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근태 · 정동영의 “내가 제안받았다”는 기억… ‘자리다툼’으로 비치면서 모두에게 손해
김의겸 기자/ 한겨레 정치부kyummy@hani.co.kr
이라는 고색창연한 일본 영화가 한편 있다. 사무라이와 그의 아내가 산중에서 도둑을 만나고, 사무라이의 주검이 발견된다. 문제는 사무라이의 사인을 둘러싸고 관청에 불려온 아내와 도둑, 무당의 몸을 빌린 사무라이 세 사람이 전혀 다른 진술을 한다는 것이다. 각자의 처지에 맞게 진실을 변형하고 재구성하기 때문이다.
통일부 장관을 둘러싼 열린우리당의 김근태 전 원내대표와 정동영 전 의장, 노무현 대통령 세 사람의 얘기도 영화 을 닮았다.
김근태 “정동영에게 뒤통수 맞았다”
김 전 대표쪽이 전하는 내막은 이렇다.
김 전 대표는 총선 직후 노 대통령으로부터 입각을 제의받았다. 포도주를 여러 병 비운 자리였다. 통일부라고 콕 찍어주지는 않았으나, 이심전심으로 통했다. 애초 원내대표를 하고 싶었지만, 두 차례 더 요청을 받고 입각쪽으로 마음을 굳혔다. 그런데 정 전 의장이 뒤늦게 뛰어들었다. 정 전 의장은 처음에 ‘노인폄하 발언’을 만회하라는 취지에서 대통령으로부터 보건복지부를 제안받았으나, 장애인 목욕사건까지 겹치자 “도저히 못하겠다”며 통일부를 요구했다. 특히 정 전 의장은 ‘뒤집기’를 위해, 6·25 때 실종된 김 전 대표 친형들의 일을 들어 통일부 부적격을 주장했다. 한마디로 “뒤통수를 맞았다”는 것이다.
물론 정 전 의장쪽의 진술은 전혀 다르다.
노 대통령은 김 전 대표에게 한번도 통일부 장관을 언급한 적이 없다. 김 전 대표가 자가발전한 것에 불과하다. 오히려 청와대는 정 전 의장에게 통일부 장관을 맡기겠다는 뜻을 일찌감치 통보해줬다. 김 전 대표와 경쟁하는 모양으로 비칠까 걱정해 언급하지 않았을 뿐이다. 노 대통령이 김 전 대표를 선택하지 않은 것은 김 전 대표의 가족사 때문이 아니라, 진보적인 인사가 통일부를 맡을 경우 한나라당의 ‘퍼주기 논리’가 먹혀들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의 의중을 대변하는 것으로 알려진 여권 고위관계자의 말도 엇갈린다.
대통령은 처음부터 ‘정동영 통일, 김근태 복지’로 생각했고 한번도 바뀐 일이 없다. 대통령은 두 사람에게 희망사항을 물어보지도 않았다. 물어보면 말할 테고, 말하면 들어줘야 하기 때문이다. 두 사람 모두 “대통령의 뜻에 따르겠다”고 했는데, 측근들이 이런저런 얘기를 하면서 문제가 복잡해진 것이다. 대통령은 대선주자가 훈련받기에는 보건복지부가 제격이라고 생각한다. 산하단체와 예산이 많아 인심쓰기에 좋기 때문이다. 통일부나 보건복지부나 차등이 없다는 것이다.
세 사람의 진술 중 어느 것이 진실인지는 알 수 없다. 아니 처음부터 진실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다만 확실한 진실 하나는 이번 개각 정국에서 모두 상처를 받았다는 것이다. 김 전 대표와 정 전 의장 두 사람이 자리다툼을 벌인 듯한 인상을 남겼기 때문이다. 특히 김 전 대표가 입은 상흔이 깊다.
김 전 대표쪽은 “형님들의 실종은 김 전 대표가 4살일 때 일이다. 만일 그런 이유로 김 전 대표가 통일부 장관에서 배제된다면 일종의 연좌제 아니냐. 과거 군사정권에서 안기부가 김 전 대표를 공격할 때 쓰던 수법과 무엇이 다르냐”고 불만을 터뜨렸다. 김 전 대표와 가까운 한 의원은 “원수지간에도 그런 얘기는 하지 않는 법인데…”라고 서운함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말을 퍼뜨리는 사람은 항상 그림자 뒤에 숨는 법이어서, 분풀이할 대상도 마땅치 않은 형편이다. 김 전 대표가 외부와 연락을 끊고 장고에 들어간 것도 이런 답답함을 반영한 것이다.
의 끝 부분에 가면 사건의 내용을 전달하던 ‘화자’의 진실마저 의심되는 상황으로 빠져든다. 모든 것이 혼돈일 뿐이다. 그러니, 진짜 진실을 알고 싶은 사람이 직접 나설 수밖에 없다. 찾는다는 보장은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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