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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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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만난 이란 여성들 “우리는 모두 함께다”

시위에서 만난 3인의 이란 여성들
“불의에 대한 저항은 인권과 민주주의 지키는 힘… 국제사회 연대해줬으면”
등록 2022-10-09 00:10 수정 2022-10-09 09:09
이란에서 온 유학생 아이샤(가운데 검은 옷)가 2022년 10월5일 서울 용산구 주한이란대사관 앞에서 인권시민사회단체들과 함께 ‘히잡 의문사’ 관련 시위를 지지하는 입장을 밝히며 자신의 머리카락을 잘라 들어 올리고 있다. 박승화 선임기자

이란에서 온 유학생 아이샤(가운데 검은 옷)가 2022년 10월5일 서울 용산구 주한이란대사관 앞에서 인권시민사회단체들과 함께 ‘히잡 의문사’ 관련 시위를 지지하는 입장을 밝히며 자신의 머리카락을 잘라 들어 올리고 있다. 박승화 선임기자

“친구들이 목숨 걸고 시위하는데, 머리카락을 자르는 일은 아무것도 아니다.”

2022년 10월5일 서울 용산구 주한이란대사관 앞에서 한 이란 유학생이 어깨 아래까지 내려왔던 긴 머리카락을 귀밑까지 싹둑 잘랐다. 2021년 여름 이란에서 한국으로 유학 온 아이샤(24)는 9월 중순 고향 이란에서 히잡으로 머리카락을 가리지 않았다는 이유로 경찰에 체포돼 조사받다가 갑자기 숨진 20대 여성을 추모하며, 자신의 머리카락을 가위로 잘라냈다.

한국에서 공부가 끝나면 이란으로 돌아가야 할 텐데, 이름과 얼굴을 드러내고 목소리를 내는 일이 두렵지는 않았을까. 아이샤에게 묻자, 그는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두렵지 않다”고 답했다. “할 일을 하는 것뿐이다. 친구들이 경찰에게 총을 맞은 거리로 돌아갈 수는 없기 때문이다.”

히잡 안 쓰면 진학도 취직도 못한다

9월16일(현지시각) 이란의 수도 테헤란에서 마흐사 아미니(22)가 히잡으로 머리를 완전히 가리지 않았다는 이유로 ‘도덕경찰’에 체포돼 재교육센터로 구인됐다. 재교육센터에서 아미니는 갑자기 쓰러졌고 혼수상태에 빠진 지 사흘 만에 병원에서 숨졌다. 22살의 건강한 여성이 갑자기 숨진 것은 이상한 일이었다. 경찰이 구타했다는 의혹이 불거지며, 이란의 80여 개 도시에서 이에 항의하는 반정부 시위가 일어났다. 시위는 이란 국경을 넘어 전세계로 퍼졌다. 한국에서도 이란 정부를 규탄하고 이란 여성을 지지하는 물결이 일고 있다.

이날 주한이란대사관 앞에서 열린 이란 히잡 의문사 관련 시위를 지지하는 한국 41개 인권시민사회단체의 기자회견도 그런 물결 중 일부였다. 참가자들은 ‘여성 억압’ ‘국가 폭력’ 등의 단어를 몸에 붙인 뒤 이를 끊어내는 퍼포먼스를 하고 잘라낸 아이샤의 머리카락을 들어 올렸다. 이어 “두려워하라, 두려워하라! 우리는 모두 함께다!”라고 외쳤다. 앞서 9월 말,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에서도 이란 여성들을 지지하는 시위가 열린 바 있다.

특히 한국에 살고 있는 이란 여성들의 목소리는 절박하게 들렸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아이샤를 포함해 한국인 남성과 결혼한 60대 박씨마, 엘레나(40·가명)도 참석했다.

세 사람은 만 7살 이후부터 히잡을 썼다. 히잡은 이슬람 여성이 머리와 목 등을 가리기 위해 쓰는 두건의 일종이다. 많은 이슬람 국가에서 히잡 착용은 관행일 뿐 의무가 아니지만, 이란에서는 의무다. 히잡을 쓰지 않으면 학교에 진학할 수도, 취직할 수도 없다. 그래도 예전에는 지금처럼 단속이 심하지 않았다. 하지만 2021년 8월 이슬람 신학자 출신인 에브라힘 라이시가 대통령이 되면서 통제가 엄격해졌다. 라이시 대통령은 2022년 8월 히잡을 쓰지 않은 여성의 사회적 권리를 제한하는 새 법령에 서명했다.

