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제주의 어느 영어학원 강사들은 시청 위생관리과에 전화로 ‘○○학원 급식의 위생상태가 불량하니 단속을 나와달라’고 신고했다. 신고 접수 당일, 담당 공무원들이 학원에 방문해 냉장고에서 유통기한이 길게는 10개월이 지난 식재료를 발견하고, 학원장에게 과태료 24만원을 부과했다. 학원장은 계약기간이 남아 있는 공익제보자들을 해고하고 퇴직금을 지급하지 않았다.
이 사례는 <공익제보 12건의 판결문/결정문 법리 분석 보고서>에 포함된 사례 중 하나다. 학원강사들은 해고된 뒤 국민권익위원회에 공익제보자 보호조치를 신청했다. 국민권익위는 신고로 인한 불이익조치로 해고한 것이라며 학원장에게 남은 계약기간에 대한 임금과 퇴직금을 지급하라고 보호조치를 결정했다. 하지만 학원장은 이 결정에 불복하고 행정소송을 진행했다. 틀린 것을 틀렸다고 말했을 뿐인데 졸지에 법원까지 가게 된 그들은 남은 임금과 퇴직금을 받을 수 있었을까?
모든 공익제보자가 이런 어려움을 겪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모든 공익제보자가 어려움을 겪지 않는 것도 아니다. 민사소송과 형사소송 등 법률상 불이익, 해고나 파면과 같은 신분상 불이익, 징계 등 인사상 불이익, 직장 내 따돌림까지 사례마다 천차만별의 불이익조치가 있고 이를 해결하는 데 걸리는 시간도 천차만별이다. 사회적으로도 공익제보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됐고, 법과 제도가 지속적으로 공익제보자를 보호하는 방향으로 개정됐다. 많은 공익제보자가 법에 따라 보호받는다.
하지만 나도 그럴 거라고 미리 낙관할 수는 없다. 누군가는 국민권익위의 보호조치 결정으로 마무리되기도 하지만, 누군가는 힘들고 외로운 법적 싸움까지 한다. 앞선 사례는 1심 재판에서 마무리돼 1년6개월이라는 비교적 짧은 시간이 걸렸지만, 소송이 10년 넘게 걸리는 경우도 있다. 말 그대로 ‘케바케’(케이스 바이 케이스)이다.
최근에는 사례 속 학원장처럼 국민권익위가 공익제보자 보호 결정을 내려도 이를 수용하지 않고 행정소송을 진행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잘못된 일을 잘못됐다고 말하면서 내가 다치지 않으려면 공익제보 전에 여러 가지를 알아보는 것이 좋다.
공익제보 이후 받은 불이익조치를 법적으로 구제받으려면 너무 당연하게도 내가 한 제보가 법률에서 정한 공익/부패 신고여야 한다(여기서는 공익제보라고 통칭함). 공익제보자 보호 법률은 신고 내용과 방법, 신고 기관을 구체적으로 명시한다. 즉, 법률로 보호받는 공익제보는 신고자가 증거와 인적사항을 적은 문서를 정해진 기관에 접수하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공익제보자의 인적사항을 공개하지 않고 변호사가 대신 접수하는 비실명 대리신고제도를 사용할 때도 공익제보자의 인적사항을 밀봉해 제출한다.
이 사례의 학원강사들처럼 전화민원(구술신고)이나, 다른 사람의 연락처로 접수하거나, 언론에 먼저 제보하는 등 법률에 명시된 다른 방식으로 공익제보를 한 경우 이 제보가 법률에서 보호하는 공익제보인지를 다투게 된다.
사례의 재판부는 구술신고를 받은 공무원이 공익제보자의 인적사항과 신고 내용을 기록해뒀고, 유통기한이 지난 식품은 언제든 폐기로 문제를 없앨 수 있기에 법률에서 정한 ‘신고서를 제출할 수 없는 특별한 사정’으로 간주해 공익제보라고 인정했다.
최근에는 공익제보자가 부정한 목적, 즉 금품 또는 특혜를 요구하거나 공익이 아닌 사적 감정으로 신고했으니 공익제보로 인정하지 못한다는 주장이 쟁점이 됐다. 이 사례에서도 학원장은 강사들이 평소에도 학원장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며 공익제보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법원은 그런 의도가 일부 존재하더라도 주된 동기가 금품이나 특혜 요구에 준하는 부정한 목적임을 학원장이 증명하지 못했다며 공익제보라고 인정했다.
법률로 보호가 가능한 공익제보임이 확인된 뒤에는 불이익 피해가 공익제보로 발생했는지 인과관계를 따진다. 불이익조치가 발생한 시점, 불이익조치의 내용과 수준, 개인 잘못으로 인한 징계인지 등 사례마다 다양한 쟁점이 있다. 이 사례에서 학원장은 공익제보자들이 자진 사직과 임금·퇴직금 포기 의사를 밝히고 무단결근해서 급여 일부를 주지 않았을 뿐이지 제보자들을 해고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공익제보자 보호 법률은 제보자 보호를 위해 공익제보가 있은 뒤 2년 이내에 발생한 불이익조치는 공익제보로 인한 것이라고 추정한다. 그리고 이 추정을 반박하기 위해서는 불이익 피해가 공익제보로 인한 것이 아니라는 입증을 주장하는 쪽, 즉 학원장이 해야 한다. 이 사례에서도 재판부는 학원장이 내놓은 증거가 이 추정을 뒤집지 못한다고 판단했다. 다른 사례에서도 공익제보가 없었더라도 불이익조치를 할 만한 별도의 사정이 없다면 공익제보로 인한 불이익으로 추정했다.
이 사례는 재판부가 공익제보자 보호 관점에서 법을 적극적으로 해석한 사례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존재한다. 그래서 아직 공익제보자 보호 법리가 제대로 정립되지 못해 공익제보자 보호가 재판부의 성향이나 의지에 의존한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참여연대가 이번에 펴낸 보고서가 공익제보자 보호 법리가 발전하고 법원도 공익제보자 보호를 위한 법리 모색에 지혜를 모으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또한 현재 외롭고 힘들게 법정 다툼을 앞뒀거나 법정에서 싸우는 의로운 공익제보자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기대한다.
문은옥 참여연대 공익제보지원센터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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