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병 근무자·구금 경험자·국감자료 등을 통해 본 군 구금시설의 문제점들

많은 사람들이 군대 감옥을 통틀어 영창이라고 하지만, 군의 구금시설은 기결수를 수용하는 군 교도소와 미결수를 수용하는 헌병대 영창으로 나뉜다. 군대 안 구금시설은 ‘군’과 ‘구금시설’이란 두겹의 특수성 때문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그동안 관심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던 군 구금시설을 국정감사자료와 헌병 근무자, 구금시설 수용 경험자 등의 증언을 통해 조명해봤다.
수용자 줄어들며 처우 개선된 육군교도소
군 교도소는 육해공군 참모총장이 지휘감독하며 현재 경기도 장호원에 있는 육군 교도소만 운영되고 있다. 흔히 ‘남한산성’으로 알려진 육군교도소는 1985년 경기도 성남시 남한산성에서 장호원으로 옮겼다. 육군교도소에는 육군뿐 아니라 공군·해군·해병대 소속 군인들도 수용되어 있다.
육군교도소는 1990년, 91년, 93년 수용자들이 교도소 당국의 구타와 부당한 처우에 항의해 집단 폭동을 일으킨 적이 있었다. 하지만 총을 들기 거부해 항명죄로 육군교도소에 수감되던 여호와의 증인 신자들이 2001년 8월 이후 민간교도소로 수감되면서 육군교도소의 수용자가 줄어들었다. 국방부 국정감사자료에 따르면 2000년까지는 매년 육군교도소 일일 평균수용인원이 300~500명이었다가 2001년 271명, 2002년 130명으로 줄었다.
이에 따라 대부분 과밀 수용에서 비롯된 수용자 처우와 인권 상황이 어느 정도 개선된 것으로 알려졌다. 군 관계자들은 최근 수용자들이 영창을 지옥, 육군교도소를 천국으로 비교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두곳의 시설은 큰 차이가 없지만, 여호와의 증인 신자들이 민간교도소로 간 뒤 과밀수용 문제가 해결되면서 육군교도소 근무헌병들이 업무부담이 줄어들었다. 다른 업무부담 없이 교도업무에만 종사하는 육군교도소 헌병들은 수용자들에게 높임말을 쓰고, 간부들도 근무헌병에 대한 감독을 내실 있게 할 수 있게 됐다.”
최근 군 당국도 직계 가족에게 수용자 시설을 볼 수 있게 하여 가족들의 불안감을 해소시켜주거나, 복역 중인 군인들과 가족끼리 운동회를 열고, 부모 초청 강연 등을 여는 등 육군교도소의 부정적 이미지를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군 관계자들에게 구타 여부 등 군 구금시설의 상황을 물으면 “지금이 쌍팔년(1988년) 군대냐. 더 이상 군대는 때리고 패는 수준 낮은 집단이 아니다”고 역설하곤 한다. 흔히 하는 말로 ‘군대 좋아졌다’는 것이다. 시민단체와 인권단체들도 90년대 후반 들어 군대 안의 인권상황이 개선되고 있다고 인정한다.
하지만 지난해 7월 밝혀진 총기 강도 누명을 쓴 부사관(옛 하사관) 3명의 억울한 옥살이는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1998년 9월 강원도 화천군 한 부대에서 근무하던 정아무개(28·당시 중사) 등 부사관 3명은 내무반에서 K2 소총을 훔쳐 강도를 모의한 혐의로 구속됐다. 정씨 등은 구속영장이 발부되기도 전에 열흘 동안 헌병대 영창에서 지냈다.
“개처럼 주저앉아 밥을 먹으며…”

