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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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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대통령, 친구의 친구를 임명한 까닭은

법관 30년 뚜렷한 발자취 없는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
“법원 개혁 되돌리고 판사들 줄 세우려는 의도”
등록 2023-09-02 10:32 수정 2023-09-02 23:13
대법원장 후보에 지명된 이균용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가 2023년 8월23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한겨레 백소아 기자

대법원장 후보에 지명된 이균용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가 2023년 8월23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한겨레 백소아 기자

2020년 7월4일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이 서울 서초동 한 결혼식장에 모습을 비췄다. 추미애 당시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 발동(‘검언 유착 의혹’ 사건 관련)을 놓고 대외 노출을 아끼던 때다. 대학 동기이자 ‘친한 친구’인 문강배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의 자녀 결혼식이었다. 일부 언론은 두 사람의 ‘각별한 의리’에 주목했다. 2023년 8월22일 그 ‘친한 친구’의 ‘친한 친구’인 이균용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가 제17대 대법원장으로 지명됐다.

이균용 아니면 오석준, ‘썰’이 돈 이유

사실 윤 대통령 취임 직후부터 법원 안팎에서는 ‘대통령과 특수관계인 이균용과 오석준(현 대법관) 부장판사가 차기 대법원장 후보’라는 ‘썰’이 공공연하게 나돌았다고 한다. 그러면서 ‘설마 진짜 시키기야 하겠느냐’는 분위기가 강했다고 한다.

“이균용 후보자는 대법원장 인재 풀에 들 수 없는 사람이에요. 법조계에서 ‘의외’라는 반응이 나옵니다. 김명수 현 대법원장도 갑자기 툭 튀어나왔다는 평가를 받던 인물이지만, 그래도 당시엔 ‘판사 블랙리스트 의혹’이 나왔을 때죠. 전임 대법원장(양승태)보다 13기수(사법연수원 기수) 아래인 개혁적인 인물로 관료화된 법원을 개혁한다는 메시지가 있었죠. 그런데 지금은 대통령과의 사적인 관계 말고는 설명이 안 됩니다. 남들이 어떻게 보는지 신경 안 쓰고 시키는 것 같네요.”(판사 출신 ㄱ변호사)

한 고등법원 ㄴ부장판사는 “윤석열 정부가 가인 김병로 같은 인물을 대법원장에 임명할 용기가 없다는 건 다들 알았잖아요. 정치적 기반도 없는 상황에서 자기 사람 중 가장 무난한 사람을 뽑은 것 아니겠냐는 게 냉정한 평가”라며 “중요한 건 ‘썰’이 현실이 됐다는 거죠. 충성서약이라도 한 것인지…”라고 말했다. 초대 대법원장인 가인 김병로(1887~1964)는 반공주의자면서도 국가보안법 폐지를 주장했고, 친일파 처벌에 미온적인 이승만 정부와 대립하면서 사법부 독립의 초석을 놓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좌우를 떠나 법조계에서 두루 존경받는 인물이다. 1956년 국회 연설에서 이승만이 “우리나라 법관들은 세계 유례가 없는 권리를 행사한다”고 비판하자, “이의가 있으면 항소하라”고 맞대응한 일화도 유명하다.

이균용 후보자 지명이 사법부와 행정부 간 견제·균형을 훼손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최영승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겸임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대법원은 삼권분립에서 재판의 독립성·중립성을 보호하는 최후의 보루예요. 대법원장은 대통령을 수반으로 하는 막강한 행정권으로부터 사법권의 독립성을 수호해야 하고요. 대통령과 대법원장이 가깝다면 사법부가 행정부를 제대로 견제하고 제 목소리를 낼 수 있을까요? 특히나 검찰총장 출신 대통령의 탄생으로 ‘검찰국가화’ 경향이 강해지는 현실에서 행정부 견제와 긴장 관계 형성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첫 발언이 “자유와 권리에 봉사하고…”

이 후보자도 대통령과의 친분을 인정한다. “제 친한 친구의 친한 친굽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제 연수원 동기(문강배 변호사)와 아주 친한 분이기 때문에. 단둘이 만난 적은 없지만, 친하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2022년 10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이균용 당시 대전고등법원장) 그러면서도 우려를 의식해, 2023년 8월23일 대법원장 면담에 앞서 기자들을 만나 “(윤 대통령과는) 그냥 아는 정도지,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고 보긴 어렵습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최근에 무너진 사법 신뢰와 재판의 권위를 회복해 자유와 권리에 봉사하고 국민의 기대와 요구에 부응할 수 있는,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바람직한 법원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성찰해보겠습니다.”

지명 이후 내놓은 이균용 후보자의 첫 공식 발언도 주목받는다. 윤석열 대통령의 트레이드마크 격인 ‘자유’를 언급했기 때문이다. “권리나 소수자 보호는 법관들이 법정에서 종종 쓰는 단어인데, 자유는 아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제헌절에 ‘헌법은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확보한 결과’라고 한 것과 코드를 맞춘 것 같다”(ㄱ변호사)는 평가가 나온다.

