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 지금은 남북경협시대 6회]
더욱 과감한 투자환경 조성만이 개성공단의 살 길… 남한도 일관성 있는 정책으로 신뢰 주어야
임을출 기자 ch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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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멀었다. 개성공단이 성공하려면 북한은 더 변해야 한다.”
북한 경제 전문가들은 북한의 최근 변화를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하지만 아직은 멀었다고 입을 모은다. 한국이 국제통화기금(IMF) 위기를 겪으면서 뼈를 깍는 구조조정을 거쳐 회생의 발판을 마련했듯이, 북한도 경제 회생을 위해서는 특단의 조처를 더 내놓아야 한다고 충고한다. 그야말로 죽을 각오를 하고 경제 체질을 개선해야 개성공단도 성공시키고, 국가도 생존력을 갖출 수 있다는 얘기다.
경제특구, 글로벌 스탠더드의 적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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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에 따르면, 오늘날 남쪽 기업을 포함해 북한이 애타게 기다리는 외국 투자자들은 매우 예민하다. 북한 당국이 “과연 잘될 수 있을까” 조마조마해하며 꾸물대는 사이 투자자들은 훌쩍 떠나버리는 게 경제특구의 생리다. 촌각을 다투는 기업들은 굳이 개성공단만 쳐다보고 무작정 기다리지는 않는다. 중국이나 동남아 등지는 여전히 한국 기업들을 “어서 오라”며 손짓하고 있다.
북한 지도부가 일단 첫 현대식 개성공단을 성공시키겠다고 마음먹었으면 과감하고도 신속하게 움직여야 양질의 투자자들을 끌어모을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북한 경제 실무자들이 최근 성공모델로 삼고 있는 중국 상하이나 선전도 결국은 중국 정부의 과감한 유인정책이 큰 구실을 했다. 북한 당국은 개성공단에 외국 기업들의 투자도 이어지기를 간절하게 희망하고 있다. 지난 2002년 11월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에서 통과시킨 개성공업지구법 제3조에도 “공업지구에는 남측 및 해외동포, 다른 나라의 법인, 개인, 경제조직들이 투자할 수 있다”고 못박고 있다.
그렇다면 개성공단이 빛을 보기 위해서는 국내경쟁력이 아닌 국제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 즉, 북한 당국은 개성공단 입주기업들이 치열한 국제경쟁에서 살아남도록 다른 나라보다 훨씬 나은 투자환경을 만들어줘야 하는 셈이다. 최막중 한양대학교 도시공학과 교수는 경제특구의 첫째 성공조건으로 경제특구에서 글로벌 스탠더드의 적용을 꼽는다. “경제특구의 기업환경이 외국과 비교해 최소한 동일한 수준이 되기 위해서는 선진국을 비롯한 외국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국제기준이 경제특구에도 그대로 적용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경제특구에서는 외국어의 소통도 자유로워야 하며, 달러·유로화 같은 외국 통화도 외국환거래규정 등의 제한을 받지 않고 통용되며, 환전에 따른 불편함이나 환차에 다른 위험부담도 갖지 않고 기업을 경영할 수 있어야 한다. 외국인의 출입국도 불편함이 없어야 하며, 특히 국가간 이동이 자유로운 자본의 특성을 감안해 특구 내 국내외 자본의 이동과 금융거래에 대해 정부의 규제를 최소화해야 한다는 게 최 교수의 지적이다. 이는 곧 북한 당국이 입주 기업들이 신바람나게 일하며 고수익을 창출할 수 있도록 최대한 자유로운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는 결론에 이른다.
최근 부작용 우려 신중한 행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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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폐쇄적인 사회주의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 북한 당국이 과연 이 정도로 자유가 범람하는 개성공단을 만들 수 있을까. 사실 중국과 베트남, 나아가 러시아가 초기 개혁·개방 정책에 시동을 걸었을 때, 성공을 낙관한 전문가들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이들은 지금 하나같이 연착륙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물론 그 과정에서 모두 엄청난 시행착오와 시련을 겪었고, 일부 지도자는 정권까지 내놓아야 했다. 북한 지도부가 개혁·개방에 불을 댕겨놓고도 신중한 행보를 거듭할 수밖에 없는 요인도 결국은 체제 유지에 대한 불안감 때문으로 보인다. 최근 갑자기 고위 간부들과 주민들에게 휴대전화 사용을 중단시킨 조처나, 지난해와 달리 남쪽과의 대규모 인적 교류에 신중을 기하는 것도 체제에 미치는 각종 부작용을 줄이려는 고육지책으로 읽힌다.
북한 변화의 상징으로 여겨지던 휴대전화는 평양에만 이미 2만대 넘게 보급됐다. 6·15 남북 정상회담 4주년을 기념하는 행사도 서울이 아닌 인천에서 열린다. 남북 학술교류를 위해 최근 서울에 들른 북한 학자들도 남쪽 사람들과의 접촉을 최소화하라는 지침을 받은 듯 그저 처신이 조심스럽기만 하다.

