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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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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세상에서 가장 긴 무덤 ‘골령골’

6·25전쟁 때 7천여 명 학살한 죽음의 골짜기
2007년 첫 유해발굴 뒤 현재까지 750여 구 찾아
등록 2021-09-22 18:18 수정 2021-09-23 02:52
2021년 8월6일 대전 산내 학살 희생자 유해발굴단 연구원들이 골령골 현장에서 유해발굴 작업을 하고 있다. 발굴단 제공

2021년 8월6일 대전 산내 학살 희생자 유해발굴단 연구원들이 골령골 현장에서 유해발굴 작업을 하고 있다. 발굴단 제공

9월10일 찾은 대전 산내 골령골(동구 낭월동 13번지 일원)에선 유해발굴 작업이 한창이었습니다. 가로 6m, 세로 1m의 작은 구덩이 안에 유해가 가득했습니다. 드러난 유해는 머리뼈와 팔뼈, 다리뼈가 서로 맞닿은 형태였습니다. 사람들이 쪼그려 앉은 채로 다닥다닥 붙어 구덩이 안에 들어가 있는 모양이었습니다. 유해들 사이로 고무신과 군화, 탄피와 탄두도 눈에 띄었습니다.

작업 중이던 ‘대전 산내 학살 유해발굴단’ 박정미 연구원(한국선사문화연구원 소속)은 “좁은 구덩이 안에 들어가게 한 뒤 뒷머리에 손을 얹고 쪼그려 앉게 하고 머리에 총을 쏴 죽인 다음 그대로 묻은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좁은 구덩이에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묻혀

처참한 모습의 유해들이 발굴되는 골령골은 한국전쟁 발발 직후인 1950년 6월28일∼7월17일 대전형무소에 수감된 재소자와 대전·충남 지역에서 좌익으로 몰린 민간인들이 집단학살돼 묻힌 곳입니다. 희생자들이 묻힌 구덩이들을 연결하면 1㎞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세상에서 가장 긴 무덤’으로 불리는 곳이기도 합니다. 1992년 12월 말 미국 기밀문서가 해제돼 공개되면서 세상에 널리 알려졌습니다.

학살은 모두 세 차례 이뤄졌는데, 7천여 명이 군경에 의해 무차별 집단 사살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1차 학살(1950년 6월28∼30일)은 보도연맹원 등이 주요 대상이었는데 이와 관련해 당시 미군 25사단의 전투일지에는 “한국 정부의 지시로 대전과 그 인근에서 공산주의 단체 가입 및 활동으로 체포됐던 민간인 1400명이 경찰에 의해 살해됐다. 이들의 시신은 대전에서 약 4㎞ 떨어진 산에 매장됐다”고 나와 있습니다.

2차 학살(1950년 7월3∼5일)은 북한군이 대전형무소 정치범들을 석방하는 것을 방지한다는 이유로 재소자를 상대로 이뤄졌는데, 1800여 명이 처형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2차 학살 당시 상황에 대해 영국 <데일리 워커>의 한국전쟁 특파원이었던 앨런 워닝턴 기자는 “대전 인근의 감옥과 수용소에서 온 모든 정치범이 줄에 묶인 후 정신 나간 상태로 정어리처럼 차곡차곡 쌓여 트럭에 실려 계곡으로 끌려왔다”고 기록했습니다.

3차 학살(1950년 7월6∼17일) 때 보도연맹원과 대전형무소 재소자들이 골령골에서 가장 많이 살해된 것으로 보이는데, 워닝턴 기자는 “7월16일 인민군이 미군의 금강 방어라인을 무너뜨렸고, 7월17일 동이 틀 무렵까지 나머지 재소자들의 학살이 이뤄졌다. 7월16일 100명씩 실은 트럭 37대가 계곡으로 이동했고, 여성 상당수를 포함한 3700명이 사살됐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습니다.

