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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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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시마 오염수…버리지 마라, 육지에 보관하라

도쿄전력도 후쿠시마 오염수 배출 피해 인정해 일본 어민에게 배상 준비
정부는 국내 영향 분석과 대안 제시 못하고 핵발전소 구경만 하다 오나
등록 2023-05-19 15:41 수정 2023-05-20 16:06
일본 후쿠시마 제1원전에 있는 오염수 저장탱크 근처에서 방호복을 입은 직원들이 일하고 있다. REUTERS

일본 후쿠시마 제1원전에 있는 오염수 저장탱크 근처에서 방호복을 입은 직원들이 일하고 있다. REUTERS

다른 분야보다 핵에너지 부문은 용어를 둘러싼 논쟁이 큰 편이다. 1978년 가동을 시작한 우리나라 최초의 핵발전소 고리 1호기는 건설 당시 설계수명이 2007년까지로 정해졌다. 2000년대 초반 수명 만료 이후에도 고리 1호기를 가동하자는 논의를 하면서 정부는 ‘수명 연장’이란 표현을 썼다. 설계수명이 끝난 발전소의 운영 기간을 연장하는 것이니 자연스러운 표현이었다.

그러나 현재 정부가 사용하는 공식 표현은 ‘계속 운전’이다. 수명이 끝난 발전소의 수명을 연장한다는 이미지가 좋지 않아, 기존 발전소를 ‘계속 운전’한다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하지만 언론이나 지역주민들은 ‘고리 1호기 수명 연장 결정’처럼 ‘수명 연장’이란 용어를 더 많이 쓴다. 아무리 이미지를 바꾸려 해도 설계수명이 끝난 핵발전소의 수명을 늘린다는 사실은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핵에너지 분야에서는 이처럼 용어의 정합성이나 현실성보다는 국민에게 어떤 이미지로 전달될지 고민한 이름이 많다.

일본 방류 용인한 IAEA는 ‘핵발전소 확대’가 목표

일본 정부가 계속 사용해온 ‘처리수’(Treated Water)라는 말도 같은 맥락이다. 일본 정부는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이후 원자로 냉각에 사용되거나 지하수 오염으로 발생한 물을 ‘오염수’(Contaminated Water)라 부르고, 다핵종제거설비로 일부 핵종을 제거한 물을 처리수라고 불렀다. 실제 다핵종제거설비의 처리를 마친 물에도 다양한 방사성 핵종이 포함됐고, 삼중수소 같은 핵종은 다핵종제거설비로 제거되지 않는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오염되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하는 의미로 처리수란 말을 계속 사용한다.

우리 정부도 오염수란 용어를 처리수로 변경할 것을 검토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우리 정부가 이런 사실을 부인하면서 문제는 일단락됐지만, 이는 단지 용어를 바꾸는 수준의 문제가 아니다. 현 사태를 어떤 시각에서 바라보는지에 대한 기본 철학이 담긴 문제다. 특히 외교관계에서 용어 선택은 많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기에 가볍게 볼 문제가 아니다.

후쿠시마 오염수를 둘러싼 문제는 이처럼 복잡한 문제가 뒤엉켜 있다. 각 나라가 오염수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이 다른 것도 대표적이다. 후쿠시마 오염수 문제를 둘러싸고 많이 받는 질문 중에 ‘국제원자력기구(IAEA)나 다른 나라는 왜 이 문제에 적극적이지 않은가?’ 하는 것이 있다. 이 역시 후쿠시마 오염수를 둘러싼 중요한 쟁점이다.

