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darkblue">군사법제도 개선 둘러싼 활발한 논의… ‘지휘관 영향력 축소’와 ‘군사법원 폐지 여부’가 핵심 이슈 </font>
▣ 최혜정 기자 idun@hani.co.kr
군사법제도 안에도 있을 건 다 있다. 군에도 검찰과 법원이 있고, 군에서 경찰 역할을 하는 헌병대가 있다. 하지만 군대 안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사건·사고, 비리 문제는 웬만해선 담장 밖으로 알려지지 않는다. 영창과 군교도소 등 군 구금시설 안에서 일어나는 인권침해 문제도, 한때 수용됐던 이들을 통해 알음알음으로 알려질 뿐이다.
‘원님재판’의 비극
군사법제도의 꼭대기에는 사단의 지휘관이 있다. 군검찰, 군사법원, 헌병대 모두 지휘관 아래에 있다. 사단 안에서 지휘관은 ‘생사여탈권’을 쥔 신(神)이다. 그리고 군사법제도의 문제점으로 지적되는 폐쇄성, 독립성 부재, 비민주성, 비전문성 등의 문제도 여기에서 나온다.
불공정한 군사법제도를 개혁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지난 2002년 군법무관 출신 판사와 변호사 9명이 집단 성명을 내면서 처음 불거졌다. 당시 이들은 “군 복무기간 중 군 조직의 명령체계 속에서 외압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해 직무상 엄정함과 공정성을 실현하지 못한 경우가 있었음을 인정한다”고 밝히며, 군 사법절차의 문제점을 공론화했다. 그리고 약 1년 뒤인 지난해 12월, 서울지검 특수3부는 김창해 전 국방부 법무관리관을 구속 기소했다. 김씨는 육군법무감, 국방부 법무관리관으로 재직할 당시 군법무관 출신 변호사 7명으로부터 국선변호료 등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김씨는 이미 2002년에 참여연대로부터 ‘업무상 횡령’과 ‘직권남용’ 등의 혐의로 고발당했다. ‘군사법 수뇌’였던 김씨의 이런 혐의는 결과적으로 군사법제도 개혁 논의에 불을 붙이는 계기가 됐다.
대법원 산하 사법개혁위원회(사개위) 전문위원 연구반은 지난 6월29일, 군사법원과 군검찰 제도 개선, 군교도소 개선 등 군사법제도에 관한 포괄적인 개선방안을 담은 보고서를 작성해 사개위에 제출했다.
전문위원들이 작성한 군사법제도 개선안은 △평시 군사법원 폐지 △고등군사법원 폐지 △2심 이후 군사법원 재판부에 민간판사 참여 △국방부 소속 순회 군판사단 운영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현행 군사법제도는 1심 보통군사법원, 2심 고등군사법원으로 구성되고, 상고심은 대법원에서 하게 되어 있다. 군사법원 설치 부대의 사단급 이상의 지휘관과 국방부 장관이 각각 1심과 2심의 관할관으로 행정사무를 지휘한다.
군검찰 조직을 군 지휘체계에서 분리해 독립성을 강화하고, 헌병·기무부대 등 군 수사기관에 수사지휘권을 부여하는 문제도 중요한 이슈로 떠올랐다. 현재 군검찰은 사단장의 지휘를 받도록 하고 있어 공정한 수사가 진행되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또 영창과 강등 같은 징계절차와 군내 사망사고 처리절차의 개선, 군대 구타 방지, 수사 단계에서 국선변호인 선정도 논의되는 등 군 인권 실태 전반에 대한 문제의식도 함께 묻어나 있다.
무엇보다도 이번 논의의 중심은 군사법원에 대한 군대 지휘계통의 영향력을 막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군사법원의 공정성 논란은 지휘권의 ‘과도한’ 보장에서 시작한다. 관할관은 군사법원이 설치된 사단장 이상의 지휘관이다. 관할관은 군사법원에서 내린 형이 과중하다고 인정되면 이 형을 줄일 수 있는 권한인 ‘확인조치권’을 갖고 있다. 공개 재판 이외에 ‘관할관 개인의 재판’이 한번 더 진행되는 셈이다. 그러나 확인조치권의 행사 과정에서 지휘관의 자의적 판단과 남용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특별한 기준 없이 관할관 개인 성향에 따라 공정하지 못한 재판 결과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원님 재판’이라는 비판이 제기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심판관 제도 역시 논란의 대상이다. 보통군사법원은 군판사 2명과 군 장교인 심판관 1명으로 구성되며, 심판관이 재판장으로 선임된다. 그러나 대개의 심판관들은 법률적 소양이 거의 없는데다 사건에 대한 별다른 책임감도 없어, 사실상 들러리에 그치는 경우가 많은 반면, 사건 관련자들의 청탁이나 압력의 통로가 되는 경우가 많다는 지적이다.
