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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서해 피격 공무원 ‘자진월북 아니다’ 번복 발표에…“새로운 증거 없고 청장 지시”

윤성현 전 남해청장 3년 만에 의혹 증언
박상춘 당시 인천해경서장과 통화 공개
등록 2025-10-29 09:14 수정 2025-10-29 09:25
2020년 9월29일 오전 인천시 연수구 해양경찰청에서 윤성현 전 남해해경청장(당시 해경 수사정보국장)이 ‘서해 피격 공무원’ 이아무개씨와 관련한 중간 수사 결과를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2020년 9월29일 오전 인천시 연수구 해양경찰청에서 윤성현 전 남해해경청장(당시 해경 수사정보국장)이 ‘서해 피격 공무원’ 이아무개씨와 관련한 중간 수사 결과를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2020년 북한 영해에서 피격당한 공무원이 자진 월북한 것으로 결론지은 해양경찰청 중간 수사 결과가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인 2022년 번복되는 과정에서 ‘윗선’이 작용했다는 관계자 진술이 나왔다.

사건 당시 해경 수사정보국장으로 수사를 전담했던 윤성현 전 남해해경청장은 2025년 10월28일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2022년 6월16일 ‘월북 혐의점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수사 결과가 발표되기 전날 박상춘 당시 인천해경서장(현 제주해경청장)과의 통화에서 이런 말을 들었다”고 전했다.

윤 전 청장은 “수사 결과 발표 전날 내가 박 당시 서장에게 전화를 걸어 통화했다”며 “(박 서장이) ‘본청(해양경찰청)에서 우리(인천해경서)에게 발표를 하라고 한다’고 했다. 그래서 새로운 증거가 나온 것이냐고 묻자 ‘그런 것은 없다’고 했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박 서장이) ‘30여년 동안 수사를 단 한번도 해본 적 없고 수사의 ‘수’ 자도 모르는데 발표를 저에게 하라고 해서 엄청나게 화가 나고 짜증이 난다’고 말했다”며 “새로운 내용이 없으면 번복 발표를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자 (당시 박 서장이) ‘청장의 지시를 거역할 수 없는 것 아시지 않느냐’, ‘중간 수사 결과 발표는 본청에서 했는데 이런 민감한 발표를 왜 우리에게 시키는지 모르겠다’고 불만을 털어놨다”고 전했다.

이런 전화통화 내용에 대해 2025년 10월22일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의 해경청 국정감사에서 박 청장은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의 질문을 받고 “사실이 아니다”, “그런 기억이 없다”는 취지로 부인했다. 박 청장은 한겨레에 “현재 이 사건은 재판이 진행 중”이라며 답변을 피했다.

윤 전 청장은 2020년 9월29일 당시 본청 수사정보국장 신분으로 서해 피격 공무원 이아무개씨가 자진 월북한 것으로 판단된다는 중간 수사 결과를 직접 발표했던 인물이다. 월북 판단 근거로 군특별취급정보(SI) 내용과 조류 방향, 선박에 있던 슬리퍼, 구명조끼 등 7가지를 꼽았다.

하지만 2022년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뒤 해경은 정황과 추정을 넘어서는 월북 증거는 확보하지 못했다며 자진 월북으로 단정할 수 없다는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해경의 수사 결과 발표 이후 윤 전 청장은 감사원 감사와 검찰 수사를 받아왔다. 윤 전 청장은 3년 동안 수사를 받아오면서 2개월 정직, 7개월 직위해제 등의 조치를 받았지만 언론 등에 입장 표명을 자제해왔다. 하지만 그는 오는 2025년 10월30일 국회 농해수위 해양수산부 종합 국정감사에서 참고인으로 나와 이 사건에 대한 각종 의혹에 대해 증언하겠다고 농해수위와 한겨레에 밝혔다.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은 2020년 9월22일 밤 전남 목포의 해양수산부 어업관리단 소속 공무원 이아무개씨가 연평도 인근 해역에서 실종됐다가 실종 지점에서 북서쪽으로 38㎞ 떨어진 북한 황해남도 강령군 등산곶 해안에서 북한군의 총격에 숨진 사건이다. 주검은 발견되지 않았다. 윤석열 정부에서 해경이 이씨의 월북 정황을 확인하지 못했다는 수사 결과를 발표하자 감사원 감사와 검찰 수사 등이 이어졌고 서훈 전 청와대 안보실장과 서욱 전 국방부 장관 등이 구속 기소됐다.

이승욱 기자 seugwook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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