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6월9일 광주 동구 학동4구역 재개발구역에서 일어난 건물 붕괴사고로 어머니를 잃은 이진의(39)씨는 슬픈 추석을 준비하고 있다. 부모님과 세 남매, 조카들까지 열 식구가 떠들썩하게 지내던 명절은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추억이 됐다. 시간이 지날수록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서러움은 더해지고 어머니의 손때가 묻은 가계부를 만지작거리는 시간이 늘어갔다. 이씨에게 즐거운 명절은 남 일이 됐다.
이씨는 “어머니가 매일 쓰던 일기장과 가계부를 차마 치울 수가 없어 집에 보관하고 있다. 이번 추석은 사고 후 처음 맞는 명절이라 다른 유족분들과 조촐하게 추모제를 준비하고 있다. 추모제에 공직자, 정치인들도 참석할 예정인데 말뿐인 위로가 되지 않길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나머지 희생자 8명 가족의 삶도 사고날인 6월9일에 멈춰 있다. 유족대표단과 이들의 법률대리인단이 엄정한 수사를 촉구하며 8월5일 광주경찰청에 제출한 진정서를 보면 각 가족의 힘든 사연을 엿볼 수 있다.
고등학교 2학년인 외아들을 잃은 ㄱ씨는 “우리 부부는 자다가도 깨어나 하나뿐인 아들의 이름을 부르며 통곡하곤 한다. 꿈속에서 본 아들은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내 생명을 바쳐서라도 아들의 원통함을 풀어주고 싶다”고 했다.
다섯 자매 중 막냇동생을 잃은 ㄴ씨는 “동생은 7명이나 되는 조카들과 가장 재미있게 놀아주곤 했다. ‘막내 이모는 어디 있냐’는 조카의 질문에 ‘하늘나라에 있다’고 힘들게 말씀하시는 어머니를 볼 때 지옥문이 열리는 것 같았다. 우리 가족은 끝 모를 고통을 느끼며 날마다 2021년 6월9일로 살아가고 있다”고 밝혔다.
ㄷ씨는 “6월9일은 내 생일이자 어머니가 돌아가신 날이다. 어머니는 내 생일상을 준비하기 위해 시장에 가려고 평소 탈 일이 없었던 54번 버스에 올랐다. 어머니 손을 잡고 십수 년 동안 매일 나섰던 산책은 이제 멈췄다. 어머니의 평소 바람처럼 다음 생에서는 새가 돼 자유롭게 사시다가 그다음 생에는 꼭 내 딸로 태어나줬으면 한다”고 적었다.
그밖에 허리 수술을 받은 부인을 위해 집안일을 책임지다 세상을 떠난 70대 가장, 노인복지관에서 봉사활동을 한 뒤 귀갓길에 변을 당한 70대 요양보호사 등의 사연이 알려지면서 주변을 더 안타깝게 했다.
최근에는 ‘유족들이 거액의 합의금을 받았다’는 유언비어가 퍼지거나 일부 드라마에서 광주 붕괴사고 영상을 상업적으로 이용해 유족들을 더욱 힘들게 했다. 유족, 시민단체로 구성된 ‘학동참사 시민대책위원회’는 9월8일 기자회견에서 “유족들을 두 번 죽이는 행위를 멈춰달라”고 호소했다.
유족들의 바람은 하나다. 사고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철저하게 이뤄져 희생자들의 억울함을 풀어주고 재발을 막는 것이다. 하지만 경찰의 수사는 더디기만 하다.
비용 줄이려 저가 장비 쓰다 일어난 사고7월28일 광주경찰청 수사본부는 “불법하도급을 받은 영세 건설업체가 비용을 아끼려 저가 장비를 운영하다 붕괴가 일어난 것”이라고 중간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재개발사업 시공사인 현대산업개발은 한솔기업과 50억원에 610개 건물 철거공사 계약을 했고 한솔기업은 다원이앤씨와 이면계약을 맺어 7 대 3으로 공사를 나눈 뒤 광주에 있는 백솔건설에 12억원을 주고 불법하도급을 맡겼다. 이 과정에서 조폭 출신이라는 의혹을 받는 문흥식(61) 전 5·18구속부상자회 회장이 관여한 것으로 경찰은 보고 있다.
공사 전 동구청에서 승인한 건물 해체계획서에는 건물 옥상부터 철거하도록 나와 있지만 백솔건설은 6월7일 도로변에 있는 5층 건물 철거 때 성토물(흙언덕)을 2층 높이로 쌓고 작업했다. 백솔건설이 운영한 30t 굴착기의 압쇄기가 옥상까지 닿지 않았던 것이다. 작업 반경이 더 큰 장비(롱붐 굴착기)는 비용이 2∼3배 더 비싼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과정에서 현대산업개발은 비산먼지에 대한 민원을 줄이기 위해 살수(물뿌림)차를 기존 2대에서 4대로 늘렸다. 부실공사를 감독해야 할 감리는 현장에 단 한 차례도 나타나지 않았다. 결국 응집력이 약해진 성토물은 6월9일 굴착기 무게를 견디지 못하며 건물 쪽으로 쏠렸고 건물 외벽이 도로 쪽으로 무너지며 지나가던 54번 버스를 덮쳐 탑승객 9명이 숨지고 8명이 다쳤다.
사고 직후 현대산업개발 정몽규 회장과 권순호 대표이사는 광주를 방문해 “철거공사는 정식 계약업체인 한솔기업이 했다. 불법하도급은 없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현대산업개발 현장소장 등이 카카오톡 단체대화방을 통해 작업을 지시한 정황이 드러나며 현장소장, 안전부장, 공무부장은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로 기소돼 재판받고 있다.
일각에서는 현대산업개발을 원흉으로 지목하고 있다. 현대산업개발이 재개발조합 비리 등을 눈감아주는 대가로 공사비를 30% 이상 올리려고 했다는 의혹이 나온다. 사고가 일어나기 두 달 전인 4월23일 학동4구역주택재개발정비사업조합은 이사회를 열어 ‘시공사 도급금액변경 협의요청건’을 긴급 안건으로 올렸다. 2018년 2월 현대산업개발은 조합과 4630억원에 19개동 2282가구 규모 아파트단지 건설공사 계약을 맺었다. 주차장 확장, 마감재 고급화 등을 명목으로 공사비 1459억원을 올려달라는 요구였다. 현대산업개발은 조합에 금액 추가에 대한 변경 항목을 보냈지만 항목별 구체적 공사비는 제시하지 않았다. 이 안건은 붕괴사고가 일어나며 현재 제동이 걸린 상태다. 앞서 전 조합장이 현대산업개발 관계자에게 특정 업체를 철거업체로 선정해달라고 요구하는 녹취가 공개되기도 했다.
조합 관계자는 “현대산업개발이 재개발조합을 앞세워 아파트 공사를 진행하며 온갖 비리를 묵인하는 대가로 공사비를 증액하려 한 것이다. 억울하게 세상을 떠난 피해자들을 위해서라도 수사와 재판에서 철저하게 재개발 비리가 밝혀져야 한다”고 말했다.
현대산업개발 홍보팀은 “조합은 지난해 3월 ‘특화설계변경' 요청을 했고 같은해 12월 총회를 열어 특화설계변경 안건을 통과시켰다. 우리는 조합원 요청에 따라 특화설계변경을 했고 공사비 증액을 제안한 것이다. 조합의 비리를 눈감아주는 대가로 공사비를 올리려고 했다는 의혹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광주=글·사진 김용희 <한겨레> 기자 kimy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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