군사법원, 계속 있어야 하는가
군검찰의 위상을 높이고 독립성을 강화하는 방안이나 재판에서 항소심을 민간법원에서 담당하자는 방안, 군판사 소속을 국방부로 집중해 순회 군판사단을 운영하는 방안 등을 제안하는 것도 이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논의가 구체화되면서 입장이 가장 엇갈리는 부분은 군사법원의 존폐 문제다. 그리고 이 논의는 군사법제도를 ‘지휘권 보장’과 ‘인권보장’이라는 관점의 차이로 모아진다.
지난해 국가인권위원회의 용역으로 ‘군사법제도 운영 및 인권침해 현황 실태조사’를 한 이계수 건국대 교수팀은 이제 군사법원 폐지를 검토해야 할 때라고 주장한다. 이 교수쪽은 우선 군사법원을 통해 지휘권이 확립된다는 국방부 주장에 대해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지휘권은 지휘관의 자의적인 사법권 행사에 의해서가 아니라, 정당하고 적법한 절차를 통한 군대 안 질서를 유지할 때 확보된다는 것이다. 이 교수쪽은 징계권,, 인사권을 통해서도 지휘권 확보가 충분히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이 교수쪽은 또 군사법원에서 다루는 사건의 대부분이 영내 이탈(단순근무 이탈), 구타 등 단순 사건이라는 사실을 폐지론의 근거로 들고 있다. 이같은 범죄는 군의 특수성이나 지휘권과는 아무 관련이 없어, 민간법원에서도 충분히 심리가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당연히’ 관할관 제도 역시 폐지 대상이다. 반면 이 교수팀은 군대 안에서 발생하는 여러 사건·사고에 대한 수사 과정의 특수성이 있다는 점을 감안해, 군검찰 조직이 강화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벌어지는 인권침해를 방지하기 위해 인권교육과 변호인 수사과정 참여 확대 등 방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방부 역시 군사법제도 개혁을 국방개혁 과제로 편성해, 지난해 1월부터 군사법제도 개선추진단을 운영하고 있다. 군사법제도에 대한 문제의식은 공유하지만, 이를 해결하는 방식은 매우 다르다.
국방부는 군사법원의 존치는 물론 관할관 확인조치권까지 그대로 유지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지휘관이 사법권을 가져야 지휘권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데다, 군형법의 형량이 과도하게 무거운 경향이 있어, 관할관이 형을 감경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국방부 법무과 관계자는 “군인의 경우, 입건되는 그 순간부터 진급이 불가능해지고 형이 확정되면 아무리 형량이 적더라도 옷을 벗어야 한다”며 “밖에서 보기에는 형량이 적은 것 같아도 군인 신분의 특수성이 존재하는 것도 엄연한 사실”이라고 주장했다. 다만, 관할관이 확인조치권을 행사할 때는 그 사유를 명확히 보고하도록 해 관할관의 전횡을 막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군옴부즈만 제도의 필요성 제기
이에 대해 군법무관 출신인 이행규 변호사(법무법인 지평)는 “문제의 본질을 비껴나갔다”고 일축한다. 이 변호사는 “지휘관이 형의 감경 사유를 보고하더라도, 여기에 자의가 개입될 여지는 여전히 남는다”며 “지휘관이 법무참모와 함께 한번 더 밀실 재판을 벌이게 되고, 이는 법관에 의한 재판을 규정한 헌법의 조항에도 어긋난다”고 반박했다.
군사법제도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면서, 군인의 인권보장을 위한 군옴부즈만 제도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또 군인의 권리를 법률로 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힘을 얻고 있다. 천주교인권위원회 관계자는 “현행 법 조항에는 사병들의 권리가 없다”이라며 “군인의 실질적인 인권보장을 위해서는 군사법제도의 개혁과 더불어 군인사법 개정 또는 군인인권법의 제정 역시 함께 논의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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