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가니스탄을 탈출해 한국에 정착한 어린이들이 2022년 4월11일 울산 현대중공업 아파트 마당에서 한국 친구들과 어울려 놀고 있다.
울산 동구 서부동의 한 아파트. 총 30가구가 살 수 있는 한 동짜리 작은 아파트엔 놀이터가 없다. 하지만 놀이터가 있어야만 놀 수 있는 건 아니다. 아이들은 아파트 앞 주차장에서 신나게 뛰어놀았다. 현대중공업 사내 협력업체에 취업한 아프가니스탄 특별기여자 29가구가 모여 사는 곳이다. 아파트 입구에 들어서자 뛰어놀던 아이들이 먼저 다가와 “안녕하세요”라고 한국말로 인사를 건넸다.
초등학교 1학년인 무스타파 팔항의 집을 2022년 4월11일 오후 찾아가는 길이었다. 무스타파와 엄마 카리마는 “어서 오세요”라며 인터뷰할 수 있도록 안방을 내주었다. 안방 한쪽엔 작은 책상 2개가 놓여 있었다. 책상 위 스케치북엔 무스타파가 한글을 공부한 흔적이 남아 있었다. 무스타파는 말없이 기자에게 사과를 건네주고 거실로 나갔다. 무스타파의 아빠 무하마드 샤케르 팔항은 “저녁 식사를 대접하겠다”며 “이번 기회에 아프가니스탄 음식을 먹어보라”고 말했다. 정작 그는 라마단(이슬람력의 아홉 번째 달로, 해가 뜰 때부터 해가 질 때까지 식사·흡연·음주·성행위 따위를 금함) 기간이라 금식 중인데도 말이다.
샤케르를 포함해 아프가니스탄에서 특별기여자로 한국에 들어온 157명은 2022년 2월부터 울산에 정착했다. 하지만 이슬람 난민에 대한 싸늘한 시선을 견뎌야만 했다. 지역 학부모들의 반대 탓에 아이들이 학교에 가는 일도 쉽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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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옆집에 사는 샤케르(36)와 다우드 아미니(36)를 함께 만났다. 다우드는 아프가니스탄 바그람의 한국 병원에서 약사로 일했고, 샤케르는 바그람 한국직업훈련원에서 컴퓨터 강사로 일했다. 지금은 두 사람 모두 현대중공업에서 선박 엔진 조립 업무를 하고 있다. 다우드에겐 2명, 샤케르에겐 3명의 자녀가 있다. 다우드의 딸 모나와르와 샤케르의 아들 무스타파는 서부초등학교 1학년이다.
모나와르와 무스타파가 서부초에 입학하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이들의 입학을 반대한 서부초 학부모들은 손팻말 시위와 기자회견을 열었다. 샤케르는 학부모들의 반대 여론이 놀랍거나 슬프지 않았다. “다른 민족을 싫어하는 건 아프가니스탄이 더 심하기 때문에 비슷한 경험이 많다. 한국인의 반대는 부드러운 반대였다. 다만 우리는 외국인이긴 해도 한국 회사에 다녔고, 한국인과 10년 이상 일했다. 한국 사람들은 우리를 잘 모르겠지만 우리는 한국인, 한국 문화를 잘 안다. 우리 문화에 대한 오해가 있기에 반대했다고 생각한다. 좀더 시간이 지나면 이해해줄 것이라 믿는다.”(샤케르)
부모보다 아이들이 학교에 다니고 싶은 마음이 더욱 간절했다고 다우드는 말했다. “79가구가 한국에 들어왔고 그중 29가구가 울산에 정착했다. 나머지는 경기도 평택, 안산 등으로 갔는데 그쪽 아이들이 우리 아이들보다 먼저 학교에 갔다. 그 소식을 우리 아이가 듣자마자 ‘아빠, 우리는 언제 학교에 갈 수 있어요? 뭐가 문제예요?’ 하고 묻더라. 아이들은 계속 한국어 공부를 하고 있었고, 학교에 가길 엄청 기다렸다.”
결국 아이들은 한국 학생들의 입학일과 개학일보다 2주 이상 늦은 3월21일, 첫 등교를 했다. 등교하는 아이들 손에는 종이가방이 하나씩 들려 있었다. 종이가방 겉에는 아이 이름과 인사말이 한글로 적혀 있었고, 가방 안에는 친구들에게 나눠줄 과자 꾸러미가 같은 반의 학생 수만큼 들어 있었다. 삐뚤삐뚤했지만 정성스레 쓴 글씨에는 한국 친구들과 친해지고 싶은 마음이 묻어났다. 다우드는 “아프가니스탄 속담에 ‘처음에 단 음식을 나누면 사이가 좋아질 것’이라는 말이 있다”며 “선물을 주면 아이들이 좋아할 것 같아서 준비했다”고 말했다.
울산에 정착한 무하마드 샤케르 팔항(맨 오른쪽)과 세 자녀. 왼쪽부터 무스타파, 아스라, 오스만.
아이들은 금세 학교에 적응했다. 모나와르는 “학교생활이 어떠냐”는 기자의 질문에 한국어로 “좋아요, 아주 좋아요”라며 웃었다. 샤케르는 “먼저 물어보지 않아도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한다”며 “초등학생인 무스타파는 공부를 열심히 하고 쓰기도 말하기도 잘하는 편이고, 유치원생인 아스라는 아직 쓰기는 못하지만 오빠와 한국어로 대화한다”고 말했다. 서부초등학교에서 아프가니스탄 학생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김재현 강사는 “한국어를 노래 등으로 가르치기 때문에 아이들이 재밌게 배운다”며 “아이들이 집에 가서 부모에게 학교에서 배운 것을 이야기하며 한국어 선생님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슬람문화권에 속한 이들은 ‘할랄’ 음식을 먹어야 한다. 할랄 음식이란, 이슬람 율법에 따라 이슬람교도가 먹을 수 있도록 허용된 음식을 말한다. 다행히 울산에 할랄 음식 전문업체가 있어서 큰 문제는 없다. 샤케르는 한국에서 처음으로 해물을 먹어봤다. “글로벌 시대니까 큰 차이는 하나밖에 없다. 아프가니스탄엔 바다가 없어서 해물이 없는데, 한국은 해물이 많다. 아직 다른 해물은 못 먹어봤고 새우는 조금 먹어봤다.”
