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사형확정자에 대한 연구에 따르면 범행 당시 사형을 생각한 적 있는지에 대해 사형확정자는 화가 나서 정신이 없거나 술에 취했거나, 생각나지 않았다고 답했습니다.”(사형제 헌법소원 청구인 대리인)
2022년 7월14일 헌법재판소(헌재) 대심판정에서 사형제 존폐를 논하는 공개변론이 열렸다. 사형제와 관련한 헌재 공개변론은 1992년, 2009년에 이어 세 번째다. 한국 사회의 오랜 난제가 이번에는 풀릴까.
사형제 헌법소원 청구인 대리인이 인용한 연구는 김대근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법무정책연구실장이 펴낸 연구보고서(‘사형확정자의 생활 실태와 특성’)다. 한국은 1997년 12월30일 이후 25년간 한 번도 사형이 집행되지 않은 ‘실질적 사형폐지국’이다. 그 결과 사형이 확정됐으나 그 형이 집행되지 않은 ‘사형확정자’들이 교도소에 산다. 그는 오랜 기간 사형제를 연구해온 법학자로, 2019년 사형확정자 60명(2022년 7월 현재 법무부 산하 55명, 국방부 산하 4명 등 59명) 중 33명을 인터뷰해 해당 연구보고서를 펴냈다. 그리고 대체 형벌을 연구한 보고서(‘사형 폐지에 따른 법령 정비 및 대체 형벌에 관한 연구’)도 출간했다.
사형확정자 인터뷰는 사형제도를 대체할 형벌을 연구하기 위한 예비조사 차원에서 시작했다. 미결수와 기결수 사이 어딘가에 위치한 사형확정자는 “교도소에서 가장 오래 구금된 이들”이다. “그들의 삶은 교정행정의 척도이자, 그 자체로 기록될 필요가 있었다.” 교정기관의 도움을 받아 사형확정자들에게 하나하나 편지를 보냈고 면접에 동의한 사형확정자 33명을 각각 두 차례씩 만났다. 만날 때마다 한두 시간씩 이야기를 나눴다. 사형확정자들의 이야기가 사실인지는 교도관과 민간 교정위원들을 인터뷰해서 교차점검했다.
다시 사형제 존폐가 논란되는 때, 사형확정자들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헌재 공개변론을 하루 앞둔 2022년 7월13일 서울 광진구의 한 카페에서 김대근 연구실장을 만났다.
사형확정자에게서 어떤 인상을 받았나.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사람들인데 만나보니 (그들에 대한 기사를) 글로 읽었을 때와 굉장히 달랐다. 정년을 앞둔 온화한 교수 같은 사람도 있었고, 앳된 청년도 있었다. 과거를 떠올리는 것 자체가 괴로워 눈물 흘리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었다. 서른세 명, 서른세 개 케이스라고 말할 만큼 사람마다 너무 달랐다.”
일과, 독거나 혼거 등 생활환경, 수형생활의 물리적·정신적 어려움 등을 묻고 답했다. 1차 면접에서 심리적 친밀감을 형성하고, 2차 면접에서 더 심화된 질문을 던졌다. 사형제와 관련한 이야기도 나눴다. 상당수는 처벌의 억지력, 잘못에 대한 책임을 이유로 사형제가 유지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사건 당시 사형당할 것에 대한 두려움이나 생각, 또는 사건으로 인한 처벌을 생각한 적 있나’라고 묻자, 대다수가 사형제를 생각하지 않고 범죄를 저질렀다고 답했다.
‘사형제도 찬성’에 어떤 태도로 답변하던가.
“나 같은 사람은 사형이 마땅하다는 자포자기하는 태도, 당장 죽는 게 낫지 여기에 갇혀서 영영 못 나가는 것이 더 끔찍하다는 태도, 죽을 준비를 하고 있어도 당장 사형이 집행된다면 무섭고 생각하고 싶지 않다는 태도가 엿보였다.”
그런데 막상 범죄를 저지른 당시엔 사형을 떠올리지 않았다는 건가.