당시 함께 영창에 있었던 군인들은 이들의 얼굴과 몸에 멍이 가실 날이 없었다고 했다. 이들은 군사재판을 거쳐 대법원에서 5년형 확정판결을 받았다. 지난해 서울고법에 재심을 청구해 무죄판결을 받은 뒤 이들은 “온몸이 묶인 채 시멘트 바닥에 개처럼 주저앉아 밥을 먹으면서 과연 이 나라가 민주주의 국가인가 생각했다”고 울먹였다. 헌병대 영창에 불법 구금된 이들은 자백을 강요당하면서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했고, 하루에 2시간 이상 잠을 자지도 못했다고 증언했다.
부사관들의 재심청구를 맡은 서울고법 형사4부는 “검찰이 범행을 부인하는 피고인들을 새로운 시각에서 접근하지 않고 군사법경찰과 검찰이 혼재되어 수사를 진행했다”고 지적했다. 민간인은 사건이 경찰에서 검찰로 송치되면 경찰서 유치장에서 법무부 산하의 구치소로 신병이 넘어가지만, 군인은 재판이 끝날 때까지 헌병대 영창에서 지내야 한다. 민간인은 경찰에서 억지로 허위자백을 한 뒤 검찰에서 이를 부인하더라도 경찰로 다시 불려갈 걱정은 하지 않는다. 그러나 헌병대 영창에서 지내야 하는 군인들은 군검찰에서도 헌병대 조사내용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군법무관 출신인 한 변호사는 “헌병대가 운영하는 영창을 군검찰에서 제대로 감독할 수 없고, 수양록 작성 등의 명분으로 군검찰에서의 수사상황도 헌병대에서 파악하는 등 문제점이 있다”고 말했다.
구금시설은 죄지은 사람들을 가두고 벌주는 구실뿐 아니라 재범 방지 같은 교화 구실을 해야 한다. 현재 영창은 가두는 기능만 있을 뿐 교정·교화 기능 프로그램과 전문인력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영창의 교정업무는 헌병대 형무계에서 맡고 있는데, 부대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부사관인 형무계장 1명과 병사인 형무계원 1명이 전부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특히 행정처분인 징계를 받아 영창에 들어온 병사들은 법적으로 피의자나 미결수 신분이 아닌 자유인이다. 하지만 영창에서는 미결수에게 주어진 독서와 면회, 편지쓰기 등 많은 권리는 부대마다 차이가 있지만, 징계 입창자들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일부 지휘관이나 헌병 근무자들은 죄를 짓고 영창에 들어온 병사들이 일선부대에서 땀흘려 훈련하는 병사들보다 편하게 지내면 곤란하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헌병으로 군복무를 마친 김아무개(27)씨는 “신병 때 병장을 영창까지 호송한 적이 있다. 대개 병사끼리는 소속부대가 다르면 계급 차이가 나더라도 서로 말을 높이는 관례가 있고, 당시 나는 이등병이고 상대가 병장이라 함부로 말을 놓기가 불편했다. 그래서 호송과정에서 높임말을 썼는데 이 사실이 알려져 고참들과 지휘관에게 아주 혼이 났다. ‘죄지은 놈들은 고생을 좀 해야 하고, 헌병이 만만하게 보이면 수용자들이 기어오른다’는 이유였다.”

고위 장교들에겐 면죄부 구실도
병사들에게 저승사자 같은 영창이 경우에 따라 고위 장교들에겐 면죄부 구실도 한다. 기소돼야 할 범죄행위가 형벌이 아닌 구금을 당한 것으로 끝나는 것이다. 지난해 1월 육군 고등검찰부는 군납비리에 얽힌 현역 장군 2명을 기소유예했다. 육군은 이미 같은 사건으로 구속기소된 영관급 장교와의 형평성 문제가 제기되자 “장군들이 20일가량 군 영창 신세를 졌다면 충분히 죗값을 치른 게 아니냐. 구속기소하는 데 전혀 문제가 없지만 장군들을 예우해줬던 전례에 비춰 기소유예가 적절한 결정이다”고 설명했다. 이런 군의 시각은 원래 불구속 재판이 원칙임에도 인신구속을 사전형벌로 여기는 문제점을 갖고 있다.
군 관계자들은 지휘관의 징계처분으로 영창에 들어가는 병사들이 너무 많다는 지적에 대해 “징계처분은 전과자 양산을 막고 지휘권을 확립하기 위한 조처”라고 설명한다. 이른바 ‘징계 입창’ 처분을 받은 병사들에게 곧이곧대로 군법을 엄격하게 적용할 경우 형사처벌을 받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신체의 자유를 구속하는 영창 입창 처분은 법관의 판단에 따라야 마땅하다. 법률가들에 따르면 군사법원법의 해당조항을 개정하면 영창처분을 군판사의 권한으로 할 수 있다. 또 군에서 걱정하는 지휘권 확립을 위해 즉결심판을 요청하는 권한을 관할 헌병대장에게 국한하지 말고 해당 지휘관에게도 주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
권혁철 기자 nu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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