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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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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쌤 페미죠?” 유난한 아이의 궁금증?

‘지금 당장, 차별금지법 제정’ 릴레이 좌담 ③혐오표현 규제는 사전 예방 중요, 차별금지법 같은 근거법 있다면 인권센터들도 제대로 역할 할 것
등록 2021-12-01 14:49 수정 2021-12-02 04:30
손지은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부위원장(왼쪽)과 양승연 유니브페미 활동가가 2021년 11월17일 서울 영등포구 당산동 토즈스터디센터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류우종 기자

손지은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부위원장(왼쪽)과 양승연 유니브페미 활동가가 2021년 11월17일 서울 영등포구 당산동 토즈스터디센터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류우종 기자

차별금지법제정연대는 국회 앞에서 24시간 농성 중이다. 2021년 안에 차별금지법 제정을 요구하는 농성이다. 차별금지법이 왜 지금 시급하게 필요한지 대담에서 살펴본다. 이번 세 번째 대담은 ‘차별금지법 유예가 어떻게 모두의 인권을 후퇴시키는 결과로 이어지는가’에 대한 이야기다. _편집자

어느 순간 ‘페미(페미니스트)냐’는 질문은 당신을 낙인찍겠다는 의도가 짙은 물음이 됐다. 기업 채용에도 등장하는 이 질문은 학교 공간에도 침투했다. “선생님 페미세요?” “○○과 ○○, 걔 페미냐?”라는 질문은 지금 학교 공간에서 누군가를 공격하기 위한 질문으로 떠돈다.

선생님과 학생, 학교라는 공간에 있지만 전혀 다른 위치일 듯한 두 집단은 페미니즘 백래시(성평등에 대한 반발성 공격)를 어떻게 바라볼까. 차별금지법은 이 문제를 해결할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을까.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의 손지은 부위원장, 대학이라는 공간을 배경으로 활동하는 여성주의자들의 모임 ‘유니브페미’의 양승연 회원과 11월17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백래시 흐름 속 ‘페미’라는 낙인

2021년 9월 전교조에서 교사들이 학교에서 겪은 페미니즘 백래시 경험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는데.

지은(손지은) “20대 여성 교사 응답자 67%가 ‘페미니즘 백래시를 경험했다’고 했다. ‘쌤 페미죠?’라는 조롱 섞인 질문부터 성평등 수업에 대한 노골적인 거부까지 백래시 유형이 다양했다. 응답한 선생님의 연령과 성별에 따른 격차가 상당히 큰데, 20대 여성 교사가 겪는 문제가 가장 심각했다. 응답 결과를 보면 백래시 행위자는 60% 이상이 학생이고 백래시를 경험한 교사의 절반 이상은 ‘아무 조처도 하지 못했다’고 한다. 수업이란 학생과 교사의 깊은 신뢰를 바탕으로 이뤄져야 하는 활동이다. 그런데 교사에 대한 페미니즘 백래시 공격은 상호관계의 신뢰를 깨뜨린다. 수업의 유대가 깨지는 심각한 현상인데 학교 당국은 이 문제를 심각하게 보지 않고 그저 ‘요즘 애들의 유난함’의 한 유형으로 치부한다. 학교에서 교사와 학생 사이에 이런 현상이 어떻게 가능한지는 젠더 권력 관점에서 접근해야만 이해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해결의 실마리를 찾는 게 불가능한데 답답할 노릇이다. 고충을 겪는 선생님 중 학교자치기구 등에 도움을 청한 경우는 3%가 되지 않았다. 즉, 학교를 통한 해결은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다.”

초중고뿐만 아니라 대학도 비슷할 것 같다. 유니브페미 회원들이 대학에서 마주하는 요즘 대학 사회의 페미니즘에 대한 분위기는 어떠한가.

승연(양승연) “지금 대학 재학생이 실명으로 페미니스트임을 밝히기 위해서는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다. 페미니즘 리부트(대중화) 시기 여성주의 동아리, 학회 등이 활발해지면서 대학 사회에서 페미니즘이 융성했다. 이후 페미니즘에 대한 백래시가 대두하고 그 과정에서 각 대학 총여학생회가 폐지되는 사태가 이어졌다. 그러면서 어떤 보이지 않는 선도 넘어버렸다. 이런 분위기는 페미니즘에 대한 공격에서 나아가 퀴어, 동물권 등의 활동을 하는 이들에게도 화살이 돌아가는 양상이다. 학생만의 문제도 아니다. 교양수업 등에서 여성학을 가르치는 강사들이 요즘에는 관련 내용을 축소해서 짧게 이야기하고 넘어가는 분위기다. 여성학, 여성주의 내용이 강의에 들어가면 교수평가 때 평점 테러로 이어지기도 하고 강사에게는 그것이 재계약시 불이익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지은 “교사들의 교원평가도 마찬가지다. 성평등 수업을 하는 선생님의 교원평가에도 관련 내용을 가르치면 ‘메갈 교사다’라는 내용이 주관식 평가란에 적힌다.”

