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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복무제 깃발, 휘날리다

등록 2004-05-26 00:00 수정 2020-05-03 04:23

시민단체 서명운동과 홍보캠페인 시작… 찬성하는 당선자 많아 입법 힘 받을 듯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대체복무제 입법운동으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 실현과 대체복무제도 개선을 위한 연대회의’(병역거부 연대회의)는 5월24일 서울 안국동의 느티나무 카페에서 대체복무제 입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연대회의는 이날 대체복무제도 초안의 뼈대를 공개하고, 앞으로 서명운동과 홍보캠페인을 시작할 계획을 밝혔다.

병역거부 연대회의가 이날 공개한 ‘대체복무법의 주요 골자’에는 대체복무의 기간과 종류 등이 제시돼 있다. 이에 따르면, 대체복무 기간은 현역병에 준하거나 현역병의 1.5배를 넘지 말아야 한다. 이는 국제 기준에 따른 것이다. 국제사면위원회(AI)는 각국 정부에 대체복무 기간이 군복무의 1.5배를 넘어서는 안 된다고 권고하고 있다. 유엔인권위도 1998년 결의안을 통해 “징벌적이지 않는 성격의 대체복무제도를 마련해야 한다”고 권고한 바 있다. 실제 대체복무가 실시되는 대부분의 나라가 이 가이드라인을 지키고 있다. 독일은 현역병 대체복무 기간이 현역병 복무 기간인 9개월보다 1개월 길고, 대만도 현역병보다 1.5배 긴 33개월의 대체복무를 실시하고 있다.

병역거부의 ‘이유’도 종교적 양심으로만 제한하지 않는다. 평화주의, 생태주의 등 윤리적·도덕적 이유도 양심상의 이유로 인정된다. 병역거부자가 병역거부 신청서와 이유서를 제출하면 공무원, 변호사, 성직자 등으로 구성된 대체복무위원회가 심사하게 된다. 병역거부의 진정성이 확인되면 대체복무를 하게 된다. 대체복무자는 복지시설, 재난구호, 환경보호 등 ‘비전투’ 분야에서 근무하게 된다.

현재 징병제를 실시하는 국가 중 대체복무를 인정하는 나라는 덴마크, 프랑스, 체코 등 25개국에 이른다. 남북한과 중국, 쿠바, 그리스 등 48개국은 대체복무를 실시하지 않고 있다. 병역거부 인정과 대체복무 실시는 1776년 미국의 펜실베이니아주에서 처음 시작됐다. 이어 1916년 영국 정부가 평화주의자들의 대체복무를 인정했고, 1920~30년대에 덴마크와 네덜란드 같은 북유럽의 신교국가에서 병역거부가 인정됐다. 양심의 자유가 종교혁명을 거치면서 형성된 개념이기 때문에 북유럽의 신교국가부터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가 인권으로 인정된 것이다. 1960~70년대에 들어서면서 프랑스, 이탈리아 등 남유럽의 가톨릭 국가로 병역거부권은 확산됐다.

대체복무 초안을 마련한 ‘병역거부 연대회의’에는 평화운동가, 변호사 등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하고 있다. 종교적 병역거부자의 변론을 해온 임종인 변호사는 지난 총선에서 17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병역거부 연대회의 공동집행위원장인 이석태 변호사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회장으로 단독 출마한 상태다. 이 밖에도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 최정민 평화인권연대 활동가 등이 공동집행위원장으로 일하고 있다. 홍세화 기획위원은 병역거부자들과 지지자들의 모임인 ‘전쟁 없는 세상’의 후원회장을 맡고 있다.

이미 대체복무제 입법 시도는 한 차례 좌절을 겪었다. 2001년 당시 민주당의 장영달, 천정배 의원 등이 종교적 병역거부자의 대체복무를 내용으로 법안을 추진하기도 했으나 기독교계 등의 반발에 부딪혀 입법이 중단된 것이다. 하지만 민주노동당이 지난 대선에서 대체복무제 도입을 공약으로 내세웠고, 민변 출신 국회의원들이 대체복무제 도입에 공감하고 있어 입법 추진이 이전에 비해 힘을 얻을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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