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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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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운서도 남성 정규직, 여성 비정규직 뽑는데

‘지금 당장, 차별금지법 제정’ 릴레이 좌담 ②
이주민이어서 여성이어서 밀려나는 사람들, 차별은 먹고사는 문제 넘어 죽고 사는 문제
등록 2021-11-25 12:56 수정 2021-11-25 23:30
2021년 11월7일 열린 ‘2021 이주노동자대회’에 참여한 다문화가족지원센터의 이주여성노동자들. 이들은 전태일다리부터 청운효자동주민센터까지 행진했다. 미셸(가명)도 이날 행진에 참가했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제공

2021년 11월7일 열린 ‘2021 이주노동자대회’에 참여한 다문화가족지원센터의 이주여성노동자들. 이들은 전태일다리부터 청운효자동주민센터까지 행진했다. 미셸(가명)도 이날 행진에 참가했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제공

차별금지법제정연대는 2021년 11월8일 국회 앞에서 24시간 농성을 시작했다. 2021년 안에 차별금지법 제정을 요구하는 농성이다. 차별금지법이 왜 지금 시급하게 필요한 것일까. 세 차례 대담에서 살펴본다. 이번 두 번째 대담은 ‘채용·임금 차별 등 먹고사는 문제와 차별금지법이 어떻게 연결돼 있는가’에 관한 내용이다. _편집자

이주여성은 선주민(先住民)인 직원들과 달리 출산 전 휴가를 쓰지 못하고 출산 전날 양수가 터질 때까지 일해야 했다. 여성가족부 산하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일하는 이주여성들이 제기하는 차별 사례다. 여성 아나운서들은 프리랜서로 채용돼 법정휴일에도 쉬지 못하고 정규직인 남성 아나운서의 대타로 뛰어야 했다. 대전MBC 사례다.

차별은 생계 문제이자 일터에서의 노동조건을 좌우하는 문제다. 여성들은 “차별금지법은 시급한 문제가 아니”라는 정치인들의 말과 싸우며 일터에서의 차별 문제를 드러낸다.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이중언어코치로 일하는 미셸(가명)과 채용성차별철폐공동행동에 함께하는 서울여성노동자회 활동가 여름(활동명)을 11월12일 만나 관련한 이야기를 나눴다.

이주민의 노동은 선주민보다 가치가 낮다?

9월27일 이주여성들은 여성가족부 산하 다문화가족지원센터의 임금차별 문제에 항의하며 국가인권위원회, 여성가족부와 청와대 앞까지 행진했다. 어떤 차별 문제를 제기했나.

미셸 “10년 넘게 이중언어코치로 일하지만 1년차 코치와 같은 월급을 받는다. 전국의 다문화가족지원센터 이중언어코치, 통번역사 모두가 마찬가지다. 경력에 따른 호봉을 적용해주지 않는다. 가족수당, 야근수당 등에 관한 공통된 지침도 없다. 센터, 지자체 마음이다. 나는 2020년까지 아무런 수당도 받지 못했다. 그냥 무급봉사로 야근해온 것이다. 선주민인 직원들은 전혀 다른 대우를 받는다. 다문화가족지원센터의 상담·사례관리사, 행정직 등은 처음부터 호봉도 받고 수당도 받았다. 결혼이주여성에게 다문화가족지원센터는 친정집과 같다. 어려움에 처하면 센터 말고 도움을 청할 곳이 없다. 나는 센터에서 이중언어코치를 넘어서는 다양한 역할을 한다. 통역하고, 각종 정보를 안내하고, 서식 작성을 돕고, 한국 생활에 대한 상담을 한다. 같은 결혼이민자인 내가 있어 편안한 마음으로 센터에 오는 여성이 많다는 것을 알기에 내 직무를 넘어서는 일까지 하는 것이다.”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이주여성 직원들은 센터를 편안하고 기댈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드는 존재다. 그럼에도 이들의 노동과 기여는 정당하게 평가되지 않는다. 여기에는 이주여성 노동에 대한 이중의 평가절하가 깔려 있다. 한국 사회에서 여성의 노동은 여전히 생계를 위한 것이 아닌 보조적인 것으로 취급된다. 가족을 재생산하는 역할만을 기대받는 이주여성은 더욱 그렇다. 그에 더해 이주민의 노동은 선주민보다 가치가 낮다고 평가된다. 이에 대해 여성가족부는 각 직무의 임금체계가 직무급제와 호봉제로 다르게 설계됐기에 발생하는 차이일 뿐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이주민이 맡는 통번역사, 이중언어코치 직무만 낮은 임금체계여야 하는 이유에는 아무런 설명이 없다.

