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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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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활가는 노숙자들

등록 2002-07-31 00:00 수정 2020-05-02 04:22

노숙인 쉼터. 노숙자의 처지로 내몰리기 직전에 놓인 사람들이 잠시 몸을 의탁하는 곳이다. 쉼터에 들어온 사람들은 1년 안에는 다시 떠나야 한다. 그러나 일을 하고 돈을 모아 어느 정도 자립기반을 마련한다고 해도 이들이 예전생활을 다시 회복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이미 가족이나 친구들과의 관계가 거의 단절돼버렸기 때문이다.

서울 남부노인노숙인 쉼터 국신호(31) 간사가 이들을 위해 마련한 프로그램은, 그동안 대학생들의 전유물이던 농촌봉사활동이다. 노숙인들의 자활을 가로막는 가장 큰 적은 삶의 낙오자라는 ‘무력감’과 ‘인간관계의 단절’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전국의 쉼터 이용자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도 절반 이상이 “쉼터를 이용했다”는 ‘사회적 낙인’을 가장 걱정했다고 한다. 그런 만큼 이들은 다른 사람을 만나는 것 자체를 매우 꺼린다. 농촌봉사활동은 그런 두려움을 깨뜨리기 위한 작은 시도다.

지난해에도 쉼터 식구들과 농촌봉사활동을 다녀오기는 했지만, 하루짜리 맛보기였을 뿐이다. 이번에는 좀더 긴 3박4일짜리다. 돈벌이를 잠시 쉬어야 하는데도, 쉼터에 거주하는 11명 가운데 9명이 함께 가기로 했다. 8월1일부터 전북 완주군 비봉면의 농촌마을에서 시작될 이번 봉사활동을 위해 벌써 한달 전부터 참가자들끼리 회의를 하고, 할 일을 서로 나눴다.

“쉼터 식구들이 나도 누군가를 도울 수 있고, 다른 사람들과 다시 사귈 수 있다는 자신감을 회복하는 계기가 되면 좋겠어요.” 국 간사의 얘기다. 쉼터 식구들의 평균나이는 45살가량이다. 가장 많은 사람이 60살이다. 농촌에 가면 이들은 가장 젊은 축에 속할지도 모른다. 국 간사는 “쉼터 식구들로서는 농촌에 정착할 수 있는지 탐색하는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함께 며칠을 보낼 농촌마을 사람들이 노숙인에 대한 인식을 바꾼다면 더 바랄 게 없겠다”고 말했다.

정남구 기자 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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