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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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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 경제중심도시가 보인다

등록 2004-05-04 00:00 수정 2020-05-02 04:23

지리적 이점 · 낮은 생산비용 등 개성공단의 거대한 가능성… 느긋하게 대응할 때가 아니다

임을출 기자 chul@hani.co.kr

“개성공단을 평화번영 정책의 상징으로”.

노무현 정부의 대북정책 모토다. 개성공단 개발을 평화번영 정책의 상징적 사업으로 자리매김하겠다는 것이다. 지난 4·15 총선에서 과반의석을 확보한 열린우리당은 물론 민노당, 한나라당까지 나서 모두가 개성공단 지원을 약속하고 있다. 진짜 이제 힘만 잘 모으면 개성공단은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경제특구 및 공단과 신도시가 어우러진 복합 자유 신도시로 거듭 태어나게 된다. 마침 북한 당국의 의지도 확고해 ‘삼박자’를 두루 갖춘 보기 드문 호기를 맞고 있다. ‘북핵 문제’ 걸림돌만 빠지면 그야말로 앞으로 한반도의 심장인 개성을 거점으로 한 신남북협력 시대가 시원하게 눈앞에 펼쳐질 것으로 예상된다.

입주신청기업 경쟁률 6대1

개성공단은 모두 개성시와 판문군 일대 2천만평으로 이뤄져 있다. 이 가운데 800만평이 공업지역이고, 나머지 1200만평은 생활·상업·관광 구역으로 나뉘어 있다. 공업지역은 모두 3단계에 걸쳐 개발되며, 우선 1단계 100만평은 노동집약적 중소기업 공단으로 탈바꿈된다. 2단계 200만평은 세계적인 수출기지, 3단계 500만평은 중화학·산업설비의 복합 공업단지로 변신한다.

1단계 유치 업종으로는 섬유와 의류, 신발, 피혁, 양말, 전기·전자 및 금속·기계 업종의 조립 분야 등이 꼽히고 있다. 1만평 시범단지에는 개발 초기 단계임을 감안해 용수와 전력을 크게 먹지 않고 주변 환경을 해치지 않는 업종을 가진 10여개 기업이 입주한다. 마지막 3단계에서 개성공단은 북한 경제의 지속적인 성장과 발전을 떠받치는 산업기반의 확충과 함께 첨단·정보화 사회 및 복지국가 건설의 단서를 제공하게 된다.

2천만평 전체에 대한 개발총계획은 개발업자인 현대아산이 만들어, 지금 북한과 막바지 조정 작업 중이다. 계획에는 주거 및 관광단지 조성과 골프장 건설 등도 주요 과제로 포함돼 있다. 많은 기업인들은 지금이라도 100만평 외 나머지 700만평의 개발도 서둘러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실제 현대아산, 토공 등에 따르면 개성공단 1단계 100만평에 입주하기를 희망하는 기업이 1600여개에 달한다. 1단계에 250개 안팎의 기업들이 입주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경쟁률이 6 대 1을 넘는다. 따라서 1차 입주 경쟁에서 떨어진 기업들을 지원하려면 나머지 공단의 조기 분양과 입주가 불가피한 셈이다. 이런 현실을 반영하듯 정세현 통일부 장관은 4월23일 “정부는 100만평뿐 아니라 전체 2천만평이 발전돼나가야 하기 때문에 사업자에게만 맡길 수 없어 정부 차원에서 ‘개성공단지원기획단’을 꾸릴 준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개성공단 사업은 경제적 합리성도 중요하지만 통일안보 차원의 전략성이 큰 사업이라 범정부 차원의 기획단을 꾸려 개성공단과 관련해 원스톱 서비스가 가능하도록 준비하겠다는 다짐이다.

북한의 최현구 중앙특구개발지도총국 부총국장은 최근 인터뷰에서 “개성공단은 공화국 법에 따라 공업·무역·관광지대로 하기로 결정하고, 이 사업을 남쪽과 함께 공장·산업·생활·관광 구역으로 개발한다. 여기에 남쪽 및 해외동포 기업들이 마음놓고 경제활동을 할 수 있다. 투자가들은 투자권리도 보장받기 때문에 상속권도 인정하고, 이 투자지역은 국유화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는 또 “2천만평 전체의 개발 완료시기는 2011년으로 예견하고 있다”면서 “이때쯤이면 2천여개의 기업이 입주하고, 인구는 40여만명, 고용 노동자 수는 25만명에 달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관광산업단지로서의 매력도 크다

또 투자유치액은 150억달러, 관광객 수는 150만여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며, 이 지역 출입은 무비자를 원칙으로 한다고 덧붙였다. 토공의 예측도 북한쪽의 기대 수준과 엇비슷하다. 토공은 공단이 13년이 지나야 활성화될 것으로 간주하고 이 시기 쯤이면 1600개의 기업이 입주하고, 연간 9만9천명이 고용될 것으로 예상했다. 또 해마다 171억달러어치를 생산하고, 수출액은 154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봤다.