끔찍한 학살의 현장은 2007년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주도로 진행된 첫 유해발굴에서 유해 34구가 나오며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시민사회단체·유족회·전문가 등으로 꾸려진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희생 발굴 공동조사단’도 2015년 골령골에서 유해 12구를 발굴했습니다. 2020년에는 행정안전부와 대전 동구청 주관으로 발굴이 진행돼 유해 234구가 수습됐습니다. 2021년 6월부터 9월까지 행안부와 동구청 주관으로 1320㎡에서 이뤄지는 유해발굴에서도 지금까지 유해 475구가 발굴됐습니다. 2020~2021년 발굴 작업은 2차 학살지로 추정되는 곳에서 이뤄졌습니다.

9월10일 골령골 현장에서 발굴된 유해들 모습. 한겨레 최예린 기자

9월10일 골령골 현장에서 발굴된 유해들 모습. 한겨레 최예린 기자

여성은 물론 미성년자까지 마구 학살

9월10일 현장에서 만난 유해발굴 작업을 총괄하는 박선주 책임연구원(충북대 고고미술사학과 명예교수)은 수습된 유해를 분석해 희생자 나이와 성별, 사망 원인 등을 알아내는 감식 작업 중이었습니다. 박 책임연구원은 “여러 증언과 자료에 ‘희생자 중 미성년자와 여성이 있었다’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2020년 유해발굴과 감식을 통해 그 이야기가 사실로 증명됐다. 2021년에도 미성년자와 여성의 것으로 보이는 유해가 발굴됐다. 골령골 유해발굴은 1950년 이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그 진실을 밝히는 밑바탕이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동안 대전 시민사회단체들과 대전산내사건희생자유족회는 해마다 희생자 위령제를 지내고 유해발굴과 진상규명, 유해 안치 시설 마련 등을 촉구해왔습니다. 그 결과 골령골에 2024년까지 평화위령공원인 ‘진실과 화해의 숲’이 조성돼 발굴된 유해를 안치할 예정입니다. 행안부와 동구청은 현재 이 시설의 건립을 위한 설계용역을 진행 중입니다.

유해발굴 현장을 지켜본 전미경 대전산내사건희생자유족회장은 “유해가 발굴되는 현장에서 가슴이 찢어졌다. 너무 비참해서 유해를 차마 바라볼 수 없었다”며 “‘진실과 화해의 숲’이 시민들이 혐오감을 느끼지 않고 편안하게 찾아와 한국전쟁 때 희생된 분들을 기억하는 공간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2024년까지 ‘진실과 화해의 숲’ 조성 예정

2021년 발굴 작업에는 자원봉사자들도 힘을 보탰습니다. 8월6일까지 186명이 발굴 현장을 찾아와 흙을 나르는 등 자원봉사를 했습니다. 그런데 자원봉사자를 모집하는 과정에서 황당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심용현, 김창룡, 문봉제, 이승만 등의 이름으로 ‘거짓 봉사’ 신청이 이어진 것입니다. 신청서에 적은 전화번호도 가짜였는데, 이런 신청 사례가 20여 건에 이르렀습니다. 심용현은 산내 학살 현장 지휘 책임자로 알려져 있고, 김창룡은 한국전쟁 당시 민간인 학살에 관여했다는 증언이 있으며, 문봉제는 제주4·3 사건 때 민간인 학살을 자행한 서북청년회에서 활동한 자입니다.

이런 소식이 알려지자 유족들은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유족회는 7월19일 대전동부경찰서에 “희생자 유해발굴과 관련해 악의적으로, 허위로 자원봉사 신청을 한 것은 희생자 유가족에게 정신적으로 고통을 주는 행위인 동시에 유해발굴 자원봉사 모집 작업을 심각하게 방해한 행위로 모욕죄 및 업무방해에 해당한다”며 “허위 신청한 사람을 찾아달라”고 고소장을 냈습니다. 현재 경찰이 수사 중입니다.

전미경 유족회장은 “유족들의 가슴에 총질한 것”이라며 “무슨 의도로 이런 행동을 한 건지 묻고 싶다. 할 말이 있으면 정정당당하게 유족들 앞에 나와 서라”고 말했습니다.

대전=최예린 <한겨레> 기자 floy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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