제 역할 못하는 학내 차별시정기구

교사로, 학생으로 마주하는 페미니즘 백래시 문제에서 차별금지법은 어떤 구실을 할 수 있을까.

지은 “학교는 엄청나게 보수적인 공간이다. 옳고 그름을 떠나 어떤 것도 바꾸지 않으려는 관성이 작용한다. 그럴 때 가장 효과적인 게 상위법이다. 지금 같은 차별적인 현상을 바꿀 상위법은 바로 차별금지법이다. 아무리 뜻있는 교육감, 교장이 부임해 차별 시정 정책을 추진하려 해도 내외부의 거센 반발이 있으면 무산되는 게 지금 교육 현실이다. 차별금지법 같은 상위법을 근거로 반차별 정책, 평등한 교육 내용을 도입한다면 흔들림 없이 진행해나갈 수 있다. 이뿐만 아니라 학교에는 성소수자 학생, 성소수자 교사도 있는데 교육 내용에 아무것도 담겨 있지 않고 그들을 보호할 방법도 없다. 차별금지법에는 공교육에 평등한 내용이 담겨야 하는 것도 포함됐다. 교육 내용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손지은 부위원장은 “교실에서 여성 교사에게 가해지는 성희롱이나 페미니즘을 문제 삼는 괴롭힘을 차별금지법을 통해 괴롭힘, 성차별적 괴롭힘으로 명확히 규정하고 시정 조처될 수 있게 하는 것이 지금 교육 현장에서 너무나 필요하다”고도 강조했다.

승연 “대학에서 유일한 학내 차별시정기구인 인권센터가 너무 힘이 없다. 서울대에 만들어지고 나서 사립대학에도 우후죽순 만들어졌는데 명확한 근거나 제대로 된 기반 없이 출발하면서 인권센터의 역할도 한정적이고 심지어 센터 선생님들의 고용도 불안정하다. 차별금지법 같은 근거법, 대학 사회에서도 차용할 수 있는 평등의 기본법이 있다면 인권센터들도 제대로 역할을 하는 곳으로 변화할 것임을 기대한다. 사실 유니브페미는 법 제정 운동을 우선순위에 두는 단체는 아니다. 그런데 차별금지법은 좀 다르게 생각한다. 2020년 대학 온라인 커뮤니티 혐오표현 대응 활동을 해나가면서 혐오표현 규제는 사후 처벌보다 사전 예방이 더 중요하고 효과적인 방식임을 알게 됐다. 차별금지법은 사전 예방을 가능하게 하는 법으로 우리 단체의 활동에도 꼭 필요한 법이다. 이 때문에 차별금지법 제정 운동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현재 국회에 발의된 차별금지법안에는 차별행위에 대한 형사처벌 조항은 담기지 않았다. 차별에 문제 제기했다는 이유로 불이익 조치를 가하는 경우만을 형사처벌한다고 명시했다. 대신 차별금지법안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차별을 예방하고 시정해야 할 책무를 풍부하게 규정하고 있다.

무력화된 국민청원, 심사도 안 하는 국회

차별금지법이 시급하지 않다는 국회와 정치인들에게 한마디 한다면.

지은 “제발 일 좀 했으면 좋겠다. 전교조의 ‘학급당 학생 수 20명’ 청원도, 차별금지법 청원도 아무런 심사 없이 기한만 2024년까지 연장했다. (누리집을 통해 30일 동안 국민 10만 명의 동의를 받아 청원할 수 있도록 한) 국민동의청원제도는 왜 만든 것인가. 차별받는 사람들이 여기 있는데 왜 시급하지 않은가.”

승연 “정치권에서 아직도 합의 운운한다. 이런 다수만을 중시하는 발상은 민주주의에 역행한다. 합의를 기다리며 다수가 동의할 때까지 놓아버리면 안 되는 문제가 차별이다.”

장예정·조혜인 차별금지법제정연대 공동집행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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