자기 색깔을 잘 안 드러내려 했던 이전 대법원장 후보자들과도 스타일이 구별된다. 지명 뒤 첫 공식 발언을 돌이켜보면, 김명수 대법원장(제16대)은 “(지명 이후) 분에 넘치는 기대와 상당한 우려가 있다는 걸 알았다”고 말했다. 양승태 대법원장(제15대)은 “저보다 훨씬 경륜이 많은 사람들이 많은데 제가 지명이 된 게 어떤 면에 송구스럽다”고, 이용훈 대법원장(제14대)은 “나는 진보도 보수도 아니다”라고 했다.

대통령실은 이 후보자 지명 당시 지명 이유로△32년간 재판·연구에만 매진해온 정통 법관이며 △장애인 권리를 대폭 신장한 판결을 해온 점 등을 들었다. 2016년 투레트증후군(틱장애)을 앓는 장애인의 장애인등록을 거부한 행정처분이 차별에 해당한다고 판단해 이를 취소한 판결은 ‘장애인 인권 디딤돌 판결’로 선정됐다.

특수부 검사 캐릭터 투영된 사법부·언론 장악

하지만 국회 과반 의석을 차지하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적임자인지 의심스럽다”는 입장이다. 대법원장 임명은 국회 출석 의원 반수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다. 이 후보자 인사청문회 청문위원으로 나설 예정인 더불어민주당 최기상 의원(판사 출신)은 <한겨레21>과 한 통화에서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 후보 청문회 때 보면 (후보자 쪽은) 각종 의혹에 대한 자료 제출을 거부하고 청문 절차를 요식행위로 전락시키면서 ‘부적격은 아니지 않으냐’고 했다”며 “삼권분립에서 대법원장이 차지하는 위상을 고려하면 대법원장은 대통령만큼 검증해야 한다고 본다. 추천위원회를 거치는 대법관 추천과 달리, 현행 대법원장 추천은 아무 절차 없이 대통령이 골라서 심사해달라는 방식이다. 왜 적격인지를 증명해야 할 책임이 그쪽(임명권자와 후보자)에 있다”고 강조했다. “이 후보자는 법원장 4년간 다면평가에서 최하위권 점수를 받았다. 변호사단체 법관평가에서 우수법관으로 뽑힌 적도 없다. 사실 대통령실에서 언급한 소수자·약자 판결은 30여 년 1만 건 가까운 재판에서 그런 판결이 없는 게 이상한 거지 그런 판결이 있다고 해서 대법원장 자격이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라며 “오히려 그간의 법원 개혁을 되돌리고 판사들을 다시 줄 세우려는 의도가 보인다”고 덧붙였다.

법원에 접수된 영장청구서와 수사기록을 법원행정처에 유출한 혐의로 기소된 판사 3명에게, 이 후보자가 재판장으로 무죄를 선고한 이른바 ‘사법농단’ 재판도 주목된다. 사법행정 사무를 담당하는 법원행정처는 법관 관료화·서열화의 정점으로, 대법원장이 지닌 제왕적 권한의 근원으로 지목되는 곳이다. 참여연대는 “법관 독립보다는 사법행정기구의 권위를 우선시하는 이 후보자의 사고방식이 반영된 판결”이라고 평가했다.

‘김명수 코트(Court·법원)’에서 없앴던 ‘고등법원 부장 승진제’ 부활, 도입됐던 ‘법원장 추천제’(판사들이 투표로 법원장 후보를 추천하는 제도) 폐지도 예고된 상태다. 법관 관료화의 심화가 우려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균용 후보자는 2022년 4월 <중도일보> 인터뷰에서 “법원도 승진제도를 통한 기능체 역할을 명백히 수행할 때가 있었는데 고등법원 부장제도가 없어지면 자신을 희생하며 재판에 몰입하는 판사들에게 유인책이 사라졌다. 법원 안에 구성원들만 만족하는 공동체화가 되는 것은 아닌지 돌아봤으면 한다”고 말했다. 또한 “법원이 차등을 허용하지 않는 평등 지향 조직이 된다면 정체와 퇴보를 피할 수 없다”(2023년 2월 대전고등법원장 이임사)고 했다.

“법원을 천천히 우경화·보수화하려”

검찰 우위 사법체계가 굳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압수수색 영장 사전심문 제도’에 대해서도 이 후보자는 “헌법상 문제를 더 신중히 검토해봐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제도 도입에 강력히 반발하며 “위헌”이라고 주장했던 검찰 쪽 주장을 되풀이한 것이다. 서울중앙지방법원장이나 형사수석부장, 영장 전담 등 수사 관련 자리가 검찰에 우호적인 법관들로 채워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사법부는 판사들이 독립적으로 재판하기 때문에 언론처럼 장악하려 해도 할 수 없고 반발만 불러오죠. 법원은 검찰·경찰 같은 일차 기관이 아니니 장악할 필요성도 크지 않아요. 윤석열 대통령도 이걸 누구보다 잘 알아요. 눈에 안 띄게 자기 마음을 잘 아는 대법원장·대법관을 앉혀서 분위기를 조성하고, 법원을 천천히 우경화·보수화하려 할 겁니다. 그게 사실 장악이죠.”(검사장 출신 ㄷ변호사)

김양진 기자 ky029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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