개성공단 사업을 지원하는 정부는 큰 틀의 제도적 장치는 이미 거의 마련됐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런저런 합의들을 이행해나가는 과정에서 맞닥뜨릴 난제는 수두룩하다. 6월5일 평양에서 끝난 경제협력추진위원회(이하 경추위)에서 구체적인 합의 이행 방안을 놓고 남북 대표간에 실랑이를 벌이는 모습들은 앞으로 지겹게 접할 것이다. 개성공단 개발 프로젝트는 북한 당국이 정권 수립 이래 처음 접하는 거대한 실험이다. 그러다 보니 그저 돌다리도 두들려보고 건너가는 식이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이를 두고 “북한은 개성공단 과실은 하루라도 빨리 맛보고 싶어하면서, 정작 마음만 급했지 행동이 따라주지 못한다”고 꼬집었다. “물론 한국 정부가 핵문제 등으로 초기 단계에서 지나치게 뜸을 들인 적도 있으나, 이제는 북한이 가속 페달을 밟으면 손에 잡히는 성과를 기대할 만하다”고 이 관계자는 귀띔한다. 이 고위 관계자에 따르면 개성공단 개발의 속도는 북한이 하기 나름이다. 북한이 핵문제 등 군사적 긴장 완화에 조금씩이라도 진전된 협력 자세를 보이면 이를 명분으로 얼마든지 공단 조성 일정을 앞당길 수 있다는 것이다.
남북한이 초조하게 기다려온 개성공단 시범사업이 이제 초읽기에 들어갔다. 남북한은 경추위 합의에 따라 개성공단 1단계 100만평 구역 안의 시범단지 조성공사를 완료하고, 올해 말까지 첫 제품을 내놓는다. 한국토지공사는 6월5일 개성공단 시범단지 입주를 신청한 136개 업체 중 심사를 거쳐 15개 업체를 입주업체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입주업체는 시계제조업체 (주)로만손과 의류업체 (주)신원, 신발제조업체 (주)세종기업 등 다양한 업종에 걸쳐 있다. 토지공사는 일단 기반시설 사용량이 적고 노동집약성이 높으며 재무상태가 양호한 업체를 중심으로 선정했다고 설명했다. 개성공단 시범단지는 최대 약 2만8천평 규모이며, 계약업체는 하반기 중 공장을 세워 제품을 생산하게 된다. 더불어 이번달 안에 개성공단 관리운영을 떠맡는 관리기관 구성도 마무리된다. 개성공단의 물적·인적 교류를 담당할 경의선 열차의 첫 시험운행도 10월께 이뤄진다.
토공 · 현대아산 · 북쪽 사업자의 협력
이제 개성공단은 활을 떠난 시위와 같아 보인다. 전문가들은 북한 스스로의 변화도 중요하지만, 남한 당국의 역할도 재강조한다. 특히 외풍에 흔들리지 않고 일관성 있는 정책을 펴는 것과, 북한이 안심하고 변화할 수 있도록 믿음을 주는 일이 개성공단 성공의 중요한 관건이라고 지적한다. 더불어 공동사업자인 한국토지공사와 현대아산 그리고 북쪽 사업자 사이의 긴밀한 협력도 민감한 투자자들의 요구사항이다. 현대아산은 지난 5월 말 조용하지만 의미 있는 이벤트를 순조롭게 마쳤다. 북쪽의 개성공단 주요 실무자들을 직접 안내해 중국 상하이 푸둥지구와 쑤저우, 그리고 선전 등을 8일간 둘러봤다. 푸둥에 입주해 있는 한국의 한 섬유회사도 방문했다. 선전은 특히 초기 단계에서 홍콩의 화교자본이 대량 흘러들어가 중국식 개혁·개방을 반석 위에 올려놓은 기여를 했다는 점에서 개성공단의 모델로 여겨지고 있다. 북한 대표단은 중국 경제특구의 개발과 특구 내 출입국 절차, 기업 창설, 세관, 노무관리 등 주로 법규 내용과 실제 적용 여부를 집중 관찰한 것으로 알려진다. 북한 대표단의 현지 시찰을 도운 현대아산의 한 관계자는 “북쪽 개성공단 실무자들에게 경제특구가 실제로 어떻게 돌아가는지 스스로 느끼고 배우도록 그냥 이곳저곳을 보여줬을 뿐”이라며 더는 언급하기를 피했다. 북한 대표단은 “중국의 개혁·개방의 성공이 결코 우연히 이뤄진 것이 아니라 중국 당국의 피나는 노력의 결과였다”는 설명에 특히 귀기울였다는 후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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