“이들이 범행 당시 사형을 몰랐을까. 알았을 거다. 그러나 형벌이 기본적으로 가진 위하력(형벌로 위협해서 일반인을 범죄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힘)을 두려워하고 잔혹한 범죄일수록 형량이 무겁다고 막연하게 생각하는 정도다. 사형이나 무기징역, 가석방 여부에 따라 범죄를 더 저지르거나 덜 저지르지 않는다. 격정적으로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은 당연히 모르고. 즉, (최고 형벌이) 사형 아닌 무기징역이어도 그 정도의 위하력은 갖는다.”
극단의 형벌이 아니라면 무엇으로 범죄를 억지할 수 있나.
“범죄 예방에 필요한 건 무거운 처벌이 아니라 체포나 적발 같은 확실한 처벌이다. 이건 학계 통설이다. 사형확정자들에게 ‘뭐가 제일 무서웠나’ 물으니 ‘잡힐까 두려웠다’고 답하더라. ‘잡혀서 이 자리에 있을 줄 알았다면 죽였을까’ 물으니 ‘그랬으면 안 죽였을 것이다’ 말하더라. 잡히면 어떡하나 두려운 마음에 주검을 유기하거나 밀항을 준비하거나 심지어 공범까지 죽이는 거다. 사람들은 자신이 잡힐 것을 전제하지 않기 때문에 범죄를 저지른다.”
사형제의 범죄 예방 효과는 실제 검증된 바 없다. “사형을 선고하되 실제로 집행하지 않아 범죄가 늘었나. 아니다. 반대로 사형제가 있어 범죄가 줄어든 것도 아니다.” 그러나 법무부는 정반대로 ‘사형의 범죄 억지력이 통계에 의해 밝혀지지 않는다고 해서 부정될 성질의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헌재는 법경제학자인 고학수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에게 사형에 범죄 예방 효과가 있는지 조언을 구했다. 고 교수는 7월14일 열린 헌재 공개변론에서 ‘사형제가 범죄 억지력이 있는지 일반적인 결론을 내리기 어렵다’고 밝혔다. 형벌의 또 다른 목적인 응보적 측면은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사형제가 폐지되면, 생명을 박탈한 중대범죄에 상응하는 처벌이 어려워지는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함무라비법전은 응보를 지향하지만 근대사회에선 응보만이 답이 될 수 없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의 본질은 사실 비례성 원칙이다. 눈을 다치게 했으면 눈만 다치게 하라는 거다. 그러나 피해자가 입은 정도의 손해만큼만 가해자에게 가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래서 근대사회는 개인에 의한 사적 복수를 허용하지 않고 국가가 형벌권을 독점해서 대신 집행한다.
딱 한 가지 설득이 어려운 게 있다면 이 응보다. 형벌의 목적은 응보와 예방이기 때문에 한 명을 죽인 사람을 바로 죽일 수는 없다. 그러나 20명, 30명 죽인 사람에게 적정한 형벌은 무엇일까, 근본적인 고민을 하게 된다.
다만, 2011년 노르웨이에서 77명을 죽인 극우주의자 브레이빅도 사형을 당하지 않았다. 노르웨이는 사형제가 폐지된 나라다. 노르웨이 총리는 당시 ‘우리의 대응은 더 많은 민주주의와 더 많은 개방성, 더 많은 인간애다. 단순 맞대응은 절대 답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사형제 폐지는 전세계적 흐름이다. 그러나 법무부는 사형제를 유지하는 미국과 일본을 예시로 드는 한편, 다른 사형제 폐지국처럼 헌재 등 재판기관의 위헌 결정이 아니라 입법으로 사형제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형사사법제도는 나라마다 다르다. 각자 입장에 따라 유리한 나라를 (근거로) 끌어다쓸 뿐이다. 그리고 인간의 기본권과 관련된 문제는 다수결이나 사회적 합의로 해결할 수 없다. 사법적 결단을 내려야 할 때가 있다.”