아이들도 학교 급식에 만족하고 있다. 샤케르의 아이들은 처음부터 도시락을 싸서 가지 않았고, 다우드의 아이들은 급식과 도시락을 병행한다. “아이들이 학교 급식을 아주 좋아한다. 특히 급식에서 나오는 디저트를 좋아해서 매일 이야기한다.”(다우드) 모나와르는 “케이크, 아이스크림, 요구르트, 우유, 초콜릿이 좋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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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케르와 다우드는 아직도 아프가니스탄에서 탈출하던 순간이 생생하다. “탈출하기로 한 날, 공항 게이트에 들어가야 하는데 게이트 앞에 몇만 명이 서 있어서 들어갈 수 없었다. 다음날 한국 정부가 빌린 버스를 타고 공항에 가기로 했다. 오후 4시에 버스를 탔는데 그다음 날 아침 7시에 도착했다. 원래는 한 시간이면 가는 거리다. 너무 힘들게 한국에 도착해 충북 진천에 갔는데 한국 정부가 다리어(아프가니스탄에서 사용하는 페르시아어)를 할 수 있는 사람을 통역사로 준비해놨더라. 같은 언어로 탈레반이 우리를 힘들게 했는데, 한국 진천에서 다리어로 환영한다는 말을 들으니 감동적이었다.”(샤케르)
이들에게 한국은 두 번째 국가나 다름없다. “한국은 우리 가족에게 두 번째 국가이자, 우리 집이다.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언어를 배울 수밖에 없다.”(다우드) “아이들 때문에 열심히 일하고 있다. 우리 아이들이 한국에서 일자리를 찾고 좋은 미래를 찾을 수 있길 바란다.”(샤케르)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울산시교육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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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 어린이들 손잡고 등교한 노옥희 교육감
아프가니스탄에서 온 특별기여자 자녀들이 첫 등교를 하는 2022년 3월21일, 초등학생 아이의 손을 잡고 걸어가는 노옥희 울산시교육감(사진)의 모습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잔잔한 감동을 불러일으켰다. 아프가니스탄 특별기여자 중 울산에 정착한 29가구의 자녀 85명을 학교에 배정하는 과정에서, 이 조처에 반대하는 기존 학부모들을 설득한 끝에 어렵게 이뤄진 첫 등교였기 때문이다. 4월8일 울산시교육청에서 노옥희 교육감을 만났다.
첫 등교는 어땠나. 그날이 아프가니스탄 설날이라고 하더라. 수학여행이나 소풍 가는 것처럼 설레는 느낌이었다. (아프가니스탄) 학생들 모두 자신의 이름을 쓴 쪽지와 같은 반 친구 수만큼 준비한 간식이 든 종이가방을 들고 왔다. 친구들과 잘 지내고 싶은 마음이 전해졌다.
2주 늦게 첫 등교를 하게 된 이유는 뭔가. 입학에 앞서 예방접종을 받고 서류를 발급받아야 했고, 학년별 배치를 위해 학력 심의를 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초등학교 배정에 반대하는 다른 학부모들은 어떻게 설득했나. 두 차례 학부모 대상 설명회를 했다. 아프가니스탄 학생들도 교육받을 권리가 있고 소중한 아이들이라고 호소했다.
아프가니스탄 학생들은 어떻게 지내나. 한국 학생들과 따로, 또 같이 공부한다. 1교시에는 원래 자기 학급에서 같이 공부하고, 2교시엔 한국어를 따로 공부하는 식이다. 초등학교는 28명이 한 학교(서부초등학교)에 배정됐기 때문에 특별학급으로 편성해 따로 공부하고 있다. 중고등학교에선 또래 도우미를 뽑았는데, 한국 학생들이 서로 하려고 했다. 아프가니스탄 여학생들은 남녀 합반 경험이 없어서 어색해하는데, 도우미 친구들이 잘 도와준다고 한다.
학습 격차나 문화적 오해가 생길 가능성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말이 안 통하고 문화가 다르니까 문제가 생길 거라고 예단하는 것은 옳지 않다. 전문 상담교사와 통역사를 따로 뒀다. 아프가니스탄 아이들이 진천(충북)·여수(전남) 시설에 있을 때 갇혔다는 느낌을 받은 것 같더라. 그래서 밖에서 뛰어놀고 싶어서, 사는 곳 건너편 다른 아파트의 놀이터에서 놀았다고 한다. 한국에선 다른 아파트 놀이터에서 잘 놀지 않는 걸 몰랐다. 그래서 남의 놀이터에 무리로 몰려다니며 논다는 불만이 나왔다. 아이들이 혼자 다니기 겁나서이기도 했을 텐데, 사소한 오해가 생기는 부분이 많다.
울산시교육청은 전국 최초로 채식 선택 급식을 해 아프가니스탄 학생들의 급식 적응에 도움이 됐겠다. 아프가니스탄 학생들은 돼지고기를 안 먹는다. 기존 채식 선택 급식에 준해서 급식을 한다. 도시락을 싸오는 경우도 있다.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한국 학생들도 이슬람문화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다문화사회를 살아갈 우리 아이들이 성숙한 세계시민으로 성장하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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