행기를 타게 된 송두율 교수의 두 아들과 작별 인사를 나누면서 나는 “다 잘될 테니 걱정 말고 좋은 날씨와 맛있는 음식, 정 많은 사람들과 즐겁게 보내라”고 말했다. ‘모든 게 잘될 것’이라는 까닭 없는 확신이 어디서 나왔는지 모르겠다. 다음날, 한국의 인터넷 언론을 통해 그들의 도착 소식과 환영 모습을 보고 함께 가슴 설다. 한국 민주주의의 정말 새로운 장 하나가 펼쳐지게 됐다는 설렘이었다. 하지만 오래지 않아 그런 환상은 깨졌다.

도착 다음날부터 드러난 수구세력의 ‘희극’과 이른바 진보진영의 ‘비극’은 나를 무기력증에 빠지게 했다. 수구세력은 그렇다 쳐도, 진보진영에서조차 애초에는 거의 무반응이었다. 북한 노동당에 가입하고 북에서 돈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수구세력은 송 교수가 ‘고백’을 하지 않아 난리였다면, 진보진영에서는 송 교수가 ‘미리 이야기하지 않아’ 실망했다.

1심 공판이 진행되는 동안 일부 지식인들이 지원 활동을 시작했지만, 여전히 쓴맛은 남는다. ‘함께 비를 맞아주는 것’은 고맙지만, 문제는 비 맞는 것이 아니라 그 비가 국가보안법이라는 ‘산성비’라는 점이다. 병의 징후보다 원인부터 치료하는 것이 우선의 과제다. 그렇지 않으면 함께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구조적으로 한쪽의 희생만을 요구하게 된다. 마음은 한국인, 몸은 환갑의 독일인인 송 교수는 결국 여러 경계들의 경계인이 되면서, 외로운 포로가 되어버렸다.

해외의 구명운동도 꽤 활발한 편이지만, 알아듣는 자는 없다. 벽을 보고 이야기해도 이보다는 나을 것이다. 수취인 불명이다.

신기한 것은 송 교수가 똑같은 권력관계로 인해 발생한 탄핵 사태처럼 전 사회적인 지원을 받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사람들은 그것을 알지 못하는지, 알아보기 싫어하는지 모르겠다. 진보지식인들조차 등을 돌렸다. 그들은 묻는다. 대체 왜 왔느냐고. 대답은 너무나 쉽고 너무나 간단하고 당연하다. 그는 더 이상 견디지 못했고, 믿었고, 안심했을 것이다. 송 교수를 초대하고 설득한 민주화기념사업회도, 내가 송 교수의 두 아들을 공항에서 배웅할 때의 마음과 같았을 것이다. 그리고 북한 체제와 북한 체제 접근·해석은 별개이면서 같은 맥락에서 봐야 한다는 상식을 믿었을 것이다.

검찰은 2심에서 또다시 15년형을 구형했다. 1심의 7년이 너무 가볍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이 재판은 민주주의의 기본 권리인 양심의 자유를 짓밟는 비극이다. 그리고 이를 지켜보는 국민에 대한 ‘관객 모독’이다. 온갖 비리를 저지른 정치인들이 같은 곳에서 재판받고 결국 사면된 뒤 너무나 잘살고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인권과 민주주의에 배신당한 송 교수는 한번 더 배반당했다.

오락실의 두더지를 떠올리다

“엄격한 법적 처벌도 중요하지만 이제는 우리 한국 사회의 폭과 여유를 전세계에 보여주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지난해 10월, 노 대통령의 국회 연설은 요즘 더욱더 와닿는다. 6·15 정상회담 말고도 남북한 교류를 법적으로 허용하는 ‘남북한교류협력법’이 있고, 개성공단 입주도 코앞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인권 변호사였던 노 대통령과 국가보안법 철폐를 공식적으로 요구했던 강금실 법무장관, 민변 회장이었던 고영구 국가정보원장과 민청련 부위원장이었던 이해찬 국무총리 등은 국가보안법에 대해 단 한번만 언급하고 입을 다물었다. 나는 이 정부를 보며 동네 오락실에 설치되어 있는 ‘두더지 잡기’ 놀이를 떠올린다. 오락기의 두더지는 지상으로 올라왔다가 방망이에 맞을까봐 구멍으로 서둘러 도망친다.

2001년에 만든 국가인권위원회는 국가보안법에 대한 입장 발표를 준비하고 있지만, 송 교수의 공판이 끝났을 한달 뒤인 8월쯤에야 공식적으로 언급할 수 있다고 말한다. 대체 무슨 꿍꿍이인가.
백번을 양보해서 국가보안법을 적용한다 쳐도 증거주의는 동양이든 서양이든, 분단국가든 아니든 간에 필수적이며 외면할 수 없는 원칙이다. 검찰과 재판부가 ‘소멸’을 우려했던 증거들은 다 어디에 있는가? 구체적인 증거가 없는 한 피고인은 무죄이다. 24시간 동안 전등이 켜져 있는 1평짜리 감방에 가둘 근거는 없다. ‘북한 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이라는 핵심 혐의를 증명해줄 수 있는 것은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의 진술뿐이다. 1997년 북에서 망명한 황씨는 ‘주체사상의 아버지’로 불리는 북의 핵심 이론가다. 황씨 역시 송 교수가 정치국 후보위원이라는 사실을 다른 사람을 통해 전해들은 것뿐이다. 근거가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이뤄지는 이 재판에 회의적일 수밖에 없다.
화장장의 벽돌 가마를 떠올리게 하는 서울고등법원 309호 법정에서 검찰의 15년 구형을 들었을 때, 이번 판결이 송 교수에게는 물론 한국 민주주의의 관(棺)에 박히는 마지막 못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산 채로 관에 놓여 화장되는 것이 얼마나 야만적이고 잔인한가. 그리고 ‘타는 목마름으로’ 목놓아 소리치는데도 듣는 사람이 없고 구해주는 사람이 없다는 것은 무기력 그 자체이다.

“이 재판은 시끄러운 굿판일 뿐”

국가보안법이 적어도 개정은 돼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대부분인데, 실제를 듣고 보고 말해주는 이들은 왜 이렇게 없는지 모르겠다. 국민들은 세금 말고도 믿음을 국가에 건네주었지만, 이 재판은 관객 모독뿐만 아니라 인권, 법치국가성과 민주주의를 포기한 ‘시끄러운 굿판’(Affentheater)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송 교수의 유죄 판결이 이 사회에 가져오는 영향에 대해서도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우선 이번 판결을 주시해야 한다. 누가 누구의 이익을 위해 무엇을 하는 것인지 제대로 살펴봐야 한다. 그리고 진정한 민주주의 사회를 이루기 위한 마지막 쇠말뚝 중 가장 핵심적인 국가보안법을 제거하는 행동에 나서야 할 것이다. 상식과 민주주의와 함께 송 교수를 그 뜨거운 가마에서, 그 너무나 좁은 관에서 구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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