이주민과 선주민의 직무를 분리해 다르게 대우하는 형식의 차별은 ‘성별 분리 채용’ 문제를 떠올리게 하는데.

여름 “성별 분리 채용에서 시작되는 고용 성차별 문제는 2019년 대전MBC 채용 성차별 사건에서 전형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여성 아나운서와 남성 아나운서가 동일한 업무를 하는데도, 대전MBC는 남성은 모두 정규직, 여성은 모두 프리랜서로만 채용해왔다. 여성은 정규직이 아니기 때문에 남성보다 160만원가량 더 적은 임금을 받고 일했다. 연차도 제대로 쓸 수 없었다. 법정휴일에는 정규직 남성 아나운서에게 일을 시키지 못하니 프리랜서인 여성 아나운서들이 대타로 뛰어야 했다. 여성을 프리랜서로 채용해서 다루기도 쉽고 일정 연령이 됐을 때 내보내기도 쉽게 만든 것이 임금과 노동조건 차별까지 이어졌다. 국가인권위원회는 대전MBC의 분리 채용을 성차별이라고 판단했다.”

문제제기하는 사람 혼자 버려두지 않는 법

이렇게 심각하게 존재하는 차별을 드러내기 어려운 이유는 무엇일까.

여름 “채용성차별철폐공동행동은 공공기관과 금융권에서의 채용 성차별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응해왔다. 2017년 최종 합격자의 성비를 미리 결정해두고 남성을 더 많이 뽑기 위해 여성 지원자의 점수를 조작해서 탈락시켜온 공공기관과 금융권의 관행이 감사원과 금융감독원 등의 조사로 드러났다. 실력과 스펙에서 남성에게 결코 뒤지지 않던 여성의 구직이 왜 이렇게 어려울까라는 물음 앞에서 짐작만 했던 채용 성차별이 확인된 충격적인 순간이다. 문제는 구직자나 노동자의 입장에서 차별이 의심돼도 그것을 입증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채용 전 과정과 결과를 기업이 투명하게 공개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미셸 “우리의 문제제기에 대한 여성가족부의 답변을 보고 ‘여성가족부마저 우리를 이렇게 차별하는데 누가 우리를 정당하게 대우해줄까’라고 느꼈다. 나는 대체인력을 구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근로기준법에 보장된 출산 전 휴가, 육아휴직조차 제대로 쓰지 못했다. 같이 일하는 선주민 직원은 모두 출산 전 휴가와 육아휴직을 문제없이 사용한다. 센터에서 권리를 주장한 뒤로 사람들에게 모욕당하거나 사업 진행을 방해받는 일이 많아졌다. 괴롭힘을 당하는 것이다. 불이익이 두려워 이런 문제제기조차 할 수 없는 사람이 대다수다. 안타깝다.”

차별에 문제제기하려는 사람을 혼자 버려두지 않는 법이 필요한 이유다. 기업이 차별 없음을 스스로 입증하도록 하고, 고용과 관련한 주요 정보를 공개할 의무를 지도록 하며 차별 진정 등을 했다는 이유로 불이익을 당하지 않도록 피해자를 보호하는 차별금지법의 규정은 이런 의미에서 중요하다.

법 제정만으로도 사회적 무게감 생겨

차별금지법 제정은 어떤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하는가.

미셸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생기기 전에는 괴롭힘을 당해도 그냥 참았는데, 근로기준법에 직장 내 괴롭힘 금지 조항이 생기면서 그래도 1% 정도는 싸워보는 사람이 생기고 있지 않나. 마찬가지로 차별금지법이 생기면 적어도 항의해볼 수 있게 된다. 그것을 통해 사회가 조금씩 나아지리라 기대한다.”

여름 “차별을 규율하는 법이 제정된다는 것만으로 사회에 주는 무게감이 있다. 채용을 준비하는 여성들은 여성을 거르기 위한 차별적 질문에 대비하는 데 많은 에너지를 쓴다. 이런 불안감을 가지고 사회에 진입해야 한다는 게 얼마나 답답한 일인가. 최근 급증한 20대 여성의 자살률을 ‘조용한 학살’이라고까지 표현하는 것은 이와 무관하지 않다. 차별은 먹고사는 문제를 넘어 죽고 사는 문제다. 이게 부탁할 일인가 싶지만 간곡히 부탁한다. 차별금지법, 반드시 연내에 제정돼야 한다.”

조혜인·장예정 차별금지법제정연대 공동집행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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