현대아산이 만든 개발총계획안에 따르면 앞으로 개성은 △서울·인천 등 수도권과 함께 발전하는 교류협력 도시 △중국·러시아·일본의 중심에 있는 동북아 경제중심도시 △공단과 신도시가 어우러진 복합기능 도시 △자유로운 기업활동 여건이 마련된 기업중심 도시로 탈바꿈한다. 전문가들은 개성의 지리적 이점에 가장 후한 점수를 주고 있다. 홍순직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개성은 서울과 불과 70km 떨어진 수도권 공단으로 소비와 유통은 물론 남한의 사회간접자본과 기반시설의 활용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유리하다”고 평가했다. 특히 남북 철도의 연결과 함께 시베리아횡단철도(TSR)를 통한 러시아·유럽의 연결이나 중국횡단철도(TCR) 연결을 이용해 중국과 직교역 체제를 구축하면 개성은 동북아의 철도 물류 중심지가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경의선 철도와 도로는 올해 안 개통을 목표로 공사가 순조롭게 이뤄지고 있다. 또 인천 항만과도 연결됨으로써 동북아 해상물류 거점으로도 손색이 없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국제적인 관광산업단지로서의 매력도 빼놓을 수 없다. 고려왕조의 500년 도읍지인 개성에는 선죽교, 태조왕릉, 공민왕릉, 덕물산, 고려왕궁터인 만월대 등 고려왕조와 관련된 역사유적이 널려 있다. 특히 고려박물관에는 1만여점의 유적들이 고스란히 전시·보관돼 있다. 한국관광공사는 보고서에서 “연간 45만~80만명의 관광객 수요가 예상되며, 단기적으로 전체의 60~70%가 10만원대의 비용과 당일 관광을 선호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 밖에도 개성공단은 월 57.5달러의 싼 인건비, 낮은 기업소득세, 무관세와 무비자 등 생산 여건 측면에서 한국과 중국에 비해 유리한 조건을 갖고 있다. 통행·통신·통관과 자유 송금의 보장, 고용과 해고의 유연성을 보장하고 있다는 점도 기업의 매력을 끌고 있다.

북한이 공단 운영에 적극 협력할 경우 당장 공단 조성과 운영 참여 과정에서의 인건비, 원부자재 판매, 운임 수입 등을 취할 수 있다. 토공은 “한국의 기술과 경영 노하우 습득 및 철도·도로 등 공단 주변의 인프라 현대화로 공단 연관산업의 발전을 도모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홍순직 연구위원은 ‘개성공단 개발의 경제적 효과 보고서’를 통해 북한은 개성공단 개발이 순조롭게 진행될 경우 앞으로 9년간에 걸쳐 모두 95억5천만달러의 경제적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밝혔다. 이는 2002년 국가 총예산과 무역액의 4배에 달하는 규모다. 홍 위원은 이 가운데 공단 조성 및 운영 수익 7억달러, 원부자재 판매수익 25억달러, 그리고 철도운임과 토지임대료, 기업소득세 14억달러 등 모두 46억달러의 직접 외화수입을 올릴 수 있다고 덧붙였다. 북한은 경제회생의 결정적인 돌파구를 개성공단에서 직접 마련할 수 있게 되는 셈이다.

북한 지도부, 조급한 속내

이제 북한의 인내심이 성패의 주요한 관건으로 읽힌다. 북한의 박창련 개성공업지구 개발지도총국장은 지난 4월13일 토지임차료 계약체결 때 여러 차례 개성공단의 조속한 건설을 드러내놓고 재촉해 눈길을 끌었다. 수천만평의 넓은 금싸라기 땅을 내놓고 4년 가까이 기다려온 북한 지도부로서는 속이 바싹바싹 탈 법도 하다. 하지만 북한은 중국의 경제특구 효과가 10여년이 지나 가시화됐다는 점을 고려해야 할 듯하다. 물론 중국과 북한의 처지를 동일하게 볼 수는 없다. 이번 용천역 대폭발 참사가 잘 보여주듯 북한의 절망적인 경제난을 감안하면 남쪽 정부나 개발업자, 그리고 기업들이 중국처럼 느긋하게 대응해서는 안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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