1953년 미국의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평화를 위한 원자력’(Atoms for Peace) 연설을 계기로, 1957년 만들어진 국제기구가 국제원자력기구다. 국내에는 핵무기 사찰을 하는 국제기구로 널리 알려졌지만, 이 목적에 앞선 것이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 촉진’이다. 그리고 대표적인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 사례가 핵발전소다. 실제 국제원자력기구는 핵발전소를 확대하기 위한 다양한 연구, 개발, 홍보 사업을 벌이고 있다. 기후위기 문제를 다루는 유엔기후변화협약 총회장에서 ‘원자력은 기후변화의 대안입니다’라며 국제원자력기구를 홍보하는 부스를 보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이런 성격을 갖고 있다보니, 체르노빌과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의 피해 영향에 대해 국제원자력기구는 보수적 태도를 견지해, 전세계 탈핵 단체들의 주요 비판 대상이다. 체르노빌 사고 20주기를 맞아 유럽녹색당 등이 국제원자력기구 체르노빌 보고서의 문제점을 지적한 ‘또 하나의 체르노빌 보고서’(TORCH)를 낸 것이 대표적 사례다. 이 보고서는 체르노빌 사고로 인한 암 사망자가 수천 명 수준에 불과하다는 국제원자력기구 보고서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국제원자력기구의 평가보다 암 사망자가 7.5~15배 더 많을 것으로 예측했다.

한국 포함한 여러 나라에서 핵폐기물 배출 중

2020년 라파엘 그로시 국제원자력기구 사무총장이 일본의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에 대해 ‘기술적으로 가능하고 국제 관례에도 부합한다’고 발언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의 말처럼 지금까지 국제사회는 바다에 수많은 핵폐기물을 버렸다.

1993년 국제적으로 고준위 핵폐기물 해양 투기가 금지되기 전까지 13개국이 태평양과 대서양, 북극해 등에 핵폐기물을 버렸다. 핵무기를 보유한 국가뿐만 아니라 군사용, 의료용, 산업용 핵폐기물도 바다에 버렸다. 우리나라 인근의 경우, 러시아의 핵잠수함용 원자로 동해 투기, 우리나라의 연구용 핵폐기물 동해 투기, 일본의 태평양 해양 투기 등이 있다. 2천 회 이상 진행된 대기권 핵실험 결과와 체르노빌·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등까지 발생하며 현재 전세계 바닷물에선 자연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 플루토늄 같은 ‘인공 방사성 핵종’이 발견되고 있다. 인간이 지구환경에 영향을 미친 지질시대를 의미하는 인류세(人類世, Anthropocene)의 분류 기준에 플라스틱·닭뼈와 함께 인공 방사성물질이 포함된 것은 모두 이런 이유에서다.

2021년 4월30일 한국 어선이 일본의 후쿠시마 핵발전소 오염수 방류에 반대하는 해상시위를 벌이고 있다. REUTERS

2021년 4월30일 한국 어선이 일본의 후쿠시마 핵발전소 오염수 방류에 반대하는 해상시위를 벌이고 있다. REUTERS

다행히 1993년 이후 고준위 핵폐기물 투기는 멈춰졌지만, 후쿠시마 오염수 같은 저준위 핵폐기물의 해양 투기는 지금도 진행되고 있다. 후쿠시마 오염수의 삼중수소 포함이 쟁점이 되자, 일본 정부는 한국의 월성 핵발전소를 언급하면서, 한국에서도 삼중수소를 바다에 버리고 있다며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의 정당성을 설파하고 있다. 핵발전소를 운영하는 한국수력원자력 누리집을 보면, 월성 핵발전소 외에 다른 핵발전소에서도 액체 혹은 기체 형태의 핵폐기물을 배출하고 있다. 너희도 쓰레기를 버리면서 왜 우리만 가지고 뭐라 하느냐는 논리다. 사실 그 표현만 놓고 보면 맞는 이야기다. 국제원자력기구 사무총장의 말처럼 핵폐기물을 버리는 것은 핵산업계의 ‘오랜 국제 관례’였기 때문이다.

그런 오염수가 방류돼도 아무 문제가 없을까? 그렇지 않다. 지금도 후쿠시마 인근 해역에선 기준치 이상으로 오염된 농수산물이 나오고 있다. 2022년 일본 후생노동성이 공개한 농수산물 방사성물질 검토 보고서를 보면, 검사를 진행한 농수산물 3만6천여 건 중 11.0%에서 세슘-134 같은 방사성물질이 검출됐다. 특정 농수산물에서 방사성물질이 많이 검출되는데 두릅과 죽순에선 검사 시료 중 21%, 산천어 등 수산물에선 5.3% 정도 방사성물질이 검출됐다.