아이샤는 부모님께 따져물은 적이 있다. “왜 히잡을 써야 하느냐고 물으면 부모님이 ‘그러다 경찰에 잡혀간다’고 했다. 하지만 제대로 써본 적은 없다. 머플러를 하듯이 하고 다녔다. 히잡 때문에 등교 외엔 집 밖으로 나가본 적이 없다. 친구들끼리 경찰이 자주 나타나는 지역 정보를 공유하기도 했다.” 아이샤는 한국에 온 뒤 히잡에서 해방됐다.

성적 같으면 남성이 먼저 대학 가는 법도

같은 또래인 아미니의 죽음은 아이샤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이란 경찰은 아미니가 지병인 심장병으로 갑자기 쓰러졌다고 발표했지만, 이란 국민은 이를 믿지 않는다. “이란 경찰이 여성의 복장을 이유로 폭행하고 강제 연행하는 영상이 이번 사건 이전에도 인터넷에 퍼져 있었다. 혼수상태인 아미니의 사진을 봤는데 눈 밑에 멍이 들었고 귀에선 피가 났다. 게다가 경찰은 아미니 사건을 처음 기사로 쓴 기자도 체포했고, 정부의 잘못에 소신 발언을 한 축구선수와 가수들도 체포했다.”(아이샤)

2013년 한국에 온 엘레나에게도 히잡은 ‘공포’다. 2005년 만들어진 ‘도덕경찰’은 여성들이 이슬람 율법에 맞는 차림새를 하는지 감시한다. 이들이 여성을 구타하는 등 인권을 유린한다는 의혹이 계속 제기됐다. “4년 전 아이들을 데리고 이란에 간 적이 있다. 히잡을 썼지만 머리를 완전히 가리진 않았다. (이를 본) 도덕경찰이 와서 제대로 쓰라고 주의를 줬다. 주의만 받았는데도 무서웠다. 12살 난 딸은 이란에 가기 싫다고 한다. 히잡을 쓰고 싶지 않아서다.”(엘레나)

세 사람은 여성의 히잡 착용 의무화는 이란의 여성 인권이 얼마나 낮은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 가운데 하나라고 입을 모았다. 박씨마는 “이란 정부는 여성을 ‘애 낳는 기계’로 본다”고 말했다. 아이샤도 “이란엔 시험 점수가 동일할 경우 남성이 먼저 대학에 들어가는 법도 있다”며 “여성은 아이를 낳고 집에만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인터넷 차단돼 일주일 동안 가족 연락 막혀

현재 이란 상황은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이란 정부는 시민들이 외국에 상황을 알릴 수 있는 인스타그램과 와츠앱 같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접속마저 차단했다. “초등학생들도 히잡을 벗고 시위에 참여하고 있다. 100명 넘는 시민이 숨졌고 셀 수 없이 많은 사람이 부상을 당했다.”(박씨마) “시위대가 불법 연행을 저지하려 경찰차를 막아서자 경찰은 구급차로 시민들을 연행하며 눈을 속였다.”(아이샤) “인터넷 접속이 차단돼 일주일 만에 이란의 가족과 연락이 됐다. 너무 걱정된다.”(엘레나)

인남식 외교안보연구소 아중동연구부장은 최근 ‘이란 히잡 거부 시위 확산의 배경과 정치적 함의’라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이미 젠더 차원의 저항을 넘어섰다. 남녀 젊은이들이 함께 분노하며 거리에 나서고 있다. 청년 세대가 저항의 축이 되는 모양새”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정부가 통제 못하면 자칫 대규모 반정부 시위로 전개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전망했다.

아이샤, 박씨마, 엘레나는 이란 상황에 많은 관심을 가져주길 호소했다. “국제사회가 함께 연대해줬으면 한다. 다른 나라 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 이전에 똑같은 인간이라는 것을 알아줬으면 좋겠다. 불의에 저항하는 사람들과 연대하는 것은 인권과 민주주의를 지키는 힘이다.”(박씨마) “우리를 도와달라. 우리는 평화로운 민주주의 국가를 원한다.”(아이샤)

신지민 기자 godji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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