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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럽은 발 뻗고 주무시라”

등록 2004-04-08 00:00 수정 2020-05-03 04:23

폴란드 국경수비대 포드라스키 지역대 사령관… 옛 소련 국가들 밀입국 방지에 최선 다해

비아위스토크(폴란드)= 권혁철 기자 nura@hani.co.kr

3월2일 오전 폴란드 국경수비대 포드라스키 지역대 정문. 눈을 맞으며 굳은 표정의 병사가 AK 소총을 들고 보초를 서고 있었다.

하지만 집무실에서 만난 브워지미에즈 그리츠 폴란드 국경수비대 포드라스키 지역대 사령관은 매우 친절했다. 그는 취재진에게 영문으로 된 국경수비대 소개 CD롬을 건네주면서 “모든 자료는 CD 안에 다 들어 있다. 질문에 성심껏 대답하겠다. 우리의 모든 것을 보여주겠다”고 말했다.

밀입국 방지 전담 부대 13개 창설

전날 폴란드와 벨로루시 국경 지역을 취재하다 20대 폴란드 국경수비대원에게 붙들려 고생했던 기자는 ‘동양이나 서양이나 지위가 높은 양반은 기자에게 약하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의 친절은 유럽연합(EU) 가입을 앞둔 의도적 홍보활동의 일환이었다.)

먼저 우리에겐 용어조차 낯선 폴란드 국경수비대가 뭔지 물어봤다. “국경을 지키고 통제하는 게 주임무다. 마약 등 위험하거나 해로운 물질의 밀수를 막고 국경 근처에서 범죄 예방 활동 등을 한다. 국경에서 경찰과 군대 구실을 하고 있다.”

7개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폴란드는 국경수비대가 각 거점 지역에 국경수비대 지역대를 두고 있다. 포드라스키 지역대가 맡은 국경선은 리투아니아 102km, 벨로루시 270km 등을 합쳐 모두 372km이다. 지난해 포드라스키 지역대 관할 지역을 통해 725만4천명이 이동했고, 버스·트럭·승용차 등 차량 271만9천대가 통과했다고 한다.

폴란드가 5월1일 유럽연합에 가입하면 폴란드와 벨로루시, 리투아니아 국경선이 유럽연합의 동쪽 끝 국경선이 된다. 크리츠 사령관은 “프랑스나 독일 등 기존 유럽연합 가입국들은 폴란드 국경을 통해 불법 입국자나 마약 밀반입 등이 늘어날까 걱정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수년 전부터 유럽연합 가입 준비를 착실하게 해왔다. 국경수비대 인원과 편제를 유럽연합 기준에 맞춰 조정하는 중이다. 지난해 10월에는 밀입국 방지를 전담한 부대 13개를 새로 창설했다. 유럽연합의 자금 지원을 받아 정보·통신·운송·항공 장비도 확충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남의 돈으로 장비를 갖춘 게 마음에 걸린 듯 그리츠 사령관은 “국경수비대의 장비는 유럽연합의 지원으로 마련했지만, 부대 창설과 장비 유지는 폴란드 납세자의 세금으로 하고 있다. 우리가 모든 것을 외부에 의존하는 것은 아니다”고 덧붙였다.

유럽연합 지원으로 첨단 장비 갖춰

그리츠 사령관은 관할 지역에서 붙잡힌 불법 입국자는 지난해 137명이라고 밝히고, 생각보다 불법입국자 수가 많지 않다고 강조했다. 특히 조직적인 밀입국 사례는 지난해 3건(45명)에 불과했으며, 불법 입국자들도 아프가니스탄·인도·베트남 등에 몰려 있다고 했다.

그는 폴란드 국경수비대의 훈련과 장비는 세계적인 수준이라고 자랑했다. 국경수비대원들이 24시간 차량과 선박, 헬기, 항공기로 감시하고 있으며, 취약 지역 국경 근무자들은 위성항법시스템(GPS)과 적외선 카메라 등 첨단 장비를 갖추고 있다고 설명했다.

1시간가량 진행된 인터뷰 내내 그리츠 사령관은 서유럽 국가들이 걱정하는 것처럼 벨로루시나 리투아니아 같은 옛 소련 연방국가들로부터 폴란드 국경을 통해 대거 밀입국한 뒤 서유럽으로 몰려올 가능성은 기우에 불과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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