직접적인 피해 드러낸 ‘괴담’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가 일어난 지 10년이 훌쩍 넘었지만, 인근 지역의 토양과 바다는 이미 오염됐다. 일본 정부의 계획대로 오염수가 바다로 방류된다면, 이미 오염된 바다에 추가로 오염이 일어나 방사성물질이 생물에 농축되는 ‘생물 농축’이 가속된다. 또 이런 문제가 생기면 소비자는 당장 수산물 소비를 줄인다. 일본은 수산물 소비가 많은 나라로 유명했다. 2000년대 이후 일본의 수산물 소비는 지속해서 감소했고, 2011년 후쿠시마 사고는 수산물 소비 감소에 결정적 영향을 줬다. 현재 일본의 1인당 수산물 소비량은 2000년대 초반 대비 40% 정도 줄었다.

이런 영향에 대해 일본 정부와 후쿠시마 핵발전소를 운영하는 도쿄전력은 ‘풍문 피해’(소문에 따른 피해)라며 애써 피해의 의미를 감추지만, 해양오염으로 음식문화가 바뀌는 것을 단지 ‘소문’이라 치부할 문제인지는 의문이다. 2022년 말 도쿄전력은 오염수 배출에 따른 풍문 피해 배상 기준까지 마련해서 약 5천억엔(약 4조8400억원) 규모의 배상을 준비하고 있다. 풍문 피해는 ‘괴담’ 수준의 얘기가 아니라, 어민에게는 매우 직접적인 피해임을 도쿄전력도 인정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에선 이런 피해가 얼마나 될지, 국내 어민과 수산업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지에 대한 정부 차원의 분석은 없다. 당장 일본에서 이뤄지는 피해 배상에 우리 정부는 손 놓고 있다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다.

오염된 토양에서 바다로 흘러드는 오염수를 모두 막을 수 없다면, 최소한 이미 모아놓은 오염수를 더 이상 바다로 버리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국제 관행’과 ‘피해 미미’ 등을 이유로 오염수 해양 방류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하지만 이보다 더 큰 문제는 해양 방류가 ‘가장 값싸고 손쉬운 방법’이라는 것이다. 2016년 처음 해양 방류안이 나왔을 때 제출된 다른 안(수증기 증발, 전기분해, 지하 매설, 지층 처분)에 비해 해양 방류는 가장 저렴한 방식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기존 1천 개의 탱크에 보관된 오염수를 바다로 보내는 파이프 공사 정도만 하면 된다.

저장공간 없다는 일본 논리는 옹색

아이러니하게도 오염수 처리의 모범적 해법은 지금처럼 그대로 두는 것이다. 현재 약 140만t의 오염수는 저장탱크 1천 개에 보관돼 있다. 서울 잠실의 석촌호수 담수량이 636만t이다. 현재 오염수의 전체 양이 석촌호수 4분의 1 정도 양이다. 또 2021년에 완공된 울산석유비축기지의 저장용량(1030만 배럴, 163만t) 정도면 현재의 오염수 모두를 보관하고도 남는다. 후쿠시마 핵발전소 인근 지역 토양이 오염돼 현재도 출입이 통제된다는 사실을 생각한다면, 오염수를 저장할 공간이 없어 해양 방류를 해야 한다는 일본 정부의 논리는 정말 옹색하다. 일본 시민단체들이 해양 방류가 아니라 육상 보관을 주장하는 것도, 오염수 방류로 인한 환경적·외교적 논란을 줄이려는 최소한의 조치이기 때문이다.

그간 우리 정부의 대응 방식은 해양 방류로 인한 환경오염을 제대로 짚지 못한 문제도 있지만, 육상 보관 같은 근본적인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 문제가 더 크다. 그저 일본 정부의 대응 논리에 ‘정보 공개’나 ‘우려 표명’ 정도 수준에 그쳤을 뿐이다. 뒤늦었지만, 어민을 비롯한 우리 국민에게 미칠 영향을 정부 차원에서 분석하고, 적극적으로 대안을 제시하는 행동을 다시 한번 촉구한다. 일본 정부가 보여주는 내용을 ‘평가 없이’ 그대로 보고 오는 ‘시찰단’ 말고 말이다.

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정책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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