사형제가 헌재에서 위헌 결정을 받으려면 재판관 9명 중 적어도 6명이 위헌 의견을 내야 한다. 앞서 7 대 2(1996년)→5 대 4(2010년)로 위헌 의견이 늘어난데다, 현재 헌재에 있는 유남석·문형배·이미선·이석태·이은애 재판관이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사형제 폐지’ 혹은 ‘적극 검토’ 의견을 밝힌 바 있어 이번에는 위헌 결정이 나오리란 관측도 조심스레 제기된다. 사형제 대체 형벌로 가석방 없는 종신형(절대적 종신형)에 대한 논의도 활발해지고 있다. 2018년 국가인권위원회가 1천 명에게 설문조사한 결과, ‘사형제 폐지에 찬성한다’는 응답은 5명 가운데 1명 정도(20.3%)에 머물렀지만, ‘대체 형벌 도입을 전제로 폐지에 찬성한다’는 응답은 3명 중 2명(66.9%)꼴로 높게 나타났다.
그러나 김대근 연구실장은 가석방 없는 ‘절대적 종신형’보다 최저 복역 기간을 전제로 위험성 평가를 실시해 가석방을 가능하도록 하는 ‘상대적 종신형’이 사형제 대체 형벌로 적합하다고 본다.
가석방 없는 종신형은 어떻게 보나.
“사형제 존치론자의 불안감을 달래기 위한 대안으로 제시되는 듯하다. 사형확정자들은 가석방 없는 무기징역이 사형보다 더한 고통이라고 호소했다. 유럽에서는 장기 구금자의 건강상태, 정신상태는 인간의 존엄성을 형해화하는 정도라고 말한다.”
‘생명권 침해’ 문제는 사형 위헌 여부를 가리는 근본 쟁점이다. 헌법에 따르면,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진다(제10조). 또한 필요에 의해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를 제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은 침해할 수 없다(제37조 2항). 헌재는 앞서 두 번의 결정에서 사형제는 생명권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하는 건 아니라고 밝혔지만 그 본질적 내용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설명한 바 없다. 그러나 그는 생명뿐 아니라, 영구적인 자유의 박탈 모두 그 본질적 내용을 침해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본다.
그 본질적 내용이란 뭘까.
“생명권의 본질적인 내용이 뭔가. 생명일 수밖에 없다. 가석방 없는 종신형도 영구히 교정시설을 나올 수 없게 해 자유권의 본질적인 내용인 자유를 침해한다. 사법부는 법을 해석하는 기관인데 아무런 논거도 들지 않고 사형제는 생명권의 본질적 내용은 침해하지 않는다고만 해왔다.”
이번 헌재의 공개변론은 무기징역형이 확정된 부모 살해범 윤아무개씨가 2019년 2월 낸 헌법소원에서 시작됐다. 사형을 형벌의 한 종류로 규정한 형법 제41조 1호, 존속살해죄에 대해 사형을 선고할 수 있게 한 형법 제250조 2항이 심판 대상이다. 7월14일 열린 공개변론은 5시간 가까이 진행됐다. 형벌 목적에 대한 이견, 대체 형벌, 사형이 등장하는 유일한 헌법 조항(제110조 4항)에 관한 해석, 입법론적 해결의 필요성 등 넘어야 할 산과 좁혀지지 않는 견해차가 드러났다.
세 번째 공개변론, 5시간 가까이 공방2022년의 헌재가 내놓을 답은 무엇일까. 그 답이 ‘위헌’ 쪽으로 기운다면 “사형제가 폐지된 적이 한 번도 없는 (고조선부터) 대한민국 5천 년 역사의 가장 드라마틱한 순간이 되지 않을까”, 김대근 연구실장은 생각한다. “다원화된 현대사회에서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유일한 명제는 사람을 죽이지 말라는 것이다. 이는 일반 시민뿐 아니라 국가의 의무이기도 하다. 심지어 죄지은 사람도 죽이면 안 되는데 보통 시민을 죽여서야 되겠는가. 그만큼 생명은 소중하고 누구에게나 보편적이라는 걸 보여주는 문명사적 의미가 있을 것이다.”
고한솔 기자 s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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