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모를 통한 자아 실현의 기쁨 누리는 남성들… 억압적 몸매 가꾸기는 또 다른 차별 낳을 수도
“아니, 미인대회 반대한다는 사람이 왜 외모엔 그렇게 신경을 써?”
오래 전, 좀 특별한 만남이 있어 거울 앞에서 몸차림을 이리저리 살피던 내게 남편이 비아냥을 섞어 툭 던진 말이다. 성질 급한 나는 가슴부터 턱 막혔다. 함께 사는 사람까지도 저런 오해를 하고 있구나 하는 답답함이 우선 숨통을 조였고 다음으로는 그 오해를 단숨에 깨뜨려줄 간단명료, 일목요연한 설명이 쉽게 이어지질 않았기 때문이다. 내 능력이 모자란 탓이 우선 크겠으나 이 문제, 즉 외모문제가 안고 있는 문제의 지형이 그만큼 복잡하고 모호한 탓도 적지 않다.
‘페미니스트들은 외모를 무시하는 비(非)성적인 여자들 아니냐’, ‘미인이 많으면 좋지 왜 미인을 미워하느냐’, 이런 류의 질문들을 접할 때 내가 해온 가장 간단한 대답은 ‘우리는 이른바 미인을 뽑는 대회를 반대하는 것이지 미인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것이었다.
누가 미인을 거부한다고 했는가
그러나 이 설명으로는 부족한지, 아니면 도대체 코드가 맞질 않는 것인지 그 난감한 오해의 시리즈는 오늘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미인은 반대하면서 왜 미남은 노골적으로 좋아하느냐’는, 갈수록 커지고 있는 남성들의 볼멘소리도 그 시리즈 중의 하나가 될 것 같다.
다시 한번 강조하거니와 나를 비롯한 미인대회 반대자들이 박멸시키고 싶은 것은 ‘대회’이지 ‘미인’이 아니다. 우리는 오히려 여성을 인간이 아닌 성적 대상으로 물화시켜 여성차별을 유지시키는 성정치의 수단이자, 아름다움을 억압과 규제와 획일로 경험케 하는 미인대회가 없어진다면 우리 사회에 더 많은 미인들이 발랄하게 넘쳐날 것이라고 믿는다. 실제로 미인대회 참가자처럼 생겨야만 미인으로 인정받는 독재적 사회에서는 그 기준에 들지 못하는 거의 대부분의 여성들은 자신을 미인이 아니라고 ‘믿고 있다’.
성적 상품이 아닌 인격을 담지하고 있는 육체 혹은 외모, 다양한 아름다움의 인정, 억압과 감시의 결과가 아닌 개성과 쾌락으로서의 외모 가꾸기, 이런 조건들이 총족된다면 외모가 의혹과 비난의 시선을 받을 이유가 전혀 없다. 몸의 복권 시대 아닌가. 그뿐만 아니라 이는 여성과 남성 모두에게 해방의 기쁨도 가져다준다. 아이로니컬하게도 여성들은 성적 대상화와 동시에 순결과 정조라는 이름 아래 성적인 발현 혹은 도발의 자유도 억압당해왔다- 페미니스트들과 여성을 억압하는 종교지도자들이 똑같이 미인대회를 반대하는 기묘한 풍경은 이런 이중언어의 모순적 맥락에서 발생하는 것이다. 따라서 주체적인 외모가꾸기를 통한 자유로운 성적 발현은 여성들에게 커다란 해방의 경험이 될 수 있다.

남자들 역시 남성은 정신, 여성은 육체라는 이분법 속에서 긴 시간 동안 외모에 대한 억압을 경험해왔다. 지금은 ‘꽃미남’이라고 대우받지만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기생오래비’들은 남성성을 ‘오버’해서 과시하는 등 미모 콤플렉스에 시달려야 했다. 여자들에게 남다른 똑똑함이 그러했듯.
사회적으로 꽃미남이 선호되고 화장하는 남자, 외모에 신경쓰는 남자들이 늘어나고 있는 현상은 일단 긍정적으로 보인다. 여성도 남성을 택할 때 성적 매력을 중요한 요소로 고려할 수 있게 주체적, 독립적인 힘이 생겼다는 얘기고, 또 외모를 통해 개성과 성적 매력을 발현시키고 확인하는 일, 즉 외모적 자아실현은 인간의 본능적 쾌락인데 이를 남성도 누릴 수 있게 됐다는 것은 우리사회도 그만큼 해방된 사회를 향해 한 걸음 나아갔다는 것이니까.
반갑다, 꽃미남들… 자유와 차별 사이
그러나 유의해야 할 함정이 있다. 우리 여성들이 장구한 세월 질리도록 경험해왔듯 자연스러운 외모 가꾸기에 권력과 지배관계가 개입하면 외모는 억압이 되고 부자연스러워진다. 미스코리아대회 참가자들의 그 작위적인 미소를 보라! 우리 페미니스트들은 꽃미남 선발대회가 있어도 역시 ‘안티’를 걸 것이다. 또 외모의 자유로운 발현과 그에 대한 가치인정이 인간의 전인성과 존엄성을 무시하는 외모주의, 외모차별로 변질되지 않도록 주의할 일이다. 그 경계는 참으로 아슬아슬한데 그것이 바로 외모적 자아실현이라는 자유가, 인권 그리고 평등이라는 동반자를 꼭 필요로 하는 이유다.
김신명숙 | 〈이프〉 편집위원·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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